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회귀자 사용설명서 223화
수료식(1)
별것 아닌 해프닝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내게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아직까지 성향이 형성되지 않은 똘똘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괴랄한 기벽이 자리 잡힌 상황.
만약 이기적인 혹은 계산적인, 같은 성향이 뽑힌다고 가정한다면 녀석을 키우는 데 커다란 문제가 생길 거다.
‘끄응….’
정하얀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 데 온순한 성향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더욱더 그렇다.
아무튼 간에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똘똘이의 교육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
디아루기아에게만 소중한 똘똘이의 교육을 맡겨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는 거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크릉크릉거리며 자고 있는 녀석을 보니 이것도 괜한 걱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브레스로 성 하나를 날릴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가질 수도 있는 만큼 초기에 신경 써야만 한다.
슬그머니 똘똘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자 여전히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두 여자가 시야에 비쳤다.
“정말로 귀엽네.”
“네. 조금 피곤했던 모양이더군요. 최근에는 많이 흥분해서 잠도 잘 자지 않았으니까요.”
차희라와 디아루기아였다.
만난 지 삼 일만에 제법 친해진 듯한 모습은 꽤나 의외다.
차희라는 정하얀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사교성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디아루기아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애초에 사교성이라는 게 제로라고 해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차희라와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는 대충 감이 왔다.
아마 차희라가 애엄마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고 있었던 것이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연유이리라.
살살 똘똘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차희라의 모습은 마치 애완동물이라도 만지는 것 같은 모양새. 확실히 녀석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열심히 디아루기아와 수다를 떨고 있던 그녀에게는 한 마디 건넬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 수료식에는 안 나가?”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뭐,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있어봤자. 뭐 하겠어. 어차피 나는 축사나 한 번 외워주면 끝이고… 나머지는 전부 간부들이 알아서 하기로 했어. 자기는?”
“나는 조금 더 있다가 나가려고. 오늘 여기 떠야 하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좀 있어서… 방금 다 끝났어.”
“시간 참 빠르네… 벌써 수료구나…. 아, 후위는 정했어?”
“…….”
“결국 못 데려가는구나.”
“아니. 그냥 린델 안에서 찾으려고. 쓸 만한 마법사 찾기가 힘들어서 궁수 같은 애들도 한 번 보려고 했는데 마음에 차는 애가 없더라. 다들 수준 이하야.”
“그 수준 이하의 애들을 영입하고 있는 다른 클랜과 길드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해본 소리야 당황할 필요도 없어.”
“그거 참 짓궂네.”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하고 싶은데 괜찮지?”
“조언이라면 환영이야.”
“파란은 애초에 커트라인이 너무 높아.”
“역시 그래 보여?”
“아니, 파란 이전에 자기가 조금 다른 사람들한테 엄격한 잣대를 들이 미는 것 같다니까.”
“끄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사실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차희라의 말을 들어 보니 왠지 그러고 있다는 생각 정도는 든다.
“애초에 파란 구성원들이 조금 특이한 경우야, 자기. 김현성이랑 정하얀 두 천재는 그냥 논외로 치더라도 아. 김예리라고 했나? 꼬맹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네. 선희영… 그 사제는 눈에 띄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천부적일 정도로 신성력에 친근한 것 같은 느낌이지….”
“응.”
“조혜진 그 여자도 천재라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하게 재능 있는 부류야. 나는 노력하는 것도 재능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 장담컨대 아마 김예리 그 꼬맹이가 아무리 강해져도 조혜진 같은 사람을 잡기는 힘들걸.”
“으음….”
“사실 이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다섯 명이나 모여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야. 보통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어딘가에서 길드나 클랜을 운영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아. 뭐, 아무튼 간에 이 괴물들은 둘째로 치더라도 자기네 길드에도 평범한 사람들은 있잖아?”
“그렇지.”
“자기도 그렇고….”
“응.”
“마도학자인 황정연도 그렇고… 그리고 자기네 길드의 목소리 큰 뚱땡이. 아, 박덕구라고 했었지. 그 사람도 마찬가지지? 근데 내가 봤을 때는 이 사람들도 지금은 길드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구성원들이거든.”
확실히 맞는 말이다.
“자기랑 마도학자야 본래 전투직군과 비전투직군에 한 발씩 걸쳐 있다고는 해도 박덕구는 그런 것도 아니잖아? 걔한테 조금 미안하기는 한데 사실 나는 금방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했었어.”
사실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버틴 걸로도 모자라 꾸역꾸역 자기 위치에 자리 잡은 것 좀 봐. 길드원들이 그만큼 많이 도와주고 신경 써줘서 그런 거겠지만 그 돼지도 언젠가는 상위의 플레이어로 이름 좀 날리게 될걸.”
“그러네.”
예전이었다면 차희라의 말에 고개를 저었겠지만 확실히 지금은 다르다.
물론 개인의 강함 같은 것으로 유명해진다기보다 이름 난 탱커 정도일 테지만 확실히 지금의 박덕구는 김현성 파티를 따라갈 수 있는 포텐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강해질 수 있어. 적절한 지원이랑 케어만 있으면 말이야. 우리 붉은용병의 입단 커트라인이 생각보다 낮은 것도 그런 이유고… 실제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덜컥 눈에 띄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니까?”
“흐음….”
“재능은 물론 중요하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기는 있으니까. 근데 나는 사람을 볼 때 재능 말고 보는 게 한 가지 더 있거든.”
“뭐?”
“의지가 있는가.”
“좋네.”
“사실 내가 처음에 이곳에서 자기 부탁을 들어준 것도 그런 이유야. 웃기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넌 눈이 조금 달랐거든…. 보통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들은 무슨 일이든 한 가지 정도는 해내는 법이야.”
확실히 일리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눈이 거의 모든 걸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들, 꼭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박덕구가 이 정도로 성장할지는 전혀 몰랐었다.
이지혜가 검은백조에서 완벽하게 자리 잡을 거라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고….’
“자기가 알아서 하기는 하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여기까지야. 나랑 같이 나가서 마지막으로 한 번 둘러보자. 어차피 수료식 끝나면 너희 길드 애들 데려가야 될 거 아니야.”
“아… 누나 축사해야 하지?”
“응. 귀찮기는 하지만 할 건 해야지. 디아루기아는?”
아마 같이 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움직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차희라. 디아루리아가 아직 자고 있는 도중이라….”
“아. 그러면 끝나고 같이 올게.”
“네.”
확실히 붉은용병은 붉은용병이다.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파란은 수료식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도 별로 없었는데 말이지.’
제법 모양새가 갖추어진 것 같은 느낌.
그러고 보니 차희라가 입은 복장도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 그녀는 조금 노출이 있는 복장을 선호한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파티에서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랬다.
병아리들 앞에서 축사를 읽어야 되는 만큼 나름 격식은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꽤 멋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붉은용병이 아니라 붉은기사라 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나 역시 나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비교 되는 느낌이다.
‘멋있긴 멋있네.’
단원들의 호위 아닌 호위를 받으며 훈련소의 연무장으로 향하자 도열해 있는 교육생들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
단상에는 린델의 주요 길드 마스터들이 간이 천막에 앉아 교육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성아!’
당연하지만 사랑스러운 회귀자도 눈에 띈다.
옆에서 검은백조의 길드 마스터 박연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녀석도 나를 발견했는지 미소를 보내오는 중.
경박스럽게 손을 흔들기는 싫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차희라는 교육생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단상 위로 올라갔다.
부동자세로 차희라의 붉은색 머리카락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교육생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고 보니 교육생들은 보는 게 처음인가.’
린델의 실질적인 1인자이자 지금의 붉은용병을 있게 한 사람이다.
갑옷을 입은 채로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모습은 어딘가에 나오는 전장의 여신처럼 보인다.
보통 저런 종류의 사람들은 굳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뭔가 느낌이 오는 법.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티비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녀와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교육생들을 바라봤지만 아쉽게도 그다지 눈에 띄는 이들은 없다.
이창렬과 유아영은 수료식이 끝나고 이쪽과 함께 린델로 향하는 만큼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김기철은 잘 해결했으려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는 걸 보면 제대로 몇 방 먹여준 듯한 느낌.
어쩌면 수료식 이후에도 조금 더 먹여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창렬은 항상 쓰고 다니는 복면을 그대로 쓴 채로 서 있었는데 이쪽에게는 나름 호의적은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차희라가 축사를 위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쓸데없는 시간을 만들어 여러분을 이렇게 고생하게 해 미안하다. 어서 린델로 들어가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고 싶겠지만 보통 이런 자리에는 쓸데없는 행사와 관례라는 게 있게 마련이거든. 사실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크게는 없다. 길드의 간부들이 축사를 적어오기는 했지만….”
‘읽지 않겠지.’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괜히 이런 거 읽는다고 폼 재는 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겠지.”
단상 위에 함께 서 있는 붉은 용병의 간부들의 표정을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모양이다.
“사실…. 사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검을 든다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너희가 생산직이든 아니면 전투를 하기 싫어하든 간에 언젠가는 검을 들 날이 올 거다. 도시가 몬스터들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고 예상치도 못하게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는 거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게 비전투직군들이나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도 기초 체력 훈련 같은 쓸데없는 훈련을 시킨 이유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너희가 이해하기에는 이런 표현이 알아듣기 쉽겠지. 너희들은 전사로 이곳에 보내진 거고 전사로 키워진 거야. 지구의 관점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웃기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너희는 전사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이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확실히 오그라들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와닿는다.
“물론 싸우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뭐,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겠지. 하고 싶은 말은 이것 하나다. 쓸데없는 곳에서 뒈져서 나자빠지지 마라.”
“…….”
“…….”
조금 장내가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 큰 전장에서 보자, 병아리들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붉은용병의 깃발이 들어 올려진다.
단원들이 모두 차희라를 향해 경례 아닌 경례를 보내는 것으로 수료식은 마무리.
김현성과 함께 파란으로 가지 않고 붉은용병으로 갔어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도 한마디 할래?”
슬쩍 고개를 젓자 그제야 단상 위에서 내려오는 모습.
확실히 여유가 있다.
‘얘한테는 진짜 반하겠는데….’
‘여자’라기보다는 차희라라는 사람 자체가 멋있다.
꾸밈이 없고 할 말은 하는 성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멍 때리고 봤네.’
덕분에 수료를 기다리는 교육생을 한 번 둘러볼 틈도 없었다.
쓰윽 둘러보려고 했지만 다른 길드들이 차근차근 계약한 인원들을 데리고 나가는 중이다.
교육생들을 린델로 옮길 마차에 몇몇 교육생이 올라서기 시작했고 2명의 예비단원을 맞이한 파란도 그건 예외는 아니었다.
유아영과 이창렬은 파란의 깃발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도중.
괜스레 한 사람이 시야에 밟힌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다른 인원들과 섞여서 마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원.
어디에서도 오퍼를 받지 못한 떨거지들과 섞여 있는 사람들 중에 괜히 한 여자가 눈길을 끌어 잡아 당겼다.
‘한소라.’
마치 이지혜를 보는 것 같은 느낌.
‘데려올까’라는 생각도 해보기는 했지만 파란은 또 한 명의 연금술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열정이 있는 만큼 써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이쪽과는 한 번 마찰이 있었던 만큼….
‘보통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들은 무슨 일이든 한 가지 정도는 해내는 법이야.’
괜스레 차희라가 이곳에 오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습관적으로 그녀의 상태창을 바라봤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가장 결정적인 게 달라져 있다.
당황스러워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
‘얘 봐라….’
[직업-흑마법사]
‘이것 봐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야, 너 이리 와봐.”
한소라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아니, 이리로 와보세요. 한소라 씨.”
존대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