# 351
회귀자 사용설명서 351화
김현아 (1)
‘저 돼지새끼는 도움이 되는 거야. 마는 거야.’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전혀 의외의 상황에 분탕질을 쳐놓기도 한다.
모처럼 김현성의 입에서 회귀했다라는 말을 막 들을 수 있었던 타이밍. 녀석으로써도 굉장히 고심을 많이 했을 것이다.
미묘한 분위기에 본인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보물 상자를 풀어보려고 했음이 분명했다.
이 짧은 틈은 김현성에게 다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시간을 줄 것이다.
정신없이 몰아치던 와중에 방해꾼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기차가 완전히 떠났다고 말할 타이밍은 아니다.
‘아직 가능해.’
곧바로 김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연 것은 당연한 일.
“현성 씨 하려고 한 이야기가….”
“…….”
“…….”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길.’
“나중에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고 현재 풀어야 할 문제도 있으니까요.”
‘이럴 줄 알았어. 씨발 이럴 줄 알았다고.’
기왕이면 한 번 더 조르고 싶다. 하지만 너무 티가 나게 묻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맞나?’
사실 진실을 밝힐 고민을 한 번쯤 해봤다는 것만 해도 이쪽에는 큰 성과.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을 밝힌다는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첫 번째 시도가 있었으니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는 조금 더 쉽게 나타날 것이다. 아직까지 입가에는 찹찹함이 감돌고 있기는 했지만 일단은 기차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럼 다음에….”
“…….”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현성이 문을 열자 이쪽을 바라보는 길드원들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인다.
물론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던 박덕구.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이는 표정이 눈에 띄었지만 딱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재빠르게 이쪽으로 달라 붙어온 정하얀이나 선희영과 조혜진도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김현성이 방에서 대화를 나눈 사이에 기분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무슨 일입니까? 덕구 씨.”
“나보다는 엘리오스 님한테 듣는 게 더 빠를 거요. 큼큼. 거 좋은 소식이요.”
박덕구의 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성은 꽤나 긴장한 듯한 얼굴. 뒤쪽에서 다른 엘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엘리오스가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몇 가지 말씀드려야 할 사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이 전까지의 무례에 대해서는 거듭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사과를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거야.’
아무래도 정말로 미안했던 모양이다. 본래 성격이 유하다고 소문난 엘프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이쯤 되면 이쪽도 조금은 지겹다. 아무튼 간에 녀석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지금부터 녀석이 하는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 파티가 가야 할 길이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방금 전 아버님께 칙서를 전달받았습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
“아버님께서는 파란 길드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우….’
“에베리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파란 길드 여러분들을 지원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만… 몇 가지 조항에 동의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지.’
“상관없습니다. 지금 바로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 네. 일단 저를 비롯한 엘프들이 함께 움직여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러분들끼리 움직이게 하기에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안하신 게 당연하니까요.”
“그럼… 또 한 가지는 이번 일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조항입니다. 물론 아무 효과도 없는 문서입니다만 최소한 한 번씩은 확인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안심을 하고 싶다는 게 위원회의 입장이라…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
“교국에 무녀에게 전해 들은 내용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카스가노 님이 본 광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불편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부디 부탁드립니다.”
‘우리 현성이 거짓말 잘 못하는데….’
고개를 틀어 김현성을 바라보자 확실히 곰곰이 고민하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카스가노 유노에게 미래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이번 정황을 알고 있다는 건 이쪽이 대충 끼워 맞추어준 거짓말이다.
아마 그녀와는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쪽이 나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순간이었다. 김현성이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어온 것.
“에베리아의 멸망입니다.”
“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자식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1회 차인 건가.’
아마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얼굴 속에 담긴 진심을 느낀 것은 엘리오스 역시 마찬가지. 곧바로 반문해 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게 정말입니까?”
“저는 들은 대로 말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정확한 시기는 저 역시 듣지 못했지만 에베리아 왕국이 커다란 전화에 휩싸인다고 들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전쟁이 일어나고 인류와 이 종족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이곳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고 투쟁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종말론을 외치는 사이비 교주가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는 것 같았지만 꽤나 진지한 표정은 녀석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원인이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들은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수는….”
“썩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이곳에 왔으니까요. 미래는 변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오스 님. 그녀가 눈으로 보는 게 정확한 미래는 아닙니다. 아주 작은 행동으로도 분명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이건 성장했다고 봐도 되는 건가?’
1회 차의 정보에 많이 의지하며 움직였던 과거와는 조금 다른 행보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습.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현성 성장은 항상 이쪽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 물론 개인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녀석이 잠깐 동안 푼 정보 역시 흥미가 돋는다.
‘최후의 저항? 연합?’
지금처럼 공화국과 교국의 전쟁이 아니다. 아마 가면쓰레기 진청이 혹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적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리라.
‘만약에 그렇게 되면… 세계수가 썩은 건 그 전에 해결됐었다고 봐도 되는 건가.’
물론 추측이다. 하지만 세계수가 유지되는 결계가 무너진 에베리아 왕국이 최후의 저항의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해 봐도 믿기 힘들다. 물론 이곳의 방비가 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높은 성벽으로 이루어진 캐슬락이나 교국 같은 느낌이라고는 볼 수 없다.
만약 세계수가 완전히 무너졌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최후의 장소로 선택했다면 1회 차의 지휘관들은 머리에 든 것도 없는 똥 덩어리라 한 바가지 욕을 쏘아 보내도 모자라다.
‘현성이가 해결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정황상 녀석이 직접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현성이 말하는 최후의 저항 이전에 세계수는 치료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적어도 들은 적은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세계수가 치료된 이후에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고 결국 인류는 대패.
이후에 다른 전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이 회귀한 시점 역시 멀지 않을 것이다.
흥미롭게 생각해 볼 만한 일이 많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은 없는 상황. 분위기가 흘러가는 게 심상치 않게 느껴진 탓이다.
‘제기랄….’
“그렇군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천천히 상의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뇨. 움직이면서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 말씀은….”
“지금 곧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엘리오스 님 곧바로 엘프 쪽의 원정대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먼 길을 오느라 무리하셨을 텐데… 조금이라도….”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부족한 설명과 브리핑은 움직이는 중에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좀 쉬어도 돼.’
“물론 이후에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 길드원은 지금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해주세요.”
“현성 씨. 아무리 그래도… 지금 모두가 많이 지쳐 있….”
“아니요. 괜찮아요.”
“저희도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 체력의 여유가 있습니다.”
“뭐 기모 형씨고 그렇고 나도 그렇고 체력에는 여유가 있으니까. 아영 후배나 다른 사람들도 다 충분하지 않나? 오히려 형님이 조금 필요한 것 같은데 조금 자는 게 낫지 않겠소? 거 조금 불편할 것 같으면 내가 업고 움직일 수도 있소. 아니면 수면마법으로 재워서 데려가는 것도 괜찮고. 형님은 한숨 자고 깨어나 있으면 곧바로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을 거요. 아! 그러고 보니 형님도 같이 가야 되는 거요?”
이건 또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니 고개를 끄덕여 오는 김현성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네. 힘드시겠지만 기영 씨도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시간은 딱 30분 드리겠습니다.”
“거, 짐도 안 풀어 놓기를 잘 했구만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다 현성이 형씨 때문이요.”
“준비됐습니다.”
“저도 준비됐어요.”
“나도.”
사실 준비고 나발이고 할 것도 없었다. 박덕구의 말 그대로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였으니까. 김현성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 항상 생각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이패스로 일이 진행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살짝 입을 열어봤지만 그마저도 헛된 저항.
“보급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베리아 측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요. 아마 오라버님께서 모두 준비하시고 계실 겁니다.”
“엘레나 님도 함께 가시는 겁니까?”
“네. 미약하지만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혹시나 제가 없는 사이에 명예 추기경님께 문제라도 생긴다면 큰일이니까요. 저밖에 치료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뇨. 저희야말로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한데 목적지는 어디로….”
“일단은 요정의 숲부터 조사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요정의 숲 말씀이십니까?”
“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되겠네요.”
뭔가 묘한 표정의 엘레나가 눈에 들어와 말을 건네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위험한 곳입니까?”
“위험한 장소는 아닙니다만….”
“네.”
“요정들은 장난치는 걸 좋아하니까요.”
“네?”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은 요정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군요. 하긴… 대륙인들에게도 잊혀진 이야기일 테니… 물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요정들의 힘은 특별하기는 하지만 인체에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잠깐 동안 신체의 외형을 바꾸거나 성별을 바꾸는 게 고작이니까요. 그중에서도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있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착한 아이들이랍니다.”
조금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