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회귀자 사용설명서 256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4)
“그, 그게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아….”
누가 봐도 충격 받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딸의 일탈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
아마 여러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왜 이지경이 됐는지 알 것 같은데….’
애초에 정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가족이 아니었다.
디아루기아와 나는 이렇다 할 공통분모도 없었고 서로가 서로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떠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불편해하는 편.
물론 안 좋았던 첫 만남의 인상은 커다란 둥지와 따뜻하고 질 좋은 음식들로 상쇄되기는 했지만…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도 그때의 인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부부라기보다는 그냥 함께 애를 키우는 사이.
말 그대로 그냥 함께 애를 보는 사이다.
당연하지만 스킨십 같은 것도 없었고 따뜻한 말 한 마디 나눠본 적이 없다.
똘똘이가 이 모든 행동을 모두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변화의 요소가 됐을 수도 있으리라.
우리의 표정을 확인한 강현욱 박사는 다시 한번 천천히 입을 뗄 준비를 했다.
전문가가 무슨 소용이냐고 이쪽을 타박했던 디아루기아는 어느새 전력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아직 정확한 진단이 끝난 상황이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따님 되시는 분….”
“디아루리아라고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네. 디아루리아 님께서 일단 아버지에게 과도한 집착 증상을 보이고 있는 건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마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초기 증상으로 보이는데…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에 영향을 받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아….”
“보통 이런 종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빼앗기기 싫다는 감정으로 인해 생기는 집착이지만 두 분 같은 경우에는 조금은 종류가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무척 희귀한 케이스로….”
“네. 계속 말씀해 주세요.”
“음. 설명을 드리기 전에 배경을 먼저 말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기영 님께서 가족에 할애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은 사전에 전해 들었습니다.”
“아… 맞습니다.”
“요즘 린델에서 가장 이름을 떨치시고 계시는 만큼 바쁜 게 당연하시겠죠. 문제는 그 덕분에 따님과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드시는 것일 테고… 이 부분은 이기영 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문제는 디아루리아 님은 부모님들이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실질적인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만….”
“아아아….”
“저, 저 때문이라고요?”
“예. 디아루리아 님은 아버지가 정확히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사회에서의 이기영 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또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죠. 물론 들은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따님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아버지가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그, 그렇군요.”
“어쩌면 보호자 분께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이기영 님이 디아루기아 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어서라는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이기영 님께서 타 여성분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더욱더요. 실례되는 말일 수는 있겠지만 대륙에 넘어와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습니다만….”
혹시나 드래곤을 몬스터에 비유한 것으로 화를 당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들어도 나쁠 건 없다.
디아루기아야 확실하게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은 고등 생명체라고 할 수 있지만 똘똘이는 아직 이성이 본능을 앞서는 시기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흠. 전형적인 부계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폰들 사이에서… 분명히 이런 케이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폰 훈련소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저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케이스죠.”
“…….”
“상황도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수많은 암컷을 거느리고 있는 수컷이 유독 한 암컷에게 집착하기 시작한 이후였죠. 자연스럽게 다른 암컷들에게는 관심을 잘 주지 않고 발길도 돌리지 않은 것은 물론, 다른 암컷의 자식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새끼 그리폰들 중 하나가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거 같더군요.”
“그, 그게 뭔가요? 박사님.”
이제는 박사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몬스터인 그리폰을 예시로 둔 게 화가 나지도 않는 모양이다.
“우리 어머니는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구나. 그래서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나도 사랑받지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허….”
“디아루리아 님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더 심각합니다. 제가 설명 드린 케이스에 있던 그리폰은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요. 어째서 디아루리아 님께서 보호자분께 심한 집착 증세를 보이고 있는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겠지만….”
그건 아마 고유 기벽 때문일 것이다.
“아마 자신이 매력적인 암컷이 되어 아버지를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당연히 어머니를 무시하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그런….”
“아마 어머니는 무가치하게 느끼고 있고 단순히 귀찮은 존재라고만 생각할 겁니다. 어째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품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당연히 통제하기도 어려워지죠. 보호자님께서 따님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계시다면 아마 그 정도가 더 할 겁니다. 보통 이 시기의 짐… 아니,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열을 매기기 때문이죠. 더 큰 사랑으로 극복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잘못 생각하시고 계셨던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증상이 가속되겠군요.”
“이기영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마 따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좀 더 확고하게 해줄 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건 추측에 불과합니다. 한 번 본 것으로 제 진단이 맞다고 확신을 내릴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그럴 듯하다.
‘아니… 거의 귀신같은데….’
특성으로 확인해 봤지만 당연히 사람이나 몬스터의 행동을 분석하는 특성 같은 것은 없다.
아마 수많은 케이스를 보고 들은 것은 물론 직접 일선에서 뛰어본 프로만이 내릴 수 있는 진단이리라.
지구에서나 대륙에서나 이런 재능으로 먹고 사는 것을 보면 확실히 범상치 않는 인물인 셈.
‘요건 친해져도 나쁘지는 않겠는데….’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이었다.
디아루기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황급히 입을 열어오기 시작했다.
“그,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건가요? 계속 이대로….”
심지어는 울먹거리고 있는 모습.
그녀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사랑을 준만큼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기대했던 똘똘이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단다.
심지어는 둥지 내 서열 최하위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충격받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큰 감정은 정상적인 가정을 선물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조금 불쌍한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원인은 이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아루기아야 자신이 잘못한 탓에 일이 이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정확한 원인을 짚어보면 누가 봐도 내가 범인이다.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리라.
“무슨 방법이 있겠지.”
“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아주 간단하고요.”
“어머니로서의 권위를 되찾고… 저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겠군요.”
“네. 디아루기아 님도 그렇지만 이기영 님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기영 님부터 디아루기아 님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똘똘이뿐만이 아니라 디아루기아 에게도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
“가능하다면 애정 표현도 많이 해주시고 따님에게 선을 그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영역은 어머니의 영역이고 네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어머니의 서열이 3위가 아니라는 걸 잘 이해시켜 주셔야 하고요.”
“음… 그렇군요.”
“당연히 디아루기아 님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제까지는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주셨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사랑을 조금 줄여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쉽지 않으시겠지만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기영 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시고요.”
“네.”
“물론 어려울 겁니다. 머릿속에 이미 고정되어 있는 생각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요. 괜한 걱정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마 처음에는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일 확률이 큽니다.”
“격렬한 거부 반응이요? 그럼 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도 계속 진행하셔야 합니다. 단호해 지셔야 합니다. 보호자 님.”
“아… 네.”
“따님에게는 마음이 약하신 것 같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디아루기아 님.”
“…….”
“단호해지셔야 합니다.”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것만 같은 명대사.
디아루기아의 귓가에는 아마 저 목소리가 계속 맴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결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무는 모습.
심지어는 주먹을 꽉 쥔다.
막상 저렇게 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이 가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결심을 해줬다는 건 칭찬하고 싶은 부분.
‘연기할 일이 많네.’
안기모에게 개인 교습이라도 받아야 되는 건 아닌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볼 정도였다.
그렇게 1차 상담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 다음날.
김미영 팀장에게 억지로나마 모든 스케줄을 뒤로 미루게 해달라고 한 이후에는 다시 한번 둥지로 출근했다.
하루 종일 함께 있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정하얀을 달래야 했던 것은 당연지사.
혹시나 또 그 눈으로 나를 감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막스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 달라는 작은 숙제까지 내고 나왔다.
그나마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쪽을 훔쳐보지 않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시금 잠에 빠져든 율리에나는 검집에 봉인하다시피 묶어놓은 이후에 방에 두고나왔다.
어차피 최근의 린델은 아직은 그 검을 제대로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이쪽은 꽤 중요한 숙제를 앞두고 있었다.
‘똘똘이 갱생 프로젝트.’
강현욱 박사의 솔루션을 시험해 보기로 한 첫 날이다.
나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디아루기아 역시 준비가 되어 있는 건지는 의심스럽다.
아무튼 간에 활시위는 당겨졌고 화살은 시위를 떠나간 상황.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서는 바뀌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우….’
힘든 발걸음을 둥지로 옮기자 역시나 저 멀리서부터 헥헥 대고 있는 똘똘이가 시야에 비쳤다.
“키에에에엑! 헥헥! 헥!”
제 어미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만 정말로 이틀 연속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는지 지나치게 흥분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꼬리가 붕붕붕 흔들리는 것은 물론 침까지 흘리며 뛰어오는 모습은 가관이다.
커다란 눈망울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꽉 껴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단호해 지셔야 합니다, 보호자님.’
슬쩍 몸을 피한 이후에 곧바로 둥지로 뛰어들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디아루기아를 품에 안았다.
미리 말을 맞춰놓은 덕분인지 그녀 역시 나에게 뛰어들듯 안기기 시작.
누가 봐도 어색한 애정 표현이다.
“오셨어요?”
“…….”
“끄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바로 뒤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