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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8화 (157/1,590)

# 158

회귀자 사용설명서 158화

위선자(2)

뭔가 이쪽이 실수했는지에 대해 곰곰이 떠올려 봤지만 감이 오는 게 없다. 조금 취기가 올라와서 생각하는 게 반 박자 느린 것 같은 느낌.

‘무례했나.’

술 한잔하자는 말에 저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지사.

어째서 작은바위의 송정욱이 그녀를 보고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만 제 발언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말,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하얀 씨도 옆에 계신데….”

“하얀이가 함께 있는 게 문제가 됩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허….’

홍시같이 붉어진 얼굴을 보니 대충 감이 잡혔다.

내 말이 아닌 나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문제. 야심한 밤에 고급 여관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말을 두고 오해했음이 분명하다.

‘당신의 그 무고한 상상력이….’

이를 테면 직장 후배에게 성추행을 하는 사람으로 비춰진 셈.

정하얀도 하지 않을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쪽이 계속해서 황당하다는 입장을 취하자 조혜진은 더욱더 당황스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혔지만 정하얀의 발언에 잠깐 동안 뭔가 오해가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 건가요?”

“나도 잘….”

“아….”

“…….”

민망했는지 괜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게… 그….”

“무슨 문제라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잠깐 착각을 한 것 같군요.”

“무슨 착각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신 건 아닌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평소에 혜진 씨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그게….”

“조금 실망이로군요.”

“죄, 죄송합니다.”

‘이게 웬 떡이냐.’

이렇게 살살 놀릴 수 있다는 상황자체가 굉장히 좋다.

조혜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함께 술이라도 마시자는 제안을 거절할 것 같은 느낌.

당장은 안전한 영주성으로 데려가는 것을 우선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면 이쪽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뭐, 농담입니다. 제가 오해할 만한 말을 하기도 했고요. 제 이성 관계가 그렇게 깨끗한 편은 아니니… 저를 그런 취급 하시는 것도 당연할 겁니다.”

“그… 렇지 않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익숙하니까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로 미안하긴 미안하신 겁니까?”

“네.”

“그럼… 아까 제안했던 대로 잠깐 시간 좀 죽이다가 들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곧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이쪽의 예상대로 조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이라면….”

“좋군요. 그럼 들어가도록 하지요.”

“부길드 마스터. 그, 그쪽은….”

“네? 혹시 이 여관에는 펍이 없는 겁니까?”

“아. 아뇨. 아마 있을 겁니다.”

아까는 단순히 놀려먹으려고 말했을 뿐이지만 확실히 저쪽에게 나는 별로 신뢰가 가는 인물은 아니었나보다.

물론 일부다처나 일처다부가 당연시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쪽의 이성 관계는 난잡하다면 난잡하다고 말할 수 있는 편.

내가 자신을 홀릴 작전이라도 세워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한 모양이다.

‘세워놓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애초에 저쪽은 이쪽에 별 다른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관의 안내인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예약은….”

“아. 숙박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라운지 바나 펍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슬그머니 정하얀을 바라보자 그녀가 허겁지겁 주머니에 있는 금화를 꺼내 안내인에게 쥐어주는 것이 보였다.

‘왜 이렇게 많이 줘?’

하나만 줘도 눈에 띄게 기뻐할 것이 분명,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쥐어주니 적어도 다섯 개 이상은 여관의 안내인의 손에 들어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횡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기왕이면 조용한 곳으로.”

“네. 곧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확실히 돈이라는 게 편리하긴 편하다. 조금 위층으로 올라가자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괜찮은 자리가 눈에 띄었다.

“저 자리로 하죠.”

“네.”

“주문은?”

“괜찮은 거 아무거나 가져오셔도 됩니다. 가격에 상관없이.”

“네.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네.”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조혜진. 뭔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장소에 온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조금 고급스럽기야 하지만 한때 작은바위의 간부였던 조혜진이 들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송정욱이 내 생각보다 더 짠돌이거나 아니면 조혜진 그녀가 평소에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다. 그녀가 저임금을 받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이런 곳은 처음이십니까?”

“아? 네….”

“캐슬락에서 조금 오랫동안 지내셨다고 들었는데 의외로군요. 작은바위에서 간부에 계셨을 정도니 좋은 곳에 많이 가보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있는 동안 많이 검소한 생활을 하신 모양입니다.”

“검소하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확실히 쓸데없는 곳에 금화를 쓴 기억은 없으니까요.”

“하하하. 쓸데없는 곳이 아닙니다.”

“네?”

“금화는 쌓아둔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소비해 줘야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금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사회에 금화를 뿌려야 비로소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죠.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

“방금 저희에게 팁을 받은 안내인도 소비를 할 테고 저희가 오늘 이곳에서 소비한 골드들은 또 어딘가에서 지출될 겁니다. 지금 아래 내려다보이는 평범한 자유민이나 가난한 제국민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가서 다른 누군가가 또 지출을 한다는 겁니다. 알고 계신 내용일 테지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합리적으로 금화를 굴려야 경제가 더 활발히 돌아가게 됩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네?”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투가 마치 저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려서….”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각하는 건 필요한 일입니다.”

“부길드 마스터가 저들보다 더 위에 있다는 걸 말입니까?”

“네. 개인적으로는 그런 자각이 있어야 조금 더 쉽게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계속해서 생각하셔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불러올 파장도.”

“무슨 이야기를 하시고 싶으신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조금 취기가 올라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봅니다. 본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보면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큼. 혹시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작은바위의 마스터와 계약을 끝내고 왔습니다.”

“그거… 다행이로군요.”

예상했던 대로 별로 표정이 좋지는 않다. 자신의 일을 내가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

당연하지만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혹시 들으셨습니까?”

“내부 고발 말씀이십니까?”

“예.”

“네. 들었습니다. 어째서 작은바위를 떠나셔야 했는지 어째서 캐슬락에 나와 린델로 오셨는지 말입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저쪽에서 먼저 이야기해 주시더군요. 조금 원망 받고 있으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튜토리얼 때부터 함께한 동료들을 배신한 꼴이 됐으니 말입니다.”

“…….”

“알 만한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애초에 왜 숨기려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었습니다.”

“역시 저를 비난하시는 겁니까?”

“현성 씨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혜진 씨를 데려오실 때 말입니다.”

“상관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금 표정이 풀린 것이 눈에 보였다.

‘아아아.’

눈치채는 게 느렸지만 이 여자에게 김현성은 단순한 상사가 아닌 모양이다.

‘꽂아놨구나.’

본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은 확실하게 이 여자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오히려 잘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론이로군요. 현성 씨다운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당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몬스터 불법 거래와 세금 문제 때문에 그들을 고발하신 게 아닙니까?”

“이종족 노예 거래 문제도 얽혀 있었습니다.”

“아, 그건 듣지 못한 소식이군요.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까놓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비난하지는 않지만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네?”

“당신은 멍청해요.”

“그게 무슨….”

“이 사회는 내부 고발자에게 별로 호의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당신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켰다고 한들 보이는 결과를 보면 당신은 정말로 멍청한 사람입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군요. 틀림없이 아까는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황당해하는 표정. 저런 눈빛을 보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을 겁니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항상 인식하고 계셔야 한다고요. 내부 고발로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그들은 범죄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당신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될 많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작은바위 말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무혐의라고는 하지만 세금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

“길드 직원이 참 많이 줄었나 봅니다. 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어버렸죠. 듣자하니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무리하게 사냥을 나가 대부분이 좋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여성 직원들은 길거리에 내몰렸고 가장들은 실업자가 되어 자식들을 먹여 살리러 사냥터로 향했다고 합니다. 이제 막 취업한 젊은이도 모가지가 날아가 빈민촌에서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죠.”

“그게… 정말입니까?”

“아뇨. 방금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부, 부길드 마스터? 지금 저랑 장난….”

“그렇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죠. 실제로 제가 말한 것처럼 되지는 않았겠지만 몇몇은 정말로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을 수도 있습니다. 찾아보지 않았다 뿐이지 마음먹고 찾는다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진짜로 고발하고자 했던 소중한 옛 동료들은 아직도 잘 먹고 잘사는 데 엄한 사람들만 피해를 입은 셈이죠.”

“아….”

“멍청하다고 한 것은 방금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양심에 맡긴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조혜진 씨. 끝장을 내려면 조금 더 확실하게 목을 졸랐어야죠. 결과적으로는 욕먹을 짓을 했다는 겁니다.”

“…….”

“당신은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했어요. 캐슬락의 발전에도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겁니다. 증거를 제대로 찾지도 못했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싸질러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개인적인 양심의 가책을 해소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계획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당신을 멍청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

“작은 바위의 길드 직원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일에 가담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길드 마스터에게 협력하게 된 이들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인생을 전부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오히려 실패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될 타이밍이로군요. 수백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리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

“제가 지금 말씀 드렸던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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