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회귀자 사용설명서 249화
박물관 관리인 막스(5)
바야흐르 박물관을 지키기 위한, 아니, 대륙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막이 올랐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막스에게 손짓하자 녀석이 다급하게 자리에서 비키는 것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충신으로 돌변한 녀석의 모습이 우습기는 했지만 녀석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절박하거든.’
다른 부분에서는 몰라도 구멍 난 마력을 메우는 이 일련의 작업은 내가 녀석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약해지고 있는 부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
시스템이 먼저 경고를 하기도 전에 어느 부분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더러운 고대신의 파편의 행동 패턴 역시 마찬가지다.
녀석의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녀석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전해져 온다.
1분 1초가 긴박한 상황에서 취약 부분을 미리 접할 수 있다는 건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해 오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최단 거리 정확히 안내한 거 맞지? 막 사원?”
-네. 아마 조금 있으면 진입할 것 같습니다!
“아주 좋아.”
-또 지시하실 일이라도….
“일단 커피 다시 타와.”
-네!
곧바로 마력 홀로그램을 바라보자 얼마 되지 않아 고대신의 파편이 있는 곳으로 들이 닥치는 원정대원들이 보였다.
“음성 연결은?”
-네. 이미 연결했습니다. 같이 오신 용사분들에게 전달하실 때는 가장 끝 쪽에 위치한 마법진에 마력을 넣으시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
“이 대표라고 부르면 된다.”
-넵! 이 대표님.
확실히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는지 일처리가 빠르다.
멍청할 거라고 느꼈던 건 내 착각인 모양.
너무 허둥지둥 움직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놓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 아아. 음성 테스트. 현성 씨, 제 목소리가 들리면 오른손을 들어주세요.
확인했다는 듯 한쪽 손을 들어 올리는 영상 속의 회귀자.
신화 등급의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럽다.
다른 이들도 이미 전투 준비에 한참.
이쪽이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자잘한 것은 저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지만 예비 프로그램의 마력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얀이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예비 프로그램을 향해 마력 주입해 주세요. 하얀이는 큰 주문 하나 준비하고 마찬가지로 디아루기아도 현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녀석을 제압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마력이기는 하지만 원정대원들의 마력은 도움이 된다.
모두가 꽤나 수준급의 마법사들이었고 보유하고 있는 마력 스탯도 80이 넘는다.
-근접직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천천히 마력을 주입해 주시면 됩니다.
잘해내고 있다는 듯이 여유롭게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이쪽의 힘이 더 강해질수록 저쪽의 저항도 더 거세진다.
끊임없이 마법진을 두드리며 취약 부분에 마력을 밀어 넣는 일련의 과정은 솔직히 복잡하다.
여기저기에서 마력을 끌어다 쓰고 있지만 완전히 봉인하기에는 마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
막스가 타온 커피를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긴 이후에는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막스를 향해서였다.
“혹시나 다른 구역에서 끌어올 수 있는 마력 있는지 확인해 봐.”
-이 대표님,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미리 원정대원들을 데려다 놓기를 잘한 것 같네.”
-아….
“최대한 막아보겠지만 어디 한쪽은 뚫릴 확률이 높아. 아직도 마력이 너무 부족해.”
-그 드래곤 분의 마력을 주입한다면….
“뚫렸을 때의 대비도 해야지. 디아루기아는 보험이야. 보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그렇군요.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퇴로도 확보해 놔.”
-네?
“뭐, 인마. 너 왜 눈깔을 그렇게 떠? 혹시라도 일이 틀어져도 일단은 이쪽이 살아야 나중에 뒷수습이든 뭐든 하러 돌아올 거 아니야. 너, 박물관 안에서 튀어 나가지 않아서 잘 모르나 본데 지금 저쪽에 있는 얘들은 현 인류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야. 쟤들 아니면 수습할 애들 도 없다는 거야.”
-아! 그런 거군요?
“그렇지 않으면 전설 등급의 몬스터를 그렇게 쉽게 잡아내고 균열 수호자들이 걸어놓은 봉인을 깰 수 있었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막 사원. 솔직히 나도 이 박물관은 소중하게 여기니까. 여기 있는 걸 못 쓰게 된다는 건 조금 그렇지. 그리고 계속 말꼬리 잡지 마. 집중 안 되니까.”
-네… 넵!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무는 녀석을 굳이 쳐다보지 않았다.
아마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건 녀석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법진을 두드리며 마력을 주입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마찬가지로 입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하얀아, 캐스팅하고 있는 마법 그대로 유지하고 덕구 쪽에 있는 촉수 묶고 있는 쪽에 마력 조금만 더 주입해 줘. 그쪽 깨질 것 같다.
조금 짜증 났던 것은 녀석이 조금 더 영악해졌다는 것이었다.
집요하게 한쪽으로만 힘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
당연히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쪽에 있는 마력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제길.’
정하얀이나 디아루기아 같은 이들의 마력은 이후 탈출할 때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온전히 보전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곧바로 뚫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차근차근 몇 개라도 확실히 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 마력이 문제야.’
제법 장기전을 의식해야 되는 상대.
계속해서 마법진에 마력을 쏟아 부으며 제어 장치를 조종하는 것 역시 일이다.
물론 마법을 쓰는 것처럼 커다란 마력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업이 제법 길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만큼 여분의 마력을 계속해서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다.
뒤에서 멀뚱멀뚱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막 사원을 기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실제로도 녀석은 확실히 잘해주고 있다.
너무 의기양양해진 것이 조금 불안하긴 하긴 하지만 말이다.
뭔가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대표님. 21번이랑 7번은 확실하게 봉인했습니다!
“흥분하지 마. 어느 한쪽이 풀려나면 다른 쪽도 연쇄적으로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슬슬 조짐도 보이고… 있고….”
-9번도 봉인에 성공했습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지 마. 앞으로 내가 넣으라고 한곳에만 집어넣어.”
-10번도 봉인 성공했습니다!
“남은 잔존 마력 회수해.”
-69번에!!
“너, 이 새끼! 누가 그쪽에 넣으래!”
-어? 6… 9… 69번에….
“69번 영상 한쪽에 빨리 띄….”
콰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촉수 하나가 봉인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우뚝 촉수를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
막스가 69번 쪽에 마력을 밀어 넣은 사이 대기하고 있던 녀석이 팽창하듯 튀어오른 것이다.
다시 한번 마법진을 붙들고 녀석을 향해 마력의 쇠사슬을 쏘아 보냈지만 붙들고 있기가 쉽지가 않다.
‘다른 것도 전부 깨질 수도 있어.’
아니, 날뛰게 만든다면 틀림없이 전부 부서진다.
이미 이쪽의 손을 떠나가 버린 상황이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원정대원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영상에 보인다.
저쪽의 상황은 이쪽에 들리지 않지만 소리를 지르는 김현성과 마법을 발동시키는 정하얀.
흥분한 녀석을 다시 안쪽으로 집어 쳐 넣어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표적이 확실했다는 것.
-정확히 촉수만… 촉수만 때려야 합니다.
수십, 아니, 수백의 조그마한 마력이 계속해서 녀석의 촉수를 두드리는 모습은 장관.
아마 정하얀의 마법이리라.
화력이 강한 브레스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디아루기아 역시 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녀석을 붙잡고 있는 쇠사슬에 마력을 조금 더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 통제실 유지하는 마력도 최소 전력 유지하고 전부 다 저쪽으로 전달해.”
-죄, 죄송합….
“실수는 바로 잡으면 되는 거야, 막 사원.”
-이, 이 대표님.
커다란 용이 입을 크게 벌리고 녀석을 물어뜯으려 하는 모습은 장관.
영상으로 봐도 지릴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그렇지만 녀석에게까지 대미지가 있는지는 미지수.
저 여편네가 무리하게 움직이다 객사하면 어떡하나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항하는 힘을 떨쳐 낼 수는 없는지 촉수를 뒤틀기 시작한 녀석 때문에 몸이 튕겨져 나가 벽 쪽으로 처박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커다란 용에게 선희영와 안기모의 신성력이 전달되는 순간.
박연주와 검은백조의 인원들 역시 검을 들고 뛰어오르기 시작.
‘무슨….’
신에게 뛰어드는 발키리들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
공포를 모르는 여검사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
‘제길.’
하지만 고대신에게까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은 모양.
푸른색의 쇠사슬에 묶여 있는 커다란 메인 촉수에서 뻗어 나온 작은 촉수들이 그녀들에게 쏘아졌다.
‘저딴 것도 할 줄 알았던 건가.
대부분의 일원들은 검으로 촉수를 막아내지는 일부는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급한 상황.
박덕구가 그 사이를 뛰어들어 방패로 몇몇의 공격을 막아내고 창을 든 조혜진은 박덕구의 어깨를 잡고 올라서 창을 휘두른다.
후두득 후드득.
몇 가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뻗어져 나오는 공격에 조혜진이 눈을 감았다.
아무런 상처 없이 무사한 자신의 몸을 매만지고 있던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꼬리로 그 공격을 대신 받아낸 디아루기아일 터.
입가에 모이고 있는 커다란 마력 역시 시야에 비치고 있을 것이다.
-브레스는 안 돼!! 아! 관통형! 관통형으로!
입에서 쏘아져 보낸 관통형 브레스가 그녀가 이빨로 상처를 냈던 커다란 한쪽 면을 꿰뚫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을 붙잡고 있던 예비 프로그램의 쇠사슬 하나가 끊어진 순간이었다.
수많은 촉수를 검으로 잘라내며 관통 부위에 당도한 김현성이 영상에 비쳤다.
‘부탁한다… 슈바! 현성아!
천천히 검을 휘두르는 녀석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지경.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검이 촉수에 닿은 순간 촉수는 깔끔한 단면을 만들어낸 채로 완벽하게 양 등분됐다.
“예에에에에에쓰!!!”
-끄으으으으으윽!
“봉인 시작해! 빨리 빨리 빨리! 다른쪽도 한꺼번에 봉인! 봉인!”
-끄어어어어엉….
“울지 말고! 아니, 좀 나와!”
마법진에 마력을 계속해서 넣은 것은 당연지사.
요리조리 손을 놀리며 마법진을 두드리자 뒤에서 계속해서 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 상단 지역 전부 봉인. 32번부터 41번까지 모두 봉인! 69번도 봉인 완료했습니다. 끄어어엉….
차곡차곡 쇠사슬에 휩싸이는 녀석이 눈에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뻗어 나온 푸른색 마력의 쇠사슬은 마치 녀석을 처음 봉인했을 때와 같은 모양처럼 놈을 옭아매고 있었다.
이윽고 녀석을 긴 잠에 빠져들게 할 커다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기 싫다는 듯 발버둥 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사라져라! 이 더러운 악마야! 푸흐흐하하핫!”
이쯤 되니 기분이 업 되서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
왠지 모르게 녀석의 커다란 눈이 관리실이 있는 쪽을 노려보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딴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다.
“내 박물관은 넘기지 않는다! 요놈아! 푸하하! 쿨럭! 쿨럭!”
너무 웃어서 헛기침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녀석이 안에 쳐 박히고 푸른색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문 쪽에 마력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그 가운데 사람의 형상을 한 마력의 결정체가 눈에 보였다.
‘저건 또 뭐야.’
이쪽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아니다.
막스가 멍하니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니 저 여자가 바로 균열 수호자인 모양.
본인이라기보다는 잔존 사념 같은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뭔 사연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막스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사념이 외우는 주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문은 순식간에 완성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룬 문자들이 커다란 문을 향해 날아간다.
다시 한번 푸른빛이 장내를 뒤엎고 다시 되돌아온 영상에 자리한 것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서로를 껴안고 있는 원정대원들이었다.
“나이쓰으으으으!”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전설 등급 퀘스트-대륙 구원(1/1)]
[칭호가 생성됩니다.]
[칭호-대륙 수호자]
[모든 스탯이 1 올라갑니다.]
[박물관 관리자 등급이 1등급 상승합니다. 균열 박물관 5등급 관리자 칭호가 균열 박물관 4등급 관리자로 변경됩니다. 균열 수호자 메텔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새로운 칭호가 강제적으로 생성됩니다.]
[막스의 보호자]
“어?”
기쁨도 잠시, 이게 뭐냐는 듯 막스를 바라보자 묘하게 당황스러워하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