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회귀자 사용설명서 232화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끼에에엑. 낑낑….”
“디아루리아….”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냐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 역시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모녀의 뜨거운 이별 장면을 볼 줄 알았지만 막상 내 눈에 보인 것은 딸에게 배신당한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끼이이이잉….”
충격 받은 어머니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똘똘이는 여전히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꼬리를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살 머리를 쓰다듬자 낑낑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헥헥 대는 것으로 뒤바뀐다.
심지어는 냅다 몸을 뒤집어 배를 까는 행동은 가관.
자연스럽게 손이 볼록 튀어나온 배 쪽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강아지 같다는 생각을 간혹 했었지만 오늘따라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은 느낌.
조금 있으면 헤어지는 만큼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 모든 행동을 바라보는 디아루기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은 물론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평소에는 조금 다른 건가.’
정말로 강아지만 한 크기였을 때는 쟤 어미도 쫄쫄거리며 잘 따라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이쪽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청소년 정도의 크기로 성장한 현재, 디아루기아와 둘이 있을 때는 어땠을지 알 재간이 없다.
극도로 피로를 느끼던 얼굴로 유추해 봤을 때 엄마를 고생시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이런 모습도 보여주지 않은 건가.’
디아루기아의 반응으로 생각해 보건데 절대로 배를 까서 보여주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유 기벽에 해시태그로 적힌 ‘엄마도 짜증나’가 무슨 의미인지 대충은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한 번 진행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너무나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에 똘똘이가 제 어미를 만만히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건 안 좋은데….’
이미 기벽이 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녀석만은 정상으로 자라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만큼 일단은 머릿속 한 구석으로 미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원정대원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중.
슬슬 가야될 시간이니 만큼 다시금 똘똘이에게 입을 열자 즉각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똘똘아, 아빠는 이만 가야 될 것 같은데….”
“끼이이잉….”
역시나 가지 말라는 듯이 낑낑대는 모습은 가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금방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팔을 벌리는 것을 보니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살짝 녀석을 안으니 여전히 은근슬쩍 헥헥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모습을 뭔가 허망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디아루기아.
정신을 반쯤 놓은 것 같은 모습에 이쪽에서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똘똘아, 엄마랑도 작별인사 해야지?”
내 목소리에 디아루기아가 고맙다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는 모습은 조금 귀엽다.
똘똘이는 뭔가 내키지 않는 것 같다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기회를 놓칠까 황급하게 다가온 디아루기아가 똘똘이를 껴안으며 겨우 눈물 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금방 올 테니까. 말 잘 듣고 있으면 하루 종일 같이 노는 거다?”
“끼엑!”
“디아루기아, 이만 출발할 시간입니다.”
“알겠습니다. 디아루리아, 엄마는….”
“키엑!”
원정을 떠나지 않는 황정연과 김예리에게 디아루리아를 떠넘기고 나서야 상황은 마무리.
물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성문으로 향하자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뒤돌아보시면 안 됩니다.”
“그, 그렇지만….”
“단호해지셔야 합니다.”
“…….”
“돌아보고 계속 대응해 주면 더 떨어지기 힘들어져요. 용의 생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디아루리아는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길드원들이 잘 챙겨줄 겁니다.”
“…….”
뭔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육아는 해본 적도 없고 그 흔한 강아지 한 번 키우지 않았다.
괜히 뭔가 아는 척 나대는 것보다는 일단은 입을 닫고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끼에에에에엑!”
저 멀리서 울려오는 구슬픈 울음소리에 계속해서 움찔 움찔 반응하는 것을 보면 내가 없었다면 다시 디아루리아에게 달려갔으리라.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괜스레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기영 씨. 아무리 그래도 예정보다 일찍 출발한다는 건 변함없으니까요. 뭔가 이해가 되는 상황이기도 해서….”
그렇게 말한 박연주가 이번에는 디아루기아를 보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디아루기아. 항상 둥지에 있는 모습을 봤었는데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군요. 박연주라고 합니다.”
“디아루기아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디아루기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게 풀이 죽은 것 같은 느낌.
아마 똘똘이를 생각하며 속으로 슬픔을 달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일단은 마차에 오르시죠. 이틀 정도는 가야될 겁니다.”
“네.”
“안에 들어가서 좀 쉬세요, 디아루기아.”
“네.”
총 다섯 개로 이루어진 마차에 가득 실린 짐이 보였다.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원정 중에 먹을 보급품이나 균열 박물관 쪽에 격리되어 있는 이들을 위한 응급처치 물품들, 갈아입을 옷 같은 사소한 것들이 쌓이다 보니 제법 요란한 원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얘네 마차는 진짜 좋은데….’
파란이 머물고 있는 마차에 디아루기아를 먼저 들여보낸 이후 마차를 둘러보자 확실히 크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구입해야겠다.’
애초에 소규모로 원정을 다니다 보니 커다란 마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
기존에 파란이 쓰던 마차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굳이 마차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안쪽으로 들어오니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캠핑카를 방불케 하는 구성이다. 마차 안에 방이 있는 걸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정길드원 복지가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초 길드인 만큼 이런 부분에 대한 복지는 확실한 모양.
미리 들어가 있던 박덕구와 안기모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거, 기모 형씨는 붉은용병이지 않았수? 이런 마차는….”
“물론 커다란 마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시트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애초에 용병여왕님이 너무 편하게 다니는 원정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터라…. 오히려 이럴 돈으로 장비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말씀하셨죠. 마법사와 사제들이 꼭 필요한 것도 문제고요.”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래도 이 정도의 마차를 끄는 건 말들에게도 부담이 돼서 말입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마법사들이 말에게 마력을 지속적으로 보내야 합니다. 물론 그 과부화를 관리하기 위해서 사제들도 신성력을 넣어줘야 하고요.”
“아아아….”
“아마 검은백조는 마부들을 따로 고용하고 있을 겁니다. 보통 재능이 없거나 진전이 없어 버려진 마법사들이 대부분이죠.”
“거, 그렇구만….”
“씁쓸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덕구 씨. 이건 그들한테도 좋은 이야기니까요. 임금도 생각하시는 것보다 세다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일자리를 창출한 셈입니다. 재능이 없어 붕 떠버린 마법사들에게는 안성맞춤일 겁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만! 형님, 우리도 이런 거 하나 하면 안 되는 거요?”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야지!”
박덕구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여성 멤버들, 정하얀, 선희영, 조혜진이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런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검은백조의 길드원들이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다.
때마침 방 안에서 짐 정리를 대충 끝낸 김현성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단원들도 들어왔고 앞으로도 한 파티 정도는 더 꾸릴 예정에 있으니까요.”
길드 마스터의 허가까지 떨어지자 다시 한번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은 꽤 재미있다.
물론 디아루기아는 그다지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이런 시설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김현성은 살짝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아까와 주제는 달라졌지만 이번 던전행을 위한 이야기인 만큼 모두의 시선이 금방 집중됐다.
“그리고 이번 원정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네.”
“앞으로는 따로 브리핑이나 훈련을 위한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원정간부 회의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잠깐 잠깐의 변동사항을 전하는 시간이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일단 모두가 숙지해야 될 부분은 모두 서류화해 놨으니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길드 마스터.”
“아마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바빠질 겁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네.”
말은 저렇게 하기는 했지만 원정을 앞둔 시점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고 심지어 정하얀도 마냥 여유롭지는 않다.
‘던전 공략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니까.’
모두가 초행이 아닌 만큼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출사표 아닌 출사표를 끝으로 마차는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김현성이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마차를 대고 쉬는 시간에는 변동사항이나 보고서를 토대로 한 짧은 브리핑 시간을 가졌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물품들을 정리하거나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루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런 반복적인 브리핑과 학습은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가끔 창밖을 바라보면 마차가 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곤 있지만 박연주가 제법 조급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이틀이 지났고 더 이상은 마차로 들어가기 힘든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짐을 내려 행군을 시작했다.
함께 온 길드 직원들이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위험지역까지 왔을 때는 모두가 등 뒤에 커다란 가방 하나를 매고 있었으니 이번 원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실상은 조금 다르지만….’
사실 던전 공략은 그리 길지 않을 거다.
억지로 가방을 채워놓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쪽도 던전에 고립될 가능성을 생각한 조치였다. 물론 원정대원들에게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눈치 빠른 이들은 아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어.’
이번 원정을 기획한 간부들이 원정이 실패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분명히 그럴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약 신화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이 전력으로는 어떻게든 아득바득 버티는 것이 최선이다.
‘아니면 대가를 치르든지.’
아무튼 간에 원정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렘왕 박덕구는 검은백조의 여성길드원에게 둘러싸여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박덕구만큼은 아니었지만 안기모도 몇몇과는 굉장히 가까워졌다.
정하얀 역시 쉬는 시간에는 나에게 꼭 달라붙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니 말 다한 셈.
선희영은 검은백조의 사제들과 뭔가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았고 남몰래 김현성을 짝사랑 하는 조혜진은 김현성과 박연주가 만나는 모습을 그다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풍경이 계속 바뀌고, 원정대는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을 것 같은 장소로 진입한다.
‘예쁜데….’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암벽의 갈라진 공간에서 보라색의 빛이 희미하게 뿜어져 나온다.
아마 균열 박물관은 저 암벽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작은 꼬마가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무등급 던전 균열 박물관에 입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