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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8화 (47/1,590)

# 48

회귀자 사용설명서 048화

권력(1)

파란 길드와의 협상은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개인 계좌를 개설하는 동시에 계약금은 곧바로 들어왔고 영웅 등급의 아이템은 아직이지만 분에 넘치는 직위를 받을 수 있었다.

확실히 약속했던 그대로였다.

사실 마지막까지 파란으로 가는 것에 대해 고민 아닌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알면 알수록 나쁘지 않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용병 길드 같은 경우에는 길드 마스터에게 권위가 집중되어 있지만 파란 같은 경우에는 조직체계가 생각보다 세분화되어 있었다.

길드 마스터 그리고 부길드 마스터, 그 아래에 있는 여섯 개의 팀과 몇 가지의 행정직급이 존재했던 것.

쉽게 설명하자면 파란 길드는 6개의 파티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리가 된다.

파티는 다섯 명에서 많게는 열다섯명까지 구성되어 있었다.

다른 길드의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김현성이 어째서 파란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움직이는 게 편하니까.’

녀석의 바람처럼 우리가 들어가는 즉시 파란에서는 새로운 파티가 신설됐다.

일곱 번째 파티의 파티장은 김현성.

아직 정식으로 출원됐다고 하기는 힘들기는 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파란이 본래 우리에게 해주기로 한 것들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아직 지급되지 않은 영웅 등급의 아이템과 내가 가지게 될 직위.

아마 나를 어디로 배정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이설호 같은 고인 물에게 꿀리지 않을 직위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위한 직위가 마련되기는 했다.

‘비전투직군 특수행정관.’

누가 봐도 애매하고 급조했다는 느낌이 드는 직위다.

본래 파티에 소속되어 있는 이가 행정직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나 역시 김현성 파티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한 이상희의 배려였다.

‘좋지.’

아무튼 간에 나 때문에 파란 길드는 한 가지의 행정직을 더 떠안게 됐다.

내게 할당된 직무가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행정업무 전반에 걸쳐 도움을 주라는 이야기겠지만 지금 당장은 일을 맡기기 힘들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급하게 직위를 나누어 준 것은 분명 뭔가 바라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기영 씨, 밖에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현성 씨.”

나는 용병여왕의 정부였으니까.

‘슈바….’

마음대로 할 거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불길했지만 이런 식으로 대놓고 치고 들어올지는 몰랐다.

건방졌던 나에게 작은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매일 매일 손편지와 함께 어마어마한 선물을 해주는 것을 보면 이왕 투자하기로 한 거 확실하게 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원하는 건 확실히 이루어졌다.

용병여왕의 정부를 건드릴 미친놈은 적어도 베니고어 신성제국에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이런 방식은 내가 의도했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조금 심란한 나와는 다르게 파란 길드는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현재 신성제국에서 가장 유력한 길드인 붉은용병과 급진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

물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나인만큼 길드에서의 내 위치가 올라가기는 한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 좋은 시선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붉은용병 길드의 용병여왕 차희라가 튜토리얼에서 막 나온 신입에게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신입은 파란 길드의 간부이며 용병여왕의 끝없는 구애를 받고 있다.’

라는 소문 때문이다.

그밖에도 개 같은 소리들이 나오기는 했다.

숨겨진 애인을 따로 두고 있는데도 그런 짓을 하는 놈이라든가, 잠자리를 잡는 기술이 뛰어나다든가, 지구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라든가 하는 개소리들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소문은 붉은용병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퍼뜨린 소문이었다.

튜토리얼 던전의 앞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이미 소문이 쫙 퍼진 상황이었으니 아마 신성제국의 앞마당까지 소문이 닿았으리라.

‘제길….’

멍하니 산처럼 쌓여 있는 것들을 보고 함께 서 있는 김현성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녀석의 입장에서도 당황스럽고 황당할 것이다.

녀석이 생각하는 차희라의 모습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테니까.

“그녀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말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별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를 스폰해 달라고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어째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질 나쁜 장난일 겁니다.”

“흐음… 그럴지도요. 그렇지만 선물들을 보니 확실히 기영 씨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한 모양입니다.”

김현성의 말에 슬쩍 건물 앞에 쌓여져 있는 물품들을 보자, 이런 종류의 오해가 어째서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고대 공화국의 약물제조 연금술 키트-영웅 등급]

[고대 공화국에서 전승으로 내려오는 연금술 키트입니다. 지하 실험실에서 발견된 이 기본 장비들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수한 약품 처리가 되어 있는 것 같지만 마력을 품고 있는 이 물건은 단순한 장비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질과 성능이 뛰어납니다. 물약제조 성공률이 올라갑니다. 사용자의 행운 수치를 일시적으로 올려줍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미노타우르스의 힘줄-희귀 등급]

[벤시의 마력정수-희귀 등급]

[트롤의 혈액-희귀 등급]

[신원을 알 수 없는 몬스터 혈액-희귀 등급]

[신성제국의 성수-희귀 등급]

연금술에 사용되는 온갖 촉매들이 상자 째 쌓여 있다.

상자 가장 위에 있는 편지에는 보라는 듯이 애정을 가득 담은 손 편지가 놓여 있다.

-항상 고맙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부디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님에게 사랑을 담아서. 차희라.

‘이… 제기랄….’

당연하지만 싫은 것은 아니다.

공짜로 선물이나 비싼 물품들을 뿌려주는 게 싫을 리가 없다.

사실, 타인의 시선도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정하얀이다.

당연히 정하얀뿐이었다.

처음 이 선물이 도착하고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의 그녀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용병여왕이 준 선물들을 향해 마법을 퍼붓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오히려 눈 한가득 눈물을 뿌리며 선물들을 보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자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내게 이런 것들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차희라와는 아무 관계가 아니며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너뿐이라며 계속해서 설득 아닌 설득을 하기는 했지만 정하얀은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법 수련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것은 마치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

나와 함께 있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잠도 거의 자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스킨십을 하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

아마 이런 시간까지 없었다면 정하얀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는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더러운 것으로부터 나를 소독하는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하얀이는….”

“하얀 씨는 뒤쪽 호숫가에 있을 겁니다. 최근에는 수속성 마법에 대해 수련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마 그쪽에 가시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덕구 씨는….”

“덕구요?”

“덕구 씨도 호숫가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한 것 같습니다만….”

“배를요?”

“네. 하얀 씨가 아무래도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는 게 혹시 뱃놀이라도 하고 싶은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놔두기는 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등골이 서늘해졌다.

‘박덕구….’

또 무슨 설계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별로 좋을 것 같지 않다. 괜스레 침을 삼켰을 때 다시 한번 김현성이 말을 걸었다.

“그보다 일은 잘 되고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아직은 회의를 따라가기 힘들지만… 조금은 파란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이제야 다른 장소에서도 튜토리얼 던전이 열리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이적시장이 열릴 것 같지만 아쉽게도 길드 자체에서 공략조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없던 터라… 많아야 한두 명일 겁니다. 생존자 중에서도 더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있을 테니 그쪽에 조금 더 투자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음… 저희 때문이군요.”

완벽히 정답이다.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저희 파티에 들어올 인원은 계약금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 중입니다만….”

“나쁜 생각은 아닐 겁니다. 길드 차원에서도 조금 기뻐할 것 같고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쪽은 좀 어떻습니까?”

“길드 주체로 다른 파티와 협연해 던전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쪽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게 길드 입장에서는 좋은 방법일 테니까요. 물론 이번 일이 마무리된 이후겠지만 준비는 미리미리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 어느 쪽으로….”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을 찾아보는 것도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길드에서는 기본적인 사냥을 나가는 것부터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 그렇군요.”

“그럼 저는 회의가 있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영 씨는?”

“아. 저는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럼 잠시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영양가 있는 대화였다.

슬쩍 김현성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김현성이 앞으로 우리가 행동해야 할 방침에 대해 생각하고 움직이는 쪽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외적인 부분에서 김현성을 보조한다.

모든 튜토리얼이 끝나고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했거나 선택하지 못한 이들 그리고 교육이 끝난 이들을 추려 우리 파티로 데려오는 일이다.

혹시 과거의 인연이 있는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에 김현성도 다른 이들을 살펴봐야 하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나에게 일을 맡겨보려는 느낌이다.

녀석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상 이상의 성과를 내주었으니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다.

‘조금 더 신뢰받아야 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좋다.

김현성은 틀림없이 쓸 만한 머리를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향하는 곳은 현재 교육 받는 인원들이 몰려 있는 훈련소 쪽.

튜토리얼 던전의 생존자들을 관리하는 장소였다.

김현성과 대화를 나눴던 대로 슬슬 기본적인 교육이 끝난 참이다.

영입에 대한 준비도 할 겸, 차희라에게 보낼 명단도 작성할 겸,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나서는 것이 유리한 것은 당연지사.

물론 이들보다는 타 튜토리얼 던전의 인원이 더욱 중하지만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체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파란 길드의 간부님들이 찾아오실 예정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짧지만 길었던 교육을 마치고 각 길드로 오퍼를 받거나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통제에 맞게 행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훈련소의 연무장에서는 오늘 있을 교육이 한참이다.

슬쩍 발걸음을 옮기자 이쪽으로 인사를 해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연무장에 도열해 있는 인원들에게서 나온 인사가 아니었다.

“고생하십니다.”

“아! 아닙니다, 팀장님.”

“아직 정식으로 임관하지도 않았습니다, 교관님.”

“하하. 그래도 곧 파란의 기둥이 되실 분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보다는 무슨 일로…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아. 미리 한 번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과분한 직책을 내려주신 만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과연….”

잠깐의 대화.

그렇지만 이 대화는 분명히 땡볕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닿았다.

나를 모르는 이들은 그저 높은 사람이 왔다고 생각하는지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쉼터에서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권력이란 거 좋구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역시 줄이란 건 서기 나름이라니까.’

함께 떨어지고 함께 이곳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녀석들과 내 입장은 180도 이상 달라져 있었다.

무척이나 극단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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