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88 젠트리 제약 회사 (4)
나는 꼼꼼히 장지현의 상태를 살폈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데다가, 미열이 살짝 있긴 했지만 당장 병원을 찾아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능력을 각성한 부작용 같지, 이거.
슬슬 각성할 나이기도 했고, 시기상 지금쯤 각성을 하는 게 맞긴 했지만 하필이면 이 대로변에서 각성을 겪다니.
마침 우리가 밀착 마크를 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이 상태로 발견되었다면, 응급실을 거쳐 바로 각성자 센터로 연계되었을 테니 말이다.
‘일단은 우리 숙소로 데리고 가야겠는데요.’
마음 같아서는 집에다 덜렁 던져두고 싶었지만, 각성 부작용을 겪고 있는 거라면 충분히 안정될 시간을 줘야만 한다. 이 상태로 집에 던져 놨다가 최선용이 응급실에라도 데리고 가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기도 하고.
다만 갑작스러운 딸의 실종에 혼비백산할 최선용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는데…….
‘음, 지금 이 상황에 집에 전화해서 당신 딸은 우리가 잘 데리고 있으니 안심해라…… 라는 말을 하는 건 그리 도움이 안 될 것 같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도 레이의 대답은 없었다.
‘내 말 듣고 있는 겁니까?’
━저 여자애, 마나 회로가 조금 이상한데.
‘그래요?’
━그래. 너도 느낄 수 있을 거다. 정신을 집중해 봐라.
나는 눈을 감고 장지현의 몸속에 있는 회로를 살폈다. 확실히 레이의 말대로 회로 속 마나의 흐름이 이상했다.
‘각성한 직후라서 이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요.’
각성을 겪는 각성자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현상을 겪는다. 마법처럼 바로 각성한 재능을 다루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각성한 직후 얼마간은 재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과도 있거든.
나야, 거짓말이라는 허접한 재능답게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정호산의 경우만 하더라도 넘치는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 문손잡이나 세면대를 다 부숴 놨었다. 며칠간은 그 녀석의 수발을 드느라 아주 힘들었는데.
그래서 나는 장지현이 이런 꼴이 된 게 각성의 부작용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의 생각은 달랐다.
━각성한 직후라 마나의 흐름이 이상한 게 아니다. 마나 회로의 모양이 이상해서 마나의 흐름이 이상해진 거고, 그 때문에 이렇게 몸에 이상이 온 거지.
음, 나도 마나에는 예민한 편이라 거친 흐름까지는 느껴져도 레이처럼 마나 회로를 전부 살펴볼 수준은 아니라 정확히 어디가 문제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몸에 새겨진 마나 회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겁니까?’
━글쎄다,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말하는 거라서 말이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여자애의 몸에 깔린 회로가 이상하다는 것뿐이야.
‘그럼 어떡하죠. 마나 회로가 이상해서 마나의 흐름이 이상한 거라면…….’
━뒤틀린 마나 회로를 바로 잡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이 꼴일 것 같긴 한데.
말이 쉽지, 이미 몸에 새겨진 마나 회로를 바로 잡는 방법 같은 건 없다. 애초에 몸에 새겨진 마나 회로는 쉽게 건드릴 수가 없다. 나야, 개사기 아티팩트인 레이를 얻어서 마나 회로를 건드릴 수 있게 된 거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한 번 새겨진 회로를 끝까지 갖고 가니까.
애초에 그게 우리가 사용하는 재능이라는 놈이다.
한 번 너는 불 속성이다, 하고 새겨 놓으면 불 속성밖에는 못 쓴다고. 그런 중요한 회로에 이상이 생겼다니.
‘시스템이 잘못한 거 아닙니까.’
멋대로 멀쩡한 사람을 각성시킨 걸로 모자라서, 그 각성도 이따위로 만들다니.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요?”
뒤늦게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한서현이 내게 물었다.
“음, 그게 말이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질 것 같네?”
내 말에 한서현이 얼굴이 구겨졌다.
“또 뭔데요!”
* * *
최선용은 자신을 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경찰관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사라질 애가 아니라니까요! 벌써 몇 시간째 연락이 안 되는데, 이대로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는 게 말이 되나요?”
그 간절한 목소리에도 경찰관의 말은 같았다.
“절차가 그렇다니까요. 실종 신고는 최소 12시간 동안 연락이 안 돼야만 가능한데, 지금 어머니께서는 그 애랑 연락이 끊긴 지 겨우 다섯 시간 째시잖아요.”
“우리 애,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에요! 그런 애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근처에 게이트가 열린 적도 없고, 주변 치안도 좋은 동네잖습니까. 놀다가 까먹었을 수도, 갑자기 사춘기 때문에 연락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죠. 싸울 만한 일은 없습니까? 친구들과의 사이는 원만했나요?”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애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이런 식으로 연락이 안 될 만한 이유는…….”
“모두가 그렇게 말해요. 모녀 사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요. 차라리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이미 다 물어봤어요. 모두가 모른다고 했다고요.”
“그게 거짓말이라면요? 그 나이 또래 친구의 부탁이라면, 친구를 숨겨 주는 것 정돈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 말에 최선용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반응에도 경찰관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그때에도 안 돌아오면…….”
“그럼 이미 늦겠지요!”
최선용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납치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율은 뚝뚝 떨어진다.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도, 경찰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CCTV라도 확인하게 해 주세요. 뭐라도 보게 해 달라고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하아.”
경찰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절차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주변에 게이트라도 열린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제발요. 부탁드릴게요. 우리 애 아빠 보내고 나서, 내 세상에 남은 건 그 애뿐이에요. 그 애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요. 그 애도 알아요. 그런데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질 리 없다고요.”
“어머니, 마음이 급하신 건 알겠지만 CCTV를 보려면 정식 절차를 밟아야 하고요. 애초에 그 애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위치도 따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요?”
“죄송합니다. 일곱 시간 뒤에 오셔야 해요.”
결국 최선용은 경찰서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나왔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밤 열시. 연락이 안 된 지, 겨우 다섯 시간이 지났을 뿐이니까.
모든 게 그녀의 착각이고, 이 모든 일이 해프닝으로 끝나길.
최선용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안으로 들어 왔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가방을 집어 던지고 재킷을 아무렇게나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둔 그녀는 한숨과 함께 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불을 켠 순간 최선용은 거실 안에 있는 남자의 모습에 비명을 내질렀다.
“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명을 내지르려고 했다.
뒤에서 튀어나온 누군가가 자신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검은색 가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쉬잇.”
쉬잇이라니! 갑자기 집에 쳐들어와 놓고 조용히 하라고? 게다가 검은 코트에 얼굴이 전혀 비치지 않는 검은색 가면을 뒤집어쓴 모습도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범죄자잖아!
겁에 질린 최선용의 표정을 살핀 남자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을 뗄 테니, 조용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얘기를 나누러 온 것뿐, 해치러 온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안심은 전혀 되지 않았지만, 최선용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눈짓에, 입을 틀어막고 있던 사람의 손이 사라졌다. 최선용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지만, 입을 막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앉으실까요?”
남자는 태연하게 소파를 가리켰다. 최선용은 달달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타깝다는 듯이.
“사실 조금 더 뒤에 오려고 했는데, 바로 경찰서를 찾을 정도로 딸에 대한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니 견딜 수가 없어져서요.”
그 말에 최선용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혹시 그쪽이 우리 딸을!”
“예, 지현 양은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도, 도대체 우리 지현이를 왜 데리고 간 건데!”
“이야기하자면 좀 긴데요…….”
남자의 말에 최선용은 주먹을 꽉 쥐었다.
“원하는 게 뭐야? 돈? 돈이라면 원하는 대로…….”
“아, 괜찮습니다. 이쪽도 돈은 꽤 괜찮게 벌고 있어서요. 음, 따지자면 뭔가 바라는 게 있긴 한데 그것 때문에 지현이를 데리고 있는 건 아니고요.”
“뭘 원하든, 원하는 대로 할 테니 지현이를 돌려줘요.”
“그게 좀 곤란한 상황입니다.”
남자의 말에 최선용은 주먹을 꽉 쥐었다. 도대체 눈앞의 남자가 원하는 게 뭘까.
“장지현 양은 오늘 각성했습니다.”
“각…… 성?”
“예. 장지현 양은 각성자가 됐습니다. 문제는 그 능력을 자신이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게 무슨…….”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딸이 각성자가 되다니. 심지어 그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도 못하고 있다니.
“믿어 주세요, 저도 장지현 양을 간절히 이곳에 데리고 오고 싶으니까요.”
* * *
장지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 장지현은 곧바로 비명을 내질렀다. 왜냐, 내 주변에 있던 한서현, 김재호, 차송진의 존재가 그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세 사람을 방에서 내쫓았고 그다음에서야 장지현은 겨우 진정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내 말에 장지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저씨랑 있을 때는 괜찮은 거죠?”
“그야, 나한테는 정신계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거든.”
장지현의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정신계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한 장지현의 능력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뜻이냐. 장지현이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있든, 없든. 나와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지.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장지현에게 현 상황을 간단히 말해 주었다.
“……맞아요. 주변에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거든요. 이상한 창도 떠올랐고…….”
“이상한 창?”
“예, 마치 게임에서 볼 법한 알림창이었어요. 그런데 그 알림창이 너무 겹쳐지고 일그러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요.”
장지현의 말에 나는 턱을 괴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나는 장지현에게 그녀의 상태에 대해 전해 주었다. 마나 회로가 뒤틀려 있고 그로 인해서 정상적인 각성을 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어쩌면 평생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까지.
“그, 그럼 어떡해요?”
“평생 이렇게 사람들이 떨어진 곳에서 지내거나, 아니면 네 재능을 봉인할 약물이 개발되길 간절히 바라거나.”
그렇게 말한 내가 덧붙였다.
“너한테는 정말로 다행이지. 네 엄마가 마침 그런 약물을 개발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말에 장지현의 표정이 굳었다.
이제야 내가 자신을 구출한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모양이었다.
여태까지야 정신이 없어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은 모양이지만, 한 번 의심이 싹트니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질 거다.
이 모든 상황이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아저씨, 정확히 누구예요?”
“아, 나?”
나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알고 싶지 않을걸?”
내 말에 장지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