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회귀자 사용설명서 027화
아이템(2)
“아이템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아이템입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하셨소?”
“말씀은 아직 안 드렸습니다만 사실 그때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우연치 않게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상자?”
“보물 상자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겠군요. 마치 옛날에나 사용할 것 같은 나무 상자였습니다.”
“거, 여기는 정말 별게 다 있는 모양이요. 형님, 그렇지 않소?”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던전이라고 불렀으니 아마도 저런 아이템이 들어 있는 보물 상자가 있을 만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김현성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이 아닐지에 대한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기는 했지만 굳이 꼬투리를 잡을 이유는 없다.
지금 김현성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뭔지, 나는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신기하군요. 만약에 이런 상자들이 주변에 더 있었다면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던전 전체에 퍼져 있는 상자의 숫자가 한정적인 모양입니다. 어쩌면 현성 씨가 찾은 상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지하에도 비슷한 게 있을 수도….”
“예. 그 말이 맞을 겁니다, 기영 씨. 저도 이쪽 주변을 전부 둘러보기는 했지만 상자를 발견한 건 저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조금 더 멀리까지는 가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한번 보시죠.”
“네.”
안 그래도 둘러볼 생각이다.
굳이 마음의 눈을 발동시킬 필요도 없었다. 손으로 녀석들을 들어 올리자 곧바로 정보들이 쏟아졌으니까.
아이템의 자세한 능력치도 나만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따위의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아쉬움도 잠시였다.
[무쇠 드워프의 강철 팔찌-일반 등급]
[이제는 몰락한 무쇠 드워프 종족이 만들어낸 장신구입니다. 투박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히 기술적인 세공이 들어간 팔찌입니다. 체력과 내구력, 힘이 각각 1 올라갑니다.]
팔찌의 주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박덕구 역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좋아 보이기는 한 모양.
올려주는 스탯은 총 3이다.
직업을 얻을 때 받을 수 있는 스탯과 일치한다.
이 정도가 일반 등급의 아이템.
아마 영웅, 그 이상 가는 전설 장비들은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기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오오….”
할머니가 꺼내는 쌈짓돈을 받을 때의 표정이다.
문제는 바로 이 다음.
[마력 방패의 반지-희귀 등급]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물건입니다. 하루에 두 번 반지에 저장되어 있는 마력으로 마력 방패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신구입니다. 사용자가 직접 마력을 충전해야 합니다. (2/2)]
[신성한 치유-희귀 등급]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급 신성 마법, 치유가 내장되어 있는 반지입니다. 하루 한 번 사용이 가능합니다. (1/1)]
나머지 두 개의 반지는 희귀 등급의 반지.
확인하는 즉시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개 좋네.’
김현성을 따라다니다 보면 뭔가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무려 희귀 등급의 반지다.
기능 역시 이쪽이 당황할 정도로 마음에 든다.
박덕구의 것처럼 스탯을 올려주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
예를 들어 마력 방패의 반지, 마력 방패를 외우기 위해서 잡아먹는 마력이 4 정도가 들어간다고 가정했을 때, 이 방패를 +8 스탯 정도의 효율을 얻는다.
+3의 효율을 얻을 수 있는 일반 등급의 아이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좋아.’
신성한 치유 역시 마찬가지.
같은 희귀 등급인 것을 보니 이 녀석 역시 적어도 +6 이상의 스탯 효율을 보여주리라.
하루에 두 번 몸을 지킬 수 있는 보험과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보험.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김현성이 선택한 것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었다.
‘그렇지. 준비는 확실해야지.’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을 때 팔찌를 천천히 만지작거렸다.
“귀한 것 같은데… 정말 가져도 되는 거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큼…. 그, 그렇다면 팔찌는 내가 가지는 것이 맞겠지. 고맙게 쓰겠소, 형씨. 이쪽은 해준 것도 없는데 괜스레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은혜는 꼭 갚지.”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팔찌의 주인은 정해졌지만 문제는 나머지 두 개의 반지.
사실 뭘 가져도 나쁠 것 같지 않지만 여차하면 몸을 지킬 수 있는 방패가 조금 더 끌린다.
만약 정하얀이 신성한 치유를 착용한다고 해도 안에 내장되어 있는 신성 마법을 나에게 사용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확실하겠지.’
쓰레기 같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러 가지 마법을 펑펑 써댈 수 있는 저쪽과는 다르게 나는 어떤 주문이든 2번 사용하면 탈진 상태까지 갈 수 있으니까.
머리를 조금 굴리고 있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정하얀이었다.
“저, 저는 이걸로 할게요.”
그녀가 선택한 것은 신성한 치유.
내 눈치를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쪽의 의도대로 움직여 줬다.
“그럼 저는 남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입꼬리가 계속해서 올라간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이상한 상황이다.
하루 두 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보험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 어떤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은 채로 희귀 등급에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거지!’
“그렇지만 저희가 정말로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괜찮습니다. 저도 하나 가지고 있기도 하고… 특별한 능력치가 붙은 장신구 같은 경우에는 착용할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아니, 착용은 가능하지만 뭔가 제한이 걸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좋은 정보도 받아간다.
“두 개의 반지를 착용해도 능력이 발동되는 반지는 하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중에 천천히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표현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현성 씨. 덕구 말대로 저희가 뭔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
“고, 고마워요… 현성 씨.”
“아닙니다. 기영 씨 그리고 하얀 씨.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동료니까요.”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아마도 이쪽에 빚을 얹어줬다고 생각하는 모양. 정말로 고마워하는 나와 박덕구 그리고 정하얀의 표정을 본 것 같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확실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고 조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지막 대사에서 확신을 얻었다.
‘함께 갈 생각이다.’
우리는 동료니까.
김현성은 나와 박덕구 정하얀과 함께 갈 생각이다. 애초에 정하얀 같은 경우는 김현성이 무조건 포섭하려던 인재였다.
미래가 확정되어 있는 마법사.
애지중지 키워 끈을 만들어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박덕구의 경우에도 나쁘지 않다.
게임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든든한 탱커는 언제나 인기가 좋다.
지금까지 사냥에서 보여준 판단력과 안정감, 잠재 능력은 정하얀이나 정진호에 비해 밀린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스탯 능력치가 좋다.
박덕구의 성장 한계치는 김현성이나 정진호, 정하얀 같은 진짜 괴물들에게는 밀린다고 할 수 있지만 충분히 제 몫을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가 사실 조금 애매하다.
어떻게 보면 현 김현성 사단에 꼽사리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덕구와 정하얀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 박덕구에게는 믿을 수 있는 형님이란 포지션.
정하얀에게는 연인과 비슷할 정도로 친밀한 포지션이다.
박덕구와 정하얀을 끌고 가려면 나 역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사냥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정도와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점은 점수를 받을 수야 있겠지만 나 정도 되는 이들은 대륙에 널려 있다.
아마 차근히 이쪽을 키워 앞으로 더욱더 커질 김현성 왕국에 행정요원으로 사용해 줄지도 모른다.
물론 이지혜처럼 뱁새처럼 살아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개인의 몸을 더 확실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가끔 가랑이가 찢어져야 할 필요도 있다.
‘따라가기 벅차겠지만.’
아득바득 따라가서 야금야금 이득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동료지요.”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고 아껴주는 동료다.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멋진 울림입니다, 형님. 크으… 동료! 아. 그래서 지하로는 언제 내려가는 거요?”
“아마 조만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호 씨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쪽도 내심 함께 사냥을 나가는 걸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음. 안 그래도 같이 사냥을 나가자고 물어왔던 적이 있기는 있었소. 형님이 나가지 말라고 말해서 거절하기는 했지만….”
“잘하셨습니다.”
김현성이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본다.
새로 들어온 집단에 대한 적당한 경계.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런 포지션을 잡아주는 게 고맙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희끼리 이야기입니다만… 그쪽은 썩 느낌이 조금 좋지는 않습니다.”
“거, 우리 형님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똑똑한 양반들은 확실히 다르긴 다른 모양이요. 사실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오.”
“함께 사냥을 하고 던전을 공략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계는 해야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주의하는 게 맞아. 박혜영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조금 더 조심하자는 소리다.”
“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말에 정하얀뿐만 아니라 김현성 녀석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기영 씨 말이 맞습니다. 조금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네.”
“적과 함께 싸운다는 생각으로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적 말이요?”
“네.”
김현성은 무대 위로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그렇게 마음에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나름의 준비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 이전에 당장 지하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1층보다는 수준이 높다고 가정하는 게 맞겠지.”
“네. 그렇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진호 씨에게는 제가 지금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시간만 된다면 최대한 빠르게 떠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말이요?”
“준비는 지하로 가는 중에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구만.”
정진호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의 목적이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일 경우에도 그렇고 자신들의 은밀한 취미 활동을 즐기기에도 그렇다. 목적이 무엇이든 함께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
녀석은 김현성과 자신의 수준 차이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다.
본래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변수.
던전 공략 원정은 놈이 바라는 변수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김현성만 제거하면 자신의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상황.
놈이 정말 살인마라면 이 쉼터는 놈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장소이니만큼 도박을 해올 가능성이 높다.
내가 놈의 입장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현성과 우리들을 죽이고 싶을 것이다. 놈에게나 김현성에게나 좋은 기회.
자꾸만 기분 좋은 미소가 입에 걸린다.
어차피 뒈질 놈.
골수까지 빨아 먹는 게 옳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