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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95화 (294/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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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295화

시간이 흘렀다(1)

[신성제국의 역사는 제국력 1093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황실과 일부 귀족들의 패악질을 참지 못한 민중들의 뜻이었고, 이단과 배교자, 반역자들을 처단하고자 했던 베니고어 여신님의 뜻이었다. 혁명이 완성된 11월 9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간 반역자들에 의한 재판이 시작되었고, 별개로 일주일이 지난 시점인 23일, 시민혁명단에 의해 신민의회라는 기관이 만들어졌다.]

[신민의회는 제국민들의 대표로 선꼽힌 200인의 구성원이 헌법과 인법을 재정하거나 통상 국정운영을 논의하는 것에 의의를 둔 기관이다. 시민혁명 지지선언을 함께한 42인의 귀족들과 60인의 이방인 그리고 시민혁명단을 구성했던 일반 민중 98명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새로 출범한 신성민주교국의 위대한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이들의 첫 번째 의제는 다름 아닌 배교자들의 처우였는데 교황청은 시민혁명단의 뜻을 존중해 이들의 재판을 민중에게 양도했다. 신민의회에서는 역사적인 첫 투표가 이루어졌고 찬성 299표 기권 1표로 반역자들의 처형이 결정. 29일을 끝으로 황실의 마지막 핏줄인 제2황녀 샤를롯트를 제외한 모든 황족이 사형에 처해졌다. 집행은 무척이나 인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전 제2황녀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곧바로 임시정부가 수립됐으며 신민의회의 주최로 교국 총선거가 실시됐다. 바야흐르 신성민주교국에 자랑스러운….]

“자랑스러운 첫 번째 총선거였습니다.”

“…….”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저희 신성민주교국에 사는 여러분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이에요.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쟁취한 승리였던 것은 굳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오늘 배운 내용은 이후에 있을 시험에서도 나올 확률이 높으니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입니다. 어제도 배운 내용이에요. 우리 민주교국에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저, 저요! 저요! 저요! 저요!”

“네, 루리아 학생. 답해볼까요?”

“베니고어 여신님을 믿고 있는 모든 교국민과 이방인입니다!”

“정답이에요. 아주 잘하셨어요. 칭찬 카드 한 장을 드릴 테니 이후에 수업 끝나고 꼭 받아가세요. 루리아 학생이 대답한 것처럼 시민 혁명단의 리더이시자 지금은 저희 신성민주교국의 지도자이신 오스칼 님께서 임시정부 수립이후 가장 처음 하신 일이 바로 제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일이었어요.”

“네!”

정답을 외친 뒤에 의기양양하게 뒤를 바라보는 디아루리아가 시야에 비쳤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계속해서 헤실헤실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모습은 가관.

손은 들었지만 자신을 어필하지 못했던 박물관 관리인 막스는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다.

‘귀엽네.’

자신이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어지간히 기분 좋은 모양이다.

디아루기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관한 수업이었지만 저런 표정을 보니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교육이 잘되는지도 봐야 하고….’

디아루기아와 막스가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당연하다.

매일매일 아빠 노릇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이 든 만큼 어떻게 크고 있는지는 보고 싶다.

사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궁금했던 것은 현재의 교육 과정 그 자체.

국정교과서의 발행과 그에 맞는 교육은 외부의 일만큼 중요한 일이다.

겨우 몇 년 해먹으려고 이 사단을 낸 것은 아니다.

적어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은 더 해먹어야 하는 만큼 시민들의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어차피 막스와 디아루리아에게는 역사 교육은 중요한 것이 아니니 한 귀로 듣고 흘리라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그 이야기가 옆자리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검술이나 마법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이 바로 역사과목이라는 거다.

오늘의 어린 꿈나무들은 몇 년 뒤에도 이쪽의 충실한 유권자가 되고 그 자식과 그 자식 역시 우리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소중한 손님이 된다.

여신의 거울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런 작업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긴 했지만 그래도 보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방심하다 훅 가는 거 한순간이니까.’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제국 전역에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있는 이유였다.

슬쩍 옆쪽을 바라보자 디아루리아를 바라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디아루기아가 눈에 띈다.

다른 부모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물론 묘하게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보였다.

예전 귀족이나 유명한 모험가 부부의 아들, 혹은 잘나가는 자산가의 자식들이 모이는 사립학교이기는 했지만 이쪽은 바젤 교황성하께 직접 직위를 받은 신성민주교국의 명예추기경이자 자유도시 린델, 아니, 교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저들이 이쪽의 눈치를 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웃기지.’

대놓고 말해 제국 내에서 이쪽보다 권위가 높은 인간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

비공식적인 직위까지 생각한다면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꼽을 수 있다.

민중이 대혁명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뒤집을 수 없는 신분의 격차가 남아 있다.

많은 것이 변하기는 했지만 핵심은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샤를롯트에게 했던 말처럼 어차피 결정적인 건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디아루리아 정말로 똑똑하지 않습니까?”

“누구를 닮았는데 똑똑한 게 당연하지요.”

“네. 확실히 저를 쏙 빼다 닮았습니다.”

디아루리아가 영특한 것은 나를 닮아서일 확률이 크다. 자신할 수 있다.

“이제 곧 있으면 역사 수업은 끝날 시간이군요. 다음에는 검술 시연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법 시연도 있고요. 서둘러 이동합시다. 아, 그리고 디아루리아는 방과 후 활동으로 연금술도 배운다고 하니 그건 당신이 꼭 지켜봐 주세요.”

“보채지 않으셔도 움직일 겁니다. 그런데 디아루기아, 이거… 굳이 배울 필요가 있는 겁니까? 사실 똘똘이한테는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처음 학교에 가라고 한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사회생활을 배우라는 의미였지… 이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뭐든 일단 배워놓으면 좋은 겁니다. 사실 드래곤으로서는 필요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우리 디아루리아가 배우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이런 행동 자체는 뇌 성장에 굉장히 많이 도움 됩니다. 저만 해도 기본적인 전투술 같은 것은 숙지하고 있으니까요. 전부는 아니지만 대륙의 역사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아아. 그랬었죠.”

“이유가 어떻든 간에 머리를 많이 쓴다는 건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특히나 이 시기에는 더욱이요. 이미 또래 아이들보다 마력량도 많습니다.”

“다른 또래 드래곤이 없는데 어떻게 비교를 합니까.”

“딱 보면 압니다. 후훗.”

딸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을 것 같은 느낌.

괜스레 내가 다 얼굴이 붉어진다.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헬리콥터 맘이 다된 것 같았다.

물론 예전처럼 거리를 벌리지 않고 이쪽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차이점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똘똘이의 표정을 보니 엄마와 내가 붙어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자. 그럼 역사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곧바로 검술 시연이 시작될 테니 학생들은 무장하고 학부모님들은 미리 연무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디아루기아의 말처럼 되는 것을 보니 정말로 스케줄까지 달달 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간에 교사의 말대로 이쪽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물론 그 와중에 이쪽에 인사를 하러 오는 다른 이들을 맞이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명예추기경님. 하하하. 이거 여기에서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첸코 의원. 하하. 이거 참 우연이로군요. 그때 이후로 처음 뵙는 거 아닙니까? 어째… 요즘 의회는 좀 어떻습니까.”

“항상 좋습니다. 오스칼 님 역시 여전하시고요. 사실 해결해야 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라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뭐, 처리하기 곤란한 문제라도 있습니까?”

“뻔하지요. 또 왕국 연합입니다.”

“아아아아.”

“혁명 이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공화국에서도 축사를 보내왔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영… 답답하기만 합니다. 외교부는 대체 일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아무래도 아직도 내부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강합니다.”

“뻔하겠지요. 아마 그쪽 역시 내부에서 혁명이 터져 나오지는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을 겁니다. 자신들의 나라에도 혹여나 불씨가 튀지는 않을지,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겠지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의원.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뭐가 됐든 해결책이 나올 겁니다.”

“음. 그렇군요.”

“네. 사실 이번 제 중립국행 역시 그 건과 관련된 일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역시 그러셨군요.”

“왕국도 계속해서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순 없을 겁니다. 그쪽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대부분 저희에게 호의적이니.”

“여신의 거울을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네. 맞습니다. 현 교국민들도 그렇지만 사실 이방인들은 여신의 거울에 무척이나 익숙합니다. 왕국의 기득권들과는 반대로 그곳에 자리 잡은 이방인들은 꼭 여신의 거울을 수출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즐길 거리 하나 없는 이 척박한 땅에 갑작스레 텔레비전이 등장했으니 이방인들이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당장 린델이나 실리아 다완에서도 여신의 거울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하늘을 뒤덮는 거울이 아닌 각 세대에 놓을 수 있도록 크기를 작게 만들어 보급한 것이 결정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드라마나 영화 같은 기획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실제로 시험 삼아 방영한 ‘전투의 달인’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네임드,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구르고 구른 장인들이 전투에 필요한 팁과 노하우와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니 반응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방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국민들 역시 이 바보상자에 하나둘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장담하건데 아마 각 왕국은 여신의 거울을 수출해 달라는 이방인들의 요구에 진땀을 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화와 기술도 무기야.’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칼이나 창보다 더 위협적이다.

그렇게 잠깐 다른 길에 빠져 있을 때 또다시 들려온 것은 디아루기아의 목소리.

“지금이 디아루리아의 차례입니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아아. 네. 갑니다. 가요.”

검술시연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뻔한 결과에는 기대감이 줄어든다.

기본적인 신체능력만으로도 이미 주변 꼬맹이들을 압살할 수 있는 우리 똘똘이.

예상했던 대로 양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신체능력을 담은 검술을 선보이고 있다.

대놓고 인성질을 한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웬만한 모험가보다도 나은데….’

심지어 함께 검을 집어든 상대를 단번에 끝내지 않고 자신을 띄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모습.

누가 봐도 검술 실력 자체는 상대방이 나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상대 꼬맹이는 우리 똘똘이의 민첩함과 근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무리를 하기 전에 꼭 상대방에게 향하던 검을 멈추고 다음 검술을 선보인다.

‘상대가 너무 불쌍한데….’

검술을 배운지 오래된 꼬마 역시 입술을 꽉 깨물며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고양이가 아무리 발톱을 단련한다고 해도 호랑이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기본적인 스탯에서 차이가 너무 심각하니 검술 시연이 아닌 농락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둔재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왠지 모르게 꼬마 쪽으로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옆에서 손뼉을 치며 꺄르르 웃고 있는 디아루기아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우리 디아루리아 참 잘하지 않습니까. 저는 검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미 저기 있는 다른 아이들과 봐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대로 시작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지요.”

‘니 딸 드래곤이야. 그리고 저건 힘으로 밀어 붙이는 거고….’

“상대방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모습은 또 얼마나 착한지….”

‘배려가 아니라 농락인데….’

“제가 참 주책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주책 맞아.’

하고 싶은 말이 자꾸만 목구멍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승자는 디아루리아.”

“잘했다. 우리 딸! 디아루리아! 최고다! 최고야! 디아루리아!”

승리포즈까지 취하며 나를 바라보는 똘똘이의 모습은 가관.

누굴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성 질 하나는 수준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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