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회귀자 사용설명서 004화
회귀자(1)
“일단은 백수부터 탈출해 보자고.”
직업을 구한다. 그게 첫 번째다.
“직업은 어떻게 구하는 거요?”
“나도 몰라.”
박덕구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봤다.
“나는 무슨 척척박사가 아니야. 그렇게 똑똑한 편도 아니고.”
“형님 정도면 똑똑한 거 아니오? 최소한 공부만 한 샌님보다는 형님이 조금 더 믿음직해 보이는 것 같소. 형님도 샌님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반쯤은 맞다.
공부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전직을 하겠다는 거요.”
“일단은 놈들을 사냥하러 다니는 것 말고는 답이 없지. 그 여자는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서 직업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했다.”
“그, 그건 나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일단은 뭐라도 해야 변화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냥 서서 검을 휘두르든지 아니면 계속해서 싸워서 놈들을 잡든지. 저기서 계속 처박혀 있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다가 죽었을 거다.”
입을 열며 가죽 가방에 있는 물품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잠깐 동안 뭘 하냐는 듯한 눈으로 박덕구가 나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신고 있는 운동화 끈으로 가죽을 대충 엮어 놈의 몸에 붙이기 시작하니 무엇을 하는지 눈치챈 모양이다.
조금 감동한 듯한 놈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거 갑옷 같기는 한데… 형님은 필요 없소?”
어차피 앞에서 싸우는 건 녀석이니 굳이 내 것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
목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가리개 하나로 충분. 방금 전 괜히 앞에 나가서 지랄을 떤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굳이 그런 설명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네가 더 덩치가 크니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무섭기는 하지만… 일단 천천히 하나씩 해보겠소.”
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확실하게 기대에 부응했다.
사실 박덕구의 기본적인 스탯을 봤을 때 어느 정도 강하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신체가 스탯의 영향을 어떻게 받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녀석의 스탯은 내 두 배에 육박한다.
특히 30의 내구 능력치는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근력과 방패, 검.
어설픈 가죽 갑옷까지 더해지니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검투사 같다.
기대가 되는 것이 당연했고 실제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 것은 당연.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은 녀석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형님!”
“알겠다.”
방패로 괴물 두 마리를 밀어 붙이는 녀석의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까지는 무서운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지만 놈의 방패에 맞은 괴물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단순히 힘으로 밀어 붙이고 있을 뿐이었지만 벽과 방패의 사이에서 끼어 있는 녀석은 손톱을 뻗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박덕구가 한 마리를 묶어둔 사이에 창을 내지르자 기괴한 감촉과 함께 창이 녀석의 얼굴이 틀어박혔다.
‘정확해.’
“흐입!”
괴상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박덕구 역시 한쪽 손에 있는 검을 휘두른다.
인상을 찡그리지만 검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빼지는 않는다. 방심하면 다친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에에에엑….”
놈이 추욱 늘어지고 난 이후 나는 괴물의 얼굴에 다시 한번 창을 밀어 넣었다.
“후우… 후우….”
‘힘들다.’
간단해 보이지만 모든 게 간단하지 않다.
그나마 박덕구가 하는 일에 비교하면 낫지만 애초에 기본 체력에서 차이가 있다.
이놈들과 몇 분 동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다.
“거, 물 좀 드슈.”
“고맙다.”
살짝 한숨을 쉬자 박덕구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체력이 너무 약한 거 아니요?”
“운동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체력 포인트가 오르긴 올랐다.
‘고작 1.’
그에 비한다면 박덕구는 조금 다르다.
본래 30이었던 내구 수치가 현재는 33. 나와 비교한다면 엄청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스탯이 오르는 것에도 재능 수치의 영향을 받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놈의 내구 스탯 재능 등급은 영웅 이상, 마음만 먹는다면 전설 등급 이상까지도 갈 수 있을 정도의 잠재 능력을 가졌으니 이토록 빠르게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제길.’
쓸데없는 질투심은 물론 없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저 박덕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다.
순박해 보이는 얼굴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저쪽이 이쪽을 의지해야 내가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더 나가 보는 건 어떨 것 같소? 형님?”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고… 그리고 말할 때 목소리 좀 줄여라.”
“역시 조심해야 되는 거요?”
“첫 번째 스타트 포인트에서 괴물들이 그렇게 몰려 있었던 이유가 뭐일 것 같아.”
“그 안내자라는 여자가….”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달라. 괴물들은 둔하지만 소리에는 민감하다. 한곳에서 그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으니 사방팔방에서 괴물들이 몰려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아마 조용히 튜토리얼을 시작했다면 거기 있는 인원 중 절반은 살아남았을 거다.”
“그, 그런 거요?”
“그래. 싸울 때 흐입! 같은 기합 소리도 조금 줄여야 돼. 지금이야 무리에서 떨어진 한두 마리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4, 5마리 정도씩 모이기 시작하면 죽는 건 우리야. 계속 이동하는 이유도 한 자리에 있으면 둘러싸일까 봐 그러는 거고.”
묘하게 존경한다는 눈빛을 하고 있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모두 눈치챌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순박한 놈이 이쪽을 나쁘지 않게 봐주고 있다는 건 이쪽에서는 웃어야 하는 부분.
나는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이쪽이 조금 여유가 있는 것도 본래 이 근처에 있는 괴물들이 전부 스타트 포인트로 몰려갔기 때문일 거다. 아마 그때 도망친 다른 놈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겠지.”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하나씩 푸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잠깐 밥이라도 먹자.”
“뭐, 그렇게 하는 게 좋겠소.”
조용히 바닥에 앉아 개도 먹지 않을 푸석푸석한 음식을 꺼냈을 때였다.
“…….”
어디에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
마음 같아서는 모른 척하고 싶지만 박덕구 녀석이 귀를 쫑긋 세우며 이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거 사람 목소리 아니오?”
“설마.”
“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심지어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아….’
이쪽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실수였어.’
실수다.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 벽면에 칼집을 새긴 것이 실수였다.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을 바라기는 했지만 저렇게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면서 다가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형, 형님.”
“일단은 검 들어.”
피하기에는 늦었다.
“게엑!”
조금은 다행인 것은 뒤따라오는 괴물의 숫자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다는 점.
새로운 인원이 합류한다는 건 반가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갑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식수와 식량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자원이 한정적인 것이 문제다.
이쪽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함께 싸워줄 동료가 필요한 것이지 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건은 싸울 의지가 있을 것, 식수와 식량을 가지고 있을 것, 소수일 것 정도.
그런 의미에서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낙제점.
함께 움직일 만한 동료는 아니다.
“짜증나는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형님. 얼마 없는 것 같으니.”
‘속 편한 놈.’
검과 방패를 들고 먼저 뛰어가는 녀석. 나 역시 곧바로 창을 들고 박덕구의 뒤를 쫒았다.
조금은 널찍한 공간으로 나가자 괴물을 세 마리나 끌고 달리는 여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쯤 찢어진 옷. 전체적으로 미인상이지만 겉모습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민폐녀.’
이쪽을 봤는지 허겁지겁 뛰어오는 모습은 가관이다.
무기도 없고 식량도 없다.
뒤쪽에 있는 괴물들의 능력치를 확인한 이후에는 곧바로 눈을 발동시켜 여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정하얀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정하얀]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21]
[성향-순수한 옹호자]
[직업-백수입니다.]
[능력치]
[근력-10/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민첩-11/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체력-12/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지력-22/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14/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행운-23/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10/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총평-전설급 이상의 스탯 한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체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낮지만 향후 마법사나 사제로서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본인이 마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플레이어 이기영은 이 여자와 비교한다면 개미 발톱의 때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뭐야.’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여자의 능력치가 잘 실감나지 않는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전설 등급 이상의 잠재 능력을 가진 인간은 처음 본다.
마력 스탯이 전무한 이쪽과는 다르게 이미 10이라는 수치를 보유하고 있다.
“세 마리랑은 싸워본 적 없는데.”
분명 여자를 버리는 선택지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지만 스탯을 확인한 순간 모든 선택지가 바뀌었다.
“싸운다.”
“이길 수 있는 거요?”
“좁은 곳으로 갈 거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소.”
둘러싸이는 것보다는 벽을 기대고 싸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
퇴로가 막힌다는 단점은 있지만 빠르게 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창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여자도 이쪽을 발견했는지 최대한 빠르게 달려오는 중.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서는 영 맹탕은 아닌 모양이다.
“코너에서 대기.”
“알, 알겠소.”
마침내 여자와 이쪽에 먼저 당도한 이후, 괴물들이 코너를 돌았을 때 박덕구가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지금!”
“흐읍!”
잠깐 밀려난 듯했지만 다시 한번 박덕구를 향해 달려들려는 녀석 하나를 상대로 창을 내질렀다.
“형님!”
다른 한 녀석이 창을 붙잡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지만 박덕구가 휘두른 검에 한 놈이 그대로 허물어 졌다.
문제는 덕분에 박덕구의 자세가 흐트러졌다는 것.
확실히 세 녀석은 만만치 않다.
방패를 잡고 웅크린 박덕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창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입술을 다시금 꽉 깨무는 순간, 갑작스레 놈의 뒤쪽에서 푹 하고 튀어나오는 검을 볼 수 있었다.
“고, 고맙소.”
“아닙니다.”
누군가 이쪽을 도와준 것이다.
괴물이 허물어 진 이후에 뒤쪽에서 모습을 보인 사람은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
스타트 포인트에서 이쪽에게 도움을 준 남자였다.
조금은 절박해 보였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뭐야….”
[플레이어 김현성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김현성]
[칭호-알타누스의 회귀자, 2회 차를 시작하는 검사, 이겨내지 못한 자, 희생을 등에 업은 자. 깨달은 자.]
[나이-22]
[성향-선의의 중재자]
[직업-검사-일반 등급]
[능력치]
[근력-19/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28/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23/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18/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내구-22/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행운-23/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1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이게 뭐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태창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회귀라고? 시간 역행?’
녀석은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