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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26화 (325/1,590)

# 326

회귀자 사용설명서 326화

라이오스의 영웅(5)

“기영 씨.”

“현성 씨!”

‘이 새끼….’

사실 떨어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씁쓸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려서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오기야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동안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봐도 운이 좋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만약 뭔가 한 가지가 삐끗했더라면 라이오스를 도망쳐야 했거나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현성 이 자식 역시 나름대로 마음고생 하며 열심히 움직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것은 이쪽이라는 게 된다.

김현성이 멘탈을 잡고 있었을 때 실제로 이쪽은 생사를 오간 것이다.

녀석 역시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 꽤나 침통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래. 인마. 형 많이 아팠다. 정말로 많이 아팠다. 그리고 힘들기도 했어. 정말로 힘들었다고… 슈바. 이게 다 널 위해서야. 그러니까 조금 더 슬퍼해도 된다.’

사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힘들었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지는 듯한 느낌.

잘생긴 얼굴이 안 본 사이에 꽤 수척해져 있었고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박덕구처럼 질질 짜고 있지는 않았지만 녀석 역시 이쪽을 걱정하기는 걱정했다는 거다.

‘정이 생각보다 많은 건가.’

사실 이 정도로까지 김현성이 나를 걱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쌓였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력홀로그램이 나가자마자 디아루기아와 함께 이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꽤나 놀랐을 정도, 심지어는 적의 꼬리를 잡기보다 덕구와 함께 방문 앞을 지켰을 정도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것보다는 내 옆을 지키는 걸 선택한 것이다.

“현성 씨. 오랜만이로군요. 콜록.”

정하얀의 기침에 옮은 것처럼 절로 콜록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

생각하고 행동했다기보다는 몸이 먼저 엄살을 부리고 있다. 심지어 정말로 아파 오기 시작한 것 같아 당황스럽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몸이 바뀐다고 했던가. 누군가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물론 숨을 쉬기가 어렵다.

“괜찮으신 겁니까?”

역시나 헐레벌떡 이쪽으로 다가오는 김현성의 모습.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누가 봐도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입꼬리가 자꾸만 실실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마음의 눈으로 본 스펙 역시 훌륭하다.

“네. 괜찮습니다. 현성 씨. 그보다… 여기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아닙니다. 당연히 먼저 오는 게 맞습니다. 정말로… 정말 걱정했습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기영 씨. 몸은….”

“하하. 콜록. 괜찮습니다. 현성 씨. 정말로요.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몸의 회복이 빠르다고 들었으니까요. 저보다는 하얀이나 덕구, 소라 씨가 더 고생하기도 했고… 정말로 콜록.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자꾸만 콜록거리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인 것 같았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모습. 혹시나 가방 속에서 엘릭서 같은 거라도 꺼내는 게 아닌지 내심 기대하기는 했지만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사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녀석은 계속해서 콜록거리는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 물론 다른 이들 역시 걱정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심지어는 슬그머니 이쪽으로 다가와 가슴에 손을 얹기 시작.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왜 이래?’

순간적이었지만 정하얀의 눈이 무척 동그랗게 변한다. 나와 김현성을 바라보던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 역시 왠지 모르게 붉어진 얼굴이었는데, 맨 뒤에서는 어머어머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심지어 이쪽이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라 뭔가 더 찝찝해진다.

혹시나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게 불편하지는 않을까 녀석이 먼저 몸을 숙여온 것이다. 잠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이쪽의 몸에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예상대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쪽에 마력이 쏟아지기 시작. 녀석의 마력에 몸을 회복시키는 기능 같은 것은 없지만 내 몸에 마력을 한 바퀴 돌려 몸이 정상인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정하얀에게 마력을 털어 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현재 김현성이 느끼고 있는 건 완벽하게 비어 있는 내 마력이다.

짐짓 심각한 표정. 사실 이쪽은 숨이 조금 헐떡거리는 것밖에는 이상한 점이 없지만 그래도 남은 여파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녀석은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마력으로 내 몸을 몇 바퀴 돌리고 나자 정말로 몸이 편안해지고 나른해진다.

‘한숨 때리고 싶은데 이거.’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마사지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

몸의 내부를 마력으로 시원하게 주물러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신성력의 성질을 띠게 된 내 마력으로는 이런 건 불가능하다. 대륙의 강자들이 특권처럼 가지고 있는 고급운용마력지식.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김현성 적도의 섬세한 컨트롤이 불가능하다면 이 정도로 편한 기분은 느끼지 못했으리라.

조금 이상했던 것은 장내가 극도로 조용해지고 있었다는 것. 나와 김현성을 둘러싸고 있는 갤러리들이 입을 꼭 다물며 이쪽이 보여주고 있는 이상한 광경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라이오스의 시녀들은 나와 정하얀을 바라봤던 한소라 만큼이나 붉어진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거 슈바….’

혹시나 몇몇이 ‘호모나 세상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김현성의 마력이 몸 한 바퀴를 돌 때 즈음에 얼굴에 홍조가 생기자 갑작스레 탄성이 튀어나온다.

당연하지만 이건 마력의 영향일 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나를 걱정해 주는 자리가 갑작스레 이상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이제 괜찮습니다. 현성 씨.”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가는 이 자리가 본질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서둘러 녀석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충분합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현성 씨 마력이 워낙 커다란 터라… 더 이상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아니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제다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더 붉어진 것 같다. 서둘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괜한 걱정을 끼친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명예추기경.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라이오스 인들은 절대로 이기영 님과 다른 영웅분들의 희생을 잊지 못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프리스티나 님. 하지만 어떻게 이게 저희들만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분들의 보내주신 기도가 아니었다면 그날 저희는 그 악마를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로 기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많은 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그렇게 크게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아마 다른 분들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틀림없이 저희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슬쩍 정하얀과 한소라, 박덕구를 바라보자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프리스티나는 여전히 마음이 성치 않은 모양. 이마를 툭 두드리는 라이오스의 오랜 관습으로 인사를 해오는 것으로 모자라 이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눈에는 눈물을 한가득 담은 채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드셔도 됩니다. 프리스티나 님. 그리고 다른 라이오스의 인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이러시면 제가 더 난처해집니다. 콜록.”

“아. 명예주교님.”

“기영 씨.”

기침 한 방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움찔거리는 꼴은 조금 우습다.

분위기는 점점 더 훈훈해진다. 계속해서 울상이었던 박덕구도 기운을 찾았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김현성 또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디아루기아는 나를 쓰레기 보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죽을 위기 따위는 없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실제로 내 몸에 이상이 가면 그녀가 가장 먼저 신호를 느끼게 되어 있으니 저런 표정을 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나뿐만이 아니라 정하얀과 한소라도 몸이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장내는 겨우 평소와 같아졌는데 그 와중에도 이쪽에 감사를 표하는 라이오스 인사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이번에는 바깥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바깥이 조금 떠들썩한 것 같았는데 혹시나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일은 제대로 마무리가 되었는지도….”

“일단은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명예 추기경님.”

“하지만… 그 악마 소환사 진청이….”

사실은 알고 있다. 이미 차희라에게 모든 경과를 다 전해 들었으니까.

도시를 파괴하려고 한 악마 소환사가 라이오스를 벗어난 것도 알고 있었지만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 지속적으로 라이오스에 신경 써주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으니까.

“일단은 몸을 회복하는 걸 신경 쓰셔야 합니다.”

“하지만 바깥이….”

“괜찮습니다. 명예추기경. 바깥이 떠들썩 한 것은 악마 소환사 때문이 아니라… 명예추기경 때문입니다.”

“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도통….”

사실은 알고 있다.

프리스티나는 살짝 웃으며 창문의 커튼을 걷기 시작. 살짝 문을 열자 기분 좋은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하다. 공식적으로는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아….”

시야에 비친 것은 수많은 라이오스 인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장면이다. 수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모여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인파.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광경.

이쯤에서 슬그머니 일어서야 하는 것은 당연, 물론 체력이 없으니 비틀거리게 되기는 했지만 박덕구가 나를 꽉 잡아준 덕분에 넘어지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연출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다. 살짝 손을 들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 심지어는….

‘얘네들은 왜 울고 난리야….’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순진한 라이오스인들을 보니 내가 다 웃음이 나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등 뒤가 찌릿찌릿 거린다. 서로 울고불고 얼싸안고 있다. 마치 축제라도 일어난 것 같은 분위기다.

“하… 하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프리스티나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본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모여주신 분들입니다. 영웅분들의 희생을… 지켜본 이후 여러분들이 일어나기만을 저희와 함께 기다려주셨습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요.”

“정말… 감사한 광경입니다.”

“광장에.”

“네?”

“괜찮으시다면 광장에 여러분들의 동상을 세우고 싶습니다.”

‘키야아아아… 출세했다, 기영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웃었지만 프리스티나는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함박웃음을 보내왔다.

“라이오스는 절대 여러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동맹은 이미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기쁘게 미소 짓고 있는 상황, 바깥에는 함성이 들려오고 방 안에서는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정리해 보자면 모두가 기쁜 상황이라는 거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한 사람 역시 존재하기는 했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보고 있는 카스가노 유노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카스가노 유노.’

어째서 혼자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잘못한 게 있으니까.’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 본인의 입으로 먼저 고백하기는 했지만 쉽게 용서하기에는 문제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모호하다.

아직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더러운 악마 소환사 진청.

녀석이 라이오스를 빠져나가게 도운 것이 바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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