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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71화 (170/1,590)

# 171

회귀자 사용설명서 171화

믿음에는 배신으로(3)

희미하게 들려온 것은 몬스터의 울음소리. 도시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서부터 들려온 목소리였다.

“방금 뭔 소리야?”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을 정도.

차희라의 질문에 대충 고개를 젓는 와중에도 어디에선가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길고 가는 것 같은 하이톤의 울음소리. 인간이 흉내 내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소리다.

“키에에에에에엑!”

‘지하에 있는 몬스터들이 뛰쳐나온 건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처롭게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

이유야 어찌됐든 들려오는 소리에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옳으리라.

다시 한번 차희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자기. 잠깐만 조용히 해줄 수 있어?”

“응?”

“일단 조금만 조용히.”

눈을 감고 뭔가를 감지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

이쪽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어째서 그녀가 방금 같은 소리를 했는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기가 무섭게 바닥이 천천히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세하지만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바닥이 울리고 있다.

타닥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돌멩이가 위로 튀어 오르는 것도 보인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순식간.

‘뭐… 야?’

“준비해?”

“뭘.”

“오고 있는 것 같아.”

“뭐?”

“농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틀렸나 봐. 지금 오고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준비하도록 해. 아직은 조금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아마 곧 들이 닥칠 거야.”

“뭐 이렇게 갑자기….”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정도.

시기상으로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늦게 일어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동안 김현성은 바빠 보이기는 했지만 곧바로 닥쳐올 적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1회 차보다 먼저 일어난 건가. 김현성은 오늘 몬스터들이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지금 이 타이밍에?’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김현성 역시 저 먼발치에서 이쪽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 얼굴에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모르고 있었어.’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녀석의 얼굴을 본 순간, 1회 차보다 일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믿기 힘들다는 기색으로 역력했으니까.

아마 뭔가가 틀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기영 씨.”

“네. 현성 씨.”

“빠르게 전투 준비를… 아무래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어째서 틀어진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김현성도 마찬가지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를 비틀었다는 생각을 적지 않게 해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별로 의심이 가는 것은 없다.

기껏해야 부대 편성을 조금 더 빠르게 한 것이 전부.

그렇지만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자 이 갑작스러운 폭탄의 도화선이 무엇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니,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다.

정황상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방금 그 울음소리.’

어떻게 해서 도시 밖으로 울리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지금 이 사태의 주인공은 방금 그 울음소리가 맞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당장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현성 씨는?”

“영주성에는 제가 직접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영 씨는 계속 중앙지휘부에서 계속 상황을 보며 예비 보존 병력을 운영해 주시면 됩니다. 파란은 모두 한꺼번에 움직이겠습니다.”

“아… 네. 그럼 전원 화살을 장전하고 마법을 캐스팅해 놓은 채로 대기시키겠습니다.”

“네. 그리고 방금 전에 들렸던 소리는….”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생기면 곧바로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영 씨?”

“예?”

“믿고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것은 당연지사.

회귀자의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김현성의 말이 단순한 인사치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이번 이벤트는 녀석 역시 제법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벤트.

눈에 보이는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 상 이쪽이 지휘를 맡기는 했지만 경험이 없는 나를 믿어주는 것은 김현성으로도 힘들었을 터.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나를 지지해주는 녀석에게 감사의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리라.

잠깐 동안 멍하게 있기는 했지만 이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당연지사.

곧바로 뛰어가며 이곳저곳에 상황이 터졌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하자 이쪽의 목소리를 주변으로 정리해 주는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커다란 종소리가 들려오고 순식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전투 준비하라! 전투 준비!!”

다시 한번 조용히 입을 연다.

“전 병력은 위치를 사수하고 마법 병단은 캐스팅을 한 이후에 대기.”

“몬스터다. 전 병력은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위치를 사수하고 마법사병단은 캐스팅하고 대기한다!!”

대신 소리를 질러주는 전령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편하다.

캐슬락도 영 개판은 아닌 모양인지 순식간에 전투 체제로 들어간 것 같은 모습.

눈앞에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으니 영문도 모른 채 마법을 캐스팅하거나 화살을 장전하고 있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종소리 때문인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물론 이쪽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다른 생각을 하기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방금의 울음소리가 키워드다.

마치 새끼 강아지가 엄마를 찾는 것 같이 들린 비명소리.

순간적이지만 경매장에서 매물로 나올 거라는 몬스터의 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겠지?’

잠깐 흘려 지나간 이야기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 알이 팔려가지 않거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길드가 보관하고 있다면 알이 부화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다.

‘조금 더 주의 깊게 확인했어야 했어.’

애초에 몬스터의 알이 중앙 경매장에 나왔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물론 아닐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 듯한 느낌.

예정보다 더 빠르게 웨이브가 시작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일단 원인이 울음소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맞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그 알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는 거다.

“누나.”

“왜?”

“방금 도시 내에서 들려온 소리.”

“확인하면 되는 건가?”

“응. 누나가 직접 갈 필요는 없어. 아니, 누나는 이곳을 지켜주는 게 좋겠네. 용병여왕의 이름이 사기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니까.”

“물론.”

“서쪽 지역은?”

“웨이브가 시작되면 곧바로 작전에 들어갈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자기. 이쪽은 문제없으니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는 뭘 주는 게 좋을지 잘 생각해 놓는 게 좋을 거야. 이미 돈이라면 썩어 넘치니까. 얼렁뚱땅 금화로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끄응….”

“이번에도 돈으로 해결할 생각이었어?”

“반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알고 있었어. 그것보다 영광스러운 첫 출진인데… 말이야. 짧게 연설 같은 거 해보는 게 어때?”

“…….”

마음 같아서는 확실하게 출사표를 던지고 싶지만 인간적으로 너무나 갑작스럽다.

지휘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은 아니지만 대규모 전투로 분류할 수 있는 만큼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 역시 중요한 부분.

그렇지만 입을 열기에는 좋은 타이밍이라고 볼 수는 없다.

편성이 끝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우왕좌왕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모두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눈에 보인다.

혹여나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작은바위 역시 제1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

보급품을 전달하는 상인 조합은 화살이나 포션 같은 소모품을 각 위치로 옮기고 있었고 제국민 중에서도 마음이 약한 일부는 신께 기도를 드리거나 손과 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마….

‘실감하고 있겠지.’

땅을 울리고 있는 진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다.

천천히 떨리기 시작한 대지는 진도가 올라간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

저 멀리서부터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려온다.

‘흐미….’

쫄지 않았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당연히 겁먹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곳의 공기는 비현실적이다.

막연하게 괜찮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어느덧 점점 더 불안감으로 차오른다.

‘시발… 무서운데….’

물론 겁을 먹고 움츠려 들기에는 이쪽이 가지고 있는 패가 꽤나 많다.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과 고기방패 박덕구. 나만 바라봐 주는 귀여운 정하얀과 수준 높은 사제 선희영.

꼬맹이 김예리와 황정연은 이쪽 라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아무튼 내가 위험할 때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동료다.

지금 당장 가장 듬직한 것은 이쪽에 자리하고 있는 차희라.

후방에서 안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내가 안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 말고도 내 앞에서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병사들이 수 천, 수 만이다.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

“응?”

“음성 마법.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마디 하려고?”

“당연하지, 희라 누나.”

괴성이 커지고 몬스터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별 것 아닌 이야기였다.

내가 작게 내뱉은 목소리는 증폭 마법을 거쳐 성벽과 영주성 전체를 감쌌고 잠깐이지만 몬스터들의 울음소리 역시 먹어버렸다.

아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들에게 들리는 것은 녀석들의 괴성이 아닌 내 목소리일 것이다.

“우리의 고향은 이곳이 아닙니다.”

“…….”

“엄밀히 따지자면 저희는 이곳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유도 모른 채 이곳으로 끌려와, 일부는 살아남기 위해 또 일부는 일거리를 찾기 위해 캐슬락을 찾은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이곳의 환경은 저희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으니까요. 친구를 잃어버리신 분들도 있으실 테고 연인을 잃어버리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 술로 밤을 지새우시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지 걱정하고 고민하시는 분도 있으셨을 겁니다.”

“자기?”

“그러나 여러분. 잠깐 동안 뒤를 돌아 여러분들의 뒤에 있는 결과물을 보십시오. 지금의 캐슬락을 만든 사람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군사시설로써의 기능을 하지 않고 있었던 과거의 캐슬락을 바꾼 것은 지금의 자유민과 제국민입니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기피하고 이주하기 바빴던 캐슬락은 이제는 많은 관광객과 자유민이 찾는 명소이자 사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잃어버린 친구와 연인과 가족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입니다.”

“…….”

“모두 여러분이 이룩하고 쌓아올린 것입니다. 저희가 밟고 있는 이 높은 성벽,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화살, 여러분들이 자리하고 있는 모든 것. 이 모든 것을 쌓아올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여러분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우리에게 쉼터이며 집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집입니다.”

“말 한번 잘하네, 우리 자기.”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캐슬락은 정말로 우리들의 고향이 아닙니까? 정말로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캐슬락은 안전합니다. 여러분들이 지킬 마음으로 무기를 들어 올린다면 우리가 스스로 일군 우리의 고향은 안전할 겁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신성 제국과의 계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검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향을 우리 스스로가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린 겁니다. 삶의 터전을 함께 지켜 나갑시다! 여러분!”

갑작스러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인간이란 동물은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별 것 아닌 연설에 쉽게 감명을 받는다.

‘난 캐슬락 출신도 아니지만….’

지금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이들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는 뭔 개소리냐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겠지만 일부는 마음이 흔들려 공포를 잊기 위해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고… 고향을 지키자!”

바로 저렇게.

“고향을 지키자!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자!”

좋다. 아주 좋아.

“고향을 지키자!!!”

작게 터져 나왔던 악에 바치는 듯한 소리는 어느새 전염병처럼 이 성벽 저 성벽 위를 돌아다니기 시작.

제1성벽에 작은바위까지 고향을 지키자는 개소리를 외치는 모습은 조금 우스웠다.

‘너희나 많이 지켜라, 이 새끼들아.’

“쿠워어어어어어어!”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숲을 뚫고 나오는 몬스터들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

잠깐 동안 움찔 하는 병사들이 눈에 보이기는 했지만 어디에선가 날아 들어오는 고향 드립에 자신도 모르게 고향을 지키자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오늘 캐슬락은 안전할 겁니다! 여러분!”

“캐슬락을 지키자!”

“전군!”

“쿠워어어어어어어!”

“발사!”

마법과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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