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회귀자 사용설명서 147화
내부 고발자(2)
물론 모든 일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이다. 제국법 전문가인 김미영 팀장을 신뢰하는 이유도 그녀가 법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는 것에 있다. 제국법의 촘촘한 그물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은근히 많기 때문이다.
조사가 들어왔을 때는 문제의 여지가 없지만 조혜진의 시선에서는 조금 위험한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녀가 원칙주의자라면 어쩌면 내가 없는 동안 길드 안에 있는 병폐들을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그것만 문제가 아니지….’
선희영의 봉사도 문제가 될 수가 있다. 빈민촌의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은 몇몇 사람의 입장에서는 범죄자들을 잡아 죽여 사회에 기여하는 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범죄다.
언론을 내 쪽에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도 현대인의 가치관에서는 납득이 할 수 없는 이야기.
어쩌면 ‘언론은 투명해야 된다.’라고 생각하며 그걸 실행시킬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그녀는 지뢰 중의 지뢰.
그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 커지고 그녀의 영향력이 늘어날수록 이쪽은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성아….’
왜 하필 이 타이밍이었어야 했는지, 괜스레 우리 회귀자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똥오줌 가릴 때가 아니다.
파란에 필요한 것은 첫 번째도 성장, 두 번째도 성장.
이기적인 소리지만 개인의 양심에 발목 잡히고 싶지는 않다.
한 번 망해봤으니 자제할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몇 번 모른 척할 수야 있겠지만 확실히 이 여자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확인해 보는 것이 먼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자 정하얀이 내 몸과 함께 딸려 올라왔다. 슬그머니 그녀를 침대의 옆쪽에 눕힌 뒤에 적당히 씻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순식간.
자는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정말로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찾아갈 사람은 김미영 팀장.
쉬는 날 찾아가는 게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일은 미리미리 처리하는 것이 옳다.
대부분이 뻗어 있는지 무척 조용한 실내. 김미영 팀장의 숙소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꼬맹이가 보였다.
“아!”
“방에 엄마 있니?”
“엄, 엄마! 아저씨 왔어!”
“엄마아!!”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직격탄을 맞으니 생각보다 가슴이 아프다.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전부 아저씨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씁쓸한 것이 사실. 아무튼 아이들의 외침이 김미영에게 닿은 모양인지 안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휴일에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상사만큼 불편한 것은 없다.
그녀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도 마찬가지.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이정도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받는 만큼 고생해야지.’
팀장으로 승진한 신고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황급히 문을 여는 김미영이 시야에 비쳤다.
“부, 부길드 마스터. 여기는 어떻게?”
“쉬는 날에 죄송하지만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야 하기도 하고요. 뭐 겸사겸사 찾아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말씀을 해주셨으면….”
“아뇨.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은 개인적인 용무라….”
“네?”
“업무 관련입니다. 아무튼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네. 누추하지만….”
길드 직원들이 사용하는 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대우가 좋다.
물론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방을 지급받은 것뿐이겠지만 기본 가구나 식기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좋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니 왠지 기가 죽은 것 같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괜스레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슬쩍 의자에 몸을 맡겼다.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아직입니다. 일어나자마자 온 거라.”
“괜찮으시다면….”
“괜찮습니다. 이미 식사를 하신 것 같은데 폐를 끼칠 수는 없죠. 아이들은….”
“아! 네.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래?”
“네!”
후다닥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군요.”
“어렸을 때부터 철이 빨리 든 아이들이라… 편하기는 하지만 조금 가슴 아플 때가 많죠. 아,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그저 확인할 게 몇 가지 있을 뿐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계약 부분도 다시 진행하려고 하고요. 연봉은 700골드입니다.”
“네?”
조금 많다고 느껴질 정도의 액수.
파티원이 아닌 직원이 연봉을 700골드를 받는다는 것은 그녀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화로는 칠천만 원, 지구에서도 받기 쉽지는 않은 액수다.
“700골드입니다. 이후 하시는 것에 따라서 연봉 인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너, 너무 과….”
“과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일하게 될 테니까.’
“김미영 팀장님이 연봉 이상의 일을 해주시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계약서를 보시면 복지조건도 변경이 있으니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오늘이 아니어도 좋으니까요.”
“네.”
“아! 그리고 오늘 이곳에 찾아온 또 다른 이유 말입니다만….”
“네.”
“조혜진 씨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 어제 말씀 드린 대로 일을 잘하시고 또….”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없었던 당시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일을 처리했는지, 결제를 했다면 어떤 서류를 결제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혹시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트러블이나 다른 것은 없었는지 기억나는 걸 전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괜찮습니다. 그녀의 성격이나 행동, 이상하게 보였던 행동이나 평소 행실, 말 그대로 전부 다요.”
“아….”
“당연하지만 제가 그녀에 대해서 물었다는 사실은 비밀입니다.”
“네. 네….”
동그랗게 눈을 뜬 얼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었다.
“혹시 조혜진 님에게 뭔가 문제가 있나요?”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깨끗한 게 문제라면 문제니까요. 아, 먼저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야 될 것 같네요. 이건 미영 씨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네.”
“조혜진 씨가 캐슬락에서 린델로 옮기게 된 것은 내부고발 때문입니다. 길드의 비리를 폭로하고 길드에서 강제로 탈퇴 당했죠. 소문이 퍼졌는지 캐슬락에서는 다른 길드나 클랜에 입단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린델로 오게 된 겁니다. 아마 영입을 진행한 현성 씨는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다른 루트로 정보를 입수했고요.”
“네….”
“물론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걱정이 아예 되지 않는 건 아니어서 말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린 건 그런 의미에서 여쭌 겁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네… 네.”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아먹을 것이다. 내 질문의 결론은 하나.
‘혹시 뭔가 캥길 만한 짓을 한 적이 있느냐? 만약 있다면 조혜진이 그걸 알고 있느냐?’
였으니까.
“어떤 부분을 걱정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다행이로군요.”
“안심하셔도 되실 만한 이야기입니다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은 사전에 제가 처리하고 있었던 터라…. 포션 공장이라든가 세금이나 자유도시 실리아에 관련된 몇몇 일은 일단 제가 처리해 길드 마스터께 보고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조혜진 님은 주로 위기대책대응반이나 던전공략전략팀 같은 조금 더 직접적인 분야의 업무를 처리해 주셨습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뇨. 그쪽은 괜찮습니다.”
“길드 자체는 어디까지나 투명하고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법을 어기지도 않았고 모든 게 합법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행이로군요. 그럼 도의적인 부분에서는 어떻습니까? 아! 솔직하게 그냥 느낀 걸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슬쩍 김미영 팀장을 바라보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물약 시장 같은 경우에는 소형 클랜이나 개인 연금사업자들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독과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번에 린델 연금술 지원 사업을 시작하면 아마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실제로 파란 길드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니까요. 다른 부분은 문제가 없습니다.”
슬그머니 김미영 팀장을 바라보자 민망했는지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뽑았지만 확실히 유능하다.
나 같은 헛똑똑이와는 다르다. 선동과 날조와 사기만 칠 줄 아는 이쪽에 비해 저쪽은 정말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유능한 부하가 많다는 것은 좋다.
저런 사람들을 부리는 나도 유능해 보이는 효과가 있으니까.
“좋군요.”
“감사합니다.”
‘넌 조금 더 받아도 되겠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연봉란에 밑줄을 그어버리고 다시 한번 금액을 적어 넣었다.
기존의 연봉보다 300골드가 더 올라간 1,000골드.
눈이 휘둥그레진 게 보였지만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이었다.
“능력에 맞는 연봉을 드리는 겁니다.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부분은 미리 빼와서 처리했다는 게 정말로 마음에 드네요.”
“그…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뇨. 아뇨. 은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굴러다니는 보석을 주운 게 은혜라니 말도 안 되죠. 아, 또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예를 들면 길드 마스터가 혜진 씨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줬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객관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네.”
“과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능력이나 성품을 생각해 봤을 때는 좋은 요직에 앉히는 게 이해가 가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권한이 큰 것 같아서….”
“엄밀히 따지면 그건 김미영 팀장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 저는 그저 부길드 마스터의 대리인으로서 업무를 처리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음.”
“혜진 님은 다릅니다. 길드 마스터께서는 조혜진 님을 영입한 이후에 곧바로 업무에 투입하시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권한을 넘겨주셨습니다. 그냥 흘려가는 이야기였지만 조혜진 님을 길드의 비서실장으로 역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요. 파란 길드의 모토는 이해하지만 다른 파티원분들을 웃도는 권한을 주신 것 같다는 평이 많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습니다.”
“그렇군요.”
“조혜진 님의 성품과 능력과는 별개로….”
“아.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당연하지만 눈앞에 있는 김미영 팀장은 조혜진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김미영은 질투 같은 걸 할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대상 자체가 레벨이 다르다.
아무리 그녀가 능력이 좋다고 한들, 조혜진은 손꼽히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강자다. 이른바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 능력자라는 거다.
김미영은 조혜진의 성품과는 별개로 단순히 한 사람에게 단기간에 많은 권력을 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리라.
“부 길드 마스터님의 입지도….”
그 와중에도 내 입지까지 생각해 주는 것은 조금 의외지만 말이다.
“제 걱정을 해주시다니 감사하군요.”
“당,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길드 마스터께서는 이기영 님과 협의 하에 조혜진 님의 요직을 결정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이미 마음을 굳히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음.”
‘길드 비서실장….’
직책만 놓고 따지고 보자면 부길드 마스터와 비슷할 정도의 권력을 지닌 위치다.
물론 감투야 내가 더 크겠지만 길드 마스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저 직책 역시 권한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김현성은 권력의 양분화를 이루어내 양당체제를 만들려고 하진 않을 터.
나와 그녀의 시너지 효과를 그리며 마음속으로 웃음 짓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두 명의 인재가 섞이면 파란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겠지만, 그녀와 나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다.
물론 상태창과 성향을 읽어볼 수 없는 김현성이 우리 둘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얘는 너무 심해….’
우리 현성이가 왜 1회 차에 실패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나 같은 놈들한테 뒤통수를 여러 번 맞았으리라.
‘확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