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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3화 (112/1,590)

# 113

회귀자 사용설명서 113화

어서 일해라!(3)

“인턴 말입니까?”

“네. 인턴 말입니다.”

그동안 옆에서 이것저것 일처리를 도와주던 박중기가 조금은 미심쩍다는 표정을 보내왔다.

사실 저런 얼굴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길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인턴이라니… 사람들이 지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

여론과 언론이 힘을 합치면 어차피 지원자는 들어오게 되어 있다.

우리 길드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만 잘 잡는다면 말이다.

‘젊은 기업, 젊은 길드!’

레퍼런스로 잡아야 하는 것은 지구에 있는 벤처기업.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환경이다.

물론, 현실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유능한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길드,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회사에 충성을 다할 비전투직군 신입들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인턴이고.’

“일단은 인테리어를 조금 바꾸는 게 좋겠군요.”

“네?”

“사무실이 조금 딱딱한 것 같습니다. 린델의 젊은 인재들이 바라는 건 이런 길드가 아닐 겁니다. 책상은 전부 치우고 염색 마법을 활용해서 푸른색 위주로 인테리어를 바꾸는 게 좋겠군요.”

“그게… 갑자기 인테리어를 바꾸라는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파란에 필요한 것은 혁신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생각이 나올 리가 없지요. 일단은 일하기 좋은 장소를 마련하는 게 첫 번째가 될 겁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남이 일하고 싶은 장소 말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혁신이란 단어보다 듣기 좋은 말은 없다. 아마 내가 무슨 사기를 치려고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사무실과 사무실을 가로막고 있는 벽도 허물어 버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설호를 비롯한 늙은이들이 사용하던 집무실 벽은 일단 전부 허물어 버리세요. 탁 트여 보이는 게 더 괜찮을 겁니다. 직원들이 몸을 눕힐 수 있는 커다란 소파도 하나 놓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 잠깐 오침할 수 있는 수면캡슐 같은 것도 추가하겠습니다. 따로 구입하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걸 활용하는 방향으로 준비해 주세요. 예산은 최소화합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입니다. 분위기. 자유롭고 능동적이고 젊은이들의 꿈을 바칠 수 있는 그런 길드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아니, 최소한 그런 길드처럼 보여야 합니다.”

“아… 네….”

“쉬는 시간에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실에는 당구대든 카드게임이든 상관없으니까 아무거나 집어놓도록 하세요. 아, 체스 같은 보드게임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가격도 별로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추가로 길드 식당은 뷔페식으로 바꾸도록 합시다.”

“식당의 예산은….”

잘 먹는 노예가 더 힘차게 일할 수 있는 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평길드원이나 길드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간부 식당이랑 갭이 너무 크니까.’

“이전에 자리 잡고 있었던 늙은이들의 쓸모없는 사치품을 정리하면 나올 겁니다.”

“그래도 조금 부족할 겁니다. 어느 정도 수준을 바라고 있으신지….”

조금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

그렇지만 답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앞으로 파란에 품위유지비 같은 것은 없습니다. 파티원과 간부들 복지로 매달 빠져나갔던 품위 유지 비용을 빼도록 해주세요. 남는 예산의 일부를 투입하면 될 겁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노예들을 부리는 게 더 낫다.

‘품위 유지는 개뿔.’

간부와 파티원들이 받고 있는 연봉만으로도 품위유지 같은 건 하고도 남는다.

애초에 따로 이 돈을 처먹었다는 게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장담컨대 길드의 구태세력들이 없었다면 파란은 더욱 큰 길드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물론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 그리고 외교 간부의 비용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다만 받는 금액을 30% 삭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받아먹고 싶은 것이 솔직한 탐관오리의 심정.

애초에 밖으로 나갈 일이 많으니 따로 써야 될 일이 있을 것이다.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다.

왠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점심시간은 딱히 두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먹고 싶을 때, 시간도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자유롭게 먹고 싶은 걸 먹습니다. 이건 지금 길드 직원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내일 아침에 따로 공지해 주세요.”

“네.”

“간부만 사용했던 편의시설도 모두 개방할 겁니다.”

“네? 모든 길드원이 사용하기에는 조금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닌지….”

“예약제로 운영하겠습니다. 물론 파티원이나 간부에게 우선예약의 권한이 있는 걸로 하는 게 좋겠군요. 사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시설입니다. 썩히는 게 아깝지요. 어차피 원정을 나가 있는 동안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거 아닙니까.”

‘효율적으로.’

“아, 알겠습니다.”

“평길드원이나 길드직원들을 대상으로 마법이나 검술, 혹은 제국법을 공부할 수 있는 클래스를 운영하겠습니다. 마법 클래스는 정연 씨… 검술 클래스는… 이상희 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아니, 이상희 님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예산은 얼마나 들어갈 것 같습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천천히 계산하기 시작.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이 필요한 일은 박덕구가 해주면 되고 그동안 늙은이들과 간부들이 받아 갔던 품위 유지비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예산이 남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인턴을 부릴 거면 이게 맞아.’

고용하려고 하는 인턴들이 무료로 일해 줄 1년의 고용 기간에 쓸 임금보다 직원 복지에 쓰이는 비용이 훨씬 덜 들어간다.

별것도 아닌 걸로 생색내는 것을 대가로 마음대로 노예들을 부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

애초에 이해득실을 따지며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아니, 계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각해 보니 괜찮을 것 같군요. 오늘 잔업은 숙소에서 각자 하는 걸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퇴근하시고 제가 검토해야 될 서류는 방으로 직접 가져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중기 씨가 가져오시면 됩니다.”

“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네. 공사는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길드 마스터의 결재는….”

필요없다.

“마스터의 결재는 필요 없습니다. 이후에 제가 직접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애초에 자질구레한 것들은 굳이 결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김현성이다.

결재를 위한 보고서를 만드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녀석 역시 길드 마스터로서 해야 할 업무들이 있으니 지금은 그쪽에 더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럼 시작하도록 합시다.”

“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박덕구의 등을 한차례 두드리자 녀석 역시 고개를 끄덕여왔다.

내가 원한대로 공사는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됐다.

단순한 노동을 위한 인력은 많다.

린델 노동 조합에서 기술자들을 싼값에 고용하고 광장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불러 모았다.

푼돈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나 그려주고 있었던 이들에게도 꿈을 펼칠 기회였을 것이다.

허한 공간은 무료로 자신을 홍보하기를 원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판매하지 않는 작품까지 기부하겠다는 이들이 넘쳐났다.

예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40골드, 50골드에 자신의 그림이나 조각상을 판매하던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넘쳐났다.

‘예술가들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니까.’

박덕구는 신나게 늙은이들의 집무실의 벽을 부셔가며 이런저런 일을 해왔는데, 수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녀석의 의견을 다수 받아들였다.

머리 쓰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관심 없었던 박덕구도 관심을 가질 환경이니 계획이 꽤나 잘 돌아가고 있는 도중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기영 님, 남는 공간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저희 길드의 육아 복지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지원금은 나오고 있습니다만….”

“아, 그렇다면 일할 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 집을 내부에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 보육 교사로 일했던 분이 있으면 저한테 보고하도록 해주세요. 지금 길드에 가정을 꾸린 가구가 몇 가구가 있죠?”

“세 가구입니다.”

“거의 없군요.”

“아무래도 조금 결혼을 꺼리는 편이라….”

부모가 길드에 충성을 맹세하면 그 자식 역시 길드에 충성을 다할 확률이 높다.

짧게 일할 노예가 아니라 평생을 바쳐 일할 노예를 육성해야 한다.

육아 복지와 출산 휴가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옳은 판단, 임신했다는 이유로 길드에서 내쳐지는 늙은 기업 이미지 따위, 버리는 것이 옳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길드의 모습이 바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기존에 있었던 인원들에게도 무척 좋은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우리 길드가 바뀌었다는 걸 홍보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부분.

린델일보에게 연락하는 것은 물론 운송 조합에 내걸 광고판을 만드는 것도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타이틀은….

[꿈의 직장, 꿈의 길드 파란]

또는.

[완전히 달라졌다. 파란의 길드직원이 이야기하는 파란이 꿈의 직장인 이유 23가지]

정도가 있을 수 있으리라.

직원들의 복지와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분위기,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근무환경과 개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복지까지.

모르긴 몰라도 조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 만들어진 길드의 모습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수준.

물론 미비한 부분도 눈에 띄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도 나름 인간적일 것이다.

너무 완벽해 보인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좋지 않다.

“입소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길드원들을 계속해서 교육해 주세요. 언론보다 중요한 게 여론입니다. 퇴근한 이후에는 길드원들을 주점을 보내서 회식비를 지원하세요. 길드 사정상 회식비로 지출할 수 있는 한도는 정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네. 실컷 웃고 떠들고 오세요. 물론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혁신. 중요한 건 혁신입니다. 길드직원과 평길드원 분들에게도 계속해서 이미지를 심어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젊은 길드와 혁신입니다. 그게 우리 길드가 외부에 내걸 이미지입니다. 회식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개발을 멈추지 마세요. 중기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첩 스탯이 좋으신 것 같은데… 재능을 썩히는 건 아까우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길드휘장은 왜 하고 다니지 않는 겁니까?”

“네? 아… 그건 간부님과 파티원분만 착용할 수 있다고….”

“하… 이 미친 늙은이들이….”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앞으로는 평길드원과 직원분도 전원 휘장을 착용합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특히 전원이 착용하도록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길드의 얼굴입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외부에서 사고를 일으킨다면 목이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단순히 예를 들어 협박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목을 날릴 거예요. 그걸 잘 알아두도록 하세요. 추레한 모습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통일된 복장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깔끔하고 말끔한 모습으로 다니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계획은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로 여론 조사도 나쁘지 않은 상태.

현재 길드의 남아 있는 인원들을 조금 챙겨주고 분위기를 바꿔준 정도로 자신들끼리 앞다투며 길드를 홍보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의 여론도 아주 좋다.

실제로 아직 지원기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심심치 않게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이후에는 입단 설명회와 길드 내부를 공개하는 언론 플레이를 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 와중에 일의 능률이 올라간 것은 조금 의외라고 할 수 있는 성과.

밖에만 나가도 심심치 않게 파란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였으니 인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지사.

당연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아닌 긍정적인 시선이었다.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고 파란이 과연 일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시선은 ‘파란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됐다.

애초에 우리와 하나였던 붉은용병과 검은백조 역시 다시금 손을 내밀기 시작하니 거대 자본을 등진 젊은 길드라는 이미지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사고를 쳤던 늙은이들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

일단 직원들이 활약을 해주고 있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아마 이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단기간 내에 린델에 소문이 자리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보낸 회식도 일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미 대형 길드의 소속되어 있는 안내인들도 이쪽에 관심을 가질 정도니 파란의 길드원 교육이 얼마나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최악이라고 느껴졌던 기존 길드원들도 나름대로 마음에 들기 시작한 상황.

‘요즘에는 보고서도 제때 올라오고….’

기존에 보였던 거지같은 실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아직까지 유능한 노예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이 보였지만 최소한 본인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서도 계속해서 외부에 여론을 신경 써야 되는 상태.

버틸 만큼 버텼지만 더 이상 길드의 빈자리를 소수의 인원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까지 치달았을 때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모집공고를 돌렸다.

조금은 불안한 심정으로 말이다.

[파란 인턴십 모집 공고]

[파란과 새로운 가족이 되실 분을 찾습니다. 정식 길드원 전환 가능]

떨리는 마음으로 외부의 반응을 살펴본 이후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폭발적.

“파란 공채 떴다.”

“내가 모집한다고 했잖아.”

“전투직군도 뽑는 거 맞아?”

“아….”

린델이 시끄러워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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