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50화 (49/1,590)

# 50

회귀자 사용설명서 050화

자유 도시 린델(1)

딱히 저들을 구해줘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전투인원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나 시간 등을 생각해보면 소수 정예를 지양하고 있는 파란에서 저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파란이 우리 파티를 영입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에게도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파란은 김현성 파티를 들여오는 데 무척이나 큰 값을 치렀다.

이제야 다른 튜토리얼 던전이 열리고 있는 만큼 저들은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굳이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무능하지는 않다니까….’

“그럼.”

곧바로 고개를 숙인 이후에 등을 돌리는 수뇌부들을 보자 남아 있는 인원들은 조금 어안이 벙벙한 표정.

“현, 현성 씨!”

결국에는 누군가가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저… 저희는…. 저희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조금은 황당한 발언.

누군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쉼터에 함께 있었던 이들 중에 하나.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김현성이 던져주는 식량을 덥석 받아먹던 이들 중 하나였고 정하얀을 욕하던 이들 중 하나였다.

사냥을 나가자는 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돌리는 것은 물론, 이제는 뒈져 버린 정진호가 처음 쉼터로 왔을 때 가장 가까이 달라붙어 있었던 녀석이었다.

낯짝이 두꺼워도 이렇게 두꺼울 수도 없다.

튜토리얼에서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아까운 식량을 가져다 바치기까지 했다.

모든 교육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관들도 당황한 표정이다.

어떤 의미로는 정말로 대단하다.

철저한 약자의 입장에서 저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는 존경할 만하다.

나였어도 저 자리에서 저런 발언을 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나를 향한 말도 아니었고 선택권은 오롯이 김현성에게 있었으니까.

‘그 정도로 호구는 아니겠지.’

아무리 녀석이 호구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니, 조금 걱정이 되기는 된다.

애초에 튜토리얼 던전에서 생존자들을 모아놓은 이후에 그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한 것도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발상은 아니었으니까.

“끝까지… 책임져 주셔야죠….”

‘무슨 개소리야?’

아마 본인도 본인이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절박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멍청하게 만든다.

이상희는 조용히 김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튜토리얼 던전에서 맺은 인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저, 저희도 함께….”

덕분에 용기를 얻은 미친놈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한 상황은 실소가 나올 정도다.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던 패배자들이 지옥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로 당황스러워졌다.

“이대로 버리지는 않으실 거죠?”

“현성 씨!”

“현성 씨, 함께 데려가….”

김현성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입술을 깨무는 녀석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아닌 모양이다.

무척 당연한 반응.

저런 상황이라면 스님이라고 해도 화가 났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네?”

“여러분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흡.”

순간적이지만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내 생각보다 조금 더 통쾌했기 때문이다.

“저와 함께 다니시는 것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각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그… 그런 게….”

“아마 도시는 안전할 겁니다.”

“그런 무책임한 소리가 어디 있…있어요.”

뭐가 무책임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나서는 게 조금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한발 앞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당신을 책임져야 할 의무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

“도시 안은 안전할 겁니다. 비록 편한 생활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목숨을 위협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나 현성 씨가 당신을 돌봐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저희는 타인입니다.”

“…….”

이렇게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는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의 얼굴.

왜 당신들은 저곳에 있고 자신은 이곳에 있는 것인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보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아마 저 녀석은 평생이 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쪽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것 같은 기세로 달라붙어 왔기 때문에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품에 있는 금화 주머니를 내밀었다.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선물입니다. 아마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허겁지겁 내가 건네준 주머니를 받아드는 녀석의 표정은 가관.

뭔가 배신당한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조금 묵직한 주머니 안에 든 것이 소중한 건 아는지 품에 집어넣는다.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액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놈에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감, 감사합니다.”

“살아남게 되길 빌겠습니다. 연이 닿으면 다시….”

“네….”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모양.

도시 안에 들어가서도 놈이 금화나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거머리를 떼어놓는 심정으로 몇 푼 던져준 것에 불과하니까.

어째서 내가 대놓고 주머니를 던진 건지 깨달은 것 같은 이지혜도 마치 바보를 보는 표정이다.

이지혜가 이쪽에 굳이 달라붙지 않다는 게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생각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이지혜….’

어쩌면 다른 길드의 컨택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만큼 혓바닥을 놀리면서 자기 덩치를 키웠을 수도 있다.

‘아까운데….’

내가 가지자니 부담스럽고 버리자니 조금은 아깝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의 태도.

자신은 별로 아쉬울 것 없다고 자신하는 저 태도가 왠지 모르게 구미를 당기게 만든다.

‘나는 굳이 당신과 함께하지 않아도 돼.’

그런 느낌이다.

이미 마음의 눈으로 그녀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웬만한 어중이떠중이보다는 그녀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지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 뵙도록 하죠.”

“네… 네.”

놈에게 해준 말은 아니지만 내 말이 기쁘게 들리는 모양.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이지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파란에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

곧바로 뒤를 도니 이상희와 김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영 씨는 정말 따뜻하시네요. 물론 길드에서 나가는 기초생활지원금도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그래도 튜토리얼 던전에서는 동거동락하던 사이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바로 린델로 향하는 겁니까?”

“예. 정리는 이미 대충 끝내놨습니다. 사실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싶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준비할 게 많으니까요.”

“아. 교육생들은….”

“저희와 함께 곧바로 자유 도시로 향하게 될 겁니다. 일단 가도록 하죠.”

“네.”

교관들을 비롯한 파란 길드의 평길드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튜토리얼 던전 앞에서의 생활은 이걸로 끝이라는 느낌.

정이 들지는 않았지만 전혀 새로운 도시에서의 생활은 당연히 기대가 되리라.

차희라가 준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내 짐이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에 길드원 몇몇이 달라붙어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오빠.”

“형님!”

물론 박덕구와 정하얀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

조금 수척해 보이는 정하얀은 이쪽의 옆으로 다가왔고 박덕구 역시 괜스레 아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빨리 출발할지는 몰랐는데 뭐,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오. 아쉽게 됐는데….”

“뭐가….”

“이거 말이요!”

밧줄에 묶여 있는 작은 나룻배 한 척.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호수에서 만들고 있던 걸 굳이 여기까지 가져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의외로 손재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질이 좋아 보이는 것은 덤.

‘왜 이렇게 잘 만들었어.’

“…….”

“조금 더 있었으면 근처에 있는 쉼터에서 뱃놀이라도 할까 했는데… 만든 게 아까워서 일단은 가져가기로 했소.”

“짐이 많을 텐데….”

“여기에 실으면 되니까 별문제는 없는데… 체력 단련도 될 것 같고. 형님이 걷다가 힘들면 누님이랑 같이 타면 제가 끌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타고 싶지 않다.

“거, 자유 도시 근처에는 호수도 없다고 들었는데… 끄응.”

“나중에 꼭 함께 타요… 오, 오빠.”

“그렇게 하자.”

정하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니 기분 좋다는 듯이 웃는 게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여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박덕구와 함께 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은근히 녀석이 정하얀의 멘탈을 잡아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이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네, 현성 씨.”

작지도 크지도 않은 파란 길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나 오래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나기는 했지만 즐겁기도 하다.

오랜만에 김현성과 박덕구, 정하얀과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요…. 새로운 마법을 오늘 써봤는데요….”

“응. 응.”

“내가 직접 봤는데 정말로 대단한 것 같았는데… 거, 누님이 주문을 외우니 호수가 갑자기 갈라지는 거 아니겠소? 옛날에 동네 아지매가 했던 이야기 중에 마새인가 앵무새인가 하는 양반이 바다를 갈랐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걸 실제로 보는 것 같더오.”

“아마 모세일 겁니다.”

“아아아! 모새, 그 양반이었던 것 같소. 형씨는 참 똑똑하구만. 아무튼 그래서 말이오.”

꽤나 말이 많아진 박덕구와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의 김현성.

정하얀은 내 손을 꽉 잡은 채로 걷고 있다.

정말로 잠을 자지 못했는지 꾸벅 꾸벅 졸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손을 꽉 쥐고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가는 길 중간 중간, 파란 길드의 중역들이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휴식시간을 충분히 즐겼다.

한참이나 걷다 보니 눈에 띄는 것은 높게 솟은 시계탑.

슬쩍 옆을 바라보니 김현성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에게도 시작이지만 녀석에게도 시작이다.

뭔가 복잡한 표정이 감돌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생각하는 것이 많을 것이 당연하다.

과거에 있었던 일, 앞으로 벌어질 일, 파란과 우리 파티에 대한 일까지.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하얀은 마치 신혼집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살아갈 터전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껏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저기가….”

신성제국 내 지구인들이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장소.

“린델….”

자유 도시 린델이다.

“세상아, 박덕구가 왔다!”

“푸핫!”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