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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55화 (254/1,590)

# 255

회귀자 사용설명서 255화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3)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시죠?”

“이, 이미 충분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게 반성을 하는 건지 예정되어 있는 일들이 틀어져서 억울해하는 건지는 모를 일입니다.”

둥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눈 감고도 보이는 것 같다.

아마 처음에 화를 내던 디아루기아도 똘똘이에게 내려진 형벌 아닌 형벌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

아니, 애초에 내가 똘똘이에게 외출금지라는 말을 꺼낼 때만 해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된다고 것에는 분명히 공감하고 있었겠지만 둥지로 함께 돌아온 이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부짖는 똘똘이를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이 틀림없으리라.

당장 나 역시도 녀석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시선을 피했을 정도니 똘똘이를 지극히 아끼는 그녀의 반응이 어떤지는 뻔할 뻔자.

지금 이렇게 굳이 나를 찾아올 정도라는 걸 생각해 보면 녀석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에 답이 나온다.

아마…….

‘아빠한테 잘 말하고 올게.’

라든가.

‘그냥 한 말이실 거야. 울지 마렴, 디아루리아.’

라든가.

‘엄마가 도와줄게. 엄마만 믿으렴.’

같은 방식으로 녀석을 달랬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땡깡을 부리는 꼬마 아이의 행동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예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똘똘이의 행동은 가지고 싶은 걸 사달라고 마트 한복판에서 드러눕는 꼬마와 다를 게 없다.

항상 그런 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을 테니 이번에도 그 방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도 통했고….’

디아루기아는 녀석이 드러누울 때마다 원하는 걸 끊임없이 사주는 부모님 이었던 셈.

어째서 녀석이 엄마를 우습게 보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들이도 금지라는 건 사실 그냥 해본 말이었습니다.”

“아… 정말이십니까?”

“네. 그렇지만 당신을 보니 이번에는 그냥 이대로 가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슨 뜻으로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하기가….”

“원하는 걸 전부 다 얻을 수 없다는 걸 가르쳐줘야 된다. 이 말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 똘똘이는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어요. 가끔은 떼를 써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무, 물론 말은 공감하지만….”

“공감하신다는 분이.”

“그렇지만 우리 디아루리아가 정말로 함께 나가는 걸 기,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원정을 떠나기 전 해줬던 약속이지 않습니까. 디아루리아는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반성하고 있어요.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춰주시고 잘 타일러 주시는 게….”

“너무 물러요.”

“디아루리아가 아빠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다마다.

기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왠지 모르게 찔리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자 이때다 싶었는지 다시금 말을 이어왔다.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신이 둥지에는 들리지 않고 사랑을 주지 않았던 게 원인입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에 목마른 아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건…. 물론 오늘 일은 디아루리아의 잘못입니다. 다만 아이가 숨을 쉴 구멍 정도는 열어 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그게 이유입니까? 단순히 똘똘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저, 저를 뭘로 보고!”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쪽이 정곡을 찌른 모양.

그렇지만 사실 디아루기아의 말도 틀린 것은 없다.

막 이쪽이 똘똘이를 데려왔을 때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을 정도로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육아를 전적으로 디아루기아에게 맡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녀석과 시간을 보내면 많이 보내는 거였고 훈련소에 들어간 이후로는 한 달 이상을 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할 말이 없기는 없다는 거다.

그렇지만.

‘얘는 확실히 문제야.’

고유 기벽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아마 똘똘이에게도 온갖 사랑과 관심을 쏟았던 것이 분명.

실제로 나와 함께 있을 때도 그녀가 똘똘이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마치 녀석을 상전 대하듯이 대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애초에 디아루기아에게 자신의 삶은 없다.

모든 일이 똘똘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숭고한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건 당연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니 솔직히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이건 얘한테도 문제야.’

본인을 위해서라도 자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던 것이 문제.

‘육아 어렵네.’

솔직히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지구에서 아이를 낳아본 것도 아니고 어디 유아교육과 같은 곳에 들어가 이론을 배워온 것도 아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고 해봐야 가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 같은 걸로 본 야매 지식뿐이었고 그마저도 즐겨보진 않았다.

아마 그건 디아루기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문가가 필요해.’

뭔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지만 이후에 똘똘이가 성장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에는 조용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오늘은 돌아가세요. 내일 아침에 찾아갈 테니까요.”

“그, 그럼!”

“아뇨. 내린 벌을 철회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그러니까… 우리 가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아무튼 그렇게 알고만 계시면 됩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막 사원을 뒤로 하고 빠르게 서신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 * *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디아루기아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 전문가… 라는 분께 상담을 받는다. 이 말입니까?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왜 저희가 아이를 키우는 데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겁니까? 심지어 우리 디아루리아는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인데.”

“뭐, 저도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진 않을 겁니다. 뭐가 됐든 경험을 가지고 있고 배운 사람들의 조언은 도움이 되니까요.”

“그건… 그렇기는 하지만….”

“아… 혹시 어제 똘똘이는 제대로 잘 있었습니까?”

“네. 어제는 아빠가 온다는 말을 듣고 잠들었었고… 오늘 아침만 해도 많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그 전문가라는 분은 아이를 많이 키워본 사람입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단순히 유아교육에 국한된 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분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가족 심리치료사를 병행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고… 이곳에 와서는 몬스터 행동분석가라는 감투를 쓰면서 여러 레이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드래곤은 몬스터가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일단은 뚜껑을 따봐야 알겠죠. 사실 저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러본 겁니다.”

예상했지만 디아루기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그 전문가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은 모양.

당장 이 대륙에서 심리치료니 뭐니 하는 게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으니 그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종족도 다르니까.’

말하자면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얼굴.

사실 나 역시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인간의 육아와 드래곤의 육아는 그 방식이 다른 것 같기도 했고… 단순히 몬스터라고 치부하기에는 용족들의 지능은 인간의 그것을 상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똘똘이는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시간도 없어 이지혜에게 도움을 받아 급하게 사람을 뽑았다.

이지혜 오피셜로는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게 진짜일지는 두고 봐야 아는 일.

아무튼 간에 이쪽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면 배워야지.’

혼자서 꽁꽁 싸매고 있어봤자 문제를 푸는 속도가 더뎌질 뿐이다.

최소한 이쪽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배운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는 게 더 현실적이다.

둥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디아루기아와 자리를 잡고 기다리자 저 멀리서부터 사람 한 명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

인상 좋아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강현욱이라고 합니다. 그… 이지혜 님이 소개해 주신….”

“아아. 네. 반갑습니다.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디아루기아입니다.”

“이름 높은 분들을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설마 제가 이쪽과 연이 닿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하.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정말 신기하군요. 도시에 있을 때도 매번 이 커다랗고 웅장한 둥지를 보고 있었는데… 여기에 발을 들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도 다 돈이죠. 뭐.”

“저 같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겠죠. 하하. 어쨌든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박사님.”

“그렇게까지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현욱 씨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파란 부길드 마스터.”

“아… 네. 현욱 씨도 그냥 기영 씨라 불러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조금 부담스러운 호칭이니 이기영 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인상 좋은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그다지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막상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도움 되겠는데….’

디아루기아도 나와 비슷한 기분인지 경계를 푸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둥지로 올라가니 신기하다는 듯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는 했지만 이것도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제법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시야에 비쳤다.

“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욱 씨?”

“아. 일단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소에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따님과 행동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먼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뭔가 본격적인데….’

벌써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뭔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우다다 달려오는 똘똘이 때문인지 정말 저 사람이 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렸다.

“헥헥… 키엑! 끄에에에에에에엑!”

이번에도 역시 디아루기아가 먼저 달려가 봤지만 어머니는 가볍게 무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안기려는 모습에 역시나 녀석이 어제 있었던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디아루리아.”

조용히 낮게 목소리를 깔자 그제야 낑낑대는 모습은 제법 영악하게 보일 지경.

‘얘 이거 문제 많은데….’

지금 당장 다시 한번 다그치고 싶었지만 일단은 보는 눈이 있는 만큼 최대한 평소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거 보라는 듯 디아루기아를 바라보자 얼굴에 수심이 드리운 것이 보인다.

눈물에 낚은 어머니 역시 녀석이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똘똘이가 신나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냥 좋은지 한 발자국 뒤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함께 밥을 먹고 조금 이야기도 하고 놀아주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난 상황.

배부른 똘똘이가 슬그머니 수마에 빠지고 나서야 강현욱 훈련사는 이쪽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무척 진지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운을 띄울지 궁금했지만 처음부터 꽤나 묵직한 팩트가 치고 들어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겠지만 디아루기아는 무척 충격 받은 표정으로 변했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리라.

“아이가 어머니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군요. 심지어는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아… 그게….”

“게다가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일은 저렇게 행동하는 원인이다.

“뭔가 이유가 있는 겁니까?”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아이들이 하는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여러 세세한 문제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생각해 봤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보호자님들도 그렇게 사이가 좋아보이지는 않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단순히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보호자 두 분이 서로에게 관심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 말고 따님 되시는 분 같은 어린아이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요. 몇 시간 동안 두 분이 대화를 나눈 시간이 채 30초도 되지 않다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따님이 가지고 계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두 보호자님이신 것 같습니다. 이건 절대로 정상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묵직한 팩트에 디아루기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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