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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36화 (235/1,590)

# 236

회귀자 사용설명서 236화

신화적 존재 (3)

‘무난했어.’

격이 좀 떨어진다고 한들 네임드 몬스터를 아무런 피해 없이 잡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래는 녀석이 조금 더 시간을 끌었어야 하는 게 맞다.

두 번째부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한들, 첫 번째 에너지 드레인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부유 마법을 캐스팅해 놓지 않았다면 일이 꼬였을 수도 있는 것은 이쪽이라는 이야기다.

굳이 표현하자면 알고 모르고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첫 번째 드레인을 염두에 두고 마력을 팍팍 사용했던 해골은 김현성에게 뚝배기가 깨지며 리타이어.

그 과정에서 보여준 김현성의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지기는 했지만 해골기사 바인의 최후는 전설 등급의 몬스터답지 않았다.

아무튼 간에 원정대는 커다란 뭔가를 희생하지 않고 녀석을 잡아냈고 두 번째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내가 기다리는 것은 이 하프타임에 실시될 작은 이벤트.

길드원들이 던전에 고립되어 있는 검은백조 역시 이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여러분은 강하시군요.

“…….”

-물론 격이 높은 분이 계시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바인이 이렇게 쉽게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수호자님들이 여러분을 보시면 정말로 기뻐하시겠군요.

‘알았으니까 보상 내놔.’

아마 모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뿐이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탐험 중간마다 보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무구 중 하나를 증정해드리는 것으로 이 역시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방식도 아까와 같습니다. 탐험을 전부 완료한 이후에 세 가지를 한꺼번에 돌리실 수도 있습니다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만약 오백 가지 아이템 중에 원정대를 방해하는 아이템, 이를 테면 저주받은 물건이라든가 통제하기 힘든 물건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런 종류의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전설과 신화 아이템이 나올 확률보다 적다.

매우 스무스하게 진행되는 원정이기는 했지만 도박을 해볼 필요는 있다는 거다.

막말로 저주 아이템을 받고 패널티를 먹어도 전설 등급의 몬스터에게는 어떻게든 비빌 수 있다.

그렇지만.

‘어차피 신화가 뜨면 전멸이야.’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에서 신화가 뜨면 무슨 짓을 하든 원정대는 전멸이다.

그나마 신화급 존재와 비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비.’

이쪽 역시 신화급 아이템으로 무장하는 것.

김현성은 망치를 사용하지 않지만 아까 봤었던 신의 망치 정도는 들어줘야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아이템 하나로 원정대 전체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회귀자치고는 비루한 장비가 업그레이드된다면….

‘김현성 장군님이 전부 다 해주실 거야.’

어떻게든 녀석이 돌파구를 뚫어낼 것이다.

‘무조건 먹어야 돼.’

그래야 팀이 안전해 진다.

-아까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여러분의 탐험을 방해하는 물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막스가 이쪽을 걱정해서 저런 말을 해주는 건지, 아니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빼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아까처럼 대표가 나와 돌림판을 돌려주시면 됩니다.

“네.”

박연주를 제외하고 그나마 높은 행운 수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와 디아루기아 그리고 정하얀 정도다.

‘디아루기아는 안 돼.’

오히려 행운 수치가 높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까 봤던 육아 세트 같은 거라도 나왔다간 헛웃음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정하얀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정하얀이 굴렸다간 어쩌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토킹 물품이 뽑힐지도 모른다.

‘김현성도 나쁘지는 않지.’

엄청나게 높지는 않지만 김현성 역시 행운 스탯이 준수하다.

지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절박하게 무구를 원하고 있을 테니… 만약에 행운 스탯이 이런 상황에 도움을 준다면 보정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현성 씨가 굴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견이 없다면 말입니다.”

“네. 그렇게 하셔도 되겠네요.”

“현성 씨가 한 번 돌려보시죠.”

“아뇨. 저보다는 조금 더 행운 수치가 높으신 분들이….”

“현성 씨가 굴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녀석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돌림판 앞으로 향했다.

짧은 숨을 내쉰 이후에 곧바로 돌림판을 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당연지사.

“제발….”

기왕이면 신화급 무기가 나와 줘야 한다. 그래야 남은 두 번을 안정감 있게 진행할 수 있다.

김현성 역시 무척이나 절박한 표정.

녀석이야 점찍어둔 무기가 있기야 있겠지만 그동안 바쁘게 움직인 탓에 혼자 움직일 기회가 없었다.

율리에나를 나에게 빼앗긴 이후에는 줄곧 영웅 등급의 장비만을 찼던 서러운 나날.

그 서러운 나날들이 얼굴에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전설 등급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겠지만 녀석이 뽑아야 되는 건 전설 등급이 아니다.

‘신화다! 현성아!’

무조건 신화를 뽑아야 된다.

만약에 전설 등급을 뽑는다고 하더라도 승급을 앞두고 있는 상위 장비를 뽑아야만 한다.

이를 테면 아까 봤던 서리대검 같은 무구.

내 눈으로도 장비의 확인이 잘 안 되는 무구가 나오는 게 옳다.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제발.’

[희귀 등급의 무구, 대마법사 아이작의 마법검이 선택되었습니다.]

“뭐?”

-균열을 통해 들어온 물품 중 하나입니다. 격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그걸 묻는 게 아니야, 이 새끼야.’

너무나 허탈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마법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 시험을 제법 쉽게 통과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까지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해골기사는 확실히 전설 등급의 몬스터였고 원정대는 고생했다면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며 승리를 쟁취했다.

그 보상이 저 마법검이라는 사실이 실소가 나올 정도.

김현성은 멍하니 자신이 뽑은 결과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희귀 등급의 물건은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전설 등급의 확률보다 더 낮은 셈.

똥 손도 이런 똥 손이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다.

본인도 뭔가 울컥 하는 것이 있었는지 주먹을 꽉 쥐기는 했지만 그래도 검을 집어던지거나 욕설을 내뱉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희귀 등급의 검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할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뽑았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두 번째에서는 잘 뽑힐 겁니다.”

“네….”

“너무 풀 죽지 않으셔도 됩니다.”

“맞아요. 현성 씨. 행운 스탯이 높다고 해서 이런 종류의 뽑기를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고… 방금 전 저도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를 뽑을 것을 보면 어쩌면 이런 종류의 뽑기에 행운 스탯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

애초에 행운 스탯이 높다고 해서 천운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물론 스탯이 100 이상 넘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지만 린델 내에 빈민촌만 둘러봐도 이해가 안 되는 행운 스탯을 가진 이들이 몇몇 보인다.

행운 스탯이 제로인 카스가노 유노의 경우만 생각해 봐도 이 스탯이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미세하게나마 확률이 올라간다면 거기에 걸어보는 게 더 좋다는 거다.

김현성의 경우에는 이번에는 운이 없었을 뿐이다. 사실 지금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무작위가 맞는 건가.’

이 던전에서 진행되는 모든 뽑기가 정말로 무작위인지에 대해서다.

아니, 무작위인지 아닌지 이전에 관리인 막스의 태도 역시 문제다.

녀석은 박물관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진다.

녀석을 만든 균열 수호자가 어떤 의도로 이곳을 만들었는지도 알겠고 녀석이 균열 수호자들을 존경한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을 열심히 설명하는 것만 봐도 녀석이 어느 정도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

녀석은 이 박물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관리하고 싶어 한다. 균열수호자들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지성체라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 중 가치가 높은 물건을 빼내기 싫을 것이다.

관리인 막스는 완벽한 지성체는 아니지만 지성체에 가깝다.

진귀한 손님들이 도착했다며 제법 수다스러워진 것도 신호의 한 종류였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남들의 눈에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다른 눈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묘하게 감정이 전해진다.

‘기계인 척하지만….’

녀석도 지성체의 한 종류다.

혹시나 녀석이 던전의 숨겨진 네임드 몬스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그건 아니야.’

이 균열 박물관은 녀석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

그 시스템은 균열 수호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이 대륙을 관리하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만약 깽판을 치는 게 가능했다면 다짜고짜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탈취한 이후, 녀석이 진행하는 박물관 탐험을 무시하고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왔을 것이다.

튜토리얼 던전과 마찬가지.

퀘스트를 완료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 박물관 역시 비슷한 경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에 대한 관리인의 접근 권한이 어디까지인가.’

관리인 막스가 확률을 조작할 수 있는가, 없는가.

고민해 봤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전시된 물품들을 관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일 것이다.

드래곤의 육아세트를 보여준 것을 보면… 물건을 꺼내고 빼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겨우 그뿐일 수도 있다.

생각이 많아지니 점점 머리가 아파지는 듯한 느낌.

곰곰이 여러 가지를 떠올리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막스는 이것 저것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대부분이 방금 뽑은 아이템에 관한 것. 희귀 등급이라고 한들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그런지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었다.

-정든 물건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건 조금 아쉽군요. 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저희 박물관에 오랫동안 전시되고 있던 물건 중 하나였는데…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터라.

“그렇군요.”

관리인이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막스.”

-말씀하시지요.

“박물관에 대한 당신의 권한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입니까.”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단순히 시스템을 유지하는 관리인이지 뭔가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를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마 진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관리인이 아니라 이 던전의 보스라면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군요.”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또 이렇게 됐군요. 다음 차례입니다. 두 번째를 완료하시면 박물관을 조금 더 여유롭게 둘러보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게 되니 조금만 더 힘내서 진행해 주세요.

“그럼 다음은….”

“제가 돌려보겠습니다.”

“아, 네. 기영 씨도 행운 수치가 높았죠.”

이쯤에서 한 번 내가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만 끝나면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만큼 확실하게 가고 싶은 심정.

녀석이 말하는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동안 이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모아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부족해.’

던전의 기본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만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영웅 등급.’

박연주가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를 꺼내 뒀으니 이번에는 영웅 등급!

똥 손 김현성이 깔끔하게 지뢰를 밟아줬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부담도 없다.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부담을 내려놓고 마력을 집어넣으니 돌림판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

영웅 등급의 보라색 칸, 희귀 등급의 보라색 칸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이곳으로 온 뒤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게 탄탄대로였고 제법 위험한 일도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기영이라는 인간은 강운을 타고났다.

그렇지만 그 기대가 한순간에 꺾여버리는 것은 순식간.

천천히 느려지고 있는 돌림판의 위치가 굉장히 불안했기 때문이다.

“자… 잠깐, 타임.”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잠, 잠깐만!”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제발 멈춰. 제기랄….”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아.”

[돌림판이 멈췄습니다.]

[신화 등급의 몬스터, 고대신의 파편이 선택되었습니다.]

“…….”

“…….”

“…….”

장내에 드리운 무거운 침묵.

뭔가 상황을 뒤집어야만 하는 상황.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주… 주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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