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회귀자 사용설명서 060화
던전 공략은 정치다(2)
물론 이해가 가기는 한다.
타 길드의 입장에서는 우리 파티를 위해 꽤나 많은 걸 양보해 준 셈이니까.
사실 우리 파티는 이곳에서 스펙이 가장 떨어진다.
경험이 가장 부족한 것도 우리 파티다. 던전행뿐만이 아니라 사냥 자체도 처음이었고 그 사실을 저들도 잘 알고 있다.
꽤나 많은 걸 양보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김예리 같은 꼬마가 눈에 띄었다면 나였어도 한소리 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자. 그런 말 하지 말고 즐겁게 갑시다. 즐겁게.”
“던전 탐사를 어떻게 즐겁게 할 수가 있어요. 최영기 씨.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요. 아무리 많은 인원이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게….”
“전체적인 스펙이 높다고는 해도…. 후우…. 저희는 어디 관광을 온 게 아니에요. 언제든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요.”
“저희가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와중에도 붉은용병의 최영기가 이쪽의 눈치를 보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마도 차희라에게 뭔가 언질을 받은 모양이다.
이후에 빈 말이라도 한번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붉은용병을 믿지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큼큼… 분위기가 조금 불편해 진 것 같군요. 뭐, 분위기라도 환기 시킬 겸 간단한 브리핑이라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들어갈 던전은 전해 들으셨다시피 희귀 등급의 던전입니다. 던전의 이름은 공포의 정원으로 식물형 몬스터들이 주를 이룰 거라는 길드의 분석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정말로 분위기를 환기시킬 목적으로 이야기를 꺼낸 듯.
길을 걷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파티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는 걸 보니 최영기라는 녀석의 성격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형님, 저 형씨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소?”
“응.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박덕구 역시 이런 소리를 해올 정도였다.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
단순히 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법 리더의 자질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탱커가 있다는 것은 꽤나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침착하고 사람들을 잘 다를 줄 알고 실력도 괜찮다. 분위기를 잘 읽고 갈등을 최소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최영기는 확실히 베테랑이다.
박덕구가 목표로 할 만한 탱커였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던전에 다다랐다.
수많은 가시덤불들이 모여 있는 곳을 헤쳐 지나가는 것은 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걸으니 던전의 입구를 내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조그만 해?’
묘한 마력이 느껴지는 입구.
한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입구다.
오히려 튜토리얼 던전이 조금 더 웅장해 보일 정도였다.
이런 입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동안 찾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영기는 잠깐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천천히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입 순서는 저희가 첫 번째, 검은백조, 마도, 파란 순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곧바로 전투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최대한 곧바로 전투 준비를 한 이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한두 명씩 허리를 숙이면서 던전 안으로 진입했고 나 역시 정하얀의 팔을 잡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에 몸을 잠깐 떤 이후에는 곧바로 익숙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희귀 등급 던전 공포의 정원에 입장하셨습니다. 인원[24/30]을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에 들려온 것은 다급한 목소리였다.
“공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공간! 공간 확보 해주세요!”
진입하자마자 시작되는 거친 환영 인사에 조금 어안이 벙벙하다.
희귀 등급 특유의 마력의 때문인지 괜스레 숨이 턱 막혀왔다.
붉은용병의 근접 직군들은 최대한 들이닥치는 몬스터를 막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무척이나 괴기스럽게 생긴 식물들이다.
식물의 형태를 한 거인이라는 편이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덩치는 인간의 2배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올려다봐야 될 정도로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다.
줄기와 뿌리로 만들어진 것 같은 몸은 녀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멍하니 놈을 구경하고 있는 박덕구를 두드리자 정신을 차렸는지 곧바로 앞으로 튀어나가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덕구야.”
“아, 알겠소.”
겁을 집어 먹은 것 같지는 않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리라.
커다란 방패를 들고 앞으로 뛰어나가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타 파티의 탱커들 역시 앞으로 나서며 이쪽을 공격해 오는 덩치들을 밀어내는 중이다.
어떻게든 검사나 창병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계속해서 밀어내겠습니다. 천천히 공격 시작해 주세요.”
“어엇!”
용기 있게 튀어나갔던 박덕구가 갑작스레 중심을 잃었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놈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은 것이다.
“사제님.”
“네.”
선희영은 초행 같지 않은 모습으로 박덕구를 향해 주문을 외우고 김현성 역시 녀석을 지원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
박덕구가 없는 틈을 타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 이쪽으로 쇄도해 오는 것을 보니 솔직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시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진형이 무너졌다.
반지에 내재되어 있는 주문을 외울까 생각하기는 했지만 던전의 초입에서 쓰기에는 아깝다.
김현성이 튀어 나가는 것을 보니 괜찮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스레 불안해진다.
다가오던 괴물이 순식간에 벽면으로 처박힌 것은 바로 그때.
어느새 다가온 최영기가 녀석을 옆쪽으로 밀어낸 것이다.
콰앙!
“여기 지원!”
“알겠습니다.”
“후우….”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한 장내.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온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입구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물론 김현성은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대미지를 주었지만 나와 정하얀이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놈들이 천천히 쓰러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보다 몇 년은 이곳에 먼저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우리 파티와 차이가 크다.
단순히 기본적인 스펙의 문제가 아니다.
경험의 차이고 팀워크의 차이다.
‘안일했어.’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되자 최영기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박덕구가 상황파악이 안 되는지 벙쪄 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신 것 같습니다.”
“거… 그… 고맙소.”
“경험이 부족하면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체에 조금 힘을 싣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알, 알겠소.”
툭툭 박덕구의 어깨를 두드린 붉은용병의 최영기를 보니 괜스레 감사한 마음이 샘솟기 시작.
이쪽을 신경 써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함께 주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지만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박덕구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죄… 죄송… 합니다. 형님. 그리고… 모두들….”
“미안해할 것 없습니다. 덕구 씨. 이것도 전부 경험이니까요.”
“그래도….”
“현성 씨 말이 맞다. 덕구야. 침울해할 필요 없어. 보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면 될 거다. 다음번에 잘하면 되니까.”
“후우… 알겠소.”
“체중이 있는 만큼 공격이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질 겁니다. 자세를 조금 숙이고 바닥에 달라붙는 느낌으로 자세를 잡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조금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잘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덕구 씨.”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한 녀석이 왠지 모르게 침울해 있으니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한다.
사실 박덕구의 재능은 저기 있는 다른 탱커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른 이들에 비해 성장이 빠르기는 했지만 경험적으로나 스탯으로나 전체적으로 딸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묻어 갈 수 있는 후방 지원조와는 다르게 실수하면 티가 나는 근접 직군인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있으리라.
녀석을 위로해 주는 것이 일단 첫 번째.
순박한 녀석인 만큼 이런저런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 당연하다.
멘탈을 케어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때 앞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최영기 님.”
“네?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유라 씨?”
“그 파란 길드에서 오신 분들 말인데요. 저쪽 탱커 분은 차라리 후방에 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보니까 피지컬 자체가 조금 딸리시는 것 같은데… 저런 분이 전방에 있으면 조금 위험하잖아요. 아직 초입이라서 그렇지 후반에 가면 갈수록 저분도 위험할 것 같아요.”
말을 꺼낸 것은 검은백조의 정유라.
‘하….’
뭔가 이쪽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박덕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건….”
“이제 막 들어오신 분답지 않다는 건 알겠지만 전방에 서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네요. 경험도, 스펙도.”
“아마 금방 적응할 겁니다. 내구 능력치가 괜찮아 보이시던데… 만약의 상황이 오면 제가 이번처럼….”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만약에 영기 씨가 빠지면 진형 자체가 위험해 진다고요. 내구 스탯이 좋은 붉은용병길드와는 다르게 저희 파티는 탱커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내구가 낮아요.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무슨 사고가 생길지 알 수 없고요. 애초에 메인 탱커가… 자리를 비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만… 그걸 저한테 말하셔도….”
“그래서 건의 드린다는 거예요. 마도 길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최영기가 괜히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차희라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도 아닐 것이다. 엄연히 이 원정대는 네 개의 파티가 함께 모여 만들어진 원정대다.
한 길드에서 온 파티라면 최영기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박덕구의 배치 같은 경우에는 엄연히 우리 파티의 고유 권한이다.
만약 저런 의견을 내는 게 합당하다고는 해도 정유라는 우리 파티의 리더인 김현성에게 제안을 했어야 했다.
그것도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건의를 하는 게 옳다.
저런 식의 행동은 분란만 만들 뿐이니까.
‘저년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조금 느끼기는 했지만 저 여자가 원하는 바가 뭔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계산적인 전략가?’
어쩐지 성향부터 친근한 냄새가 풍겨온다고 했다.
정말로 던전 공략의 안전을 위하기보다는 우리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위치를 조금 더 공고히 하려는 느낌이다.
저 여자는 이런 집단 내에서 발언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인지하고 있다.
목적은 아마도 던전행이 끝난 이후에 있을 아이템 분배에서의 기여도.
애초에 우리 파티 같은 경우에는 이번 던전이 끝나고 분배할 아이템에는 관심도 없었다.
단순히 경험해 본다는 것을 목적으로 합류한 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러는 것을 보면 무임승차 하는 우리가 무척이나 아니꼬운 모양.
물론 집단 내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지만 그 방법이 꽤나 저열하고 비열하다.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선동.
이곳에서도 저런 헛짓거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네가 정치를 해?’
괜스레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식의 정치와 선동은 이쪽도 특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