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회귀자 사용설명서 070화
언론(3)
“좋은 기사네.”
어느 정도는 달라지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나 린델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대형 길드의 이권 문제에 대해 꼬집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부분.
단순히 정유라를 공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분위기를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던전 내 대형 길드의 패악질, 이대로 괜찮은가.”
‘아주 좋아.’
이런 종류의 타이틀은 꽤나 심금을 울린다.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사를 읽고 접하는 대중은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을 한두 번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던전 내에서 일어난 상황 뿐만이 아니다.
사냥터에서, 무기 상점에서, 단순히 길을 걸어가다 갑질을 당한 경험이 한두 번은 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나는 린델 내에서 그런 취급을 당해본 적은 없지만 중소 길드의 모험가들은 틀림없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통 받고 있었을 것이다.
린델 내에서 대형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회의 상류층.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구에서의 대기업 이사의 자리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본인이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무력도 가지고 있으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패악질이 도시 내에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단순히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용병이나 파란 같은 경우에는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검은백조 같은 경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대중들은 피해자인 나를 자신들에게 투영하여 내가 당한 일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 준다.
눈치 빠른 대형 길드들은 우리는 검은백조와 다르다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시대에 편승하기 위한 중견 길드와 소형 클랜들 역시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는 상황.
종류는 다르지만 마치 사회운동의 한 종류처럼 보일 정도였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곧 권력이며 힘.
아무리 본인의 무력이 강하다고 한들, 그걸 받쳐 주는 구성원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중산층이 사회의 톱니바퀴를 힘들게 움직여주고 있는 덕분에 나와 같은 상류층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거다.
내가 제조한 포션을 구입해 주고, 던전에 대한 정보를 물어와 준다.
붉은용병 길드가 운영하고 있는 무기 상점을 이용하는 것도, 마도 길드에서 마법학 강의를 돈을 내고 들어주는 것도, 검은백조에서 판매하고 있는 싸구려 정보들을 사주는 것도, 다른 대형 길드에서 판매하는 소비 아이템과 재료 아이템을 처분해 주는 것 역시 민중이다.
민중이 없으면 상류층은 유지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이 잘났다고 한들,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밑에 있는 자들이 우리 같은 자들을 받쳐주고 올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잊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고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장소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대형 길드에서도 언론에 굳이 손을 뻗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아니, 어쩌면 언론 자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언론이라는 장치는….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니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조금 더 확실하기 위해 버려둔 것이겠지만 선점하는 자가 나온다면 이야기는 당연히 달라진다.
아마 모두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여론이 등을 돌린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효과는 굉장했다.
검은백조 길드가 운영하고 있는 모든 사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중견 길드와 중소길드, 이름 있는 탐험가나 모험가들이 검은백조와 던전을 공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일부는.’
붉은용병의 차희라에게 알랑방귀를 끼기 위해.
‘일부는.’
단순히 시대에 편승하기 위해.
‘또 일부는.’
억압받았던, 소외되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함께 일어났다.
아마 먼 미래 역사가가 오늘을 평가한다면 꽤나 할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던진 작은 돌멩이가 문화 혁명 수준으로 번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식사를 대충 마친 뒤에 살짝 밖으로 나가니 역시나 기자들이 들이닥치는 것이 보였다.
당연하지만 모습을 보인 기자들은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이 아니다. 뒤늦게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든 이들.
아니나 다를까 이쪽에 조심스레 질문을 퍼붓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잠깐 말씀 좀 묻겠습니다. 정유라 씨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아직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불편하시겠지만 혹시 정유라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추후에 공식적으로 기자 회견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정유라 씨의 발언이 붉은용병과 파란의 협연에 대한 발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신지….”
“아직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거, 너무 달라붙지 마쇼!”
“괜찮다, 덕구야.”
언론인에게는 친절해야 한다.
언론과 권력자는 영원한 친구니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검은백조 길드 보이콧에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계시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질문을 던진 녀석은 꽤나 익숙한 얼굴.
‘김성경이라고 했나.’
아마 그럴 것이다.
이 정도 질문에는 대답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번 일이 진실인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얼마나 많은 분이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게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지금껏 많은 분이 느꼈던 부당함이라는 고름이 터진 것이겠지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혹시나 많은 분이 화를 당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이상입니다.”
뭐, 이 정도로 말하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일 것이다.
“방금 그 말은 던전 내에 있었던 위협 행위가 사실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보이콧을 지지하는 말씀이십니까?”
“한편으로는 지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닙니다. 그저 이번 일로 인해 2차 피해가 생기지는 않을지가 걱정될 뿐입니다.”
애매모호한 화술이 이럴 땐 꽤나 편하다.
나는 검은백조와 척을 지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검은백조와는 원활한 소통 창구를 만들고 싶을 정도다.
원하는 건 정유라밖에 없다.
“차희라 님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추후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태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모험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입장상 무척 난감합니다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회에 부당함에 저항하는 여러분의 행동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고 있는 것보다 여러분 개개인은 훨씬 영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말고 행동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내 말을 받아 적는 기자들이 시야에 비쳤다. 아마도 내일이면 기사로 나갈 타이틀이 눈에 보인다.
[상실감 느끼고 있는 모험가들의 심정, 십분 이해해.]
라든가.
[보이콧 지지하기는 하지만 2차 피해 우려]
이런 종류의 기사들 말이다.
아마 내 생각보다 더 자극적으로 뽑아줄 수도 있다.
이쪽으로는 저들이 전문가니까.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슬쩍 기자들을 지나치는 와중에도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져 내렸지만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
피해자의 모습을 연기하는 나로서는 최대한 이야기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중의 해석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니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바로 옆에서 박덕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소, 형님.”
“그러게 말이다.”
“뭐, 앞으로는 행동도 좀 조심해야 될 것 같고… 뭐, 그럽디다.”
“그냥 평소대로 행동해도 상관없을 거야.”
“그러고 보니 오늘 붉은용병에서 입장 발표한다고 하지 않았소?”
“응. 그렇지.”
아마도 유감을 표할 것이다.
굳이 검은백조 전체에 대한 비난여론을 확신시키려고 하지 않겠지만 정유라 개인에 대한 비판과 용병여왕 차희라를 언급하며 했던 발언에 대해서 몇 마디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세간에 정유라가 차희라를 모욕했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붉은용병은 뭔가 액션을 취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마 일주일 이내에….’
검은백조도 입장 발표에 들어간다.
사실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
내부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 검은백조가 당황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 죽이고 싸우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인간들이 갑작스럽게 대중 앞에 서 발표를 한다니 막막할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질 정도니까.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당장 대응팀을 꾸려 이쪽과 어떻게든 접촉하려고 했을 것이다.
단순히 접촉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액션이 된다.
만약 검은백조에 유능한 두뇌가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번질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선희영이 다가와 입을 열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기영 씨?”
“네.”
“검은백조 길드에서 찾아왔어요.”
‘그렇지.’
지금 이 시점까지 행동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영 생각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누가 왔죠?”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사과를 위해 찾아온 것으로 보였어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까?”
“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선희영.
살짝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에 곧바로 길드의 응접실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시야에 비쳤다.
사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유라.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검은백조의 중역들도 눈에 띈다.
근신이 풀린 이설호를 비롯한 파란 길드의 고인 물과도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니 나뿐만 아니라 파란 길드와의 접촉도 고려하고 있는 모양.
‘미친 늙은이.’
이때다 싶어 숟가락을 올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전부 깔아놓은 판에 탑승하려고 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거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하하하하. 아닙니다. 일단은….”
짜증이 치솟는다.
그때 한쪽에 앉아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이지혜?’
튜토리얼 던전에서 김현성이 만든 쉼터를 관리하고 있던 여자.
이쪽과 어느 정도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맺고 있었던 여자였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 어딘가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검은백조에 들어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조용히 우리 쪽의 고인 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꽤나 익숙하다.
‘하.’
[플레이어 이지혜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이지혜]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29]
[성향-이기적인 야망가]
[직업-지휘관]
[능력치]
[근력-09/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11/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1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29/성장한계치 희귀 이상]
[내구-1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1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마력-0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총평-축하합니다. 플레이어 이기영. 영혼의 단짝을 다시 한번 만나셨군요. 이쯤 되면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네요. 이미 한 번 이어진 적이 있는 것 같지만 다시 한번 이어지는 것은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앞으로 태어날 2세가 너무나도 불쌍하니까요. 항상 행동을 조심하도록 하세요.]
여전히 눈웃음을 살살 보내며 우리쪽 늙은이들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 이쪽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슬쩍 이쪽을 바라보던 이지혜가 반갑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오빠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