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74화 (173/1,590)

# 174

회귀자 사용설명서 174화

본능에 충실한 암사자(1)

“개… 씨!! 튀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희라는 분명히 나를 쫒고 있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그녀의 얼굴은 소름이 돋을 지경.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크르륵거리는 짐승소리를 내며 얼굴을 히죽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최소한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알았던 차희라가 폭탄이 된 셈.

터지기 직전에 막았던 정하얀과는 다르게 차희라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예상 외였다.

보통 어떤 일을 할 때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 있는 일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이번 원정만 해도 마찬가지. 깨닫는 게 조금 늦기는 했지만 웨이브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었고 제1성벽이 무너지는 것도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수성전에는 변수에 대한 대비를 많이 준비했고 실제로 네임드급 몬스터가 나왔을 때의 대한 매뉴얼도 존재한다.

당장 이쪽이 시뮬레이션한 변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렇지만 아군에게 쫓기는 미친 상황이 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단 한 번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본 적이 없다.

‘이딴 건 계산에 들어가 있지 않았어.’

옆쪽에 있는 몬스터의 머리를 날려버린 이후에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은 가관.

성벽을 달려서 올라올 수 있다는 게 어처구니없게 느껴질 정도.

어째서 적이 아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왠지 모르게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고유 기벽인 본능의 충실한 암사자를 생각해 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지금의 차희라는 지능과 지력을 낮춘 상태. 아마 자신 역시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보통 때의 차희라 같은 경우에는 특성을 발동시키면 피에 미친 광녀마냥 전장을 헤집고 다녔을 터.

그녀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폭발시키는 것에 주력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폭력성 대신 다른 것이 폭발한 것 같은 느낌.

만약 이전에 이런 적이 있었다면 나에게 한 번이라도 경고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처음인 거야.’

분명히 그럴 것이다.

[플레이어 차희라의 상태창과 잠재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 - 차희라]

[칭호 - 피에 미친 광녀, 붉은 용병, 신성제국의 붉은 광녀]

[나이 - 28]

[성향 - 예측 불가능한 혁신가]

[직업 - 용병여왕 - 전설 등급]

[직업효과 - 기초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 - 중급 무기 지식 습득]

[직업효과 - 고급 무기 지식 습득]

[직업효과 - 고급 쌍수무기 지식 습득]

[직업효과 - 고급 마력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 - 117/성장한계치 신화 이상]

[민첩 - 90/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체력 - 90/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지력 - 00/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내구 - 90/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행운 - 56/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마력 - 82/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장비 - 없음]

[특성 - 피에 미친 광녀 - 영웅 등급]

[지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깎아 공격력을 상향시킵니다.]

[총평 - 지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깎아놓은 상태입니다. 근력 스탯이 20 상승해 117으로써 일시적이지만 전설 등급의 능력치를 뛰어 넘고 있습니다. 이성을 잃은 상태이니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특히나 플레이어 이기영의 종잇장 같은 내구력은 플레이어 차희라의 손짓 한 번에 날아갈 수도 있으니 조심해 주세요. 이번 만남이 끝이 아니길 빕니다. 부디 살아남아 주시길….]

‘도움도 안 되는 총평! 넌 내가 꼭 찢어 죽인다.’

내가 예상한 대로 이미 본능에 완전히 집어 삼켜진 상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높은 근력 능력치와 성장 한계치가 신화 이상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

‘저게 가능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해볼 정도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차희라가 재채기만 해도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붉은용병의 단원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감돌고 있었다.

“어, 어째서?”

“일단 뛰어!”

내 몸을 지켜줄 방패막이 한 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슬쩍 상태창을 훑어보니 곧바로 녀석의 능력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쁘지 않아.’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는 차희라를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능력치.

데리고 다니기에는 썩 나쁘지 않다.

“이런 적 있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이러신 적은 처음….”

말을 내뱉고 있는 와중에도 차희라는 계속해서 성벽을 올라오고 있는 중.

그녀가 성벽을 올라오기까지 최대한 먼 거리를 달려보기는 했지만 내 민첩 능력치와 체력 능력치로는 뛰어 봤자 벼룩이다.

“막아!”

“알, 알겠습니다!”

내 말에 홀린 듯이 방패를 내밀고 차희라를 저지하려고 하긴 하지만 차희라가 뻗은 발을 막지 못한 채 성벽의 안쪽으로 튕겨나가 버렸다.

콰직!

“아아아아아악!”

뼈가 으스러진 것이 분명.

어느 정도의 이성이 남아 있었는지 자신의 부하를 죽이는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날아가기도 전에 온 몸이 터져 죽어버렸으리라.

“율리에나! 아니! 화이트 폴! 화이트 폴!”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은 함께 온 그리폰 화이트 폴.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애타게 부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용맹할 거라고 생각했던 녀석은 내 목소리에 묵묵부답.

목소리가 닿지 않는 건지 아니면 본인까지 위험할 거라 생각해 몸을 사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녀석은 완벽히 내 그리폰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차희라에게 붙잡혀도 별 문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는 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온 몸이 으스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일단은 뛰는 것이 상책.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허리에 걸려 있는 율리에나가 그녀 쪽으로 급하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잠깐이나마 시간을 끌어줄 거야.’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수성전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상황.

한쪽 성벽은 이성을 잃은 차희라 덕분에 제대로 된 수성전을 치루지 못하고 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수성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일단 그녀를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옳다.

‘일단은 성벽 아래로.’

차희라나 내가 없다고 해도 수성전은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다. 물론 작은바위가 붙잡고 있던 새끼의 어미가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미 캐슬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병력은 이 전투의 승기가 이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아 있는 지휘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당장은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

허겁지겁 뛰어가는 와중에도 내 뒤쪽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중.

아마 거치적거리는 모든 걸 팔로 치면서 뛰어오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살짝 밀친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대미지로 느껴지겠지만 지금은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크르르륵….”

‘몬스터야 뭐야.’

점점 더 숨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느낌.

잡히면 어떤 꼴을 당할지 머릿속으로는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내 몸이 안전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이쪽의 몸이 들어 올려진 것은 바로 그때.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를 뻔했을 때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느낌에 조금 다른 상황이 나를 맞이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눈을 뜬 이후에 보이는 것은 차희라가 아닌 나를 품에 안고 있는 조혜진.

“후우!”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설명하자면 깁니다. 일단은 도시 안쪽으로 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네.”

“조심하셔야 합니다, 혜진 씨.”

“네.”

“수성전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은 부길드 마스터가 차희라 님한테 쫓기고 있는 것 같아서….”

“괜찮군요. 혹시 이 상황에 대해서 지휘부는 알고 있습니까?”

“지하수로 안쪽에서 침투해 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부길드 마스터와 차희라 님이 일부 병력을 이끌고 이동한다고 전했습니다.”

“누가?”

“일, 일단은 제가 그렇게 말을… 아! 수성전의 총지휘는 일단 거인 길드 마스터에게 맡겼습니다.”

조금은 융통성이 늘었다.

병력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함이였겠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했다는 건 조금 칭찬해 주고 싶은 부분.

거인 길드 마스터가 지휘권을 잡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서쪽 성벽의 병력 편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을 정도고 감이 좋은 놈이니 매뉴얼대로 수성전을 이끌어 갈 것이다.

“근데… 갑자기 차희라 님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굉장히 민망했다.

애당초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오는 것이 보였다.

사실 지금은 우리를 쫒아오고 있는 차희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느낌.

능력치 자체가 워낙에 차이가 나다보니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나를 놓친 게 분한지 도시 안쪽에 있는 건물을 부수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한쪽 손에 나를 들고 있는 채로 계속해서 뛰는 조혜진은 튕겨져 나오는 건물의 파편을 전부 피해내며 조금 더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중.

무척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덕분인지 배경이 순식간에 휙휙 뒤바뀐다.

“크르르르륵….”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들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당황스럽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지금 상황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쯤 되면 고인이 되어버린 송정욱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내게 저주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현실성이 없다는 거다.

아마 계속해서 저 상태로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

특성인 만큼 아마 페널티와 함께 시간제한도 두고 있으리라.

다시 한번 더 마음의 눈으로 차희라를 바라보자 그녀의 특성 정보가 날아 들어와 꽂혔다.

그전까지는 이런 기능은 없었던 걸로 기억. 내 마음의 눈이 진화하면서 딸려온 기능 같아 보였다.

[플레이어 차희라의 특성, 피에 미친 광녀의 세부정보를 확인합니다.]

[지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깎아 공격력을 상향시킵니다. 제한 시간 1시간 - 남은 시간 49분]

‘제한 시간 1시간.’

아직도 1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체감 상으로는 30분은 지난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제한시간이 있다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차희라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라는 조건이 적혀 있었다면 조금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1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어.”

“네?”

조혜진이 이쪽에 반문하는 사이에 저 멀리서부터 튀어오는 차희라가 눈에 보였다.

“조심!”

이라는 외침에 급하게 조혜진이 뒤를 돌기는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은 느낌.

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바깥쪽으로 던지고 창을 꺼내든 모습이 보였다.

아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능력치의 차이가 심하니까.

그렇지만 내 예상이 빗나간 모양.

꽝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조혜진은 바깥쪽으로 튕겨나가지 않았다. 한 번 파공성이 들려온 이후 눈에 보인 것은 차희라를 막고 있는 김현성이었다.

‘현성아!’

우리 현성이가 나와 조혜진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

물론 능력치의 차이가 심하다.

부들부들 손을 떨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은 확실히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그렇지만 녀석에게 신성력이 쏟아진 것을 본 이후에는 이곳에 도착한 것이 김현성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선희영이 김현성에게 손을 뻗고 있었고 정하얀은 조용히 차희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김예리와 황정연까지 함께 온 모습에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상황.

“갑자기 이게 뭔 날벼락이요? 형님?”

박덕구 역시 방패를 들고 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폭주한 것 같은데….”

“아마 맞을 겁니다. 용병여왕의 특성에 대해서는 대충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지력을 깎아 공격력을 향상시키는 종류의 특성으로 예상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조금만 버티면 될 겁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차희라 님을 막는 게 먼저일 것 같군요.”

“성벽은?”

“수성전 자체는 지금까지는 무난합니다. 잠깐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대답한 것은 사랑스러운 회귀자다.

“아… 네.”

“죽이지 않고 제압합니다.”

“가능한 거요?”

의문에 찬 박덕구의 물음에 정하얀은 고개를 젓는다.

이번 기회에 숨통을 끊으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불을 키고 있는 정하얀의 모습은 조금이지만 소름이 돋아날 정도.

당연하지만 차희라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전력으로 놓고 봤을 때 우리 파티 쪽이 극단적으로 불리하다.

목이 달아날 걱정을 해야 하는 건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그나마 힘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본래 고위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황정연의 존재와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회귀자 때문.

조혜진 역시 균형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인재 중의 인재다.

만약 이 세 명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고기 방패 박덕구가 약 3초 컷.

김예리가 약 15초 컷.

전위가 순식간에 뭉개진 후열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싹 다 밀려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뭔 상황인지 모르겠소.”

당황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러 와서 차희라를 막게 될 줄은 이곳에 있는 이들 전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이벤트였는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