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회귀자 사용설명서 261화
공식발표(3)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대만과 중국의 관계는 복잡했다.
공화국 내에서 상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중국인은 아직도 대만이 자신들에게 속해 있는 부속 국가라고 굳게 믿었고 당연하지만 대만인들은 그런 중국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지구가 아닌 대륙에서 이러고 있으니 다완에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운 게 당연한 일.
물론 지구에서의 국제 관계를 여기까지 끌고 들어오는 게 우스운 일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린델 내에서 반일 감정을 품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실제로 저 멀리 있는 이슬람 문화권 애들은 매일 같이 치고 박고 있었고 유럽 열강들이 자리 잡고 있는 왕국연합도 과거의 족쇄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조금 더 복잡했다.
다완에 있는 튜토리얼 던전은 공화국과 밀접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라도 튜토리얼 던전을 더 확보하려는 공화국과의 이해관계와도 일치된 것.
심지어 다완이 자리 잡은 곳은 옛날 공화국의 영토였단다.
덕분에 공화국에서는 도발 아닌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시국이었다.
공화국에 터를 잡고 있는 중국인들은 ‘대만인은 우리 민족이다’라는 프레임을 걸고 넘어졌고, 공화국 총통을 비롯한 공화국민들은 ‘이 지역은 본래 우리 영토였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거다.
‘개판이지.’
여기서나 저기서나 국제 관계는 여전히 개판.
이런 상황에서 제국, 공화국, 왕국, 이종족들은 우리들이 오기 전부터 신나게 싸우고 있었던 놈들이다 보니 바깥에서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내면은 상당히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
굳이 전쟁이 터진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플레이어도 플레이어지만….’
이곳에 있는 지도자란 족속들도 순 개판 오 분 전이라는 거다.
그렇지만 아직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판단.
이유는 당연히.
‘이 새끼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진짜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다면 오호대장군이니 제국 8좌니 뭐니 하는 것들은 발표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본래 목줄이 달린 개가 제일 잘 짖는 법이다.
우리가 이렇게 강하다고 외쳐대고 있는 놈들이 정면승부를 벌일 리가 없는 게 당연.
만약 내가 제국의 황제나 공화국의 총통이라면 장담컨대 이쪽의 카드를 내보이는 멍청한 짓거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지금 시기에 이런 종류의 발표는 어디까지나 무력시위에 불과.
‘이놈들이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일을 벌이지는 않을 거야.’
장담컨대 절대로 벌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안 좋아.’
이제 막 자리를 잡고 날개를 펴는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부터가 꺼려지는 일.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공화국이 계속해서 다완 쪽을 도발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김현성은 심각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확히 사건이 터진 곳은 라이오스예요.”
“거긴….”
“중립국. 라오스를 비롯한 일부 동남아 애들이 소환되는 장소. 들어 본 적 있… 아니,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겠네요. 국경 바로 아래 있는 곳인데….”
“네. 자세히는 모르지만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우리 다완의 튜토리얼 던전은 공화국과 딱 붙어 있고 남쪽 아래에는 바로 라이오스가 있어서, 너나 할 것 없이 그쪽에 많이 들락날락거리거든요. 물론 그건 공화국 애들도 마찬가지고.”
중립국 안에서 싸우는 건 일단은 대륙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물론 안에서 전투가 일어난 건 아니에요. 뭐, 전투라고 해봤자 소규모였고 앞에 있는 희귀 던전 앞에서 어린애들끼리 투닥거린 게 전부였지만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고 점점 커진 거죠. 얻어맞은 애들이 자기네 길드 선임 길드원을 불러오고 그쪽 애들이 출동하니까 여기서도 안 나설 수가 없고. 대규모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마 누가 활시위라도 당겼으면… 빵!”
“니들은 매번 그러잖아.”
“여자의 감이라고 해야 되나. 궁수의 감이라고 해야 되나. 아마 차희라 님도 저랑 같이 계셨으면 비슷한 걸 느끼셨을걸요. 뭐라도 터지는 줄 알고 제대로 준비 안 하고 나온 걸 후회할 뻔했다니까요.”
“중재는 없었고?”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싸움이 일어나지 않은 거죠. 제국 쪽에 정식으로 보고도 올렸고요. 그러고 보니 정식으로 항의한다고 했는데 뭐라도 했을지 모르겠네….”
몬스터들과 살을 맞대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다완 쪽은 이런저런 고충을 겪고 있는 모양.
아마 저런 일이 일상다반사였던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해 본다면 별것 아닌 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징후들을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 될 일이 많다는 거다.
‘한 번 가봐야 되는 건가.’
다완과 라이오스에 한 번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
정확히 그쪽의 분위기가 어떤 건지 알아야 뭐가 됐든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똘똘이가 또 난리 칠 텐데….’
그리폰을 타고 최대한 짧게 일정을 잡는 방법도 나쁘지 않으리라.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결국 이 결론 없는 대화도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알현실로 모시겠습니다.”
제국의 황제를 만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천관위의 부관이 문을 열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희라가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
물론 가신은 허리를 조금 더 숙인 이후, 그녀에 질문에 대답했다.
“일정이 어떻게 되지?”
“폐하와의 저녁 식사 이후에는 딱히 다른 일정은 없습니다. 다만 내일 아침….”
“아아아. 제국민들 앞에서 폼 한 번 잡아주면 된다는 거지.”
“큼….”
“안내해 줘. 징하게… 오래 기다렸는데 식사 시간은 조금 짧으려나.”
‘그럴 리가 없지.’
모르긴 몰라도 식사 시간만 4시간에서 5시간은 잡아야 될 거다.
평범한 귀족과의 식사도 길게는 2시간 정도가 걸리니 황제와 함께하는 석식은 그 배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
벌써부터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만… 수행원 분들은 따로 모시겠습니다.”
“네?!”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정하얀.
계속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깜짝 놀란 모양이다.
“금방 끝내고 올 거야, 하얀아. 여기 지혜 씨랑 혜진 씨랑 같이 밥 먹고 있어.”
“네, 오빠.”
“자. 가요, 하얀 씨.”
“아… 네.”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수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얘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니까.’
수행원들은 수행원들만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저 자리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갈지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내 자리는 저곳이 아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가신들이 수행원 집단을 따로 모셔가기 시작했고 정하얀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내 위치를 확인한 이후에야 시야에서 사라졌다.
벌써부터 피곤하다는 얼굴로 걷고 있는 차희라와 정하얀이 사라진 내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카스가노 유노.
슬그머니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에서는 김현성은 박연주와 위란과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었고, 천관위는 한 발자국 뒤에서 스즈미야 이부키와 함께 걸어온다.
차희라의 가까이에 있기 싫은지 몇 발자국 떨어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신의 뒤를 따라가자 보이는 풍경들은 꽤 화려하다.
아무래도 신성제국의 최고 권위자 이다 보니 보통 귀족과는 클라스가 다르다.
누가 봐도 골드를 쏟아부었을 것만 같은 장식품이 나열되어 있었고 응접실로 가는 길 역시 화려하다.
제국의 황제를 위한 자리다.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양반들이 이런 걸 대충할 리가 없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오랜만에 보는 빅터하르트 할아범의 모습도 보였다.
‘호위라도 서는 건가.’
잠깐 눈인사를 한 이후에는 가지고 있는 무장을 전부 넘기기 시작.
빅터하르트 영감과 친분이 있는 차희라가 시시한 말을 주고받는 것이 들렸지만 굳이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아마 ‘예의를 차려라’라든가 ‘경거망동하지 마라’ 같은 충고가 분명하리라.
대략적인 몸수색이 끝난 이후에 가신들은 경비병들과 함께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고 빅터하르트를 주축으로 다시 한번 붉은색 카펫을 밟았다.
커다란 문을 세 개 정도 지나쳤을까.
왠지 모르게 마지막 문일 것 같은 문이 열리고 난 이후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었다.
‘저게 뭐야….’
뭐 대단한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차희라에게 이미 별 거 없는 노인네라는 정보를 접하기도 했고 실제로 제국에 체류하는 내내 신성제국의 황제가 유능한 인간이라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저건 내가 상상하는 모습 이하였다.
커다란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 왕관을 버틸 힘이 없는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눈에 총명함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의심과 독기에 찬 눈은 괜한 경계를 불러일으킬 정도.
주름진 얼굴과 왜소한 몸.
이 커다란 제국을 거느리고 있는 황제라고 생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저딴 게 무슨 황제야.’
차라리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여황제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누구인지도 대충 알 것 같다.
마음의 눈을 발동시키자 다시 한번 내 생각이 맞다는 걸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제국의 황녀.’
확실히 저쪽은 왠지 모를 아우라가 있다.
성향은 계산적인 혁신가.
기벽도 나쁘지 않고 스탯 역시 괜찮다.
눈은 마치 이쪽을 꿰뚫어보는 듯했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지도자의 기품이 있다.
다시 한번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 죽어가는 늙은이 한 명.
“다들… 자리에… 앉게….”
모기하나 때려죽이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모두가 사전에 배운 대로 예를 표했고 그 모습을 본 늙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함박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제국을 대표하고 있는… 영웅들을 봐서 영광이로군. 내가… 어째서 이곳에 자네들을 불렀는지 모두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일단… 모두 자리에 앉게. 아, 그 전에 내 딸을… 소개해야겠군. 샤를롯트.”
“제2황녀 샤를롯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황녀님을 뵙습니다.”
“너무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국의 예법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을 불편하게 할 목적으로 초대한 것이 아니니 고개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지. 아암. 그렇고말고. 말 한번 잘했구나… 샤를롯트.”
“송구합니다.”
모두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고 가벼운 대화와 함께 식사가 시작됐지만 목소리는 하나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였고 뭐 영웅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전부.
“쿨럭… 쿨럭….”
저 기침 소리 말고는 솔직히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별것 없는 말에 웃어주는 것 자체가 고역.
장담컨대 저 노인네는 내가 맨몸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분명하리라.
‘이게 무슨 황제야.’
정권 교체가 없다면 제국에 미래는 없다.
심지어 저 늙은이가 노망이나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들지만….
나라는 인간은.
너무나도 권력에 약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기득권 세력을 향한 아첨.
“역시 황제 폐하이십니다. 아주 눈에 총기가 가득하십니다. 하하하.”
대단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