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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7화 (66/1,590)

# 67

회귀자 사용설명서 067화

가장 중요한 것(2)

[희귀 등급 던전, 공포의 정원의 공략을 완료하셨습니다. 인원[18/30]을 확인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무척이나 기분 좋은 목소리다.

모두의 얼굴에 조금이지만 성취감이 깃들어져 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최영기를 향해 슬쩍 입을 열었다. 물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순한 첫 공략에 대한 감상이었다.

“보통 희귀 등급의 던전은 대부분 이런 식입니까?”

“네. 조금 단조로운 편입니다.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공략이 완료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영웅 등급의 던전이나 전설 등급의 던전은 듣기에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부끄럽지만 사실 저도 아직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아아.”

“실제로 전설 등급의 던전은 신성제국에서도 딱 한 번 발견됐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군요. 영웅 등급은 조금 많은 겁니까?”

“사실 영웅 등급의 던전도 그다지 흔하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공략한 이 공포의 정원 역시 희귀 등급 중에서도 하급으로 보이는 것 같았는데, 다른 던전 같은 경우에는 구성이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간에 중간에 조금 불편한 상황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더 죄송합니다.”

슬쩍 고개를 숙여오는 최영기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얼굴을 보니 대충 하는 말이 아닌 모양.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해서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괜스레 가슴 한쪽이 콕콕 찔려오기는 했지만 당연히 티를 낼 수는 없다. 그저 슬쩍 웃으며 부정할 뿐이다.

“사실 덕분에 좋은 경험도 하고 던전이라는 게 어떤 곳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템도 좋은 아이템으로 받았고….”

“아뇨. 받을 만큼은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붉은용병뿐만이 아니라 마도 길드 역시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오히려 더 챙겨주지 못해 죄송할 지경입니다.”

“하하하.”

슬쩍 옆을 바라보니 김현성 역시 마도 길드의 인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지금 나와 최영기가 나누는 대화와 비슷한 형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다든가, 나중에 식사 한번 하자는 약속 같은 것들 말이다.

정유라가 나간 뒤에 파티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아마 조만간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자리가 생길 것 같기도 했다.

본래도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지만 모두가 눈엣가시라고 생각했던 정유라가 사라지며 원정대가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 화목해진 것은 당연지사.

사냥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정유라라는 국민비호감이 사라지며 원정대가 국민대통합을 이룬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사실 상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전체적으로 내구 능력치가 낮은 검은백조 때문에 붉은용병의 부담이 가중되어 있었던 것.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사라지자 붉은용병 길드의 전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각 길드 내에 있는 사제들 역시 본연의 임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유라가 원정 내내 크게 짖었던 이유가 드러난 셈이다.

자신들의 파티가 던전 공략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만약 정상적인 형태로 던전 공략이 완료되었어도 그녀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손익으로 계산해 보자면 그녀가 중간에 빠진 것이 그녀에게는 득이 된 셈이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보상으로 나온 아이템을 가져가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정말 괜찮겠습니까?”

“네?”

“검은백조 길드에게 분배되는 아이템들 말입니다.”

“아아아. 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성 씨도 정산 비율을 그대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렇다고는 해도 큰 활약을 해주신 파란에게 조금 더 몰아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데….”

“덕구가 받은 방패만으로 충분합니다. 사실 지금도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살짝 고개를 돌리니 탱커직군의 선배들에게 둘러싸인 박덕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꽤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희귀 등급 중에서도 상급으로 분류되는 방패를 얻은 게 무척 좋은 모양이다.

사실상 우리 파티가 이번 원정에서 얻은 것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무구였다.

[뿌리 방패-희귀 등급]

[정원의 주인 아라키가 식물의 뿌리로 만든 단단한 방패입니다. 본래는 정원을 지키는 경비에게 장비시킬 방패였지만 정원 내에 있는 모든 인간이 저주를 받으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방어력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켜 줍니다. 내구도를 자체적으로 수복할 수 있습니다.]

[체력 +3]

[내구 +2]

[마력 +1]

‘좋아 보이네.’

특히나 내구도를 자체적으로 수리할 수 있다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가성비가 좋은 초보자 장비 같은 느낌이다.

능력치도 상당한 수준이니 박덕구의 성장에 탄력이 붙을 것이다.

본래는 저 방패 역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할 아이템이었으나 모든 전위가 박덕구에게 양보해도 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아마 저들만의 신고식인 것 같지만 초행에 저런 종류의 아이템을 얻은 건 박덕구에게는 천운인 셈.

들어오자마자 불쌍한 모습을 보인 게 정말로 설계가 아닌가 다시금 떠올려 볼 정도였다.

그 외에도 여러 아이템이 있었다.

애초에 공포의 정원은 한 인간이 만든 실험실이었고 신의 저주를 받아 모두가 괴물로 변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력의 정수나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도 많았고 내가 봐도 값이 꽤나 나가는 것들 투성이었다.

던전 공략이 돈벌이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사실 붉은용병과 마도 길드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 우리들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려 했지만 정말 필요한 것들 빼고는 다른 분들이 나누어 갖는 것이 맞다는 김현성의 발언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성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후를 위해 친분을 다지는 것이 좋을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은 아쉽게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던전 공략 중간에 내쫓겨 나간 검은백조 길드, 정유라에게 돌아가게 될 몫이었다.

이 대화 주제는 꽤나 오랫동안 원정대의 화두에 오르기는 했지만 검은백조 길드의 체면을 생각해 이전의 비율로 분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입장에서도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합당한 활약을 한 파란에서 더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혹시라도 이후에 압력을 생각하고 계신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어떻게든….”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하하. 사실 분란을 일으킨 것은 정유라 씨라고 많이들 말씀해 주시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희 파티에게 아예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덕구가 넘어진 것도 그렇고 그 후에도 잔 실수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건….”

“화를 내시는 게 당연한 거겠죠. 아마 던전 중간에 나가야 했던 상실감이 클 겁니다. 얼마 안 되는 보상으로라도 위로가 된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닙니까.”

“하하하. 괜히 부끄러워지는군요. 아이템 몇 개에 손익을 계산하고 있는 제가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이 자유 도시 린델 내에서 기영 씨처럼 따뜻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예전에 버림받은 자들의 성녀라고 불린 선희영 님이 왜 파란에 들어가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군요.”

사실 그 누구보다 계산하고 있는 건 나였지만 굳이 이쪽을 띄어 주는 것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이쪽이 검은백조에게 많은 부분의 지분을 넘기자고 한 것도 그 손익계산에 비롯된 행동이니만큼 양심이 찔리기는 찔린다.

어차피 검은백조 길드에게 들어갈 지분은 전부 이쪽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각자의 길드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까?”

“예. 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은 자재는 일주일 내에 정산이 되서 지급될 겁니다. 물론, 공략이 완료된 던전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아아.”

“물론 아무 의미 없는 문서입니다만… 하하. 없는 것보다는 나으실 겁니다. 그럼 이만 저희도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원정이었던 만큼 조금 쉬고 싶군요.”

“네. 살펴 들어가시죠. 추후에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한잔하시기로 한 일 까먹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하하. 기다리겠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훈훈하다.

아무래도 정유라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약간은 든다.

진정한 대통합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괜한 감동이 밀려올 정도였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파티원들이 결국에는 자유 도시 린델을 앞에 두고 찢어지는 것을 보니 서로 다른 집단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지만 이건 아주 사소한 이야기다.

이 원정대는 서로의 신뢰를 확인했고 이 인연은 아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만큼이나 우리 파티 역시 모두 기분이 좋아 보인다.

우리에게 여러 경험을 줄 수 있었던 김현성, 새로운 방패를 얻은 박덕구와 묘하게 기뻐하고 있는 김예리도 눈에 들어온다.

물론 그동안 봉사를 하지 못했던 선희영이나 단둘이 있을 시간이 부족해 힘들어 하던 정하얀 역시 마찬가지.

꽤나 쓰잘 데기 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파란의 길드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곳이 집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즐겁기도 했다.

길드의 접수원에게 보고를 마치고, 던전에 관한 수기를 기록하는 것은 필히 해야 하는 일.

당연하지만 부길드 마스터인 이상희도 만나야 했고, 비율이나 정산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도 나눠야 했다.

우리가 파란 길드의 소속인 만큼 우리가 얻은 것들을 파란 길드와 협의 하에 분배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만은 없다.

애초에 파란이 없었다면 물지도 못했을 일거리인 만큼 오히려 이런 자리를 소개해 준 것이 고맙다.

중소형 길드는 애초에 이런 기회조차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간에 공략 후에도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상황.

그렇지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따로 있었다.

“하얀아.”

“네, 오빠.”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네? 네!”

“현성 씨, 저희는 잠깐 먼저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덕구야, 식사는 먼저 해라. 희영 씨도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박덕구가 뭔가 음흉한 표정을 보내기는 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곧바로 정하얀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홍시같이 붉어진 얼굴을 보니 내가 뭔가 오해할 만한 행동을 했다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던전 안에서 참아야 했던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정하얀을 본다.

“오, 오빠”

“하얀아.”

“네? 네?”

“가벼운 부탁 좀 해도 될까?”

“물론, 물론이에요. 물론! 어떤 거든 다 하셔도 돼요. 전부… 전부요!”

‘얘 왜 이래….’

“전부 괜찮아요. 원하시는 거라면 뭐든! 전부 준비되어 있어요. 말, 말 그대로 전부요!”

왠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격하게 기대하고 있는 표정을 보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렇지만 일단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린델 내에 있는 언론사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줄 수 있겠어?”

“아….”

역시나 실망했다는 얼굴.

하지만 살짝 얼굴을 가져다대니 몸이 경직되듯 굳는다.

슬쩍 정하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는 것으로 감사의 표현을 대신하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가 시야에 비쳤다.

“네….”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

성과를 내면 상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약속되어 있는 사실을 기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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