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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0화 (30/1,590)

# 30

회귀자 사용설명서 030화

퀘스트(3)

“이런 제기랄!!”

뚫리면 죽는다.

뒤엉키거나 침입을 허용해도 죽는다.

지금 이 파티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이 진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진호 무리들도 사냥을 나가지 않은 놈들은 아닌 만큼, 분명히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다.

“제기랄!”

한껏 뜨거워진 불타는 괴물 새끼들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놈들의 모습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죄, 죄송합니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쓰레기 짓.

괴물의 수가 줄어들었으니 실질적인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뜨거움 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부담감을 안고 싸우고 있는 놈들의 모습은 확실히 가슴이 아프다.

불타는 괴물 새끼들을 최대한 밀어내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옮겨 붙을 하는 불꽃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아마 체력적인 부담감도 상당할 것이다.

뜨거운 열이 계속해서 놈들의 체력을 앗아간다.

당장 이쪽도 뜨거워질 지경.

정진호 집단이 느끼고 있는 열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몬스터 불타는 아귀의 상태창을 확인합니다.]

[이름-없음]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5]

[성향-불타는 본능]

[직업-백수입니다.]

[능력치]

[근력-12]

[민첩-15]

[체력-05]

[내구-15]

[행운-10]

[마력-01]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놈들의 상태창에도 변화가 있다.

생명력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마력을 품고 있는 걸 보니 확실하게 내가 보낸 불꽃을 품고 있는 모양.

“불 좀 끄라고, 개자식아!”

부처님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주세요!”

지옥의 군대에 맞서 싸우는 성스러운 용사들을 보는 듯한 느낌.

꾸역꾸역 물려 들어오고 있는 녀석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놈들 역시 무엇인가를 희생해야만 했다.

자신들의 체력이 됐든, 아니면 정진호가 숨기고 있던 패가 됐든 말이다.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정진호가 선택한 것은 아마 전자.

‘끝까지 숨기고 있겠다.’

끝까지 자신이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보여주지 않는 판단은 좋다.

이미 녀석의 정보를 알고 있는 나와 김현성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귀여운 놈!’

소리 내서 웃고 싶을 정도의 멍청함이다.

나는 물론이고 김현성 역시 녀석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미래에 놈이 어떤 직업으로 승급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마검사의 상위 직업을 얻었을 것이 분명.

놈의 정보창이 말해주고 있는 마검사라는 직업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

지금 놈이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패는 이미 이쪽이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다.

패를 까놓고 하는 포커나 다름없다.

이미 놈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투페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숨기려고 아득바득 이빨을 깨물고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

심지어 이쪽이 가지고 있는 것은 김현성이라는 다이아몬드 플래시다.

역시나 놈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황은 조금 더 안 좋은 쪽으로 치달아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제길! 기철아!”

“버텨 주세요!”

왠지 모르게 정감 가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정진호의 똘마니중 하나 이기철.

녀석이 불타는 아귀에게 붙잡혀 버린 것.

괴물에게 팔이 잡혔는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당연히 이쪽이 뭘 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이기철이 불타는 아귀들의 품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좁은 공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괴물들의 품으로 꾸역꾸역 삼켜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으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기영 씨! 하얀 씨!”

아직 한 번 남은 소중한 마력을 정진호의 똘마니를 지켜주자고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뚫리지는 않을 거야.’

정진호가 있는 이상 뚫리지는 않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만해! 그만해! 개새끼들아! 그만!”

내장을 파먹고 있는 건지, 팔다리를 뜯고 있는 건지 이쪽에서 확인할 길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척이나 놈의 목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려왔다는 것.

산채로 먹히는 고통과 살이 불에 타고 있는 고통이 동시에 느껴질 테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 놈은 끝.’

이 와중에도 사람을 한 명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기는 했지만 전투의 흥분이나 상황 때문인지 죄책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원하고 있던 상황.

입꼬리가 계속해서 올라간다.

“할 수 있습니다!”

‘유리해.’

안 그래도 유리한 상황을 더 유리하게 만들었다.

“으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제기랄! 제기랄! 기철아!”

“형님, 이거 진짜 위험한 건 아니요?”

“신경 쓰지 마라. 뚫리지 않을 거야.”

끝이 보인다.

계속해서 버티다 보면 분명히 끝이 보일 거다.

정진호와 다르게 김현성은 초조해하지 않는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흐으읍!”

단순한 작업의 반복.

막아내고 창을 찔러 넣는다.

마치 오래 달리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처럼.

창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물론, 호흡도 계속해서 거칠어진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았고 숨을 쉬기가 힘들다.

당장에라도 땅에 엎드려 헐떡거리고 싶지만 계속해서 달려드는 놈들은 쉴 시간도 주지 않았다.

‘괜찮은 건가.’

박덕구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

한쪽 진형에 구멍이 생긴 정진호도 마찬가지다.

유석우나 남아 있는 궁수는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나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괴물 새끼들의 시체가 벽처럼 쌓이고 또 다른 괴물이 그 시체를 넘어 이쪽으로 넘어온다.

박덕구는 그걸 막아내고 나는 다시 녀석을 창으로 찌른다.

‘버틸 수 있는 건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불안감이 감도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제는 녀석들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파악이 잘 안 될 지경.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들려오는 울음소리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내 커다란 목소리만 울린다.

‘버텨주세요’라든가.

‘조금입니다’라는 개소리 말이다.

“흐으으으읍!”

마치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는 듯한 느낌으로 내지른 창.

박덕구도 커다란 기합을 내지르며 방패를 밀어냈다.

“키에에에에에엑!”

마침내 김현성이 슬쩍 자신의 팔을 내려놨을 때, 이 지옥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끝났다.”

“끝, 끝났다….”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입을 연 것은 김현성이다.

“곧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개….’

“방금 전에 저희가 받았던 퀘스트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몸을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끄응… 형님. 걷기 힘들면 내가 안고 가리다.”

“됐다. 덕구야. 나도 걸을 수 있어. 하얀이는….”

“저, 저도 마찬가지예요. 오빠.”

이쪽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문제는 바로 저쪽.

아마 괴물들에게 끌려가 죽어버린 기철이라는 놈의 시체는 제대로 찾을 수도 없으리라.

앞쪽의 시체를 뒤적거리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참담하게 죽은 동료의 시신을 봤는지 결국에는 고개를 떨구기는 했지만 이쪽에게 보내는 적의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정진우 역시 무표정.

유석우가 내게 보내는 표정 역시 적의다.

“이 개 같은 놈!”

머리카락은 대부분 타 있었고 몸에도 상처투성이. 이미 뒈져버린 기철이라는 놈이 괴물에게 끌려간 이후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칼을 든 것은 확인했었다.

겉모습을 보니 꽤나 고생한 모양.

“죄, 죄송합니다.”

“단순히 죄송하다고 끝날 일인 것 같아? 이 새끼야!”

“그, 그렇지만…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화염계 마법 이외에 다른 마법은 익숙하지 않았고 제 마법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아마 더한 참사가 벌어졌을 겁니다. 하얀이가 마법을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고 놈들이 서로 달라붙어 불길을 옮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그리고… 놈들의 숫자는 확실하게 줄였습니다.”

과는 있지만 공은 확실하다.

애초에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시점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 분명.

물론, 정하얀이나 내가 마력을 전부 사용해 이 상황을 해쳐 나가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놈을 살리기 위해 마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

정진호도 똑같은 판단을 했다.

물론 정진호의 입장에서는 기철이라는 놈이 이렇게 빨리 리타이어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게 놈의 실수다.

조금 화력이 과했었고 불이 달라붙은 것 때문에 기철이란 놈이 죽은 것은 사실, 그러나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없다.

어디까지나 일부러 불을 뿌린 것은 맞지만….

‘그렇지.’

그건 놈이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그걸 말이라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기철 씨의 죽음은 저도 안타깝습니다만… 지금은….”

방구 낀 놈이 성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놈이 저렇게 황당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당장에라도 활이나 창을 겨누고 싶은 심정일 것이 분명하지만…….

인상을 찌푸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놈의 모습을 보니 조금 무섭기는 하다.

애써 박덕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개입하지 말라는 내 행동에 박덕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이… 이….”

어딜 봐도 동네 양아치처럼 보이는 외모. 이런 놈들의 특징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분노 조절 장애.’

자신보다 약한 자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만 보이게 되는 분노 조절 장애.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살지 않았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놈에게만 보일 정도로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리는 미소를 보내자 참지 못했는지 놈이 주먹을 휘둘러왔다.

당연하지만 굳이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느 정도의 갈등은 필요 하니까.

퍼억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옆으로 나가떨어진 것은 당연지사.

순식간에 정신이 멍해지는 것은 물론, 입안이 터졌는지 피가 고였다.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허약한 내 몸은 땅바닥에 철푸덕하고 쓰러져 내린다.

“형님! 이 잡놈이!”

깜짝 놀란 박덕구의 목소리.

“괜찮다, 덕구야. 실수한 건 나니까.”

박덕구를 말리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재준 씨, 거기까지 하시죠.”

“그, 그렇지만….”

“거기까지 하는 게 맞습니다.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더 이상의 갈등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 갈등은 좋지 않지.’

정진호의 입장에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부딪치게 되는 건 사양일 테니까.

퉤 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 있는 걸 뱉어내니 고여 있는 핏물과 함께 이빨 하나가 툭 하나 떨어졌다.

‘아으….’

“괜찮습니까? 기영 씨….”

“아. 괜찮습니다, 현성 씨. 제 실책입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쩐지 지나치게 아픈 것 같았다.

김현성에게서 별 말은 없다. 그렇지만 저쪽을 묘하게 경계하는 느낌에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심지어 나를 걱정해 주고 있는 듯한 눈빛은 정말로 따뜻해 보인다.

회귀자 김현성의 동료.

너무나도 따뜻한 울림.

이것만으로도 내가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는 전혀 다른 쪽.

‘아….’

정진호의 똘마니, 김재준을 무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는 정하얀의 존재였다.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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