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회귀자 사용설명서 321화
빛의 이름으로(6)
쿠르르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이 갈라진다.
“신이시여.”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
수많은 신하들이 모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거대한 악마.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형의 괴물이었다.
도시를 집어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악마가 입을 열자, 하늘이 갈라지며 이해할 수 없는 크기의 검붉은색 구체가 떨어졌다.
-계약자, 진청이여. 네가 원하는 바는 이루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현실이라 믿기 싫었다.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도시의 위기에 프리스티나는 할 말을 잃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맙다! 고맙구나! 계약자여!!
‘진청?’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공화국 군사의 이름이 저 악마의 입에서 언급되었는지 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현실적인 장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전부 죽을 거야.’
저런 게 떨어진다면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도시를 공격했던 것과 같은 검붉은 구체의 마력.
서둘러 재정비했던 도시의 보호마법은 우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진다.
‘어머니… 아버지.’
무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립국 라이오스.
‘지켜야 한다.’
네, 아버지.
‘백성 위에 네가 있는 것이 아니란다, 프리스티나. 그들이 있어야 비로소 네가 존재할 수 있는 거란다.’
네, 어머니.
‘왕가는 국가를 위해 지키지 존재하는 것이다, 프리스티나. 우리 왕가가 가치로 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네, 아버지.
‘잊지 말거라. 그들이 있어야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걸 잊지 말거라, 프리스티나.’
네, 어머니.
“안 돼.”
전부 다 죽을 거야.
“안 돼…. 안 돼!!”
사랑하는 백성들이 전부 죽을 것이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사방팔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들이 다시 한번 마법을 전개하지만 하나둘 울컥,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아. 신이시여. 제발…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무슨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라이오스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프리스티나 님, 피하셔야 합니다! 빨리!”
“신이시여.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프리스티나 님!”
“제발!!”
콰지지지지지지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구는 점점 더 도시에 가까워지기 시작.
‘끝났어.’
모든 게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아아아아아….”
콰과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구를 막아선 마법이 시야에 비친 것.
“어….”
그것은 찬란한 빛이었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 제대로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했다.
“아아아… 신이시여.”
만약 오늘 라이오스가 살아남는다면, 장담컨대 앞으로 라이오스를 살아가게 되는 모든 이들에게 당시 라이오스를 구한 것은 찬란한 빛이었다 말하리라.
* * *
‘마력 색깔 좀 바꿔야겠는데… 그림이 별로 안 좋아.’
악마와 같은 검붉은 마력으로 저걸 막는 그림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정하얀을 탓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쉽다면 아쉽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일단은 저걸 막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기왕이면 조금 커다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그림이라면 더욱더 만족스러웠으리라.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손을 잡아주세요. 뿌득(0/1)]
“뭐?”
[마력의 축복을 받은 인간의 손을 잡으라고. 정하얀 손 잡으라고, 이 쓰레기야. 두 번 말 안 한다. 빨리 손 잡아(0/1)]
조금 재미있는 상황.
마음의 눈으로 비춰지는 총평이나 시스템상으로 보이는 퀘스트 창에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가 있다고 추측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비칠지는 알 수 없긴 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게 맞아.’
아마 김현성을 회귀시킨 놈과 동일인물일 확률도 있으리라.
이쪽이 김현성에게 충성을 맹세하자고 했던 그 즈음에 마음의 눈의 봉인이 풀린 적도 있었던 것은 물론, 시스템이 박덕구가 뒤처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이걸로 설명이 된다.
확실히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와 그 품에 안겨 있는 이쪽은 초월적인 존재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 맞다.
‘럭키! 럭키! 욜로 타임!’
조금 의문스러웠던 것은 하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해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해답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런 게 매일매일 가능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인즉, 초월적인 존재 역시 이쪽에 이런 퀘스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무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일이야 어찌됐든 간만에 떨어진 꿀맛 같은 전설 등급의 퀘스트.
보상으로 꽤나 짭짤한 것을 받으리라는 건 당연지사.
마법을 시전하는 정하얀의 손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듯한 정하얀의 얼굴이 보인다.
함박웃음을 보이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행복한 모양이다.
그야 프로포즈를 막 받은 상황에서 일어난 스킨십이니 기분이 좋을 만도 하다.
정말로 거짓 없는 순수한 미소에는 바보같이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물론 이후에 들려온 시스템의 목소리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완료합니다.]
[마력의 축복을 받은 인간의 손을 잡아주세요.(1/1)]
[퀘스트 보상으로 새로운 직업이 개방되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을 선택해 주세요.]
[직업]
[빛의 연금술사-준 신화 등급]
[신에게 선택받은 이들만 전직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빛의 연금술사입니다. 마력이 신성력을 함께 가지게 됩니다. 마력이 +5 올라갑니다. 다른 설명은 필요 없고 넌 진짜 개새끼야. 이 역겨운 놈. 진짜 너 진짜 구제 불능의 쓰레기다. 진짜.]
‘주… 준! 신화 등급! 요, 욜로!’
순간적이지만 눈이 번쩍 뜨인 것은 당연지사.
사실 뒤에 적혀 있는 욕은 보이지도 않는다. 겨우 마력이 5가 올라갔다는 건 확실히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뭐가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우선 일단 눈에 띄는 것은 마력색이 변한 점이다.
찬란한 금빛.
누가 봐도 찬란하게 보이는 빛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힘내라! 우리 존재! 정하얀!’
이쪽이 손을 잡자 정하얀 역시 점점 빛으로 물들기 시작.
내 영향인지, 아니면 단순히 손을 잡았기 때문에 정하얀의 마력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찬란한 빛이 도시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빛을 뿜고 있는 나 역시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
사실 속으로는 계속해서 벨리알에게 말을 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볼 필요는 없었다.
퀘스트도 퀘스트지만 악마와의 계약도 중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막아도 되는 것이지요? 그… 그건 계약 조건에 없었으니….’
[상관없다. 다만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쪽으로 올 수 있음을 기억해라, 역겨운 인간. 빛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겨움이 바라지 않으니 점점 더 탐이 나는구나. 어떻게 한낱 인간이 이토록 순수하게 더러울 수 있는 것인지…. 그녀가 이토록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너를 보내주지 않으려는지 알 것 같군.]
‘그녀라고 하심은….’
[지금 네게 말을 걸고 있는 또 다른 존재 말이다, 인간. 아무튼 항상 기억하라, 역겨운 인간아. 네가 간절히 원한다면… 언제든지 우리는….]
[강제 영웅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악마 군주랑 말 섞지 마, 이 쓰레기야.(0/1)]
[이 정도는 괜찮지 않….]
[말 섞지 말라고 했다.(0/1)]
[큼. 뭐 이 정도에서 적당히 물러가는 것 역시 괜찮겠지. 아무튼 마무리는 해주는 것이 좋겠지. 재미있게 발버둥 쳐라, 역겨운 인간. 대화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당장은 이쪽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인 이 와중에도 계속해서 정하얀은 기를 쓰고 눈앞에 있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
입술을 꽉 깨물고 연신 이이익거리는 모습은 조금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거 막을 수 있겠지….’
미약한 마력도 보태야 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쪽의 마력은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이 전부다.
아니, 사실 도움이 되고는 있는 것 같았다.
찬란한 황금색 빛은 착실하게 벨리알의 기운을 몰아내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이이이이익! 이이이이이익!”
방금 전까지 도시를 파괴하려고 했던 정하얀이 어떻게든 이걸 막으려고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이런 법이다.
‘이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벨리알이 마력을 거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의 마력을 정하얀의 몸에 한 바퀴 돌리자 뭔가 조금 더 그녀가 활력을 얻은 듯했다.
미약하지만 정말로 신성력 역시 품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이 ‘준 신화 등급’의 직업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하얀을 코에서 왈칵 코피를 쏟아내는 중.
이쪽 역시 슬슬 힘에 부친다.
당연하지만 이건 혼자보고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장면이다.
슬쩍 한소라를 보자 그 힘든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든 모양.
입모양으로 내보내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이런 장면에 편집 따위는 필요 없다.
미리 준비하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몇 지역에 영상 홀로그램이 떠오르기 시작.
린델과 교국 전역에서는 이 장면이 커다랗게 방송되고 있을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라이오스에도 크게 설치했어야 했는데….’
아마 마력 홀로그램이 나가기 시작한다면 붉은용병이나 요조라의 길드원들이 인구 밀집 지역에 거울을 설치하기 시작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주, 준비됐어요.”
“오케이. 사인 보내.”
“네. 네. 부길드 마스터.”
박덕구가 정신없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을 때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방송.
“으아아아아아!”
빛으로 물든 나와 정하얀을 보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빛은 지지 않을 것이다, 악마야!”
-크크크큭! 와볼 테면 와라! 하찮은 인간! 계약자여, 어서 나머지 봉인을 풀어라! 이 하찮은 필멸자에게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진청! 어서 이 봉인을 풀지 않고!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 세계를 네 손아귀에 안겨주마!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
녀석 역시 맛장구를 쳐준다.
뭘 해보지도 못한 채 파랗게 질린 진청의 얼굴은 가관.
장담컨대 제갈공명이 한 트럭을 타고와도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빛이 악마를 태울 것입니다! 여러분! 힘을 보내주십시오. 우리가 이 간악한 악마를 막아낼 수 있게 힘을 보내주십시오!”
-겨우 인간 따위가! 감히이이이!!!
[말 섞지 말라고 했잖아.(0/1)]
불만을 품고 있는 이가 있는 것 같지만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티키타카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