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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07화 (306/1,590)

# 307

회귀자 사용설명서 307화

정하얀 사용설명서(1)

‘짜증 나네.’

말 그대로였다.

애초에 이쪽이 정하얀을 등한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녀는 이쪽을 지지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잊고 있었어.’

정하얀의 가치에 대해 잊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녀는 김현성이 튜토리얼부터 예의주시하던 천재 마법사다.

정하얀이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 선을 벗어나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검은색 세계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나 역시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천재.’

그저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것이 사실.

전설 등급 이상의 마력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그녀만큼 성장이 빠르거나 마법에 익숙하지 않다.

재능 있는 수많은 마법사 중에서도 정하얀은 압도적일 정도로 성장이 빠르고 강하다.

김현성이 알고 있는 미래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인재.

애초에 회귀자인 김현성의 성장속도를 순수한 재능만으로 따라잡고 있으니, 이것만 봐도 그녀는 규격 외라는 꼬리표를 달기에 충분한 셈이다.

단순한 추측이지만 정하얀은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꼭 필요한 마법사였고,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이들이 봐도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한 인재였다.

오늘처럼 상대 진영 놈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거다.

단순히 강하게만 보였다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리라.

누가 보기에도 정하얀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였고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다루기 쉬운 사람이 없으니 벌레가 꼬이는 건 당연하다.

만약 내가 정하얀의 반대 진영에 있었다고 해도 일단은 그녀를 꿰어내기 위해 온갖 개짓거리를 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저 고인물 역시 정하얀에게 호의적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

같은 마법사인 만큼 그녀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봤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느낀 것이 틀림없다.

‘절대 안 되지.’

열과 성을 다해 키운 달콤한 과실을 도둑맞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실은 정하얀의 지나친 애정이 부담스러워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막상 누군가 우리 소중한 대마법사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니 기존에 없던 사랑도 생기기 시작한다.

‘아쉽긴 아쉬워.’

한편으로는 진청이 관심을 가진 게 정하얀이라는 사실이 아쉽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정보를 빼내기 위한 역할로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판단했으리라.

아무튼 간에 정하얀은 이쪽의 말이 끝난 이후 허둥지둥 당황하기 시작.

밀고 당기기의 개념이 없는 순진한 처녀는 혹시나 이번 일로 내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저 사람이 말을 걸었을 뿐이고… 저, 저는….”

“…….”

“저 그, 그런 여자 아니에요!”

갑작스레 터져 나온 영혼의 외침.

정하얀이 말하는 그런 여자가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추측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이쪽은 그런 남자가 맞다.

화들짝 놀라며 달라 붙어오는 모습이 가관.

조금 더 강도를 높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자 황급히 무엇인가를 북북 찢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얼떨결에 받아든 진청의 쪽지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순식간.

손으로 쪽지를 찢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마법으로 그걸 불태우고 심지어는 땅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밟고 있었다.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만진 것처럼 말이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그 장면을 진청이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상이 구겨진다.

녀석이 의도가 어떻든 간에 눈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게 이상하리라.

‘내가 침 발라놨으니까 건드리지 마.’

라는 표정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정하얀은 그 와중에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슬쩍 던진 말이었는데 이토록 과민반응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히… 끄윽. 저 그런 여자 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히끅. 바람 같은 거 피우는 거 아니에요. 정말이라고요….”

오해를 만든 장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노려보기까지 하니 더욱더 흥미진진해졌지만 더 이상 자극하면 이쪽의 양심이 닳아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 내민 손을 보고 화들짝 달려오는 모습은 확실히 귀엽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전방을 보니 여전히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사랑스러운 구조대원의 모습들 역시 시야에 비친다.

“알고 있어, 하얀아. 그냥 한 소리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저, 정말이에요. 히끅… 정말이에요.”

“알고 있다니까.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대충 분위기를 정리해 주는 것은 당연지사.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거친 숨을 몰아쉰다. 진청에게 보내는 원망의 눈초리도 변함이 없다.

사실 저쪽에 대한 볼 일은 이것으로 끝.

공화국 인사들은 끝까지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 희라 누나가 저 정도로 무섭게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공화국 쪽에서 교국의 진영 쪽으로 넘어가자 가장 먼저 이쪽을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박덕구.

러시아산 도플갱어의 공격을 몸으로 막은 덕분인지 딱 보기에도 성치 않은 모습이 눈에 띈다.

그래도.

‘서 있는 게 어디야.’

형편없이 튕겨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녀석의 공격을 한 번은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소?”

“그래, 덕구야. 문제없다. 나보다는 네 몸부터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방금 공격 맞고….”

“뭐, 속이 좀 뒤틀린 거 같긴 한데 큰 문제는 아니요. 사제님들한테 치료도 받아서 버틸 수 있다니까. 그보다….”

“어쩌다가 여기 온 거야? 자기?”

박덕구의 말을 이어받은 것은 우리들의 구원자 차희라.

표정에는 조금의 짜증이 담겨져 있었는데 아마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이쪽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차희라 역시 내가 제 발로 범의 아가리에 기어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

내가 차희라였어도 이곳에 우연히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우연이야. 사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긴 한데 설명하자면 조금 길고…. 아무튼 고마워, 누나. 안 그래도 조금 불안해지던 타이밍이었거든.”

“중립 지역이 아니었으면 너 죽었을 거야. 아무리 우리 세컨드가 옆에 있다고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건 안 좋아. 내 말 알아들어?”

“응.”

대충 봐도 표정이 좋지 않은 느낌이다.

공화국과 교국은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을 겪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이방인끼리도 이토록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이방인이라는 사실로 뭉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 보이는 느낌.

전장에서 여러 번 부딪쳐 왔다면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현재는 별 탈 없이 지낸다고 하더라고 과거에 싸워왔던 이들끼리 서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근에 들어온 애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심지어 카스가노 유노 역시 썩 편한 표정은 아니다.

살짝 눈인사를 하니 표정이 활짝 펴진 느낌이다.

아무튼 간에 차희라는 끝까지 공화국 인사들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정하얀도 저기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귀환길이 꽤 암울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바빠지겠는데….’

그 와중에 계속해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서는 생각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것.

공화국과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이런저런 정보들을 모아야 했다.

일단 그들이 정말로 우리의 적인지부터.

* * *

‘제발. 제발 아무 일 없이 넘어갔으면…. 제발….’

처음부터 이곳에 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마치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시작부터 뭔가 불길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계속해서 같은 생각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영 교관님, 아니, 이기영 부길드 마스터와 함께 움직이는 것 역시 부담스러워 살이 떨린다.

혹시라도 저번 같은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온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최근 며칠 동안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정하얀 님이 시야에 비쳤다.

굳어 있는 얼굴.

저 얼굴이 폭발하기 직전의 것이라는 건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힐끔힐끔 시선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방광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이 터졌을 때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아뇨….”

“그러고 보니 형님이 시킨 일은 어떻게….”

“일단 문제는 없어요. 여전히 프리스티나 국왕이 조금 단호하기는 하지만 부길드 마스터는 처음부터 이번 일에 시간이 많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고…. 너무 티 나게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서요.”

“아암. 그렇구만. 형님이 괜히 데려온 게 아니라니까. 처음에 형님이 후배를 데려가자고 했을 때부터 눈치챘지만 아무래도 행정 쪽 업무도 맡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니까. 그렇지 않소, 누님?”

“아… 네.”

하지만 저쪽 역시 정하얀의 눈치를 보는 건 똑같다.

자신과는 조금 불안해하는 포인트가 다른 것 같았지만 대놓고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표현하는 것은 물론, 밥을 먹다가도 뚝뚝 눈물을 떨어뜨릴 정도였으니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마치 초상집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떠올리니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슴 한쪽에서부터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요…’

지금도 마찬가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아침부터 정하얀 님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섭다.

처음 정하얀을 마주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 누… 누님, 너무 걱정하지 마쇼.”

“끄윽…. 저, 정말 그런 여자 아닌데…. 히끅….”

“저, 저번에 그건 형님이 그냥 해본 말이라고 했으니까. 아, 아무 상관도 없는 거라니까? 지금 형님이 누님이랑 같이할 시간이 없는 건 어디까지나 바빠서 그런 거요. 바빠서….”

“그, 그렇지만….”

“누님뿐만이 아니라 나랑 여기 있는 소라 후배도 형님 본 지 오래된 거 아니요. 심지어는 용병여왕님이랑 그 무녀님도 형님이랑 밥 한 끼 먹어본 적도 오래됐다고 하더라니까. 아무래도 형님 입장에서는 그, 여기에 온 김에 공화국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소? 내가 감히 장담하는데 누님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님이 최근에 여기 안 들어오는 건 절대로 누님 탓이 아니요.”

“옛, 옛날에는 아무리 바빠도 꼭 한 번은 안아줬었는데…. 그 날 이후로는….”

“전부 누님 착각이라니까. 사실 내가 볼 때는 별 다를 거 없어보였는데. 오히려 은근히 더 신경 써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누님이 조금 과민반응하고 있는 것 같소.”

“그렇지만… 히끅….”

저 예상이 맞았으면 싶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나마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이야기였다.

“끄윽…. 다 그 사람 때문이야. 데, 데이트도 다시 해준다고 했는데. 끄윽… 그, 그날 이후로 다른 말도 없는데… 데이트도 전부 취소됐어….”

“정말로 누님 탓이 아니라니까.”

“나, 그런 여자 아닌데…. 히끅. 그, 그 사람이 오해하게 만들었다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조금씩, 조금씩 눈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은 당연.

갑작스레 예전 일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제발, 제발 평화롭게 지내게 해주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딱딱하게 굳어가는 정하얀 님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제발요. 제발요…. 제발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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