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67화 (166/1,590)

# 167

회귀자 사용설명서 167화

몬스터 웨이브(3)

‘도시 내에 있었네?’

혹시라도 밖에 있을 가능성에 떠올려 봤지만 아무래도 안쪽에 있는 모양.

도시 내에 있었다면 이쪽이 활동하기 조금 더 편해진다.

‘서쪽 지역.’

캐슬락의 상류층들이 몰려 살고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특이사항은 없다. 지하에 넓은 부지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정하얀이 자신감 있게 손으로 콕 찝은 것을 보니 오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확실하지?”

“네. 확실해요!”

“음. 알겠어. 고마워, 하얀아.”

“헤헤헤.”

‘괜찮을 것 같은데….’

위치는 나쁘지 않다.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쓸려나가도 별로 상관없다.

‘영주성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신전과도 완전히 반대편인 걸 생각해 보면 지도에서 사라져도 별로 상관 있는 위치는 아니라는 거다.

‘나쁘지 않아.’

머릿속으로 계속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정하얀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일단은 큰 용건 하나를 끝났으니 이쪽도 회의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수고했다, 하얀아.”

“아… 네!”

“그럼 조금 있다 보자.”

“네… 네.”

개인적으로 퍼즐을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

조각 하나가 더 맞춰지니 기분이 업 되는 것은 당연지사.

내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이미 캐슬락을 둘러싼 정세는 시시각각 뒤바뀌고 있다.

정하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곧바로 밖으로 나온 이후에 들려온 소식은 캐슬락 백작이 영지 내에 있는 모든 길드와 클랜 마스터를 소환했다는 소식.

신나게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 신성 제국에서 터진다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리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

징집과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영주성에서 발을 붙이고 있고 신성 제국 내에서 살고 있는 만큼 제국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자유민들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상황이야.’

도시가 위험에 빠졌다는 정황을 가져온 게 파란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웨이브가 시작되기 전에도 끝난 이후에도 이쪽은 제법 좋은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거다.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자 캐슬락 백작과 김현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가 봐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솔직히 기쁘다.

“정말입니까?”

“확실할 겁니다. 이미 숲에서 여러 가지 정황이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몇 십 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둘의 대화에 슬그머니 끼어들자 곧바로 이쪽으로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본래 위협은 경고장을 보내고 들이닥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들이 닥치게 되죠. 준비해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내 역할은 김현성을 의견을 뒷받침 해주고 신뢰를 주는 것.

갑작스럽게 일이 터진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신성 제국 명예주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는 또 다르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현하는 게 보였다.

내 이빨에 한 번 더 힘입은 김현성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내 뱉는 것이 무척 장해 보였다.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만 계속해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번 사냥을 나가면서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기존에 몬스터 웨이브를 받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징후들과 놀라울 만큼 유사합니다.”

‘웨이브구나.’

“묘하게 조용한 것도, 대부분의 몬스터들의 생태에 이상이 생긴 것도 말입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요.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의심스럽습니다만… 일단은 회의를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대책이라면 어느 정도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습니다.”

“아. 이기영 명예주교님.”

“물론 캐슬락 내에서도 상황이 터졌을 때의 매뉴얼이 있겠지만 저희 쪽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게 있습니다. 사실 저희 파란이 캐슬락으로 온 이후도 몬스터의 숲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받았기 때문이니까요.”

“네?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당연히 듣지 못했을 거다. 애초에 그딴 소식은 있지도 않았으니까.

“자유민들끼리 은근히 퍼져 있는 소문이라… 접하지 못하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캐슬락 백작님. 같은 자유민으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뭣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반기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신성 제국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만 주장하고 의무와 권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자가 무척 많습니다. 아니, 거의 대다수일 겁니다. 몇몇 자유민은 징집되는 이 상황 자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죠. 어째서 우리가 캐슬락을 위해 싸워야 하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

“그런 이들 대부분이 갑작스레 웨이브가 시작되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자들입니다.”

방금 말한 건 거짓말이 아니다.

장담컨대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도망칠 놈들이 몇몇 있다.

캐슬락 백작도 바보는 아니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계엄령을 선포하고 출입문을 봉쇄해야 합니다. 소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부대를 편성하고 전시체제에서 대기를 하는 게 옳습니다.”

‘경매장 개자식들이 빠져나가면 안 되니까.’

그곳에 있는 놈들과 물건은 절대로 밖으로 나가게 둬서는 안 된다.

‘그게 다 돈인데….’

더불어 이번 기회에 도망치려고 하는 개자식들 역시 이쪽에서 제대로 막고 있어야 한다.

“영주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는 하지만… 일리는 있군요.”

“어느 정도의 불안감은 있어야 되는 게 맞습니다. 아니,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회의실에 안으로 하나 둘 기어들어오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모두 한 번쯤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자유민들. 작은바위 송정욱의 소개로 만나고 그 이후로도 개인적인 만남을 한 번씩 만나본 이들이다.

캐슬락 백작은 저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을 곱씹어 보면 저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네, 백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캐슬락 백작님.”

“큼.”

하나둘씩 인사를 주고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은 사교회가 아니다.

조금 무거운 것 같은 분위기에 길드 마스터나 클랜 마스터들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중.

송정욱은 무슨 일이냐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드니 멍청한 놈처럼 씨익 웃기 시작.

혹시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꼴이 제법 우스워 보였다.

신성 제국의 명예주교로서 이쪽이 캐슬락 백작과 친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나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은 무슨 일이 터져도 일단은 안심이라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귀엽네.’

눈치가 빠른 건지 느린 건지 알 수 없는 상황.

사건이 터졌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김현성과 함께 가까운 자리에 착석하자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캐슬락 백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짧게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지만 일단은 이쪽의 뜻은 어느 정도 전달한 상황.

어떤 선택을 하든지 캐슬락 백작의 자유지만 나는 눈앞에 보이는 마를린 영애의 아버지가 어느 정도 내 뜻을 존중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죠?’

만약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다는 사건만 전한 뒤에 오늘의 회의를 끝낸다면 원정이나 여행이니 뭐니 캐슬락을 도망치는 녀석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영지민을 보호해야 하는 백작의 입장에서도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 여러모로 내 의견을 수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거다.

“지금부터 캐슬락은 전시체제에 들어가도록 하겠네.”

‘나이스.’

“앞으로 한 달 안에 몬스터 웨이브가 들어올 거라고 판단. 타 도시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출구를 봉쇄한 이후에 캐슬락 내에 있는 자유민 병력을 영주성의 병력과 통합해 운영하도록 하겠네.”

“갑자기 무슨….”

모두가 멍한 표정.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몇몇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 말입니까?”

“그건… 어디서 나온 정보….”

개소리에 대답한 것은 역시나 김현성.

“저희 파란에서 조사한 정보입니다.”

“확, 확실한 겁니까?”

“네. 이후에 브리핑에서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확실한 정보입니다.”

우리 회귀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곡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튀어나온다.

갑작스레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로 공성전을 하게 생겼으니 불안한 것이 당연.

심지어 영주성에 편입되어 싸워야 한다는 소리는 저들에게 한층 더 불안감을 선사해 주는 것 같았다.

‘쯧.’

뭔가 불만이 터져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강경한 캐슬락 백작의 태도에 이곳에 있는 길드 마스터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상황.

작은바위의 송정욱이 살며시 입을 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캐슬락 백작님.”

“무슨 일인가? 작은바위 길드 마스터.”

“전시체제를 유지하신다는 말씀과 계엄령을 선포하신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저희가 영주성에 편입되어서 싸운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나?”

“아마 제대로 된 효율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제국법상 전쟁과 비슷한 위험 상황이 터지면 길드와 클랜은 각각의 독립부대로 활동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영주성에서 운용된다는 건….”

“아니지. 정확히 이야기하면 제국 법상으로는 최고 사령관의 재량에 따라 병력의 편성을 바꿀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네. 제국법에 문제될 건 없지.”

“그렇지만….”

여기저기에서 다른 목소리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최고 사령관의 재량이라고 한다면 더욱더 방금의 선택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역시 캐슬락에서 자리 잡고 있는 자유민으로서 닥쳐오는 위협에 합류해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영주성의 기사들과 함께 싸우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이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저 자유민들에게는 자유민들의 방식이 있다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조금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해주십시오.”

“자유민들의 방식이라니 대체… 뭘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자유민들의 방식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제국민을 앞세우고 자신들만 살아남는 게 자유민의 방식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백작님. 적어도 자유민들을 지휘하는 것은 자유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작은바위 마스터가 직접 병력을 운용하겠다. 이 말이로군.”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가. 작은바위 마스터. 나는 바보가 아니야. 그대들이 어째서 캐슬락에 체류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고 어째서 독립된 부대를 원하는지도 알고 있네. 이곳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싫어한다는 것도 알아.”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상황이….”

둘 다 양보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사실 둘 모두에게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 그림은 아니다. 자유민과 제국민은 어디까지나 공생관계에 있다.

백작 입장에서는 일단은 밀어 붙이는 그림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뒷일을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캐슬락 백작의 입에서 의외의 소리가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기영 명예주교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요거지!’

물론 캐슬락에 사는 자유민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는 손님에 불과했으니까.

역시나 몇몇 길드 마스터가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이기영 님이라면 본래 캐슬락 출신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최대한 보일 수 있는 양보야.”

“그것도 좋을 것 같군요.”

조금 의외였던 것은 송정욱이 그대로 긍정해 버렸다는 것.

슬그머니 송정욱을 바라보니 이쪽을 보고 살짝 웃어오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이 새끼는….’

어떻게든 살 곳을 찾아 열심히 구덩이를 파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구덩이가 자신의 무덤이 될 장소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

‘아무리 비벼 봐야 넌 최전방이야 정욱아….’

이미 그건 결정이 된 사항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