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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4화 (123/1,590)

# 124

회귀자 사용설명서 124화

영혼의 단짝(1)

‘생각보다 안락하네.’

야마토 길드의 길드원 살해범이 받는 대우치고는 꽤나 안락했다.

누워 있는 곳은 딱딱한 바닥이 아닌 안락한 침대였고 나오는 음식의 퀄리티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범죄자들이나 먹는 음식을 먹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사실.

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차희라나 카스가노 유노의 입김이 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그저 그런 촌뜨기였다면 재판은 나발이고 목이 달아났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용병여왕의 정부, 무녀의 손님이라는 위치는 유죄도 무죄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

‘권력이라는 게 이래서 좋아.’

그렇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내가 서 있는 위치만으로 내 목이 달아날 확률은 희박하다. 용병여왕과 무녀에게 동시에 반감을 사는 것은 제국의 전력이 삭감되는 걸 원하는 녀석들에게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야마토 길드의 일반 길드원이 뒈진 것보다는 나를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토 소우타 그 개자식이 무슨 일을 꾸미냐에 대한 것.

아마 녀석이 얼마나 이빨을 터는지에 따라 내가 받는 벌의 강도나 벌금의 강도가 결정되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최소한 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하나.

‘외교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

이 문제는 해석하기에 따라서 확실히 분쟁의 여지가 있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눈앞을 바라보자 묘하게 기분 나빠 보이는 차희라의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기분은 좋네.”

“응?”

“뒈진 게 자기가 아니라 그 자식이잖아?”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물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야. 계획하고 있던 게 망가진 건 기분 나쁘고 네가 말도 없이 무녀의 방에 올라갔다가 그런 꼴을 당한 건 조금 더 기분 나쁘거든. 알고 있겠지만 내가 은근히 체면을 중요시하잖아. 기분이 좋다는 건 자의든 타의든 네가 저쪽 길드원을 한 명 죽였다는 것 때문이야. 그것도 꽤나 화끈하게….”

“그거 고맙네….”

“무녀와는 무슨 관계야?”

“…….”

“야마토 길드의 편에 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여자가 끝까지 우리 자기를 무죄라고 주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 뭐야. 혹여나 내가 모르게 줄을 대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만약에 그렇다면 조금 슬퍼질 가능성도 있어.”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자유지만 무녀를 만난 건 엊그제가 처음이야.”

“나한테까지 거짓말 치면 뒷일이 상큼하게 끝나진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지?”

“내가 누나한테 거짓말을 왜 하겠어? 처음 카스가노 유노랑 만났을 때 그 여자가 날 보고 울었던 것 기억나?”

“물론.”

“그 여자 미래를 볼 수 있어.”

“무슨 개….”

“물론 자신이 원하는 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해도 무척 짧은 시간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미래를 보는 게 가능해.”

“농담하는 거 아니지?”

“내가 직접 확인했어.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16살짜리 여자가 4년 만에 대형 길드를 만들 수가 있겠어? 어째서 그 여자가 나에게 집착하는지도 대충은 알아. 그 여자는 미래에 나와 이어지거든.”

“지랄.”

“그게 그 여자가 날 보고 질질 짜던 이유고 지금도 열심히 나를 변호하고 있는 이유야.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희라 누나 자유.”

조금은 짜증 난다는 얼굴.

괜스레 테이블을 한 번 두드린 차희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어왔다.

“하…… 이 새끼, 이거 완전 페로몬 덩어리네.”

“난 누나밖에 없는 거 알잖아.”

“너무 기어오르면 안 좋아, 자기.”

테이블을 툭툭 치고 있는 손 위로 조금은 일그러진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이런 종류의 장난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

누가 봐도 화가 났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방법은 있는 거지? 내가 계속해서 개판을 치고 있기는 하지만 여론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신성제국의 왕성에서 다툼이 일어나 누가 죽은 건 처음 있는 일이거든. 우리 자기가 단두대에 목이 날아가는 장면은 나오지 않을 테지만 붉은용병과 파란 그리고 린델의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건 조금 민감한 문제고….”

“생각하고 있는 건 많아. 계획에 변동은 있겠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야.”

“제대로 행동하는 게 좋아. 내가 네 뒤를 봐주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야. 네가 나한테 매력적인 남자로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이유라는 걸 항상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게 좋을 거야.”

“알고 있어. 고마워, 누나.”

“……저녁 즈음에 또 올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쉬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봐, 자기.”

“누나도.”

‘기분 좋아 보이네.’

어디서 기분이 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희미한 미소가 확실하게 보였다.

차희라 역시 정하얀과 마찬가지로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상태창에서 보이는 광년이라는 칭호처럼 그 감정이 뒤바뀌는 게 들쭉날쭉한 것이 문제일 뿐이다.

하루에 세 번 이곳으로 찾아오는 여자들을 전부 상대해 주려니 피곤한 것이 당연.

사실 조사를 받는 것보다 정하얀이나 무녀를 상대해 주는 일이 더 힘들다.

“흐으으으윽… 오빠아… 어어어어엉….”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오자마자 대놓고 눈물을 흩뿌리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하기 일쑤.

이곳에서 계속해서 함께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에게는 감금을 당하고 있는 내가 무척이나 가슴 아픈 모양이다.

심지어 커다란 벌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내 볼을 어루만지며 통곡하는 모습은 가관.

누가 보면 내가 이미 사형수가 된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사정을 대충 알아들은 뒤에는 여느 때처럼 이토 소우타를 향해 분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카스가노 유노에 대한 분노는 덤이다.

2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특별 교육에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차희라에게 관리를 부탁할 정도였다.

‘오늘은 오지 않는 건가.’

나도 모르게 정하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카스가노 유노의 경우에도 그다지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쪽을 위해 계속해서 대외 활동을 해야 하는 그녀의 경우에는 자주 찾아오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몇 번은 꼭 시간을 내 나에게 보고 아닌 보고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둘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기다리는 것은 카스가노도 정하얀도 아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은 나를 변호해 줄 수 있는 변호사.

물론 나 스스로를 내가 변호해도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 기왕 변호를 해 줄 사람을 찾는다면 대형 길드의 주축 중에 한 명이 대리인을 해주는 것이 좋으리라.

그것도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방문이 벌컥 열리기 시작.

정하얀이나 유노가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눈앞에 보이는 여자는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여자였다.

‘이지혜.’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중얼거리는 게 시야에 비쳤다.

“꼴이 이게 뭐람… 패배자가 따로 없네요.”

“면목 없네.”

“아주 완벽하게 걸려드셨네요.”

“…….”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나 봐요? 이렇게 화나 보이는 모습은 또 처음이인 거 보니까.”

“그래 보여?”

“딱 보면 척이죠.”

눈치가 빠른 건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여러모로 화가 나는 것이 당연.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던 내가 거하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한테 어처구니없는 계략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다.

정하얀이나 차희라도 눈치채지 못했던 내 상태를 보자마자 꼬집어 오니 솔직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영혼의 단짝.’

그녀를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이지혜는 나와 너무 잘 맞는다.

“이미 행동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붉은용병의 정부, 무녀의 손님이라는 타이틀로는 아직 부족했나 봐요?”

그녀의 말이 맞다.

검은백조의 간부, 그것도 길드 마스터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고위 간부가 내 대리인이 되어준다는 건 그 의미가 크다.

권력자들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렇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직 판사나 검사였던 변호사들의 첫 재판을 우대해주는 관례라는 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체면은 중요하니까.’

“그런 것도 딱히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것보다는 누나가 필요했거든.”

“으음… 듣기 나쁜 소리는 아니네요, 오빠.”

“그렇게 들리니 다행이네. 사실… 지혜 말이 맞아.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도 맞고… 뒤통수가 얼얼하다니까.”

“같이 울어드리기라도 할까요?”

“아니. 계획하고 있는 조금 큰 건수가 있는데 네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거든. 단순히 맞은 걸 돌려주는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야. 물론 너한테도 떨어지는 게 있을 거고.”

“떨어지는 게 없어도 도와드릴 생각이었네요. 나 은근히 로맨티스트니까. 개인적으로 그리고 있던 그림에 오물을 던진 놈한테는 나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고… 그럼 일단… 당연한 권리부터 찾아야겠죠?”

“잘 부탁해, 대리인님.”

“걱정 마세요, 의뢰인님.”

이지혜가 슬쩍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닌 문 앞에 서 있는 경비를 향해서였다. 뭘 할지에 대해서는 대충 예상이 간다.

내가 그녀에게 원하는 건 이런 역할이었으니까.

“저기요?”

“네.”

“이기영 님이 가지고 계신 무구는 어디에 있는 거죠?”

“아. 그 무구에 경우에는 일단… 조사를 위해 저희 쪽에서 보관을….”

“그거 당장 가져와 주세요.”

“네?”

“그 무구를 당장 가져와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그게… 일단은 살해 현장에서 쓰인 무기이니 만큼 일단 저희 쪽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짜고짜 가져오라고 말씀하셔도….”

“아직도 조사가 끝나지 않은 건가요? 아이템의 기능은 분명히 말로도 설명드렸고 실제로고 확인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벌써 수차례 실험까지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한가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서….”

“저 역시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 가져와 달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먼저 제 의뢰인 쪽을 위협한 것은 야마토 길드의 길드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 텐데요. 이는 그 자리에 있던 카스가노 유노가 직접 증언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 감금에 무기까지 빼앗는다니요.”

“사람이 죽었습니다. 일단은 절차상….”

“저주를 내리는 검 율리에나는 저희 의뢰인이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입니다. 몸을 보호할 수단을 잃어버린 제 의뢰인에게 혹시 사고라도 생긴다면 그 뒷감당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용병여왕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입니다.”

“…….”

“그 무구의 가치가 얼마인지 알고 있는 겁니까? 대륙에 몇 개 풀리지도 않은 전설 등급의 아이템입니다. 혹시나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면 당신들이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확인하기로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무구들은 주인과 오랜 시간 떨어지면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율리에나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제 의뢰인을 대신해 제가 당신들을 고소하겠습니다.”

“저희는 신성제국의 절차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고소하겠다고 하셔도….”

“신성제국을 고소한다는 게 아닙니다. 관리를 소홀이 하지 못한 당신들을 고소한다는 거예요. 신성제국에는 죄가 없습니다. 네. 그렇고말고요. 그렇지만 당신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내가 고소하는 것은 제국이 아니라 지금 우리 의뢰인을 억압하고 있는 당신들 개인이야.”

“아….”

“내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의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그런 무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면 당신들한테 죄가 없을 것 같아? 내가 당신들을 고소하면 이곳에 있는 경비들은 전원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는 것은 물론, 대형 길드들을 상대로 길고 긴 법정 싸움을 벌여야 할 거야. 당신들이 믿고 있는 신성제국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할 거고… 자신 있어?”

“…….”

“만약에 일이 터졌을 때 신성제국에서 당신들을 보호해 준다는 걸 믿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입 다물고 내 남자친구 물건 가져와. 상급자한테도 내가 한 말 그대로 전하고 상급자도 권한이 없다고 하면 더 윗선에서 물어서 어떻게든 해결해. 해결이 안 되면 너희끼리 방법을 마련해서 당장 여기로 율리에나를 가져오고… 안 그러면 관련된 인간들 한꺼번에 묶어서 전부 다 고소해 버릴 테니까.”

“그, 그게… 저희 권한이….”

“내 말 못 들었어? 상급자 아니면 책임자 불러 오라고!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누군데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해?!”

마치 비싼 물건을 환불하러 갈 때 센 언니를 대동하고 가는 것 같은 기분.

‘지혜 언니, 너무 멋있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걸크러시다.

그렇게 밖에 이 상황을 표현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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