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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69화 (168/1,590)

# 169

회귀자 사용설명서 169화

믿음에는 배신으로(1)

“저, 마스터.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뭘?”

“이번에 파란의 이기영을 총지휘관으로 맡기신….”

“아. 신경 쓸 필요 없어.”

“네? 하지만… 계획하고 있으신 건….”

“일단은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처리해야지. 어차피 이기영 그 인간은 린델 출신이고 캐슬락에서의 영향력이 넓어진다고 하더라도 움직일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을 거야. 아니, 오히려 이쪽은 좋지. 아직도 떨어지는 꿀이 많거든.”

“아….”

“기브 앤 테이크가 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라 이거야. 파란의 이기영은…. 흐흐흣.”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좋지 않았던 첫 인상과는 다르게 이기영이라는 인간은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주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운이 좋은 애송이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던 게 당연지사.

용병여왕의 정부라는 것을 이용해서 지금의 지위를 손에 넣은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녀석이 보여주는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권력을 얻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한 것은 그가 권력을 대하고 이용하는 태도였다.

‘이해하고 있지.’

권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한 느낌.

실제로 그는 캐슬락에 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중소 클랜의 클랜 마스터들과의 친분을 손에 넣었다.

‘물론 나를 통해서지만….’

첫 번째로 이쪽을 찾아온 것부터가 이미 이기영이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지표.

조금 웃기는 소리였지만 어떤 의미로는 존경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효율을 중요시하고 상대가 어떻든 간에 일단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충성에 대한 보상을 주고 자신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인간인지에 대해 느끼게 만든다.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떤 건지는 뻔할 뻔자.

캐슬락의 정세는 많이 뒤바뀌었다. 경제나 정치 같은 커다란 부분부터 별 것 아닌 아주 작은 부분까지.

이기영을 빼놓고는 이미 캐슬락을 논할 수가 없을 지경까지 와버렸다는 거다.

‘그것도 전부 능력이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눈앞에 있는 부관 박가을이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길드 마스터 생각은 이해하지만 이상하게 조금 걱정이 돼서….”

“걱정할 필요 없다.”

“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고… 듣기로는 그쪽도 조혜진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 같은데… 뜻하는 바가 뭐겠어?”

“아.”

“그놈 역시 우리랑 비슷한 인간이라는 거야. 파란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도 대부분 법에 한 발자국 정도 걸쳐져 있는 종류고…. 애초에 이쪽과 맺은 계약도 그다지 합법적인 방법은 아니었잖아? 강매 아닌 강매였지.”

“분명히… 그랬죠.”

“대충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양심 따윈 ‘개나 줘’라고 할 수 있는 행동도 많이 보여준 것 같던데…. 조혜진보다는 이쪽에 가까운 인간이야. 사실 조금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도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해볼 정도니 말 다했지 뭐.”

“마스터… 설마 저희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후우….”

“아직은 시기상조지.”

“그, 그렇다면… 결국에는 말씀하실 생각이라는 겁니까?”

“생각해 보면 볼수록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아마 그 양반이 들어오면 볼 만할 거야. 린델의 이기영이 지하에 나타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이 돼? 우리도 조금 더 커질 수 있을 거고… 원형경기장을 꽉 잡을 수도 있어. 작은바위를 무시했던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다. 이거야.”

“확실히 마스터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만… 그 조금은 불안합니다. 너무 가깝게 엮이는 것은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아아아. 나도 조금 조심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큼. 일단은 지금처럼만 가자. 혹시 알아? 이기영이 이쪽에 마를린을 넙죽 넘길 수도 있고… 일단은 충성하는 척하면 떨어질 콩고물은 얼마든지 있어. 내가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가을아.”

“…….”

“성벽에서 생활한다고 했을 때는 조금 걱정했는데 말이야. 확실히 인맥이라는 게 좋긴 좋아.”

확실히 그랬다.

병영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직한 방 안은 이쪽이 앉아 있는 방보다 쾌적하게 느껴질 정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치를 부릴 수는 없지만 전시체제로 바뀐 이후에도 괜찮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이었다.

이기영이 이쪽을 배려해 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방을 봐도… 그놈이 얼마나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흐흐흐. 그놈도 나를 필요로 하니까.”

“네.”

“그건 그렇고 박가을. 왜 그렇게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 불만이라도 있어?”

“아뇨.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불안해할 필요 없다니까.”

“그 사람은 뭔가….”

“응?”

“조금 불길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저 감일 뿐이지만…. 엮여서 별로 좋을 게 없는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쯧. 너는 너무 조심스러운 게 탈이야.”

“죄송합니다, 마스터.”

“죄송할 건 아니지. 그 점이 마음에 들기도 하니까. 물론 갑자기 나타난 미친놈을 믿는다는 게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저번에 이기영 그놈이랑 술 한잔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거든.”

“네?”

“도박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지만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아.”

“키야….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새끼는 뭘 해도 될 놈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 나보다 어린놈이기는 하지만 배울 점도 있고. 응? 존경할 만한 점도 있다는 거야. 지금 내 상황이 그래. 나도 도박은 싫어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내 감이 지금은 주사위를 던져야 될 때라고 말하고 있거든.”

“그렇군요….”

“걱정하는 것도 물론 이해는 하지만 너무 움츠리고만 있으면 안 좋아. 나와 그 양반이 차이점이 뭘 것 같아? 그 자식이 이룩한 것들을 봐. 이기영이 이곳에 온 지 1년밖에 안 됐다는 걸 믿을 수 있겠어? 물론 용병여왕과 친근한 사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분명히 차이점이 있어.”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지 않았다는 거고 이기영 그놈은 주사위를 던져왔던 거지. 그게 지금 내가 캐슬락에서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이유고 이기영 그놈이 린델을 주무르고 있는 이유야. 내 말 알아들어?”

“네. 물론입니다. 마스터.”

“아무것도 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거 아니겠어. 아, 이것도 그놈이 한 말인데. 아무래도 나한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 큼. 이 이야기는 이제 여기서 그만. 슬슬 회의시간이니까 나가봐야지.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물건들은 제대로 보관해 놓은 거 맞지?”

“네. 마스터. 전부 다 길드 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알은?”

“제대로 관리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일이 끝나도 한 번 비벼보지. 바깥쪽도 계속 신경 쓰고 있어.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 되니까. 애들 관리도 확실하게 하고.”

“네.”

조금 길었던 대화를 마친 이후에 바깥으로 나오니 거대한 성벽이 시야에 비쳤다.

성벽의 위에서 바깥을 순찰하는 병사들은 물론 합동 훈련을 하는 길드원은 물론 붉은용병의 휘장을 달고 있는 이들도 눈에 보인다.

물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과 섞여 있는 붉은색 머리를 한 여자.

‘차희라?’

이기영이 붉은 용병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정말로 이곳을 찾을 거라고는 생각도하지 못했다.

첫 번째 회의가 끝난 이후에 곧바로 그리폰을 타고 날아왔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일 정도.

터질듯이 탄탄한 몸과 강한 인상은 이전에 술자리에서나 들었던 용병여왕의 모습 그 자체였다.

올려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두근두근거릴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지구에서부터 아는 사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 누군가가 부럽지 않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부럽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용병여왕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외관의 아름다움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

붉은 입술과 강한 눈빛 그리고 타오를 것처럼 빨간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는 모습은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여신 같이 느껴졌다.

잠깐 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허리를 곧바로 숙인 것은 당연.

최대한 정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다.

잠깐 허리를 다시 일으켰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회의를 위해 먼저 들어가는 모양.

용병여왕보다 늦게 회의실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가출한 정신을 붙잡고 헐레벌떡 회의실로 뛰어가니 이미 모두 모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 늦었나.’

실수라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조금은 긴장감이 풀어져 있던 것이 사실. 전시체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커다란 실수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조금 늦으셨군요.”

“아… 네. 죄송합니다.”

“뭐, 괜찮습니다. 작은바위 마스터. 부대 편성도 완료가 되지 않은 상태니까요. 그래도 오늘부터는 조금 긴장감을 가지고 움직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거지.’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앞에서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이기영을 바라보니 확실히 기분은 좋다.

‘권력자의 친구로 있다는 건 좋다니까.’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좋겠군요.”

“네.”

“아. 작은바위 마스터도 빨리 앉으시죠. 부대 편성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규모가 조금 작은 길드나 클랜은 통합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최대한 자치권을 드리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구조상 어쩔 수 없이 편성된 부분에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신경 쓰면서 말해? 자기? 총지휘관이 까라면 까는 거지. 안 그래? 명령불복종은 군법으로 다스리면 되는 거야. 전부 다 목을 날려 버리면 되는 거라고. 다들 내 말이 틀린가?”

“네. 맞습니다. 차희라 님.”

“아… 아암 그렇고말고요. 용병여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봐. 모두 그렇다고 말하잖아? 전시상황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곧 법이야. 이건 린델도 마찬가지고 캐슬락도 마찬가지니까 굳이 출신을 따질 필요조차도 없는 거고 혹시나 해서 이야기하는데… 나는 우리 자기처럼 물렁하지 않아. 명령불복종은 곧 죽는다는 거야.”

“네… 네!”

“알겠습니다.”

“누나.”

“알겠어. 알겠어. 조용히 할게.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마. 자기.”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클랜과 길드 마스터들이 최대한 용병여왕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마 저게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린델의 최고 권력자이자 신성 제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강자와 함께하는 자리는 캐슬락에 있는 자유민들에게 익숙한 상황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아까 전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을 기억해 보니 작은바위의 송정욱이라는 인간은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양.

모르긴 몰라도 눈앞에 있는 용병여왕의 정부가 미리 말을 잘해놨기 때문이리라.

‘난 안전하겠네. 고맙다, 이기영. 흐흐흐.’

적당한 곳에 후방 배치되어 달콤한 꿀을 계속해서 받아먹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이기영을 지휘관으로 추대한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자신이니 어쩌면 더 달콤한 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일단 편성을 발표하는 게 좋겠군요. 일단은 제1성벽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제1성벽 같은 경우에는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믿을 수 있는 분이 맡아주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아마 작은바위와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는 길드들 중 하나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라이벌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이쪽에서도 무척이나 커다란 이득.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리라.

“제1성벽은 작은바위가 맡아주시겠습니다.”

“예?”

‘뭐….’

순식간에 고개가 돌아간 것은 당연지사.

눈에 들어온 것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 이기영이었다.

‘저… 저 개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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