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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218화 (217/1,590)

# 218

회귀자 사용설명서 218화

귀여운 복수 (3)

유아영을 마지막으로 붉은용병과 파란은 실질적인 우선교섭권을 모두 사용했다.

물론 파란에 한 장이 남아 있기야 했지만 굳이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문제.

더 이상 타 길드와 클랜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충분히 민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이적시장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몸이 달아올라 있었던 클랜들과 길드가 한순간에 훈련소로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

내가 보기에는 이번 신입들의 잠재능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붉은용병에서 직접 훈련을 진두지휘했다는 인식 때문인지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실제로 다들 상태는 좋으니까.’

파란이나 붉은용병, 검은백조, 혹은 마도 길드 같은 중견 길드가 보기에는 보잘 것 없을지는 몰라도 중소 클랜에 입장에서는 쓸 만한 훈련병들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셈이니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는 거다.

애초에 싹이 없는 것들에 대한 대우는 여전했지만 최소한 검을 휘두를 줄 아는 녀석들의 대한 대우가 꽤 좋아졌다.

덕분에 붉은용병이 관리한 이 훈련소는 유래 없는 입단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붉은용병에서는 타 클랜과 길드들에게 훈련소에 대한 정보와 교육생에 대한 정보를 개방했고 마찬가지로 훈련소에 있는 교육생들에게도 각 클랜과 길드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했다.

카탈로그나 팸플릿 같은 길드 안내서들이 교육생 사이에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 토론을 나누거나 두 개의 카탈로그를 두고 고민하는 교육생을 보는 일이 흔해졌다.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던 정보들이 우후죽순 풀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교육 일정이 남아 있는 가운데에서 훈련소가 제법 떠들썩해지며 훈련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기는 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견학을 오는 스카우터들의 눈에 띄기 위해 아직까지 오퍼를 받지 못한 신입들은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해야 했고 기존에 입단이 내정되어 있던 신입들 역시 자신들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사실 수료식만을 앞두고 있는 현 상황은 훈련 시간을 제외하면 조금 풀어져 있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묘한 경쟁심리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물론 경쟁하는 것은 교육생뿐만이 아니었다.

각 클랜과 길드에서도 조금 과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쟁이 붙었다.

제대로 된 영입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입단 예정자에게 선물을 뿌린다든지, 다른 클랜을 비방한다든지 하는 일도 생겨났고 어떻게든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덩치를 불리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걸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말이다.

이를 테면 길드 마스터나 스카우터들이 조금 더 고급스럽게 입고 등장한다든가.

힘이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잘 훈련된 정예와 함께 등장한다든가.

길드 식당을 자랑한다든가.

클랜의 복지나 길드의 예산, 심지어는 숙소의 퀄리티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입을 터는 일이 잦아졌다.

의외로 효과가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파란은 그들의 경쟁에 굳이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길드 카탈로그도 뿌리지 않았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어째서인지는 뻔할 뻔자.

‘굳이 홍보할 필요가 없으니까.’

파란의 영입은 사실상 이창렬과 유아영으로 끝을 맺었다.

더 이상 다른 신입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귀찮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길드를 홍보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아도 어차피 소문은 돌게 되어 있다.

훈련소 안에서 계속해서 정보가 풀리고 있었으니까.

시장이 열린 이후 이곳은 더 이상 밀폐된 장소가 아니게 됐다.

입단 제의와 길드에 대한 정보들이 담긴 문서를 읽는 신입들은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씩 파란의 김현성과 이기영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됐고 당연하지만 그런 종류의 소식은 급속도로 훈련소 내에 자리를 잡았다.

당장 나만 해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벽하게 바뀌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파란의 부길드 마스터이자 제국 제8좌로 내정된 것은 물론 신성 제국의 명예주교. 보너스로는 용병여왕의 정부.

꽤나 자랑스러운 타이틀 중에 교육생들이 몇 가지나 알고 있고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최근의 내 모습을 본다면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게 그리폰인가 봐….”

“이기영 교관님 전용이야?”

“린델에도 네 마리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한 마리는 붉은용병의 길드 마스터가 가지고 있고 한 마리는 검은백조 길드 마스터가 나머지 두 마리는 파란 길드 마스터와 부 길드 마스터가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누구한테 들었어?”

“클랜 누나한테….”

“아아아…. 결국 들어가기로 한 거구나?”

“응. 덕분에 이것저것 들었는데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더라.”

“진짜 장난 아니다. 자동차는 값으로 따질 수나 있지. 저건 값을 책정하기도 힘들다던데….”

“신성 제국의 명예주교로 발탁된 사람인데, 뭐. 저 정도는 보통이겠지.”

“뭐?”

“그것뿐인 줄 알아? 아, 이건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말이야….”

뭐, 대충은 이런 식이라는 거다.

물론 보여준 것은 화이트 폴뿐만이 아니다.

이 세계에도 명품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는 대충 연금 실험복을 입고 움직였다면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대놓고 비싸 보이는 옷들을 골라 입을 수 있었던 것.

물론 아직까지 교육생들이 이런 걸 구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 만큼 이쪽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즐길 수 있었다.

‘수업도 거의 마무리고….’

사실 오늘은 교육이 있는 날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적으로 훈련소를 찾아온 만큼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

훈련소의 정문 앞에 적당히 자리를 잡자 숙소에 들어가거나 각자 할 일을 위해 훈련소를 빠져나가는 교육생들이 시야에 비쳤다.

귀에 조금만 마력을 집중해도 여기저기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오늘도인가 봐.”

“부럽다….”

“나는 별로 안 부러워.”

“거짓말하고 있네. 어차피 여기는 일부다처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데….”

“사랑은 없잖아.”

“돈 많으면 없던 사랑도 생겨, 이년아. 어차피 이곳은 위험한 곳인데… 이기영 교관의 품으로 들어가는 게, 사랑 찾는 거지 놈이랑 같이 사는 것보다 천 배는 더 행복할 거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봐?”

“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능력 있는 사랑꾼보다는 만수르 세 번째 부인 자리가 더 땡긴다는 거야.”

“왠지 공감이 되네….”

“어디 졸부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만수르 세 번째 부인이라고….”

인사를 해오는 학생들에게는 손을 한 번 들어 올리는 것으로 끝.

친근하게 달라붙어 오는 교육생들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괜히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여교육생들은 내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 만큼 말을 걸지 않는 것도 당연하리라.

잠깐 기다리자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이는 유아영이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세의 기적이야, 뭐야.’

정문을 빠져나가던 교육생들이 길을 비켜주는 것은 순식간이다.

처음과는 다르게 유아영의 표정도 제법 당당하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관심과 질투를 부담스러워했던 것도 이제는 예전 이야기.

꽤나 시선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대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마 그녀보다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겉모습부터가 그렇다.

유아영의 몸에 걸쳐져 있는 것들도 대부분이 명품. 누가 봐도 같은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채 살짝 입을 여니 곧바로 대답해 오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진짜 공주님이네….’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그녀를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그럼 갈까요?”

“네, 이기영 교관님.”

활짝 웃는 모습도 연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당연하지만 그녀가 걸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선물해 준 것들이 맞다.

심지어는 손에 있는 반지들도 마찬가지. 처음 저 선물을 줬을 때를 떠올려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론 재미있는 것은 유아영의 반응이 아니라 그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유아영은 공식적으로는 파란의 입단 제의를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처음 저런 종류의 선물을 보냈을 때는 파란에서 그녀에게 바치는 소정의 뇌물 같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추측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져다 바치는 게 단순한 선물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 당연하지.’

처음 한 번이야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그게 두세 번, 심지어 대여섯 번을 넘어가면 바보라도 생각이 바뀌는 법이다.

자연스럽게 훈련소 내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이기영 교관이 유아영 교육생에게 관심이 있다.’

라는 소문을 시작으로.

‘파란의 입단시킨 것도 자기 옆에 두고 싶기 때문이라더라.’

같은 느낌의 소식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냥 긍정적인 시선이 오는 것들은 아니었다.

나 같은 경우야 어차피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 그다지 상관없었지만 갑작스럽게 공주님이 된 그녀에게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들이 확실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불편한 시선들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으로 바뀌기까지 불과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단순한 질투심으로 그녀를 매도하기에는 그녀의 레벨이 너무 높아져버렸으니까.

질투 같은 저열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할 수 있는 법이다.

교육생들의 입장에서 유아영의 존재는 너무 높이 날아가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올려다보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대기업 총수를 질투하는 노예는 없다.

보통 그들이 질투하는 건 족쇄가 큰 노예지 자신들의 위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슬쩍 손을 내미니 이쪽의 손을 잡고 그리폰에 올라타는 모습도 이제는 익숙하다.

조금 달라진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자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안… 어울리나요?”

“아니. 너무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 말을 듣는 건 그것대로 부끄럽네요.”

말은 그렇게 내뱉으면서도 슬그머니 아래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기분이 좀 어떻습니까?”

“솔직히 좋아요. 사실 할 때까지만 해도 조금 회의감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기분이 더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그거 다행이군요. 오늘은 뭐 특이사항은 없었습니까?”

“네. 몇몇 사람이 이기영 교관님이랑 사귀는 게 맞냐고 물어본 적은 있었어요. 정하얀 교관님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쓸데없는 걸 물어보기도 했고요. 아직 사귀는 건 아니라고 말하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렇군요.”

“아, 그리고 그 사람이….”

“네.”

“이제는 이기영 교관님을 만날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불안해진 모양이군요. 하핫.”

“네. 저한테 말은 안 했지만 분명히 불안해하고 있을 거예요. 안 하던 스킨십도 하려고 하고…. 물론 짜증나서 아프다고 하고 나왔지만… 풉. 처음에 조금 친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이 정도까지 오게 되니 자기가 버림 받을까 봐 무서운가 봐요. 덕분에 요즘 들어서 괜히 다가오려는 게 짜증난다니까요.”

대충 머릿속으로 상황이 어떨지가 그려졌다.

틀림없이 처음 선물 공세를 하기 전까지는 이기영 교관과 친해져도 나쁠 건 없다고 말했던 놈이 갑작스레 만나지 말라고 했다는 건 불안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는 증거다.

‘불안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가 자기 동아줄을 계속해서 잡아채려고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똑똑하고 머리 좋은 놈이 김현성에게 달라붙으면 불안감에 잠도 자지 못할 거라 확신할 수 있다.

“또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요즘 달라진 것 같다고… 내가 아는 아영이가 맞냐고 오히려 쏘아 붙이더라고요. 솔직히 그때는 너무 황당해서 머리통을 쥐어뜯고 싶었어요.”

“한 대 쳐버리지 그러셨습니까.”

“정말로 그래도 되나요? 말씀해 주신 계획에는….”

조금 말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

‘얘 재미 들렸네.’

한참 재미있을 때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싶으신 건 전부 해보셔도 됩니다. 애초에 계획이라고 해봤자 그냥 그림을 그린 정도고… 가장 중요한 건 아영 씨의 기분이 풀리는 거니까요.”

“아… 네!”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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