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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4화 (133/1,590)

# 134

회귀자 사용설명서 134화

진실 속에 섞인 거짓들(1)

법정에 서는 만큼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마음가짐 같은 거야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교회에 가는 것보다 더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나를 케어해 준 것은 이지혜였지만 지난 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은 정하얀 역시 괜스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검은 백조의 길드 직원들을 전력으로 방해하는 중.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난 이후에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는데 사실 이번 작업에서 정하얀의 지분은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대리인단의 대표인 이지혜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자 정숙한 분위기의 법정이 시야에 비쳤다.

이쪽의 대리인단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상태.

한쪽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제시카 주교와 헬레나 이단심문관장을 비롯한 소중한 인맥들이 보여 살짝 인사를 하자 그들의 입가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나왔다.

‘중요하지…. 종교지도자들은.’

항상 웃음 짓고 있는 바젤 추기경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굳어 있는 표정.

내 소중한 보험 중에 하나이니만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리라.

‘종교 재판은 추기경급 이상의 사제만 열 수 있으니까.’

그 반대쪽에 있는 것은 배심원단.

본래는 무작위로 선출하는 것이 맞지만 카트린 공작 부인과 마를린 영애가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배심제가 아니기 때문에 저들에게 큰 권한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힘이 되는 관중이 있는 것이 어딘가.

눈을 마주치자 살짝 웃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원형으로 이쪽을 둘러싸고 있는 의자에는 이번 재판을 빛내줄 수많은 관중이 자리해 있다.

마치 이전에 검투사들이 검을 부딪치던 콜로세움을 보는 듯한 느낌.

전투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쁘지 않은 비유다.

“이것도 싸움이니까.”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혜 씨.”

“싱겁네요.”

별것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자 다시금 서류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지혜가 보였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여러 가지로 대응책이나 다른 요소들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조금은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자 비어 있는 자리에도 하나둘씩 사람들이 채워지기 시작.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는 법관들, 증인석에 자리한 차희라나 카스가노 유노 그리고….

“피고를 입장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이토 소우타다.

한쪽 문이 열리며 등장한 녀석의 모습은 꽤나 당당.

본인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이라도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에 시선을 주고 있었지만 두 손에 자리 잡은 수갑은 놈이 가해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관중석에 심어놓은 소중한 동료들이 천천히 입을 열고 있는 상황.

“저거, 저거, 쓰레기 같은 놈.”

“여기가 어디라고 얼굴을 쳐들고 와?”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열됐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토 소우타 측에 있는 이들 역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니 한두 마디씩 내뱉던 다른 사람들도 고함을 외치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법관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모두 정숙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신성한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시는 분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퇴실조치 하겠습니다.”

“…….”

“본 재판은 피고 이토 소우타, 야마토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이토 소우타의 요청으로 열린 재판임을 여러분께 알려드리며 본 재판이 시작함에 앞서 베니고어 여신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는 바젤 추기경님이 직접 진행해 주시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어디가나 복잡하거나 짜증나는 절차는 있다.

곧바로 재판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는 했지만 말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모두가 기도를 드리며 눈을 감는 와중에 슬쩍 곁눈질로 녀석을 바라보자 놈 역시 이쪽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화났네.’

대충 봐도 우리 이토 소우타 상이 화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야 마지막에 조사를 받으러 가는 도중 이쪽이 날린 빅엿을 기억하고 있는 게 당연.

핏발이 선 눈으로 이쪽을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는 표정은 마치 악귀.

만약 이곳이 법정이 아니었다면 나를 찢어 죽일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개 무섭네.’

당연히 무섭다. 그렇지만 녀석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굳이 쫄 이유도 없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빅터하르트와 제국기사단이 내가 있는 곳을 지키고 있고 손이 완전히 묶인 녀석이 이쪽을 해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시 한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은 당연. 최대한 입꼬리를 올린 채로 살살 혓바닥을 낼름거리니 이토 소우타가 깨물고 있는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어쩔 건데?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 자식아.’

“푸….”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힘들 지경.

기도를 드리는 시간에는 정숙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경기를 일으키려고 하는 듯한 표정은 언제 봐도 즐겁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본 악의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악의.

그 와중에 살기를 날리고 있지 않은 건 칭찬해 줄만 하지만 그래봤자 나의 소중한 중지는 멈추지 않는다.

“공정한 재판이 되기 위해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수고해 주신 바젤 추기경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 재판은 60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대법관이 말해주고 있는 절차에 대해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몇 회에 걸쳐 진행되기는 하겠지만 내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녀석을 족칠 수 있는데 필요한 시간은 오늘 하루로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럼 먼저 원고측의 증언… 이기영 님의 대리인단 대표 이지혜 씨의 발언으로 본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원고?”

“네. 존경스러운 대법관님. 발언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희 측이 정리한 자료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가져와 주세요.”

“사건은 18일 사교회 때 처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제 의뢰인 이기영 님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살해 협박과 알 수 없는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파란 길드의 이설호와 야마토 길드의 모종의 거래가 그 이유였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제 의뢰인 이기영 씨가 직접적인 해를 입은 것은 지난 10월 1일, 여러분들도 모두 린델 테러 사건에 대해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 테러사건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묻지마 테러가 아닌 정확히 제 의뢰인을 노린 암살 사건이었고 이 사고로 인해 죄 없는 수십 명의 린델 자유민들이 휘말렸습니다. 파란 길드와 붉은 용병길드, 검은 백조 길드는 이설호를 조사하는 과정 중에 그가 야마토 길드의 이토 소우타와 접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 증언까지 확보했으나 며칠 뒤인 10월 7일에 변사체가 된 채로 라마델 산맥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말 잘한다. 우리 지혜’

“라마델 산맥 근처에서 발견된 이설호의 사체는 수많은 고문을 받아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으나 상처에서 야마토 길드가 주로 사용하던 카타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제출한 자료와 원형 보관된 이설호의 사체를 이후 증거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지만 모든 게 날조된 정보다. 애초에 이설호를 살해한 것은 저쪽이 아닌 이쪽.

이설호의 시체를 가지고 있는 이쪽에서 약간의 수를 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 외에도 린델 테러 사건의 흉수들은 대부분 붙잡히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들의 몸에서 검출된 독약 성분은 일본의 암살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테러 사건의 암살자들에게서 발견된 독약이 야마토 길드의 것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증거로 채택하기에 부적합 합니다.”

“일단은 증거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 자료를 가져와 주세요.”

“네. 존경하는 대법관님.”

저건 날조된 정보가 아니다. 물론 암살자들이 야마토 길드에서 보낸 이들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만들기에 따라서는 없는 것도 증거가 된다.

“흉수들의 정확한 신원조회는 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자유 도시 실리아에서 온 일본인이라고 판명. 그들이 들고 있었던 무기의 양식이나 마법의 매커니즘 역시 상당 부분 실리아의 자유 도시에서 온 이들이라는 증거도 함께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나 반대쪽에서는 이토 소우타의 대리인이 열심히 입을 털어온다.

“이의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의 매커니즘이나 무기의 양식이 자유 도시 실리아에서 온 것이라고 한들 그들이 정말 실리아에서 온 인원들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야마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타 세력이 꾸민….”

“일단은 증거로 채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조용히 해주세요. 아직 원고 측의 진술이 모두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증거를 열심히 채택하고 있는 우리의 대법관님.

이쯤 되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느낌이 오고 있으리라.

‘푸흐흐하흐흣.’

이미 이지혜는 신성제국의 대법관과 수차례 만남을 가졌다는 거다.

물론 정확히 이쪽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확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받아 처먹은 게 많으니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줄 용의가 있는 것이 분명.

베니고어 여신에게 드렸던 기도 내용에 있었던 공정한 재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의 있습니다! 그 증거는….”

“충분히 채택할 만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련 자료를 가져와 주세요.”

“네. 존경하는 대법관님.”

이것도.

“이의 있습니다! 물증이 아니라 단순한 심증에 가깝습니다. 날조된 자료일 가능성을 재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허! 아직 원고 측에 진술이 전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관련 자료들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리인은 자료를 가져와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존경해 마지않는 대법관님.”

요것도.

“이의 있습니다!”

“채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법관님.”

그리고 이것도.

모든 게 증거 투성이다.

녀석에게 이곳은 재판대가 아닌 심판대나 마찬가지.

정숙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법관이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박수를 보내고 있었고 이토 소우타 측에서 입을 열 때마다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빈틈 따위는 없다.

아무리 저쪽에서 날조된 정보라고 한들, 이미 증거로 채택되어 있는 것들이고 이중 삼중으로 파놓은 함정은 모든 것이 야마토 길드의 소행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율리에나 사건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대법관님. 야마토 길드의 이토 소우타는 제 의뢰인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이설호와 린델 테러사건에서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 의뢰인을 살인범으로 몰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설 등급의 아이템 율리에나의 아이템 정보를 보시면 나와 있는 것처럼 율리에나는 제 의뢰인에게 위협을 끼치는 경우에만 움직입니다.”

“그렇군요.”

“야마토 길드의 카즈마 히로유키는 이토 소우타의 명을 받아 제 의뢰인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직접적인 위협행동을 한 바, 지난 시간동안 조사했던 율리에나의 행동 패턴에 대한 분석 자료와 추가로 무녀 카스가노 유노의 증언을 증거로 제출하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요조라 길드의 카스가노 유노는 증인석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네…. 일단 제가 처음에 본 것은…….”

이렇게 순조로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카스가노의 유노의 증언 역시 무척이나 신빙성 있는 것이 사실.

배심원단이나 종교인들이나 카스가노 유노의 생생한 증언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녀의 증언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이지혜는 입을 열기 시작.

“원고는 이만 마지막 발언을 하도록 하세요.”

“네, 존경하는 대법관님. 모두들 아시다시피 지난 사교 모임 때 있었던 살인미수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다행히도 차희라 님 덕분에 미수에 그친 사건이지만 모든 귀족과 종교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나누는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것은 구태여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때까지 말씀 드렸던 모든 증거와 정황상 이토 소우타가 제 의뢰인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가 그 날 의도적으로 제 의뢰인의 팔에 마력을 집어넣은 것은 모두가 눈으로 확인한 진실입니다.”

“네.”

“굳이 따로 증거를 제출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이 증인이니까요. 이상입니다.”

마무리까지 확실했다.

중간 중간에 이토 소우타의 의뢰인 역시 발언 아닌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모양.

어떤 식으로 반박할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끝나지는 않겠지?’

이토 소우타라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유능하고 똑똑하니 분명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기대한 걸 보여줘.’

날조된 증거든 뭐든 간에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 내 예상대로 슬그머니 이토 소우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대변인 이지혜 님의 말씀은 사실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거지.’

“린델 테러사건이나 율리에나 사건 그리고 암살 미수 사건 역시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쪽에서 저지른 일이기는 하지만 저는 이 중 그 어떤 일과도 관계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발언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피고.”

“말도 안 되는 발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그리고 존경해 마지않는 대법관님. 조금 갑작스럽지만 혹시 현재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환상물약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예상했던 대로….

미끼를 물었다.

아주 제대로 물어주셨다.

‘유능해서 다행이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세한 변화를 눈치채 줘서 다행이다. 도달할 수 없는 결과에 도달해 줘서 다행이다. 날조된 증거로 나와 환상물약에 관계에 대해 파고들고 그걸 또 집어줘서 다행이다.

‘푸흐하허흐흐하하핫.’

이미 속에서는 웃음이 튀어나오고 있는 상황.

그렇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고맙다, 똑똑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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