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41화 (341/352)

제341화

#87 그 엑스트라의 사정 (2)

싸아아━쏘오오━싸아아━쏘오오━

대청마루에 누워 매미 소리를 들으며 금찬명은 눈을 감았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꼭 숲속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면 눈 앞을 가리고 있는 것은 쇳빛의 높다란 담장뿐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열 살이 된 지금까지 금찬명은 자신이 태어난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마당에 누워 본 하늘만이, 금찬명이 실제로 알고 본 바깥이었다.

높다란 담장은 금찬명을 보호하는 든든한 보호막이라기보다는 금찬명을 가둬 두는 감옥과 더 가까웠다.

누군가는 이곳을 감옥이라 부르기엔 이곳이 너무 호사스럽다, 지적할 거다.

그림으로 그린 듯이 아름다운 이 층짜리 단독 주택은 넓은 마당을 끼고 있었고, 그 마당에는 비단잉어가 노니는 호수까지 있었다. 침실만 네 개에, 책장이 꽉꽉 들어찬 서재,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 각종 운동기구가 놓인 방까지. 없는 게 없는 이 층 주택에는 때가 되면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지도 못할 만큼 호화로운 만찬이 차려졌다. 이 안에서 금찬명이 무슨 짓을 하든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금찬명을 혼낼 사람도 없었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갖춰진 호화로운 삶처럼 보이겠지만, 금찬명은 이 감옥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금찬명이 본 사람은 유모, 한 명뿐이었다. 유모는 금찬명에게 말을 가르치고,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러면서도 금찬명에게 집요하게 선을 그었다.

“안아 줘.”

“안 됩니다.”

금찬명이 매달릴 때마다 유모는 매정하게 금찬명을 떼어 냈다.

“왜?”

금찬명의 질문에 유모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직 제대로 머리가 굵지 않은 어린애였지만, 금찬명은 깨달았다.

유모가 자신을 절대로 안아 주지 않을 거라는 걸.

그다음부터 금찬명은 유모에게 안기려는 대신, 유모가 바라는 대로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가끔씩 사무치게 외로워질 때는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잤다.

일곱 살부터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매일 금찬명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라는 사람들이 들르기 시작했으니까. 처음 그들과 짧은 자기소개를 나눌 때까지만 하더라도 금찬명은 그들에게 희망을 느꼈다.

무언가 달라지진 않을까. 하지만 그 교사들은 유모와 똑같았다. 금찬명이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하면 곧바로 선을 긋고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싫어 떼를 쓰면, 그저 입을 닫은 채 금찬명이 포기하기만을 기다렸다. 나를 봐 달라고, 화를 내고 물건을 집어던져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금찬명을 가르치는 데에는 이상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국어, 수학, 영어를 비롯해서 과학, 체육, 미술, 음악……. 금찬명은 어쩔 수 없이 그 공부라는 것에 매달렸다.

그것밖엔, 그들에게서 반응을 이끌어 낼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자연히 성적은 높아졌지만, 금찬명 안의 갈증은 더더욱 커졌다. 교사들이 떠나는 길에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 바깥으로 나가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있는 줄도 몰랐던 양복을 입은 인간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자신을 붙잡아 다시 집안으로 돌려보냈다.

금찬명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그들의 감시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곳에 자신을 가둬 둔 사람이 누구든, 절대로 내가 이곳에서 나가게 두지 않는구나. 어린 금찬명은 금세 깨달았다.

금찬명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이를 가둬 두는 것은 불법이니까, 경찰에 신고하면 나를 구하러 와 주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신고를 해?

이 저택에는 신문도, 전화도, 인터넷도 없었다. 무엇하나 되지 않는 이곳에서 바깥과 이어지는 공간은 삼중의 보안을 통과해야 하는 대문뿐이었다. 그 대문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

교사들의 협력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 피도 눈물도 없는 교사들은 금찬명이 울든, 말든. 빌든, 구걸하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금찬명은 짙은 절망과 함께 모든 걸 포기했다.

거실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TV를 발견한 건, 그때쯤이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켜 보지 않은 TV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금찬명은 비명을 질렀다. 바깥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바깥의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통로였으니까.

하지만 그 TV에서 나오는 채널은 단 세 개뿐이었다.

불교 방송, 바둑 중계, 그리고 만화. 그중 무엇도 금찬명에게 바깥 소식을 알려 주지 않았다. 금찬명은 실망했다.

그렇지만 어렸기 때문일까. 저도 모르게 반짝반짝이는 화면에 눈이 끌렸다.

금찬명이 만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렇게 단순했다.

“유치해, 재미없어.”

처음에는 그렇게 투덜거렸던 금찬명이었지만, 곧 그 TV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그야, 그곳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삶이란 금찬명이 꿈꿔 오던 것과 똑 닮았으니까.

주인공을 사랑해 주는 부모님, 주인공을 믿고 따르는 친구들. 그들의 우정이, 모험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들이 겪는 시련과 고난에도 질투가 일 정도로 금 박사는 그 쇼에 푹 빠져들었다.

‘나에게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금찬명이 개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플래시맨이었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정체를 감춘 채 영웅으로 활약하는 그 히어로의 모습에 금찬명은 그야말로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가면을 뒤집어쓰면,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를 알던 친구들과 부모님 또한 절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나도 저런 가면을 쓰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 텐데.’

이 집안을 나갈 수 없는 것은 금찬명뿐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이곳에서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저런 가면만 있다면, 얼마든지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 * *

푸른색 양복을 걸친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것은, 금찬명이 열한 살이 될 때였다.

“안녕?”

처음, 제게 그렇게 말을 건네는 남자를 봤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금찬명은 그가 새로 온 교사라고만 생각했다.

“네가 꽤나 머리가 좋다던데.”

자신을 평가하는 말을 듣고서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이어지는 말에, 금찬명은 두 눈을 부릅떴다.

“하긴 네 어미도 꽤나 머리가 좋은 편이었지.”

“제 어머니에 대해서 아세요?”

그 말에 남자는 웃으며 금찬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아주 잘 알지.”

“어떻게요? 어떻게 아시는데요?”

“쉬이, 조용조용. 네가 착하게 굴면 천천히 말해 주마.”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글쎄, 일단은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그 말을 남기고 수상쩍은 남자는 사라졌다. 그 뒤로 금찬명은 좋아하던 만화를 보는 것도 끊고 잠도 줄여 가며 공부에 열중했다. 교사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금찬명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남자가 찾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며.

그리고 두 달 뒤. 남자가 도착했을 때 금찬명은 곧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저 잘했어요, 그동안! 다들 날 칭찬했어요! 그러니까…….”

“그래, 얘기는 들었다. 보기 드물 정도의 천재성이라고. 그래, 하긴. 누구의 씨인데.”

남자는 금찬명을 보며 웃었다. 금찬명은 남자의 웃음에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그날, 남자는 금찬명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네 어머니는 재원이었단다, 아주 아름다웠지. 그래, 누구든 첫눈에 반해 버릴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금찬명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라고.

그 일 이후로 남자는 금찬명을 종종 찾아왔다. 금찬명이 끝끝내 교사에게서 완벽하다는 칭찬을 이끌어 낸 다음 날, 금찬명을 찾아온 남자가 물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다오. 내 한 가지, 들어주마.”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꾹꾹 눌러 참았던 그 부탁을 금찬명은 겨우 꺼내 놓았다. 혹여 함부로 내뱉으면 사라질까, 두려웠던 그 말을. 그 말에 남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숨을 내뱉었다.

“그건 참 곤란한 부탁이구나. 내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야. 대신 다른 건?”

그 말에 금찬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여태까지 그렇게 자신에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해 놓고. 그녀와 퍽 친한 척 자랑을 해 왔으면서 이제 와서 만나게 해 달라고 비니 ‘안 된다’니.

당장에라도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금찬명은 이 기회를 잘 살려 보기로 했다.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각하기 전, 자신이 가장 바라던 것…….

“친구가 갖고 싶어요.”

“친구?”

“네.”

금찬명은 초조함에 눈을 굴렸다. 혹여나 이것 또한 ‘안 된다’고 할까 봐.

“하긴, 혼자서 외롭긴 하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찬명에게 말했다.

“좋아, 친구를 만들어 주지.”

그렇게 해서 금찬명은 백도산을 만나게 되었다. 금찬명이 열둘, 백도산이 열여섯일 때의 일이었다.

* * *

억지로 끌려온 기색이 역력한 소년은 양복을 입은 채로 예쁘게 배달되었다. 자기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데다가 인상은 험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기 ‘또래’였다. 금찬명은 제 앞에 선 소년을 바라보며 방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는 금찬명이야!”

안타깝게도 눈앞의 소년은 그 손을 맞잡는 대신, 곧바로 쳐냈다.

“뭔데, 넌.”

소년은 그 험악한 반응이 이 꼬맹이를 쫓아내기에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장장 십이 년간을 친구도 없이 지냈던 금찬명의 마이페이스는 대단했다.

“나? 금찬명이라니까? 너는 뭐야?”

“뭐야, 이 꼬맹이…….”

“몇 번이나 말해야 돼? 난! 금!찬!명!이라고! 사실 그거 알아? 나는 내 이름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련님인 줄 알았어. 왜냐면 다들 나를 도련님이라고 불렀거든. 그런데 한글을 배울 때, 글쎄, 내 이름을 적어 주는 거야.”

금찬명의 말에 소년의 눈이 가늘어졌다. 금찬명은 소년의 앞에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난 내 이름을 한자로도 쓸 수 있어. 비단 금(錦)자에, 빛날 찬(燦), 밝을 명(明)자를 쓰지. 너는? 너는 이름이 뭐야?”

“……백도산.”

“오! 도산이!”

“내가 한참이나 형인데 도산이가 뭐야?”

어이가 없다는 그 말에 금찬명이 말했다.

“아니야, 넌 내 친구야. 친구!”

왜냐면 난 ‘친구’를 보내 달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백도산이 왠지 화를 낼 것 같아 금찬명은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험악한 인상의 백도산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쪼그매서는, 뭐라는 거야?”

금찬명은 백도산의 손을 잡아끌었다. 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백도산은 다시 뚱해졌지만, 그래도 금찬명이 시키는 일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가끔 툴툴거리며 금찬명의 속을 뒤집어 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니, 씨X. 내가 나이가 몇인데 저런 거 뒤집어써야 되는데!”

“진짜가 아니라서 그래?”

제법 정교하게 만든 가면을 손에 든 금찬명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드디어 ‘친구’가 생겨서 프래시맨을 듀오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친구라는 사람이 저렇게 질색팔색을 하니 곤란했다.

“진짜가 아닌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 이런 거 좋아하냐?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열둘.”

“세상에, 그 정도면 알 거 다 아는 나이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런 가면 놀이에 푹 빠질 때는 지나지 않았냐 하는 거지.”

백도산의 말에 금찬명이 말했다.

“처음인데…… 이거 가지고 노는 건.”

툭툭 발끝으로 땅을 차며 금찬명이 말했다.

“지나지 않았어, 나한테는. 나한테는 처음이란 말이야.”

이걸 가지고 ‘노는 건’ 처음이다.

처음 이 가면을 만들었을 때 금찬명은 자신이 히어로라도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 가짜 가면은 그를 가려 주지 못했다. 결국 평소와 똑같이 잡혀 온 뒤 금찬명은 엉엉 울었다.

하지만 차마 제 손으로 이 가면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생긴 제 친구에게 이걸 내민 참이다.

금찬명의 말에 한숨을 쉰 백도산이 말했다.

“알았어, X발. 해 주면 될 거 아니야!”

인상만큼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금찬명은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