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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49화 (348/1,590)

# 349

회귀자 사용설명서 349화

엘프들의 도시 (4)

‘제기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로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

“….”

“이렇게 한다면 믿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김창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녀석이 자신의 손을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정말로 싸워야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과민반응한 건가.’

절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정말로 이쪽을 어떻게 하고 싶었다면 김창렬을 인질로 삼는 게 이상적이었을 테니까.

잠깐 동안 침을 삼켜 넘겼을 때 김창렬은 살짝 일어나 민망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죄송합니다라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왔지만 녀석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잘했다는 의미로 어깨를 살짝 두드리자 녀석이 다시금 고개를 숙여왔다.

잠깐의 소강상태로 길드원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 모두가 어떻게 하느냐는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최고 결정권이 나에게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이럴 때는 모두의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후….’

결국에는 나 역시 한발 물러나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녀석에게는 적의가 없어 보이기도 했고 일단은 대화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선은 존재한다.

“무기는 가지고 있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 정도는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원하신다면… 다만 통제에는 꼭 따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통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시고 아버지와 김현성 님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저희가 위협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주신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말씀드릴 이야기가 아닙니다.”

“네.”

뭔가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있는 한 것 같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표정은 세상 모든 근심을 전부 가지고 있는 얼굴.

아무튼 간에 일단 이 갑작스러운 해프닝은 조금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때마침 정하얀과 조혜진이 입구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저들도 이쪽을 보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

정하얀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조혜진의 판단으로 보인다. 침착하게 상황을 두고 본 것이다.

“오빠!”

우다다 달려오는 정하얀을 살짝 안아 주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이쪽이 저쪽이 개판을 만들어 놓은 잔해를 다시금 뒤돌아보는 것은 살짝 민망하기는 했지만 진지한 분위기 덕분인지 그런 기분은 금방 사라졌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쪽을 통제하기 위한 엘프의 숫자가 무척이나 적었다는 것. 엘리오스가 있기야 했지만 녀석은 정하얀으로 충분히 퉁 칠 수 있다.

혹시나 상황이 터진다면 이점은 오히려 우리에게 있다는 거다. 물론 밖에는 다른 엘프들이 길을 막고 있기야 하지만 당장 전투가 일어난다면 유리한 것은 이쪽이다.

어째서 이들이 이런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 자. 우리가 믿을 만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이 있다고 했었지….’

보안이다.

다른 이들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리라.

녀석이 우리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는 현재 김현성이 에베리아의 왕과 나누고 있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잠시 후면 알게 될 일. 대충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천천히 입을 열어오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방금의 무례는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요. 서로 간의 실수가 있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오해를 풀어서 다행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

“엘레나에게 들으신 겁니까?”

“네?”

“아, 아닙니다. 오라버님. 저는….”

“너에게 물은 것이 아니다, 엘레나. 나는 지금 이기영 명예 추기경님께 묻고….”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오라버님. 도대체 어째서 이런 행동을 취하시는지도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륙의 위기를 막아주신 영웅분들께 이런 무례라니요. 우리답지 않은 행동입니다.”

엘레나의 말에 엘리오스가 슬쩍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양.

나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답답함이 풀릴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은 알고 있는 정보가 없다. 차라리 녀석이라도 뭔가를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동안 굳은 얼굴을 하던 엘리오스가 입술을 달싹 거린 이후 다시 한번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

고민하는 표정은 있었지만 어차피 우리도 알게 될 거라는 계산이 선 것 같았다.

“파란 길드 마스터께서 세계수의 상태에 대해 알고 계시더구나.”

“네?”

“정말로 네가 전한 것이 아니란 말이냐?”

“맹세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어째서….”

“엘룬께 맹세코?”

“네. 오라버님.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단언컨대 세계수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꺼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김현성… 이 새끼….’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이 실수했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흘러가는 흐름상 김현성이 현재 왕성에서 나누고 있는 이야기는 엘프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마을을 방문한 인간이 보안이 걸려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으니 난리가 난 것은 당연지사.

‘엘레나에게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이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추측을 했겠지만 엘레나에게 들었을 리가 만무. 김현성은 그저 1회 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전했을 뿐이다.

‘이 새끼는 이걸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면 어떡해.’

녀석의 입장에서는 단 하루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였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이야기해 버린 것은 성급한 처사였다.

엘프 측에서 뭔가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적어도 사전 작업을 조금은 했었어야 했다.

녀석들 입장에선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방인이 자신들만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답답한 자식.’

사실 김현성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는 아니다. 1회 차에 대한 정보를 풀 때도 항상 나름대로의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움직인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리수를 던진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쪽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

정말로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이런 일이면 물불 안 가리는구나.’

우리와 엘프들의 의문은 신경 쓰지도 않은 모양. 1회 차의 통수를 맞은 원동력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조금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쪽을 위해서 감행한 행동이니 원망할 수도 없다.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감수하고서라고 이쪽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이런 똥 치워주는 게 내 역할이지. 뭐.’

기왕이면 이대로 원정 자체가 무산됐으면 하는 기대가 있기는 했지만 엄연히 국제 문제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이 정도는 실드를 쳐주는 것이 맞다.

그나마 이 정도면 즐거운 뒤치다꺼리. 세계수의 상태라는 단어에 힌트를 얻은 이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순식간.

그나마 할 만한 변명으로는 이 정도가 가장 적절하리라. 살짝 입을 열자 곧바로 나를 바라보는 엘리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부인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알고 계셨나 보군요.”

“당신도 알고 계신 겁니까?”

“아뇨.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짚이는 일은 있습니다.”

“그게 무슨….”

“교국에는 미래와 과거를 내다볼 수 있는 이방인이 존재합니다. 물론 제한적입니다만 그녀는 엄연히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레나 공주님처럼 말입니다.”

“…….”

“무엇에 대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전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야 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길드 마스터께서는 교국의 무녀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사실은 이쪽과 조금 더 친하지만.

“그 말씀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타입입니다. 장담컨대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을 겁니다. 혹시나 몇몇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에베리아에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교국의 무녀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타국에게는 말씀드려서는 안 되는 기밀입니다. 교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10명이 채 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오스 님.”

“그렇군요.”

우리는 이제 한배를 탔으니까.

“그럼, 정확히 무슨 일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후우….”

“불편하시다면….”

“아닙니다. 어차피 알게 되실 일이기도 하고… 명예 추기경님이 무슨 뜻으로 방금과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 말씀이 맞습니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시대가 아니지요.”

“…….”

살짝 한숨을 쉰 녀석이 본격적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대충 예상이 가기는 하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

하지만 직접 입으로 듣는 것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명예 추기경님께서는 어째서 저희 엘프들이 어떻게 그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외부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글쎄요. 방금 엘레나 님에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네. 세계수 때문입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자식아.’

“정확히 말하면 세계수에서 뿜어내고 있는 강대한 마력 때문입니다. 저희 왕국은 세계수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숲과 식수는 물론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폐쇄적인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 할 수 있었던 것도 세계수 때문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에베리아 왕국은 자원의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자세히 말하는 거 같은데….’

“외부인의 침입을 막아주는 결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커다란 인력의 소모 없이 세계수의 존재 자체만으로 저희들은 커다란 위험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네. 지금까지는요.”

‘따로 마법사가 있는 게 아니었네.’

어쩐지 수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과거형이로군요.”

“네.”

‘냄새가 나네.’

간단한 이야기다.

“언제부터였습니까?”

“42년 전부터입니다.”

“…….”

“42년 전부터. 세계수의 뿌리가 계속해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부정할 여지가 없다. 무척 간단한 이야기다.

아무리 이쪽의 똥꼬쇼가 있었다고 한들, 엘프들이 꽁으로 이쪽에 손을 내밀었을 리가 없다.

‘너희들도 힘들었구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교국과 라이오스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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