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회귀자 사용설명서 241화
신화 등급 아이템(2)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이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신화 등급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받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책에서나 나오던 용사며 영웅이다.
‘키야….’
처음 김현성을 봤을 때부터 녀석에게 찰싹 달라붙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해 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녀석을 따라와서 다행이라는 느꼈던 적은 없었다.
‘장엄해! 현성아! 형 지리겠다!’
원래 주인공이라는 건 대부분 녀석이다.
왠지 율리에나에게 선택받는 내 모습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확실히 김현성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빛은 마치 김현성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녀석을 향했고 김현성은 천천히 손을 뻗는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물건이었다는 느낌으로.
시선을 빼앗긴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고대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는 건축물.
고대신의 영향으로 이곳저곳이 부서지거나 깨어 있는 배경.
그 가운데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있으니 검은백조의 여성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는 중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실감한다.
어딘가의 종교 의식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은 마치 녀석이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공중에 둥둥 떠 있던 검이 천천히 녀석의 손에 내려앉았고 환한 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것은 순식간.
화아아아아아악!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검을 자신의 허리춤으로 가져간 녀석은 조금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 말에 대답한 것은 박연주.
처음부터 검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었던 나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다.
“주인의식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설마, 신화 등급의 검인가요?”
“예. 신화 등급의 검입니다. 아직은 제가 그 사용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터라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 같지만… 전설 등급의 아이템과 비교해 봐도 부족함이 없는 것 같군요. 일단 검은백조의 여러분들께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전혀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현성 씨. 주인의식이야 치루고 싶다고 해서 치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그걸 막을 수 있는 권리도 없으니까요. 방금 같이 무구가 스스로 다가왔다면… 더욱이요. 그리고 애초에 원정을 도와주시는 입장에 있었으니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배가 아프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현성 씨가 잘된 모습을 보니 오히려 기분이 좋네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문제의 여지가 있을 만했다.
‘운이 좋네.’
파란이 검은백조를 도와주는 입장에 있기는 했지만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물건을 아무런 합의 없이 가져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
검은백조의 길드마스터 박연주가 김현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주인의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 문제가 별 탈 없이 넘어간 것이다.
‘그래도 먹었으니까 일단 우리가 가져가는 게 맞지.’
아무리 가치가 높다고 해도 사용자가 없다면 돌멩이나 다름없다.
아쉽지만 박덕구가 만지고 있는 전설 등급의 방패와 정하얀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전설 등급의 지팡이까지 우리 소유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정하얀이 금색 빛에 휩싸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잘했다! 하얀아!’
그녀 역시 주인의식에 성공한 것.
“죄, 죄송합니다.”
일단 고개를 숙이는 정하얀의 얼굴에는 이미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다.
지팡이를 발견했을 때 기분 좋게 달려가는 것 같더니 결국 마력을 밀어 넣고 사고를 친 것이다.
이건 통제를 하지 못한 이쪽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다. 입꼬리가 괜스레 실실 올라가려고 하는 느낌을 꾹 억누르며 이쪽도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정하얀.”
“죄송해요…. 오빠.”
“덕구야, 너도 일단 방패 내려놔라.”
‘내려놓지 마.’
“덕구야.”
‘빨리 주인의식 시작해! 이 돼지새끼야. 일단 마력 밀어 넣고 처먹어! 형이 수습해 준다! 원래 이런 건 먹고 보는 거야.’
“아, 알겠소. 형님.”
‘일단 먹으라니까!’
아쉽게도 내 속마음이 전달되지는 않은 모양.
눈치 없게 방패를 땅바닥으로 내려놓은 박덕구는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두 발자국 정도 물러섰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쓴 맛을 삼켜 넘기며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희영 씨도 일단 잠깐 내려놓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모 씨도 마찬가지고요. 조금 흥분하신 건 이해하지만 저희끼리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아이템 분배는 원정대장의 고유 권한이고 지금 이 원정대의 원정대장은 박연주 님이 맞습니다. 현성 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하얀이 너까지….”
“죄송해요.”
‘죄송하긴 뭐가 죄송하니. 정말 잘했다. 다음에도 그렇게 하는 거야.’
아무래도 던전에 나간 이후에는 정하얀에게 상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거, 누님도 모르게 그렇게 된 모양이오. 너무 혼내는 건… 원래 이런 상황에서 냉정함을 찾을 수 있는 건 이 박덕구 정도가 아니면 힘드니까. 아암 그렇지!”
눈치 없는 박덕구는 정하얀을 열심히 두둔하며 은근슬쩍 참을성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저 돼지는 상이 아니라 벌이 필요하다.
‘너는 돌아가면 벌이야.’
그렇지만 그걸 지금 당장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멍청한 놈이라는 단어를 애써 목으로 삼켜 넘기며 박연주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기영 씨. 이미 저질러진 일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보다는 축하를 드리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계속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지금 상황으로서는 스펙 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게 맞습니다. 일단은 살아남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주인의식에 성공했다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무구를 제일 잘 다룰 수 있다는 게 하얀 씨라는 뜻이니까요. 저희 마법사들도 괜찮아하고 있는 것 같고… 축하드립니다, 하얀 씨.”
“감, 감사합니다….”
‘그렇지.’
확신할 수 있다.
박연주는 천사가 맞다. 과하게 착한 모습은 다분히 김현성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일단 최대한 양보를 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김현성이 부러워지기 시작.
녀석의 연애는 굉장히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일리가 있어.’
당장 눈앞에 욕심보다는 일단은 살아남는 걸 전제로 생각한 부분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어째서 그녀가 가진 것 없는 이지혜를 기용하고 길드내의 대소사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남은 아이템들은 일단 저희 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먼저 판단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챙길 건 챙긴다는 부분도 마음에 든다.
‘김현성 부럽다.’
조혜진과 박연주의 축하를 받으며 슬쩍 웃고 있는 모습은 정하얀에게 한쪽 팔을 봉인당한 나와는 대비된다.
그 와중에 율리에나는 눈치 없이 계속 웅웅거리며 말을 걸어오기 시작.
오랜만에 깨어난 여파인지 곧 잠잠해 지기는 했지만 아마 김현성이 이번에 얻은 신화 등급의 검은 율리에나와도 차이가 있으리라.
아무튼 간에 한 발자국 뒤에서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일단 파란 길드가 신화 아이템과 전설 아이템을 꿀 꺽한 셈이 된다.
남은 전설 아이템은 박덕구가 만지작거리던 방패 하나와 질이 좋은 영웅 등급의 아이템들.
방패야 주인의식을 치러야 하는 아이템이니 이쪽에도 기회는 있겠지만 사실상 영웅 등급의 아이템들은 검은백조에서 독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로 분류되는 영웅 등급의 보조구가 가지고 싶은지 힐끔힐끔 하는 선희영의 시선도 확실히 신경 쓰였지만 지금 저 아이템을 달라고 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말하기가 힘들다.
당장 원정대 내에 있는 사제만 4명.
모두가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장비하고는 있지만 저 성서를 원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주 무구가 아닌 보조 무구인 만큼 일반적으로 양손 지팡이를 착용하는 사제들이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본래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 끝이 없는 법이다.
일단은 기다려 봐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야….
[12기사단의 검-듀렌달-신화 등급]
[신화 속, 12기사단의 수장이 사용하던 명검입니다. 그 어떤 것도 베어낼 수 있다고 알려진 이 명검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 빛이 바라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자세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듀렌달은 부러지지 않는다.]
[피로 물든 붉은 보석-아네모네-전설 등급]
[질투에 눈이 먼 여신이 남편의 애첩을 살해한 이후 그 혈액을 보석으로 만들어 장식한 지팡이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마법을 증폭시켜주는 것은 물론, 보석에 내장되어 있는 고유 마법의 지식을 깨우치게 됩니다. 사용자의 성장치가 낮아 사용 가능한 고유 마법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마력이 10 올라갑니다. -저주받을 아네모네! 더러운 창녀 아네모네야! 너는 평생 그 보석 안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정도의 아이템을 꿀꺽했으니 영웅 등급의 아이템에 소유권을 주장할 양심이 남아 있지 않다.
고대신의 파편이나 전에 봤던 그 녹색 괴물처럼 신화 등급의 아이템은 내 눈으로도 확인할 수가 없지만 굳이 설명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는 법이다.
‘저건 보물이야.’
김현성이 가지고 있는 검은 지고의 보물이다.
상태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저 검은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김현성의 검술 실력은 이미 대륙 8좌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았고 세간에서는 김현성이 경험 부족이 아니냐는 말도 떠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건 녀석이 회귀자인지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다.
어떤 기능들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여러모로 부족함이 없는 우리 현성이가 저걸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모든 걸 베어낼 수 있고 부러지지 않는다는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밥값은 하고 남는다는 거다.
정하얀이 가지게 된 전설 등급의 지팡이 역시 말이 필요 없을 정도.
‘설명이 뭔가… 불안한데….’
기분이 좋기는 하다.
전체적으로 파란의 등급이 한 단계 더 올라간 셈이니까.
질투에 미친 여신이 자신의 남편의 애인을 살해한 이후 그 혈액으로 보석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은 누가 봐도 불길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울림이지만 일단은 좋은 일이다.
‘아네모네….’
정하얀과 궁합이 맞다면 맞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
사실 주인의식을 치르고 나니 커다란 지팡이는 별 관심도 없는 모양.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 있는 붉은색 보석이 박힌 지팡이가 시야에 비쳤다.
‘저럴 거면 왜 저렇게 빠르게 달려가서 선점한 거야.’
분명히 지팡이를 발견한 이후에 굉장히 흥분하며 달려 나갔던 게 방금 전이다.
주인의식을 마치고 나니 단물이 떨어진 껌 마냥 뱉어내는 모양새가 우습다.
지팡이보다는 아무래도 지팡이에 내재되어 있는 능력치가 더 탐이 났던 것 같지만 나에게 혼이 나는 페널티까지 떠안으며 전설 등급의 지팡이를 차지하고 싶어 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별 생각 없이 히죽히죽 웃고 있는 정하얀의 얼굴을 확인한 이후 그녀가 무엇을 원한건지 깨닫는 것은 순식간.
‘마력 능력치… 97….’
1년이 조금 지난 시점.
비공식적이지만 정하얀이 대륙 8좌에 비견되는 힘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자, 잠깐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