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회귀자 사용설명서 184화
제국 8좌(1)
많은 것이 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변하고 있는 도중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최우선 사항은 일단 디아루기아의 소유권을 이쪽으로 확실히 돌리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본래 캐슬락 쪽에서 나에게 보상을 내려주기로 하기도 했었고 이번 원정에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파란 길드라는 생각이 도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워하는 길드나 클랜은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몬스터의 사체를 조금 더 떼어주는 것으로 입을 막았다.
함께 고향을 지켜낸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굳이 녀석들에게 소중한 디아루기아의 비늘과 가죽을 공급할 필요는 없는 것이 현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기는 했지만 디아루기아는 엄연히 이쪽이 얻은 성과였다.
공유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문제는 디아루기아가 캐슬락에 입힌 피해였다.
유족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 당연지사.
나 개인적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물론 캐슬락에서도 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마무리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일을 끝냈다는 거다.
혹시나 몬스터 웨이브의 주범이 디아루기아가 아니냐에 대한 의심은 있었지만 교황청에서 조사 나온 이단 심문관들이 그 의구심을 정면으로 배제한 것은 당연지사.
‘권력이 이래서 좋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명예주교라는 제대로 이용했다.
캐슬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유다 대주교를 시작으로 평소에 연락을 하고 지냈던 교황청의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
제시카 주교와 이단 심문관 헬레나, 교황청의 안두린 대주교는 물론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 바젤 추기경에게도 끊임없이 청원을 넣은 결과물이었다.
캐슬락 지하의 비밀 경매장은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바위가 똘똘이를 납치했다는 사실 역시 숨길 수밖에 없었고 똘똘이 역시 몬스터 웨이브의 영향을 받은 개체였다는 걸로 마무리.
디아루기아 말고도 다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이단 심문관과 신성기사단은 몬스터 웨이브의 원인이 캐슬락 깊은 숲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던전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당연히 이단으로 낙인찍히기 싫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교황청의 발표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나름대로 깔끔하다면 깔끔한 결말.
물론 이 모든 일에 대전제는 디아루기아와 나의 공식적인 관계가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용의 선택을 받은 자.’
공식적으로 디아루기아는 정체불명의 던전에 지배 받아 도시로 흘러들어 온 가련한 용이었고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기영이라는 인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위적이고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을 꾸역꾸역 밀어 붙인 것.
삼류 소설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설정이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용의 배우자를 선택했다는 시나리오보다는 떨 쓰레기 같고 설득력 있다.
애초에 신에게 선택 받은 용사도 있는 마당에 용의 선택을 받았다는 설정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이야기다.
전설급의 네임드 몬스터가 신성제국의 품 안에 굴러들어오게 생겼으니 황제파 역시 이쪽을 적극지지해준 것은 당연지사.
자주 국방에 신경 써주시는 제국 기사단은 용의 위험성에 대해서 신경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디아루기아라는 개체가 제국을 수호하는 용이 되는 것을 은근슬쩍 바라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용은 귀하니까.”
“무슨 말씀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네?”
“그… 감사합니다.”
“뭐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가지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이 잘 풀린 건 당신 덕분이기도 하니까요.”
“네?”
“용은 귀중합니다. 베니고어 신성제국의 역사보다 당신 개인의 역사가 더 오래됐으니 인간들 입장에서는 당신의 존재가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죠. 무려 4,000년 동안이나 살아온 존재니까요. 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서적들도 거의 유실상태. 제가 당신을 붙잡고 싶은 것처럼 신성제국도 온전한 용을 보유하고 싶었을 겁니다.”
“아….”
“물론 기본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이 도움이 되기야 했지만 이번 결과물은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서 만들어낸 훌륭한 결과물이니 너무 감사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똘똘아?”
“키엑! 헥헥!”
“아이고 우리 똘똘이 이리 와.”
“헥! 헥! 헥!”
“아빠랑 비행기 놀이 할까?”
“헥헥! 키엑!”
“오이구! 우리 똘똘이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키엑! 키엑! 키엑!”
물론 달라진 것은 이런 큰 배경만이 아니었다.
‘이 자식… 이거 너무 귀여운데.’
적당히 상대하려고 했던 똘똘이 녀석이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귀여웠던 것.
박수 소리에 맞춰 소파에서 혼자 방방 뛰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귀엽게 느껴질 것이다. 커다란 눈망울이 꿈뻑꿈뻑거리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엉덩이와 꼬리.
조금 짜증나게 느껴졌던 녀석의 울음소리도 이제는 귀엽게 들려온다.
계속해서 이쪽에 달라붙어 얼굴을 핥는 행동은 간혹 귀찮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똘똘이는 은근슬쩍 이쪽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물론 외형이 외형이다 보니 진짜 자식이라기보다는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어째서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 집착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정도.
“오이구! 이리 와, 똘똘아!”
“헥헥!”
“똘똘이 간식 먹을까?”
“키엑! 키엑! 키엑! 헥헥! 키엑!”
간식과 산책이라는 말에 미친 듯이 반응하며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은 나도 모르게 꽉 껴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간, 간식은 아까도 먹었지 않습니까!”
“원래 애들은 먹으면서 크는 겁니다. 그렇지, 똘똘아?”
“키엑!”
“간식은 하루에 두 번입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똘똘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간식정도야 어떻습니까. 오히려 영양을 축적할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닙니까?”
“영양 섭취는 이미 충분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탕은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음식이고… 어차피 몇 년이 지난 이후에는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지금은 적정량을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엄마가 너무 딱딱해서 별로지?”
“키엑!”
“디아루리아… 엄, 엄마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란다….”
“내일부터는 두 개씩만 먹이도록 하지요. 오늘은 하나만 더 먹자, 똘똘아?”
“키엑! 헥!”
품 안에서 크기가 조금 큰 동그란 사탕을 꺼내자 벌써부터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가관.
눈앞에서 사탕이 왔다갔다 거리자 끊임없이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꼬리는 사정없이 바닥을 치는 중. 입안에 살짝 사탕을 넣어주자 사정없이 방안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역시 귀엽다.
“키엑! 헥헥! 헥!”
“어이구 우리 똘똘이 신났쪄?”
“헥헥헥! 헥! 키엑!”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다시 한번 손뼉을 치니 소파 위에서 방방 뛰는 것은 당연지사.
저 모습을 보기 위해서 간식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기뻐하자 간식 세 개는 안 된다고 주장하던 디아루기아 역시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아직은 나를 경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최소한 이쪽이 똘똘이를 무척 좋아한다는 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좋은 아버지 흉내를 열심히 내려고 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녀가 이상으로 그리던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이놈이 너무 귀엽잖아.’
나 스스로도 조금 과할 정도의 사랑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정도니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뻔할 뻔자. 최근에는 조용히 웃으며 나와 똘똘이를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똘똘이가 섰다!”
“어머. 디아루리아.”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녀석이 두 발로 굳건히 서 있는 모습. 이 녀석은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걸 보여준다.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 노후도 부탁한다, 똘똘아!’
라는 생각이 아예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간에 똘똘이가 귀엽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거다.
파란의 다른 파티원들 역시 녀석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고 있으니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리라.
물론 모든 파티원이 녀석을 귀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디아루기아와 디아루리아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파티원이 누구인지는 뻔할 뻔자.
“오… 오빠.”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 정하얀이었다.
“아. 하얀아 왔어? 오늘도 수고 많았어.”
“아, 아니요. 별거 아니었어요. 작업하시는 분들을 지켜보는 것뿐이었고… 이제는 몬스터 사체 정리도 거의 다 끝났으니까요. 그보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응. 물론. 이제는 건강해. 마력 탈진 때문에 기절한 것뿐이었고 특별히 상처가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마 조금 있다가 전부다 모일 것 같아요. 현성 씨가 오랜만에 파티원끼리 함께 식사하자고 해서….”
“응.”
“오늘은 시간되시는 건가요?”
“물론.”
“다, 다행이다….”
디아루기아와 똘똘이에게 나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게 그 원인이었다.
깨어난 나를 본 이후에 울고불고 할 틈도 없이 디아루기아를 이쪽으로 데려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됐던 것은 당연지사.
지금이야 조금 여유가 생겨 간혹 시간을 같이 보내기는 했지만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빴었다.
일이 일인 만큼 그 와중에도 똘똘이와 디아루기아와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하얀 입장에서는 뭔가 나를 빼앗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아루기아는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저래 보여도 인간 형태로 있는 모습은 꽤나 미형이었고 조심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내가 똘똘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제법 봤을 테니 말이다.
말은 안 했지만….
‘사이좋은 가족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결정적이었던 것은 나와 디아루기아가 생명을 공유한다고 발표한 것에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상실감을 느낀 모양인지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내가 찾아 갔을 때에도 한 번은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뭔가 마법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뿐이다.
만약 정하얀이 마법을 연구했다면 그 마법은 아마도 나와 자신의 생명을 연결하는 마법이었을 테니까.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얘라면 완성했을 수도 있어.’
어쩌면 더한 걸 완성했을 수도 있다.
본래부터 마법에 대한 재능이 천재적이기도 했고 이번 웨이브를 통해 엄청난 성장을 했으니 말이다.
정하얀 역시 똘똘이만큼이나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쪽에서 조금 더 신경 써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막말로 용의 배우자가 되었다고 발표라도 했다면 정하얀을 컨트롤하기가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똘똘이와 디아루기아를 못 본 것처럼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봐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한 사이에 정하얀이 슬쩍 팔짱을 끼며 몸을 밀착 시켜왔다.
“지금 같이 가요!”
왠지 모르게 디아루기아와 똘똘이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은 느낌.
대놓고 외도를 할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다 보니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디아루기아.”
“…….”
“디아루리아도 얌전히 있어야 한다.”
“키엑! 헥헥!”
“빨, 빨리 가요. 오빠! 모두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정하얀과 마찬가지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똘똘이.
아쉽지만 여기서는 녀석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이 베스트리라.
“키엑! 키엑!”
“빨리 가요, 오빠!”
문을 닫고 나가니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 숨을 몰아쉬는 모습.
본능적으로 뭔가 눈치챈 듯한 느낌에 괜스레 불안해진다. 적당히 관심을 돌려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
입을 여니 곧바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오늘 현성 씨가 모여야 된다고 한 이유가 따로 있어?”
“네.”
“응?”
“아, 아직 오빠는… 듣지 못하셨나보네요.”
“응.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었나?”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 신성제국에서 이번에 제국 8좌를 뽑는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어?”
“파란 길드에서 두 명이나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이 많아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