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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3화 (102/1,590)

# 103

회귀자 사용설명서 103화

구태세력(4)

단순히 손발이 잘 맞는다는 수준이 아닌 것 느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지혜가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고유 능력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슬쩍 상태창을 뒤져봤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 그냥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한 것 때문이리라.

이런 종류의 사람은 아군이라면 무척 도움이 되지만 적이 된다면 까다로워진다.

조금 더 이쪽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 살짝 표정을 바꾸니 곧바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그냥 고마워서 그렇지. 솔직히 이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내 생각보다 더 잘해준 것 같아서.”

“처음 맡긴 일인데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거죠. 이쪽도 그쪽 덕을 톡톡히 봤으니까. 뭐 당연한 거예요. 징그럽게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으니까.”

“…….”

“정 보답하고 싶으면 라면이라도 먹고 가시든가.”

그건 불가능하다.

“미안. 이쪽도 나름대로 할 일이 있어서. 대신 다른 쪽으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

“그것 외에는 딱히 없어요. 일이나 제대로 해결해요.”

“물론.”

“저번에 한 말 기억하죠, 오빠?”

“응.”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네요. 우리 하얀 씨가 불안해하시겠다.”

“알겠어. 다시 한번 고마워.”

살짝 방문을 열자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정하얀이 보였다.

그 옆에는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는 검은백조의 안내원들이 보이는 상황.

아무리 옆방에 있었다고는 해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적어도 이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주고 싶은 심정.

이전보다는 조금 자제력이 높아진 것이 눈에 보였다.

뭔가 성장한 아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싱긋 웃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머, 하얀 씨.”

“아… 네… 지, 지혜 씨.”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지셨다. 던전에서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아? 아? 네….”

“기영이 오빠도 좋으시겠네요. 이렇게 예쁜 애인을 둬서.”

“아… 그… 고마워요, 지혜 씨.”

이지혜가 이쪽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먼지를 털어내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행동에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진다.

왠지 모르게 자신과 나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적당히 선을 지키고 있는 게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두 분 모두 식사라도 하시고 가는 게 어떠세요? 우리 길드 마스터도 한 번 뵙고 싶어 하시던데.”

“지금은 조금 상황이 그래서, 나중에라도 시간을 꼭 낼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약속하신 거예요? 하얀 씨랑 오빠 둘 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정하얀과 나에게 입을 열고 있는 이지혜를 보고는 다시 한번 이 여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정하얀뿐만이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저 여자를 상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곧바로 이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는 제가 길드로 한 번 놀러갈게요, 오빠. 하얀 씨도 같이 식사라도 해요.”

“네? 네.”

“응. 언제 시간을 정하는 게 좋겠네. 그럼 다음에 보자, 지혜야.”

어느 정도 고쳐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질투심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손을 흔드는 이지혜에게 눈인사를 대충 하고 방을 빠져나가니 안내원들이 우리를 밖으로 인도했다.

나오는 그 순간까지 이쪽에 계속해서 인사를 해오는 것을 보니 정말로 검은백조에서 우리를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

‘그럴 만하지.’

이지혜의 말대로 언제 어떻게 이적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단언컨대 김현성이 자신의 길드를 꾸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 역시 무조건 검은백조로 향했으리라. 그만큼 지금의 파란에는 메리트가 없다.

분명히 나올 때만 해도 해가 떠 있었는데 벌써 어둑해진 밤이다.

조금은 운치가 있다.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정하얀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해가 지고 있는 린델은 조금 예뻤으니까. 아마도 좋은 분위기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나 역시 비슷한 기분을 느끼기는 마찬가지. 분명히 평소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정하얀이 아름다워 보인다.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정하얀과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우우우웅-

‘뭐야.’

갑작스레 율리에나가 천천히 울리기 시작한 것.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정하얀이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입을 우물거리고 있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정하얀이 뭘 하고 있는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정하얀을 중심으로 미세한 마력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주문?”

도심 한가운데서 주문을 외울 일은 없다. 혹시라도 분위기에 취해 저주받은 신단 때처럼 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에 대해 떠올렸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은 순식간.

‘개….’

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바람의 보호!”

동시에 정하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정하얀의 보호막 안에 있어서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폭발의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져 와 내부가 흔들렸다. 울컥 튀어나오려는 피를 가까스로 다시 집어넣는다.

“제기랄.”

“오빠! 이, 이쪽으로! 바람 발걸음!”

폭음을 뒤덮은 뒤로 연기를 헤치고 지나간 것은 당연지사.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폭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아아아아악!”

“으아악!”

“살려… 살려줘!”

몇몇이 폭발에 휘말렸지만 저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내 팔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 정하얀의 표정에 깃든 절박함이 지금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휘말렸는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상황.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

‘어째서?’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는 분명히 나와 정하얀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짓을 저지른 놈들이 누구인지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도시 안에서? 제정신인가.’

내 목숨을 노릴 만한 인간은 린델 내에 한 명밖에 없다.

미친 늙은이 이설호.

‘안일했어.’

설마 도시 안에서 이런 개짓거리를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경우는 있는 늙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다.

이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뇌는 없는 모양이다.

‘정말로 제정신인가?’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

나와 정하얀을 노리고 있는 이들은 이설호가 따로 밑에서 부리는 자들 일 터, 혹은 야마토 길드의 일원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이쪽이 위협당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정하얀이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하얀아, 이쪽 길이….”

“저, 저쪽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두 명이 아니군.’

상대는 조직적으로 이쪽을 노리고 있다. 첫 폭발 이후에 폭발음이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마력은 느껴진다.

“바람의 보호!”

화살 한 발이 정하얀의 마법에 가로 막힌다.

일직선으로 달리던 정하얀은 다시 한번 방향을 꺾기 시작, 저 앞에도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마치 우리를 어디론가 몰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괜스레 초조해져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날아 들어오는 원거리 공격은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한계가 온다.

정하얀이 아무리 캐스팅을 빨리 한다고 해도 사방에서 덮쳐오는 공격을 전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는 있지만 평범한 보호 마법 말고는 외울 수 있는 주문이 없는 것이 현실, 일단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버티면 돼.”

“네?”

“파란이든 이지혜든 간에 분명히 이쪽으로 올 거다. 도시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폭발음도 들렸으니까 분명히 이쪽으로 올 거야.”

“아! 네… 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겠네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율리에나.”

품 안에 있던 검이 공중으로 튀어나간 것은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율리에나가 우리의 뒤를 노리던 궁수를 꿰뚫어버린 것.

이쪽을 향해 날아오던 마법은 다시 한번 정하얀이 막아낸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깐 동안 정체되어 있던 폭음이 다시금 들려온다.

율리에나가 몇 명을 붙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도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도대체 몇 명을 동원했는지, 어디에서 공격이 날아오는 건지, 우리를 노리는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는다.

지금 이곳으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이들은 틀림없이 훈련받은 암살자들일 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제기랄.’

쾅!

정신없이 뛰고 있을 때 옆에 있는 벽을 뚫고 나온 기다란 창.

“율리에나!”

콰득!

하늘에서 떨어진 검이 나를 향해 날아오던 창을 내려찍는 것이 보였다.

구경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

‘멈추면 죽어.’

멈추면 죽는다.

“이런 미친놈들….”

“제, 제가 지켜드릴게요, 오빠.”

“무리하지 마.”

이딴 어처구니없는 일로 목숨을 잃거나 정하얀을 잃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오히려 내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정하얀을 살려가는 게 맞다. 최악인 것은 숨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 낮은 체력 스탯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워 지는 순간이었다.

“오빠!”

멈추려고 하고 있는 발을 계속해서 움직였을 때 들려온 것은 정하얀의 목소리,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자 이쪽으로 다가오는 검이 보였다.

“율리에….”

율리에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정하얀이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괜스레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 앙증맞은 손이 나를 밀치자 자연스럽게 몸이 기울어진다.

땅바닥에 넘어졌을 때 시야에 비친 것은 가슴에 검이 박힌 채로 나를 감싸는 정하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장면에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길, 제길. 율리에나! 율리에나!”

“내 이름….”

“율리에나! 제기랄! 율리에나!”

“내 이름 불러줘요. 오빠….”

“하얀아. 하얀아, 정하얀!”

“잠깐만 이대로… 있….”

다시 한번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정하얀의 배로 검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를 꽉 껴안은 채 어떻게든 웅크리며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보호! 보호!”

반지에 내장되어 있는 보호 마법이 발동되지만 형편없이 부서지는 상황.

그 와중에도 정하얀은 몸을 움찔거리며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제기랄… 제기랄! 떨어져!”

“싫어….”

“저리 안 비켜? 이 멍청한 년아!”

“미움… 받았다.”

‘죽어.’

정하얀이 죽는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했지만 껌딱지처럼 이쪽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더욱더 초조해졌다.

“바람의 보호….”

“바람의 보호고 나발이고 비키라고! 씨발!”

‘죽어.’

정말로 죽는다.

“당장 꺼지라고!”

‘죽어.’

정하얀이 죽는다.

입술을 꽉 깨물어 계속해서 정하얀을 밀어내지만 그러기에는 역부족, 계속해서 내 몸으로 정하얀의 피가 떨어진다.

“제기랄! 제기랄! 비키라고! 이 멍청한 년아!”

거대한 굉음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그 뒤로 들려온 것은 익숙하다면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목소리.

“어이가 없네. 진짜로 어이가 없어. 나를 호구로 보고 있는 새끼들이 린델 내에 많았나 봐?”

“…….”

“용병여왕의 정부한테 검을 들이밀어?”

우리 앞을 막아선 것은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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