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318화 (317/1,590)

# 318

회귀자 사용설명서 318화

빛의 이름으로(3)

함께 온 부관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 눈앞에 펼쳐진 결계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 역시 마법사.

이것의 가치를 못 알아볼 리 없다.

저런 얼굴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겁니까? 루드밀라.”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 역시 이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겠죠.”

“마치… 마치 던전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군사님.”

“엄밀히 말하면 던전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장소에는 시스템 판정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놨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겁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더 대단한 거 아닙니까? 이 정도의 마력결계를 인간이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인데….”

“아무래도….”

“네.”

“특화되어 있는 마법사라면 가능하겠죠. 이건 마력 문제라기보다는 술식의 문제니…. 보시면 상당히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마법을 잘 알고 있는 이라 할지라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정도면 관련 직업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등급은 최소 전설 이상을 판정받았을 확률이 큽니다.”

“전설 등급이라니….”

“아마 교국 8좌나 공화국의 오호대장군,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이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태여 가장 적절한 인물을 꼽자면 교국의 무녀 정도가 있겠군요. 혹은 마도왕국에서 숨기고 있는 마법사거나….”

“그렇지만 그녀는 마법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주술사에 가까운….”

“물론 이건 그녀의 작품은 아닙니다. 그녀의 주술은 저희가 사용하는 마법과는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만약 그녀가 일을 벌인 것이라면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을 겁니다. 당연하지만 교국이라면 그렇게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고요.”

“그렇다면 군사님.”

“네.”

“이 결계를 만든 사람과 오늘 아침에 마법을 떨어뜨린 사람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겁니까?”

갑작스럽게 들어 온 질문.

물론 그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두 마법은 동일 인물이 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마법과 자신 역시 파훼하기 어려울 정도의 결계마법의 사용자가 같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은 대륙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예컨대 두 마법은 완전히 속성이 다른 종류의 마법이다.

한 가지만 제대로 파더라도 경지에 오르기가 쉽지 않은 마법을 두 가지 모두 대성한다는 건 천재 위에 있는 천재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동일 인물이 아닐 확률이 큽니다.”

“역시나… 그렇다면 이건 특정 집단이 저희를 노린 것이라고 보는 게 맞겠군요.”

“네. 아마 국가 차원에서 이쪽을 노리고 설계했다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국가 차원….”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교국일 가능성은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딱 집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의심 가는 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쪽이 알고 있는 이기영이라면 딱히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화국에 몸을 담고 있는 이방인이 중립국에서 습격을 받아 죽었다.

단어로 나열하면 단순한 사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이 사실이 가지고 올 정치적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아직 그를 잘 알지는 못하나, 그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걸 선호한다.

그의 지난 행보는 항상 자신의 안전이나 정치적 위치를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실제로 그날 부딪쳤던 단순한 놀이에서도 그런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이게 교국이 벌인 일이라고?’

두 세력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공작이나 공화국의 자작극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다.

아무리 교국이 안정되지 못했다고 한들, 이런 멍청한 짓을 벌일 정도로 어리석진 않을 것이다.

라이오스와의 동맹이라는 과업을 떠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 어떤 인사도 이런 멍청한 수를 내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 자체는 이용할 만해.’

만약 두 세력이 부딪치기를 바라는 제3세력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곧바로 교국에 항의 아닌 항의를 보냈으리라.

이들이 누군지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만큼 대외적으로 움직이는 건 최대한 지양해야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력결계를 해체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루드밀라는 비롯한 함께 온 마법사들 역시 깊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애초에 궁수들이 흔적을 밟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부분 또한 놀라운 부분.

마력 결계가 주기적으로 이 장소 안의 흔적을 자력으로 지우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방법으로도 추적할 수 없도록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었다.

‘마치 마력이 살아 있는 것처럼.’

스쳐지나간 생각이지만 어울리는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마력결계를 형성하고 있는 마력이 정말로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느낌.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 눈으로 보이고 있는 광경이 그러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추적에 혼선을 겪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정말로 인간이 한 게 맞는 건가?’

몇백 년이 지난 흔적들까지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레인저들은 이 흔적을 밝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른 궁수들은 공화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엘프들 중에서도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으리라.

설사 그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흔적을 읽을 수는 없을 거야.’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흑마법의 잔향이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올 수도 못했을 것이다.

‘흑마법이라… 흑마법.’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군사님.”

“네.”

“어떻게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떠신지 건의를…. 저희야 어떻게 되도 상관없지만 군사님에게 혹여나 문제가 생기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들의 생각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건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괜찮을 겁니다. 보험도 준비해 놨고 아마 공화국에서 온 조사단이 도착하고 있을 테니…. 저 역시 위험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건 알지만 이 흔적을 쫓는 것만 해도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마법의 발현 직후 대기에 떠다니는 마력이 유지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다섯 시간 정도입니다. 이 경우에는 약 일곱 시간에서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릴 것 같지만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일곱 시간….”

“그만큼 마력의 농도가 짙다는 겁니다. 적어도 대기에 떠다니는 마력의 잔향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꼬리를 밟아야 합니다. 만약 오늘 안에 이 흔적을 밟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는 모든 게 정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총통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군사님. 만약에 이 정도의 마법을 발현한 이가 군사님을 노리고 있다면….”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습니다. 일단 휴식은 여기서 끝입니다. 방금 보다 더 서둘러 움직이겠습니다.”

“네.”

“곧바로 마법 준비해 주세요. 제가 리드하겠습니다.”

“예.”

탄력을 받은 만큼, 비공식 조사단이 동굴을 해치고 나가는 것은 순식간.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언가 불길한 마력이 느껴진다.

결계가 풀리면 풀릴수록 안쪽에 차단되어 있던 마력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안에 있어.’

증거, 혹은 이번 일에 힌트가 될 만한 게 안에 있다.

‘함정일 수도 있지만…’

습격에 대한 보험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렇게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기가 무섭게 커다란 동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물론 그 안에 있는 모습은 이쪽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군, 군사님… 이거.”

“저도 보고 있습니다.”

“군사님… 이건… 이건 도대체.”

“악마….”

“악마?”

무척이나 커다란 형상을 한 외관을 지닌 괴물.

그 얼굴을 불의 번개와도 같았고 눈동자는 심연에서 타오르는 불길 같다.

입은 바위의 갈라진 틈 같았으며 커다란 날개는 구겨진 하늘을 꾸역꾸역 집어넣은 듯했다.

겉모습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것 같다.

그 위용을 뭐라고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수많은 흑색의 마법진들 사이에 자리한 그 모습에 한낱 인간은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다.

모두가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았다.

몇몇 이는 다리를 후들거린다.

그 위압감에 서 있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것이 최선.

‘이게… 이딴 게… 존재한다고? 이 대륙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

대륙에 돌아다니는 동안 규격 외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존재를 많이 지켜봐 왔지만 이 정도로 두려움을 자극하는 존재는 없었다.

‘이딴 게… 이딴 말도 안 되는 게….’

“도, 도망….”

“아닙니다, 루드밀라.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네?”

“봉인되어 있습니다.”

“아….”

“누군가 악마를 봉인한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이 장소에 자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 악마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누가 저 정도의 존재를 이곳에 봉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흑마법사인가요?”

“네. 그것도 꽤나 고위의 흑마법사… 라고 추정됩니다. 흑마법에 대해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 정도의 고위 악마를 부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아마….”

도시를 파괴한 것은 아마 저것의 힘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쓰인 마법진도 비교적 최근의 것.

이 악마를 봉인하기 위한 구속 마법 역시 눈에 띈다.

모든 것을 압축시켜 버리는 그 마법에 어째서 흑마법의 잔향이 묻어나 있었는지, 대기에 떠다니는 마력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이유 역시 모조리 설명할 수 있다.

‘노리는 게 뭘까.’

확률은 낮지만 그 마법이 공화국만을 노리지 않았을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추측이지만 교국이나 공화국, 혹은 중립국의 앙심을 품고 있는 흑마법사들이 벌인 일일 가능성도 있다.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흑마법사 클랜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번 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경우의 수가 늘어났다.

이유야 어찌됐건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알려야 한다는 것.

“일단은 곧바로 공화국에 보고를… 라이오스에는 그 다음입니다. 곧바로 이 근처를 전부 통제해 주시고 파견 온 이들도 여기로 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세요. 최우선 사항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겁니다. 아무것도요.”

“무, 물론입니다. 군사님.”

“그럼… 지금 당장….”

이라 말을 꺼냈을 때였다.

동공의 한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 것.

‘저건 뭐야….’

워낙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최대한 눈의 마력을 집어넣자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기… 영?’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의외의 공간에서 의외의 인물과 마주친 셈이었으니까.

신성교국의 명예 추기경이 봉인된 악마와 함께 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들려온 목소리.

“당신이었군요. 이곳에 악마를 소환한 소환사가… 정말로… 당신이었습니까?”

“네?”

“당신이냐고 물었습니다, 진청.”

“무슨….”

‘헛소리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