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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82화 (181/1,590)

# 182

회귀자 사용설명서 182화

똘똘이(1)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창문 아래로 비친 도시였다.

완전히 폐허가 된 시내가 비친다.

물론 본래 부수어 버리려고 했던 서쪽 지역이기는 했지만 복구 작업에 한참인 것을 보니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하는….’

지하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당연지사.

본래 계획은 무너뜨리고 새롭게 만드는 것.

일이 조금 애매하게 마무리됐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정리는 지금부터 하기에도 충분하기는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꼭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 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계획을 진행시키면 된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머리 아프네.’

여러모로 머리가 아파오는 문제들이 많았다.

디아루기아가 붙잡혀 있다는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창문으로 비치는 풍경들은 모두 제각각.

마를린 영애의 말처럼 몬스터의 사체 정리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고 성벽 안쪽이나 건물에 달라붙어 있는 혈액을 지우는 이들도 눈에 띈다.

다들 얼굴에 조금씩 웃음꽃이 피었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달라진 건 없다.

모험가들 같은 경우에는 다들 한 단계씩 성장한 것 같은 느낌.

나름대로 열심히 경험치를 먹었을 테니 하위의 플레이어들 같은 경우에는 전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리라.

‘나도 마찬가지고….’

우리 파티원들 역시 마찬가지.

이미 성장치가 높은 황정연이나 조혜진, 선희영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정하얀과 김예리, 박덕구와 김현성은 새로운 직업을 얻는 것은 물론 스탯에서도 이득을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 한번 해봐야겠는데….”

이번 원정의 목적이 레벨업인 만큼 모두들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얻었을 것이다.

박덕구 역시 영웅 등급의 직업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파티원들이 강해지는 건 즐거운 일인 만큼 이쪽의 입가에도 슬그머니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경비 한 명이 인사를 건네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마 지하 감옥을 지키는 간수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기영 님? 일어나셨군요.”

“아… 네. 그러니까 바란 님이시군요.”

“그, 그렇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에 깜작 놀란 모양.

나 정도로 높은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것 같았지만 당연히 이름을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마음의 눈으로 정보를 읽어본 것이 전부. 그렇지만 그걸 알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이것도 미담의 한 종류였으니까.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지하 감옥 안에 용무가 있어서 향하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혹시?”

“네.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마침 길이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이거 운이 좋군요. 괜찮으시다면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따로 하시고 계시는 일이 있으시다면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안내해 드려야지요. 저만 믿고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그나저나 일어나시자마자 곧바로 이쪽으로 향하시다니 정말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편하게 쉬셔도 괜찮으실 텐데….”

“기절해 있는 동안 시간이 조금 흘렀으니까요. 밖을 보니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저렇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전부 이기영과 파란 길드 분들 덕분입니다.”

“과찬입니다. 그보다 그 몬스터에 대한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사실 저도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이곳을 지키는 게 일이기는 하지만 마법사 분들이 오셔서 계속해서 뭔가를 확인하는 것 말고 어떻게 된 건지는…. 처음에는 구속구를 채우고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시켜 놨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결박을 해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에게 허락된 공간은 아니지만 아마 직접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이, 길 열어드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을 지키고 있는 몇몇 경비들이 이쪽에 고개를 숙여온 것은 당연지사.

마법으로 문을 잠가놓은 모양인지 주문을 외우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기 시작했다.

조금 환경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는 깔끔한 모습.

여기저기에서 복잡한 마력술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자극하지 않는다면 터지는 종류의 마법은 아니었다.

머리 위에 뿔을 달고 있는 익숙한 인형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리 자식도 있네.’

새끼를 꼬옥 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따로 억류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손과 발에는 수많은 마법진이 새겨진 마력 구속구를 차고 있는 걸 보니 나름의 대책은 강구했던 모양.

심지어는 목에도 뭔가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저런 걸로 컨트롤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일단은 저 상태로도 괜찮을 것이다.

“키엑!”

“아이고! 그래 아빠 왔다!”

나를 보고 짧게 울어버리는 작은 용은 제법 귀여운 모습.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슬쩍 나를 반가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디아루기아의 배우자로 선택받은 영향이 녀석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모양.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고 있는 걸 보니 내 생각이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소중한 자식과는 다르게 우리 여편네는 자식을 꽉 쥔 채로 나를 경계하고 있다.

발버둥치는 아기 용을 꽉 잡고 있는 모습은 가관.

누가 봐도 저 꼬마는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뼉을 딱딱 치며 아기용의 시선을 끌자 디아루기아가 몸을 조금 더 움츠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그녀의 시선에 안도라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는 것.

혹시나 내가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내가 죽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것은 그녀일 테니까.

“누가 아버지라는 건, 건가요?”

“이거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섭섭합니다. 푸흐헷. 이제는 한 가족이 될 사이인데 이거 너무 딱딱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이고! 우리 아가! 아빠 보고 싶었어? 우쭈쭈!”

“키엑!”

“우리 똘똘이도 제가 보고 싶다고 난리를 치지 않습니까.”

“똘똘이가 아닙니다….”

“상의도 없이 이름을 막 지으신 겁니까? 이거 조금 섭섭하군요.”

“애초에… 당신은….”

“하하하. 갑자기 생긴 가족이기는 하지만 모두 당신이 선택한 일 아닙니까. 저도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되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더군요. 아이고! 우리 똘똘이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키엑! 키엑! 키엑!”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키에에엑!”

“디아루리아가 당신에게 호감을 품는 것은 제, 제가 배우자로 당신을 선택한 것 때문이지 당신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디아루리아라는 이름입니까. 상의라도 하고 지으시지….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배우자의 의견을 수용하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정말로 다행입니다. 용의 배우자가 되는 것에 이런 부가기능도 심어져 있는 모양이군요. 혹시라도 자식에게 미움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었는데 말입니다.”

“으득….”

“우리 디아루리아, 아빠 품에 한 번 안겨야지!”

“키엑에에엑!”

흥분해서 난리를 치는 우리 똘똘이를 여전히 안고 있는 모습.

지나치게 흥분한 녀석이 어미의 품을 빠져나오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꼬리를 흔들며 순식간에 이쪽에 뛰어 들어와 얼굴을 핥는 꼴을 보니 제법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헥헥대며 이쪽을 향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은 물론 자꾸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디아루기아의 표정도 정말로 재미있다.

뭔가 믿었던 것에 배신이라도 받은 것 같은 표정.

“아… 아가!”

“어이구! 우리 똘똘이!”

“아가 엄마한테 와야지!”

“오이구! 오이구! 우리 똘똘이 잘한다! 잘한다!”

“키에에에엑!”

“아가! 엄마한테 오라는 소리 안 들리니?!”

“우리 똘똘이 아빠가 비행기 태워줄게!”

“키엑! 키엑! 헥헥! 헥!”

“아… 아가….”

“아이고! 아이고! 신났쪄? 우리 똘똘이?”

“똘, 똘똘이가 아닙니다! 디… 디아루리아….”

“똘똘아!”

“키엑! 키엑! 헥헥헥!”

‘이 자식 지나치게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뭔가 위험한 기벽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기는 했지만 눈으로 확인해 보니 아직 기벽과 성향조차 생성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녀석의 성별도 아직 모르기도 하고 용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쪽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

일단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반가움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아이를 보는 것보다는 왠지 모르게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런 종류의 녀석들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이 좁은 곳에서 엄마와 단둘이 심심했을 테니 비행기 놀이 같은 것에 환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거다.

잔뜩 흥분한 채로 콧김을 씩씩 뿜으며 꼬리를 흔드는 똘똘이는 누가 봐도 당장은 엄마보다는 나와 함께 있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아… 아가….”

그렇지만 디아루기아의 축 쳐진 모습은 외면할 수가 없는 모양.

슬그머니 이쪽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천천히 나를 자신의 어미 쪽으로 옮기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우리 똘똘이는 엄마와 아빠가 사이좋게 지내는 걸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우리 똘똘이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이고 귀여운 우리 똘똘이….”

“똘똘이가 아니라 디, 디아루리아입니다.”

“하하. 애칭입니다. 애칭. 이렇게 귀엽게 생겼는데 똘똘이면 어떻고 디아루리아면 어떻습니까? 그렇지 똘똘아?”

“키엑! 헥헥! 키에에에에엑!”

‘이 자식 귀여운데.’

처음에는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귀여운 맛이 있다.

커다란 눈도 그렇고 프로펠라처럼 흔들리는 꼬리도 귀엽다. 처음과는 다르게 이쪽과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꽉 안겨 있는 모습은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

왠지 모르게 마음속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똘똘이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자 디아루기아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입을 열어온 것은 당연.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가장이 와이프와 자식을 보러온 것도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 그때는 어쩔 수 없었을 뿐입니다. 저는 당신 같은 인간을 우리 디아루리아의 아버지나 제 배우자로 인정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당신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저는 이미 이 아이의 아버지이며 당신의 배우자입니다. 그건 당신이 선택한 일이 아닙니까. 상황을 보니 그 맹약과 비슷한 것 같은 건 취소할 수도 없어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똘똘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인정할 생각이 없다니요. 똘똘이도 아빠가 아빠인 게 좋지?”

“키엑! 헥헥!”

“아… 아가….”

“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만 혹시 맹약을 취소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아직 제가 용에 대해서 잘 몰라서 묻는 질문입니다.”

“…….”

“취소할 수 없군요.”

“…….”

“이거 어쩔 수 없군요. 저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지만 이렇게 귀여운 똘똘이를 보고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까요.”

“굳이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제 실, 실수였고 제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애초에 당신은 디아루리아를 데리고 저를 협박!”

“이 여편네가 애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아… 디, 디아루리아 그런 게 아니란다.”

“쯧. 똘똘이를 납치한 것은 저희가 아니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법에도 몬스터의 알이나 아이를 납치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범죄자들은 몇몇 빼고는 이미 합당한 벌을 받은 상태이고요. 그때 저는 우리 똘똘이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뿐이지 뭘 하려는 생각은 결코 없었습니다.”

“거짓말….”

“정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우리 똘똘이를 좋아하는 걸 눈으로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인간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몸을 회복한 뒤에 다시 숲으로 들어갈 겁니다. 디아루리아와 함께 말입니다. 저는 더 이상 인간과 관여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빠져 나갈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이거 참 유감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

“제가 삼 일 동안 기절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

“소형 몬스터에게 물린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얼마나 아팠는지 과다 출혈과 마력을 많이 쓴 부작용으로 그만 죽을 뻔했지 뭡니까. 인간의 몸은 아주 아주 유약하지 않습니까. 별것 아닌 상처에도 픽픽 쓰러져 죽기도 하고….”

“아….”

“만약에 당신이 아가와 함께 숲으로 향한 뒤에 갑자기 제가 픽 쓰러져 죽기라도 한다면 우리 똘똘이에게 아주 유감일 것 같군요.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커야 할 텐데…. 이거 정말로 유감이겠습니다. 푸흐헤하헤핫.”

디아루기아의 흔들리는 동공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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