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회귀자 사용설명서 299화
마력능력치 99(2)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마력이나 살기 따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슈바….’
정하얀 역시 따로 위협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
차희라를 대놓고 적대시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행동이 조금 묘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뭐라고 딱 잡아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적당한 예를 찾아보자면 기어오르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하얀과 차희라는 상하관계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이 관계에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차희라다.
붉은머리를 하고 있는 광녀는 린델 내에 있는 유일한 분노조절장애 치료사였고, 그 치료는 어떤 부분에서는 정하얀에게 유효했다.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다 보니 정하얀 쪽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정하얀이 갑작스럽게 이런 포지션을 취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 99.’
이제는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으리라.
‘무슨 동물의 왕국이야 뭐야.’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정하얀의 머릿속에서 차희라에 대한 저울질이 끝나버린 것.
정면으로 부딪쳐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반기를 들어 올린 것이 맞다.
정하얀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투쟁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리라.
신성제국에서 일어난 혁명을 되새김질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암컷을 독차지하고 있는 수컷에게 이빨을 보이는 젊은 도전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격렬한 몸싸움이 연상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내 경우에는 성별이 뒤바뀌어 있었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점점 더 불편해지는 상황 속에서 천천히 말을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가관.
장담컨대 이 두 사람이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으리라.
이미 멀찍이 떨어진 한소라처럼 말이다.
“뭐?”
“오빠가… 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다, 다른 건 아니고요….”
“…….”
“…….”
“다른 이유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착, 착각… 이세요….”
“…….”
“…….”
“착각은 무슨….”
“저, 정말 착각인데…. 진짜예요.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라고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오빠가 부, 불편해 보여서….”
“동생, 넌 내가 병신으로 보여?”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순식간.
당연히 개입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차희라가 입 다물라는 듯이 나서려는 이쪽을 가로막는다.
성큼성큼 정하얀 쪽으로 다가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약간의 키 차이가 있다 보니 차희라는 정하얀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정하얀은 차희라는 올려다보고 있는 포지션.
당돌하게 차희라를 바라보고 있는 정하얀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지금 네가 조금 거슬린다는 거 알고 있지.”
“잘 모르겠는데….”
“…….”
“…….”
“말이 짧네.”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 데 왜 눈을 그렇게 치켜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 그냥 평소대로고… 그, 그냥 언니가 저를 아니꼽게 보고 있으신 것 같은데… 어,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
“너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나보다. 그렇지?”
“…….”
“뭘 믿고 이런 지랄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은데 뒈지기 싫으면 눈깔 내려.”
“네?”
“두 번 말 안 한다, 병아리야. 그 여리여리한 모가지 뒤틀리기 싫으면 당장 눈 깔라고.”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숨 쉬기가 힘들다 같은 종류의 느낌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목구멍에 걸린 것 같다.
차희라가 있는 대로 기세를 끄집어내 정하얀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살기인지 마력인지 개뿔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것 빼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여파가 미칠 정도였으니 정하얀 본인이 느낄 압박감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슈바….’
마음의 눈으로 차희라를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조금씩 조금씩 지력 스탯이 내려가고 있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
당연히 근력 스탯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중.
지력을 깎고 근력을 올리는 고유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한바탕할 것 같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발이 움직인다.
그나마 차희라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녀의 칭호가 피에 미친 광녀, 신성제국의 붉은 광녀라는 걸 생각해 보면 본래 성정은 이성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자리한 위치와 한 집단의 지도자라는 상황이 그녀에게 정상인 코스프레를 시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스스로 쇠구슬을 달고 있는 암사자였고 성질을 죽이고 있었던 미친개였다.
젊은 도전자가 잠자고 있던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게 맞다.
‘그만해, 하얀아….’
몇 년 동안이나 그녀가 린델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데에는 전부 이유가 있다.
사실 정하얀이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보인다.
마력 스탯은 99고 실제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판단하건대 웬만한 강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굳이 예를 들자면 가로쉬 앤 캐쉬의 갈오식이나 임리단 같은 이들 역시 정하얀에게 비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차희라의 경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근력 98.’
기본 근력이 98, 게다가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지력 스탯을 옮겨 근력 스탯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근력 101, 103, 106.’
계속해서 근력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 그만큼 지력이 내려간다.
혹시나 저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한편, 정하얀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하얀이 드래X볼의 스카우트 같은 것을 달고 있다면 계속해서 전투력이 올라가고 있는 차희라를 바라보며 당황할 것이 틀림없으리라.
아니, 굳이 그런 물건이 없더라도 본인이 가장 잘 느끼고 있다.
입술을 꽉 깨물고 눈에 묘한 독기가 가득 찬 것이 점점 더 흥분하려는 것 같은 얼굴이다.
캣파이트가 아니라 유혈전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얀은 간접적으로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붉은 머리의 광녀는 지금 새로운 도전자를 찍어 누르려고 하고 있다.
장담컨대 정하얀이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뭐가 됐든 사건이 터졌으리라.
‘자기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나.’
적어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나 역시 정하얀이 강하다는 걸 의심하지 않았고 실제로 차희라에게 비벼볼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하기는 했지만 선물상자를 까보니 경험이나 연륜 같은 게 다르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강한 거야.’
클래스가 용병여왕임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들지 않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랬다.
“…….”
“…….”
그렇게 약간의 시간을 서로에게 사용하고 있었을 때, 마침내 어느 한쪽이 꼬리를 내리기 시작.
당연하지만 이 기싸움의 승자는 새로운 도전자가 아니라 왕좌를 지키고 있었던 붉은 머리 광녀.
정하얀이 그녀의 말대로 천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해.’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묘한 각도로 시선을 피한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막 세상이 자기 거라고 여기고 있었을 때 넘을 수 있다는 생각한 벽이 다시 한번 자기 앞을 막아내니 억울함의 눈물이 터져 나온 것 같았다.
“끄으으으윽….”
“처음부터 이랬으면 서로 불편할 일도 없잖아.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말했지.”
“히끅….”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 데… 살기 죽이는 법 좀 배우라고 했었나? 그럴 거야. 그렇지 자기? 오늘은 한 가지 더 가르쳐 줄게, 동생.”
“히끅….”
“확신이 없으면 시도하지 마. 덤비지 말라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그렇게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됐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무척 많이 흐른 것 같다. 땀 때문에 상의가 축축해질 정도.
차희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정하얀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도전자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저렇게 과민반응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자기도 여기에 와서 잘 좀 이야기해 봐. 뭐 위로도 좀 해주면 좋고, 말 좀 알아듣게 해놓으라고….”
“아… 응. 누나.”
“혹시 나중에 일 터질까 봐 먼저 선수 치는 건데,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나도 가만히 못 있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기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분위기가 무겁기는 했지만 이후에 정말로 다른 상황이 터지는 걸 고려하고 있음이 틀림없으리라.
차희라도 정하얀의 성정을 조금은 눈치채고 있고 그녀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왔는지도 고려하고 있다.
‘분명히.’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진다면 정말로 이쪽이 어떻게 손 쓸 수도 없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으리라.
‘친해지길 바라, 라도 찍어야 하나.’
어떻게 생각해도 그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간에 차희라는 기분이 더러워졌다는 말을 끝으로 먼저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정하얀은 이쪽의 눈치를 보며 혼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상황.
솔직히 말하면 자신은 죄가 없고 억울하다는 표정이 더욱더 눈에 들어온다.
살짝 손짓하니 우다다 달려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계속해서 히끅히끅 딸꾹질을 해대고 있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조금 애매한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는 먼저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건 것도 아니고 조금 태도가 건방졌다는 것 이외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조금 과한 처사를 보인 것은 차희라.
물론 숨은 뜻을 생각해 보면 상황이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내 쪽에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일단 다그치기는 해야지.’
물론 내부적으로 불만이 쌓일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한 사항이다.
당장은 이번 여행에서, 아니, 이후로도 차희라와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무조건 지양해야 한다.
혹시라도 내가 차희라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심어주면 안 되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절묘하게 사용해야 되는 것은 당연지사.
박덕구와 쉬야가 마려운 것 같은 표정의 한소라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고 정하얀과 마주하자, ‘나 지금 슬퍼요. 안아 주면 안 될까요?’ 같은 표정이 시야에 비친다.
처음에는 일단 훈계.
안아주는 것은 그 다음이다.
‘김현성이 부럽다. 제기랄….’
그쪽의 캣파이트는 이쪽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조혜진과 꼬맹이, 심지어는 박연주까지 하하호호 사이좋게 다니며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다니는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장담컨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여편네들의 그런 모습은 꿈에서도 볼 수 없으리라.
‘서로 통수를 쳤으면 쳤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 따위는 볼 수 없으리라. 고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김현성이 부러워지는 상황.
‘분명히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아무래도 이쪽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