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8화
#88 젠트리 제약 회사 (6)
“사실 미국보다는 중국으로 보내는 게 맞지 않아요? 미국에는 아는 사람도 몇 없는데.”
한서현의 말대로 당장 사람을 보내 공장을 세우려면 중국 쪽이 편하기는 하다. 은월회라는 좋은 파트너가 있기도 했고, 아무래도 음지에서 활동하기엔 중국만큼 좋은 나라가 없으니까.
하지만 젠트리 제약 회사는 음지에만 묻혀 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회사다.
“나는 굳이 젠트리 제약 회사를 꼭꼭 숨길 생각 없어.”
그랬다면 애초에 미국이라는 선택지도 주지 않았을 거다.
나는 최선용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줬다. 중국과 미국.
중국으로 넘어간다면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을 부를 편안히 축적할 수 있겠지만 평생 음지에 있어야 할 테고 미국으로 넘어간다면 수많은 이의 견제와 시기를 받을 테지만, 떳떳하게 하늘을 보고 살 수 있을 거라 말해 주었다.
내 제안에 최선용은 미국행을 택했다.
그러니 미국으로 보내드려야지. 나는 한서현에게 계획을 털어놨다. 내 계획을 들은 한서현은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밀입국도 안 한다고요?”
“그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잖아. 범죄자도 아닌 사람들인데. 아, 물론 설록진이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빼돌리긴 해야겠지만.”
“밀, 밀입국을 안 시키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냥 자기 명의 여권 내고 나가면 되지.”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긴 했다만, 젠트리 제약 회사의 사람 대부분은 본인들이 미국에 세워질 회사에 스카우트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별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다.
음, 실제로 그게 맞기도 했고.
“우리는 몰라도 그쪽은 죄지은 거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고.”
최선용이 개발하는 약물은 각성자들에게 혁명이 될 거다.
장지현처럼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각성자가 흔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자신이 원치 않아도 재능 때문에 헌터 아카데미를 억지로 다니는 사람이 있긴 하거든. 뭐, 그게 아니더라도 범죄자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든가 하는 식의 쓰임새도 있고.
그런 식으로 최선용이 개발한 약물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수록 한국에서도 그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거다.
‘어라, 저기서는 약물 하나로 각성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는데 우리는 혈세와 인력을 낭비해 가며 구식인 방법을 고집하고 있잖아? 그럴 필요가 있나?’
이게 내가 노리는 반응이다.
언론전은 설록진의 특기였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대충 이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거든. 괜히 내가 남주현을 내 쪽으로 포섭해 둔 게 아니란 말이지.
내 말에 한서현이 물었다.
“그런 방법으로 설록진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까요?”
“언론전으로 그놈을 죽일 순 없더라도, 그놈의 정치 경력에 흠을 만들 수 있겠지.”
“그러니까 그게…….”
“의미가 있어. 생각보다 설록진은 제법 정치 놀음에 진심이거든.”
설록진에게 정치란,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게 아니다. 세뇌로 모든 이를 조종할 수 있는 놈이 굳이 시골 오일장에 가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는 어묵이며, 핫도그를 주워 먹는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단 말이지.
설록진은 견고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완벽한 정치인. 설록진이 꿈꾸는 이미지란 그런 것이고, 실제로 과거에는 그가 원하는 대로 됐다.
늘 어마어마한 표 차이로 지역구에서 당선이 되었고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오를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셀럽 국회의원이라고 유명했었지.
설록진이 쌓아 올린 이미지가 무너지는 순간, 사람들이 제게 쏟던 관심과 애정이 사라지는 순간 설록진은 본성을 드러낼 거다.
아직까지 나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설록진의 바닥, 그 바닥이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설록진을 쳐야 할 때다.
“설록진이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도 이 세상 전부를 상대로 싸울 순 없어.”
설록진은 혼자가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 * *
“지, 진심이에요? 이걸 차라고요?”
내가 건넨 물건에 장지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야, 내가 건넨 건 범죄자들이 흔히 차고는 하는 인식표 겸 능력 차단용 아티팩트였으니까.
“이걸 차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안 들릴 거야.”
“아,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이런 걸 차고 돌아다닐 순 없잖아요!”
“으음, 확실히 좀 그렇긴 하지.”
범죄자용이었기에, 디자인을 신경 썼을 리가 없는 아티팩트는 목을 제대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두껍고 둔탁했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 산골 오두막에 혼자 있을 순 없잖아.”
“엄마가 약을 개발하고 있다면서요!”
“그 약이 언제 개발될 줄 알고?”
그 약물이 개발되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할 거다. 실제로 과거에도 장지현이 죽은 뒤 몇 년은 지나서 그 약물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음, 지금으로부터 한 3년 뒤려나…….’
그동안 계속 사람을 피할 순 없을 거 아닌가.
“이거보다 괜찮은 건 없어요?”
“능력을 차단하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게 쉬울 것 같아? 이것도 겨우 구한 거야.”
“그, 그래도…….”
내 말에도 장지현은 울상을 지었다.
하긴, 이런 인적 하나 없는 산골짜기 오두막에 나 같은 아저씨랑만 지내려니 아주 죽을 맛이긴 하겠지.
“그럼 전 어떡해요? 학교도 못 가고, 이렇게 아무도 못 만나고 약이 개발될 때까지 혼자 있어야 해요?”
장지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내, 내가 원해서 재능을 각성한 것도 아닌데…….”
아! 울지마! 나는 우는 애들한테 약하단 말이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간절히 외쳤지만, 장지현의 시뻘게진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눈만 데구루루 굴렸다.
어설픈 위로는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내가 위로한다고 상황이 바뀌지도 않을 거고.
“재능을 각성하려면 제대로나 하지,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하고, 나는…….”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런 것뿐이었다.
으으, 나는 정말로 남을 위로하는 일에 서툰데. 그냥 적당히 말을 꾸며 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건 익숙하지만, 이렇게 우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달까.
“전 앞으로 어떻게 돼요?”
내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 장지현이 둑이 터지듯이 말을 와다다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저걸 찬다고 해도 사람들 앞에는 못 나가요. 다들 나를 범죄자로 알 테니까.”
능력 차단용 아티팩트는 워낙 거대해서 스카프나 목도리로 가릴 수도 없었다. 진짜 목에 깁스를 찬 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사이즈가 컸으니까 말이다. 범죄자들의 사정 따위 알까 보냐, 하는 식의 디자인이라고.
그동안 태연해 보였던 장지현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에 이만저만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닌 것 같았다.
사정상, 오직 최선용과의 연락만 허락하기도 했고 말이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걱정, 이 상황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혼자 있는 두려움과 외로움.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터져 장지현은 한참이나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나는 가만히 옆에 앉아 장지현이 감정을 추스르기를 기다렸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 낸 뒤, 장지현이 내게 말했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냐. 내가 아까 말했잖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갑자기 우리 세상에 찾아와 멋대로 게이트를 열고 멋대로 능력을 쥐여 준 ‘누군가’ 쪽에게 이 모든 잘못이 있겠지.
예전 세레나의 빙궁을 공략했을 때 엿본 이 세계의 진실, 우리가 게이트에서 보는 세상은 멸망을 맞이한 곳이었다. 게이트 때문에 멸망하게 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게이트라는 현상은 세계의 멸망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렇게 멸망하고 싶지 않다면, 열심히 내가 내려 준 재능을 갈고닦아라.’
꼭 그런 경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왜 우리를 그런 시험에 들게 하느냔 말이다. 그냥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두면 뭐가 잘못되는 것인지. 왜 굳이 평화로운 우리 세상에 쳐들어와서 이 난리인지 모르겠다.
“난 있잖아.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 같은 말,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래, 멋지지. 척 듣기에 옳은 말 같기도 하고. 근데 모두가 그런 영웅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
정호산이나 도채희 같이,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내가 가진 재능을 나 좋을 대로 휘두르고 싶어 하는 놈도 있는 거다.
사람들은 전자를 칭송하고 나 같은 놈을 더럽다고 욕하겠지만, 결국 두 사람은 그 신념 때문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
옳아서 죽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적어도 책임을 떠넘기지는 말아야지.
그 사람이 진심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서 그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거라면 응원은 해 주되, 왜 너는 힘이 있는 주제에 책임을 지지 않냐고 사람을 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네 재능은 네가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게 아니야. 네 능력과 너라는 사람은 상관이 없잖아? 그 재능은 네가 아닌, 저 너머에 어떤 못된 놈이 그냥 던져 놓은 거라고. 그러니까 휘둘리지 마.”
“휘둘리지 말라니…….”
“재능이 있건 없건, 너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야. 네가 좋아하던 거, 네가 잘하는 거, 너라는 사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아…….”
“너는 그냥 운이 없었던 거고, 그뿐이야. 네 잘못도 뭣도 아니고, 운명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어느 날 네 머리 위에 새가 똥을 지려 놓은 거랑 똑같은 일이야, 이건.”
“……다 좋았는데 새똥은 뭐예요?”
“그냥 그 정도로 사소하다는 뜻이야, 내 말은.”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나빠졌는데요. 엄마도 만날 수가 없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장지현은 다시 시무룩해졌다. 쳇, 저놈의 아티팩트만 괜찮았어도.
━장인 뒀다 어디에 쓰게. 이럴 때 써먹어야지.
‘아, 맞다. 그렇네요.’
그래! 중국에서 그 고생을 하고 데리고 온 장인님이 계시지 않나. 준이라면 저 목 깁스 같은 아티팩트도 어떻게든 고쳐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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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기지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지였던 것’이라고 말해야겠군.
‘정말로 다 때려 부숴 버렸잖아?’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커다란 건물을 해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준은 완전히 깔끔하게 건물을 해체해 놓았다. 장인은 그 체력부터가 이레귤러인지 뭔지, 힘들어하는 기색도 하나도 없었다.
준은 내가 건네는 식료품과 간단한 생필품을 착착 받아 구석에 쌓아 두었다.
“너무 대공사를 하는 거 아니야?”
“대공사가 필요했으니까.”
준의 말에 나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왜 왔어? 먹을 걸 가져다주는 날도 아닌데.”
“아,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내가 주섬주섬 꺼낸 아티팩트에 준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 쓰레기는 또 뭐야앗!”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이건 내가 만든 거 아니야!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