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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2화 (131/1,590)

# 132

회귀자 사용설명서 132화

마녀 사냥(2)

이건 마약이나 다름없다.

당연하지만 이 약에 취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토 소우타의 평판은 땅바닥을 뚫고 그 반대편을 빠져나올 기세로 돌진하고 있을 정도.

이 대륙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지구와 같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지금쯤 놈의 평판은 지구의 내핵에 닿았으리라.

‘쓰레기.’

두말할 필요도 없는 쓰레기.

불과 4일이 지나기도 전에 이미 놈은 암흑가의 숨겨져 있는 제왕이며 노예 거래와 장기밀매도 서슴지 않는 인간말종으로 변모해 있었다.

수많은 아녀자를 희롱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피를 묻혀온 냉혈한.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나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아름다운 소식은 이 근거 없는 소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물론.’

너무나도 허황된 소문에 이 따끈따끈한 가십거리를 믿지 않는 이들도 소수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왕성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어차피 사람들은 관심 없다.

‘지루했던 일상에 재미있는 소식이니까.’

대부분이 그저 이 재미있는 떡밥이 가라앉기를 바라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떡밥이 거짓이길 바라지 않고 있다.

계속해서 이 대화를 주제로 마녀사냥을 진행시키고 싶어 한다.

“이게 제대로 된 마녀사냥이지. 푸히하하핫.”

공작이나 백작, 권력의 유력자들 보다 그들과 함께 있는 귀부인들은 조진 것도 아주 아름다운 선택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이토 소우타의 대한 이야기를 나를 대신해 전해줄 테니 말이다.

임금을 지불해주지 않아도 되는 일꾼들을 풀어놓은 셈.

여기저기서 견제 아닌 견제를 받고 있는 나보다는 그들이 가장 신뢰하고 믿고 있는 가족들이 전해주는 게 낫다.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여론에 저쪽에서도 사람을 풀었는지 최대한 대응하고 있기는 했지만 당연히 모두를 잠재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변명하고는 있지만 이미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돌아버린 뒤, 현대였다면 기자회견이라도 열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했겠지만 절차대로 조사를 받고 있는 놈은 아직도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니 아마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

그와 반대로 나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빨빨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안 좋은 소문으로부터 이토 소우타를 쳐내려고 하는 교황청 측의 인사들이 중요한 고객들이었다.

“아아아. 글랑 부교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허. 이제 하루가 지났을 뿐이 아닙니까.”

“하하하. 항상 뵙고 싶습니다. 글랑 부교구장님을 만나 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제게는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니까요.”

“이기영 님께서 이 보잘 것 없는 사제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십니다. 아, 오늘은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제시카 주교님이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물론입니다. 이거, 오늘은 베니고어 여신님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겠군요.”

“일단은 제시카 주교님과 가까워지셔야 될 겁니다. 많이 기대하고 계시니까요.”

“이거 영 부담스럽군요.”

“허허허허.”

오늘은 글랑 부교구장과 만나고 내일은 제시카 주교를 만난다.

제시카 주교와 친분을 어느 정도 쌓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을 물색한다.

“아, 기영 씨 오셨군요!”

“제시카 주교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빨리 달려왔지 뭡니까.”

“둘이 있을 때는 제시카라고 불러주시기로 하셨잖아요.”

“아. 그렇기로 했지?”

“네. 오늘은 같이 대주교님을 뵈러 가요. 안두린 대주교님께 기영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더니 꼭 한 번 뵙고 싶어 하시지 뭐예요.”

“조금 부담스러운데. 우리 제시카 얼굴을 봐서라도 용기내야겠네.”

“기영 씨도 참.”

마찬가지로 제시카 주교와 진한 친분을 쌓은 이후에는 계단을 하나 더 오른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두린 대주교님.”

“이거 요즘 소문이 무성하신 분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귀하신 분을 직접 뵙게 되어 제가 더 영광스럽습니다. 제시카 주교님께 익히 들었지만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우리 이기영 신도님께서는 말씀을 참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그러고 보니 곧 식사시간인데 함께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바젤 추기경님과 함께 식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제시카 주교도 시간이 나면 함께 가기로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안두린 대주교님.”

계단을 하나 더 오른 이후에는 더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쉴 틈 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제는 이름을 외우기 힘들어질 지경.

그렇지만 열심히 조사 받고 있는 녀석에 비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갑작스럽지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바젤 추기경님.”

“아니 무슨 또 선물을 준비하셨습니까, 이기영 신도님. 이런 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거 참….”

“넣어 두셔도 됩니다. 약소한 성의니까요. 좋은 술이니 적적하실 때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제가 교황청에 직접 드리는 기부금입니다.”

“뭐 이런 걸 다….”

“신에게 바치는 금액으로는 모자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약소하게 5만 골드 정도 넣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헌금할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신을 사랑하는 이기영 신도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

“하하하. 사실 준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바젤 추기경님께도 따로 헌금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그게 무슨….”

“신을 위해 써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험….”

내가 준 것을 넙죽 받아먹고 있는 바젤 추기경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이미 교황청은 썩을 대로 썩었다.

보통 종교라는 게 고착화되면 부패가 되게 마련.

주변에서 보면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나 같은 놈들이 설치기에는 아주 아름다운 환경이다.

“이거 이럴 게 아니라, 총대주교님도 함께 뵙는 게 어떻습니까? 이기영 신도님.”

“네 물론입니다. 당연히 뵈어야지요.”

“아, 그전에 소개시켜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이단심문관장 헬레나입니다.”

“헬레나?”

“네. 바젤 추기경님.”

“귀한 손님이시다. 자기소개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반갑습니다, 이기영 신도님. 이단심문관장 헬레나라고 합니다.”

“아, 소문으로 익히 들었습니다. 더러운 이단놈들의 목을 베어버리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계시고 있다고…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일을 도맡아 하시느라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물론 직접적인 무력 집단이나 밑을 돌아보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사실 인맥 관리라는 것이 힘들기는 하다.

신경 써야 할 게 은근히 많기 때문이다.

먼저 연락을 하고 먼저 인사들 드리고 중요한 날 약소한 선물을 챙겨주는 게 뭐가 대수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잘 못하는 이유가 있다.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연락하고 인사하는 것 자체를 고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거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시간이 더 소중하고 자기만의 공간과 영역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들과 대화하는 것보다는 자기개발에 힘쓰며 쓸데없는 사람과 연락을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의 삶은 존중하지만 이런 이들은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는 편.

‘세상이 썩었거든.’

얼굴을 익히고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고 한 번도 안 본 사람보다는 얼굴을 익혀놓은 사람에게 정이 가는 법이니까.

일부는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업경쟁에 밀리고 일부는 회식에 몇 번 참가하지 않았다고 직장 동료들과의 거리감을 체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나 같은 놈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지난 모임과 만남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쪽에게 무척이나 도움이 많이 되는 편.

짧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 스케줄은 이미 꽉 차서 터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당연하지만 바쁜 것은 나만이 아니다.

차희라도 차희라 나름대로 고위 공직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녀의 성격에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하루에 짧게라도 얼굴을 비추는 건 개인주의자인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카스가노 유노는 사실상 가장 정신없이 일해주고 있는 편.

물약의 모든 유통과 관리를 맞고 있으니 바쁜 것이 당연. 특히나 자유 도시 실리아 내부의 여론 조작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하얀은 조금 여유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상황.

다행히 지난 번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인지 본인이 먼저 마법 수련에 열중해 방 안에 틀어 박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와 같이 혹독한 스케줄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당연 이지혜였다.

오늘의 일정이 끝난 뒤 되돌아가는 그녀의 모습 또한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어젯밤에 뭐 했어요?”

“제시가 주교랑 헬레나 이단심문관장이랑 같이 있었어.”

“능력도 좋네요.”

“그냥 기도회에 함께 했을 뿐이야.”

“밤새도록?”

“응.”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알아서 하라니까.”

“믿든 안 믿든 네 자유야.”

“쓸모 있는 사람들은 맞죠? 오빠?”

“잠깐 쓰기에는 괜찮아.”

“그럼 됐어요. 뭐 물어온 건 있고?”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일은 나쁘지 않게 되는 것 같고… 굳이 이토 소우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헌금이라는 소리에 그렇게 입이 찢어지더라. 지혜는 좀 어때?”

“오늘 물어온 따끈따끈한 소식이 있죠. 들으시면 조금 놀라실 것 같은데….”

“뭔데?”

“재판 일정 잡혔어요.”

“확실히… 놀랄 만한 소식이네.”

애초에 재판까지 가기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의외라고 할 수 있는 부분.

나와 이지혜가 열심히 입을 털어오고 있기는 했지만 녀석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재판에 서는 것은 지금 보다 조금 더 이후다.

‘나한테도 혐의가 붙어 있기는 하니까.’

전에 말했던 대로 나와 이토 소우타의 관계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린델과 실리아의 관계다.

만약 녀석이 부당한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면 실리아에서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신성제국의 입장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눈치가 보이더라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낫다는 거다.

어쩌면 벌금형을 위한 형식적인 재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지.’

일단 법정에 서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용의자의 탈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와 이지혜가 놈의 영향력을 조금씩 축소시켜 놨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본인이 불리한 싸움터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이미 놈의 정치생명은 끝장나기 일보 직전이고 대외적인 시선에 민감한 교황청측도 놈의 뒤를 계속해서 봐주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법관들의 매수는?”

“반반이에요. 저를 만난 사람도 있고 그쪽에 붙은 사람들도 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조금 특이한 건 있잖아요?”

“응.”

“이토 소우타 본인이 직접 재판을 열어달라고 말했다고 하지 뭐예요?”

“아아아아….”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자기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를 짓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인 걸 보면 이쪽이 켕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아아아.”

“오빠 역시 깨끗한 것만은 아니니까. 물론 그놈이 쥐고 있는 정보가 영향력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재판대로 끌고 가려고 하는 걸 보면 날조된 건 아닐 가능성이 커요. 아니면 누가 봐도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퀄리티가 좋다던가.”

“그래?”

“반응이 영 미적지근한 것 같은데… 혹시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생각해 두신 거예요?”

“푸… 흐흣. 뭐, 비슷해. 내가 보험을 조금 많이 들어놨다고 이야기한 거 기억나?”

“네.”

“경우에 따라서 대비할 수 있는 선택지를 몇십 가지 정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거든. 물론 그중에는 이토 소우타가 직접 재판을 신청해 이쪽을 공격할 경우도 들어 있었고….”

“흐음….”

“장담컨대 최악의 선택지를 골랐다고 단언할 수 있어. 그놈이 내 생각대로 움직인 게 맞다면… 푸흐흡. 진짜 뒤통수를 맞는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히 알게 될 거야. 기대해도 돼,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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