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
회귀자 사용설명서 334화
인생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2)
“들어가도 돼요?”
“네. 물론입니다.”
이지혜의 목소리였다.
이쪽이 존댓말을 하는 것을 듣고 안에 누가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조금은 딱딱해 보였다.
타인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저런 얼굴을 하는 것은 당연.
나를 본 이후 곧바로 카스가노를 흘겨보는 걸로 어서 빨리 옆에 있는 여자를 치워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업 차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드릴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파란 부길드 마스터.”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카스가노 유노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
쟤는 저런 부분이 마음에 든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게 그녀가 아니라 정하얀이었다면 떼를 써서라도 나가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차희라였어도 마찬가지.
애초에 차희라가 이 자리에 있다면 이지혜는 발길을 돌렸을 거다.
조금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만 빼면 카스가노 유노는 지극히 정상인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다.
그나마.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파란 부길드 마스터.”
“네, 카스가노 유노님. 고생하셨습니다.”
이쪽에 인사에는 미소를 보인 뒤 방문을 나가는 뒷모습은 홀가분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담긴 함박 미소를 눈으로 확인한 모양인지 이지혜의 얼굴이 조금은 뾰루퉁해졌다.
“얼굴 좋아 보이네요?”
“응?”
“오빠 얼굴 말고 방금 나간 여자요. 요조라 길드의 카스가노 유노. 아주 세상 다가진 표정이던데 최근에 정하얀 그 여자도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나만 빼고 뭐 즐거운 이야기라도 돌고 있나 봐요? 아니 그보다 제가 했던 말 기억하는 거예요?”
“뭐?”
“저 여자, 믿을 수 있냐고요.”
슬쩍 눈을 흘기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얘가….’
나 역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왠지 모르게 검은색 세계에서 봤던 그녀와 오버랩 됐던 탓이다.
‘정말로 신기하네.’
이지혜의 스펙으로 튜토리얼 던전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그녀의 성격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기야 했겠지만….
‘갑자기 여단에서 얘가 툭 튀어나올 줄은 누가 알았겠어.’
하나하나 천천히 따지고 보면 튜토리얼 던전에서 정진호와 만난 것은 아니다.
정황상 싸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가 그녀보다 이쪽을 먼저 영입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였으니까.
아마 그녀 역시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여단에 자리를 잡았다고 추측하는 것이 맞으리라.
‘영혼의 단짝이라더니.’
1회 차에서 그녀와 내가 언제까지 같이 활동하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오랜 기간 동안 활동했으리라 생각했다.
같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검은색 세계의 나도 그녀가 쓸모 있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정하얀도 그렇고 이지혜도 그렇다.
심지어 선희영과 카스가노 유노 역시 1회 차에 이쪽과 관련이 있었으니 사람 인연이라는 게 굉장히 신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얘도 여단에 들어온 목적이 복수였던 건가?’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와 그 일당들은 본래 미친 연놈들이 모인 집단이었지만 이지혜와 나는 기본적으로 회색 인간에 가깝다.
그녀 역시 이쪽을 등질 이유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물론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지혜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답지 않게 살짝 민망해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뭐, 뭘 사람을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부끄럽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뭐 사업 차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나?”
“그냥 한 소리예요. 그냥 얼굴 보러 온 게 맞아요. 뭐, 기왕 온 만큼 겸사겸사 다른 이야기도 하려고 하기는 했는데…. 어떻게 사람 하나 보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라? 병문안 예약 뚫으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안 그래도 슬슬 일어날 참이었어. 주변에서 자꾸 쉬라고 해서 오히려 문제지.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마침 잘 왔네. 최근에는 좀 어때?”
“그다지 변한 건 없어요. 공화국은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조사하겠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죠. 아! 교국 쪽은 정식으로 대륙재판에 이번 일을 언급하려고 준비중이예요. 공화국 쪽에서는 당연히 불응하겠지만 국제적인 시선을 신경 쓰는 거겠죠? 오스칼 그 사람이 제법 유능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아무튼 간에 여러 가지 방향에서 압박은 계속 넣고 있어요. 이번에 공화국에서 대륙법을 위반했다는 자료를 주변국에 배포하고 있고… 사실 반응은 꽤 좋아요.”
“그건 반가운 소식이네.”
“몇몇 흑마법에 민감한 국가들에서는 이미 국민 여론이 등을 돌렸고… 아, 특히 이종족 쪽에서 분위기가 정말 좋다니까요.”
“이종족?”
“엘프들도 흑마법이라면 질색하잖아요. 뭐, 나도 걔네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
“혹시… 사절단 온다는 건 못 들었어요?”
“못 들은 것 같은데…. 엘프들이 지금 라이오스로 오고 있어?”
“네. 아마 동맹은 삼자로 시작될 것 같아요. 교국을 주체로 엘프 왕국, 이제는 중립국이 아닌 라이오스까지. 와, 오빠 정말로 소외당하고 있었네요. 무슨 어린애도 아닌데 이런 것도 비밀로 하나 몰라? 이번 기회에 정말로 푹 쉴 수 있겠네요. 아아, 부럽다.”
“그렇게 기분 좋지는 않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게 사실이고….”
“그것도 일중독이에요. 아무튼 대충 배경은 말씀드렸던 그대로예요. 공화국이 무슨 배짱으로 악마소환사를 감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걔네들도 머리가 복잡할 걸요. 듣자하니 진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인 세력도 큰 것 같던데. 도려내기에는 너무 큰 종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겠죠, 뭐. 실제로 그가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을 거고요. 진실이야 뭔 상관이겠어요. 이미 그쪽은 악마소환사로 도장이 찍혔는데….”
“그렇지?”
“표정 한번 사악하네요. 진짜 그 사람은 어쩌다가 이런 일에 휘말렸을까….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보네요. 아무튼 알아둬야 할 건 이게 전부예요. 아! 아까 전에 엘프 사절단 이야기했었죠? 이건 저도 명확하지는 않은데 라이오스를 방문하는 엘프 사절단 중에 꽤나 거물이 섞여 있다는 모양이에요.”
“그래?”
“네. 사실 누군지는 몰라요. 그쪽은 워낙 폐쇄적이라 정보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고…. 아마 사절단이 라이오스에 도착하면 오빠를 가장 먼저 찾을 수도 있겠네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협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는 해도, 이 모든 게 라이오스를 지킨 빛의 영웅들 덕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근데 어때요? 영웅이 된 기분은?”
“그걸 굳이 말로 해야 해? 밖을 봐, 누나. 동상이 세워지고 있는데 말 다 했지, 뭐.”
“겸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네요. 이런 쓰레기 같은 면이 좋다니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물론 칭찬이죠.”
슬그머니 다가온 이지혜가 이쪽에 슬쩍 걸터앉았다.
실실 웃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이유야 어찌됐든 이쪽이 무엇인가를 이루어가고 있는 게 기분 좋은 모양.
처음 이지혜가 이쪽에 손을 내밀었을 때 내뱉었던 대사를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오빠 같은 남자를 왕으로 만들 수 있는 여자.’
미 대통령의 일화까지 들먹여가며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이쪽이 여기까지 올라온 데 이지혜의 도움이 아예 없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물론 대부분이 내 덕이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움직여주었는지 알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마치 이쪽의 보이지 않는 손과 발 같은 느낌이었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아.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질척거리는 것 같아서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는데. 어때요. 내 지분은 몇 퍼센트 정도 돼요?”
“글쎄….”
“그러지 말고요. 뭐 사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내가 말했었잖아요. 오빠가 미친 마법사나 용병여왕이랑 뭘 하든 상관없다고. 어차피 마지막에 사랑받는 건 나 같은 종류의 여자라니까. 그건 기억나요?”
“기억나.”
“어때요. 지금은 내가 매력적으로 보여요?”
“물론.”
거짓말, 혹은 인사치례로 건넨 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지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슬그머니 그녀 쪽을 바라보자 내 말을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피식 웃는 얼굴이 보였다.
본인 나름대로 굉장히 만족한 것 같은 표정.
사실 아까 카스가노와 정하얀을 언급했을 때는 은근슬쩍 불안한 표정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내 얼굴을 보니 마음속에 남아있는 불안감이 확실히 날아간 것 같았다.
“아무튼 간에 이제 어쩔 거예요?”
“할 게 있나? 지금처럼 가는 거지, 뭐.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 이쪽도 슬슬 일어나서 활동하긴 해야지. 누나한테 듣긴 했지만 실제로 필드에서 알아보는 거랑은 차이가 있으니까. 계속 누워 있느라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감이 안 와. 이쪽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화국이 무슨 배짱으로 버팅기고 있는지 모르겠고…. 애초에 조금….”
“분위기가 이상하기는 했죠.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 다완에서는 계속해서 소규모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건수를 잡고 싶은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누가 알겠어요? 선물 상자는 까봐야 아는 거지.”
“맞아. 확실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있지.’
내 개인적인 문제도 중요하긴 하지만 대외적인 부분 역시 정리할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거다.
아무튼 간에 당장 급한 것은 김현성의 일.
슬쩍 운을 띄우자 곧바로 입을 여는 이지혜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혹시 현성 씨는 지금 뭐 하는지 알고 있어?”
“아. 아마 현장에 있을걸요?”
“현장?”
“악마가 소환된 장소요. 최근에는 덕구 씨랑 계속 현장에만 기웃거려요. 솔직히 거기서 뭐 건질 게 있다고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얼굴 보면 조금 무섭다니까요. 그래도 요즘엔 표정이 좀 풀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아, 한참 튜토리얼 던전에서 무표정으로 있었을 때. 그때 같아요.”
“아….”
“아마 지금도 한참….”
‘이거 안 좋은데….’
사실 김현성이 그 장소에 있다는 것만 해도 뭔가 탐탁치가 않다.
하물며 유노를 통해 1회 차를 바라본 지금 내 심정이 어떨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똥줄이 타도 이렇게 탈 수가 없다.
아직까지 이쪽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언제 나에게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예요. 표정이 꼭….”
“지금 그쪽으로 사람 보내서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전해줘, 누나.”
“네?”
“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 그런 거 있잖아.”
“아니 갑자기 왜….”
“빨리.”
“일단 알았어요.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전하면 되는 거죠?”
“응.”
“네. 그럼 잠깐 전했다가 다시 들어올게요.”
‘일단 이걸로 가자.’
일단은 우리 회귀자가 최대한 현장에 기웃거리는 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뭔가 급해 보이는 내 표정에 이지혜가 재빠르게 밖으로 나가 사람을 부르자 순식간에 바깥이 떠들썩해졌다.
물론 엄살을 피우기에는 내 몸 상태는 너무나도 정상이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엔 갖춰진 준비물들이 너무 부족하다.
일단 몸이 아픈 것을 빌미로 김현성을 내 쪽에 붙잡아 둘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게 먹히느냔 건데….’
물론 김현성이 나를 아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현재 김현성은 아주 중요한 일을 눈앞에 둔 바깥양반이다.
안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일을 완전히 내팽개치지는 않을 것이 분명.
당장 몸이 아픈 나보다 1회 차 쓰레기의 뒤를 밟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기영 씨!”
‘어?’
“몸은 괜찮으십니까?”
‘이 새끼, 뭐 이렇게 빨리 와?’
눈에 보인 것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김현성.
‘키야!’
누군가 말했던가.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하나라도 얻는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할 만하다고.
이기영 인생 26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왔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형은 널 믿었다, 현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