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8화
#86 인연이라고 하죠 (7)
“팀장님, 이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몇 달 전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시꺼멓게 그을린 김두식이 망고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말했다.
현지에서 파는 옷에, 밀짚모자까지 걸친 그를 본 최인혁의 눈이 싸늘해졌다.
“네가 할 말이냐, 그게? 아주 여기 사람 다 됐으면서.”
캄보디아에 도착한 뒤, 밥도 물도, 무엇도 맞지 않아 고생 중인 까탈스러운 도련님 최인혁과 달리 김두식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현지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곳에 잘 스며들었다.
여전히 새하얀 얼굴에 한국에서 가져온 옷만을 고집하는 최인혁과는 아예 인종이 달라 보일 정도였다.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는 형님의 사람, 오직! 형님의 사람인데요! 저한테는 형님밖에는 없습니다!”
“어휴.”
최인혁은 말이 통하질 않는 김두식을 바라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왜 저런 놈이 자기 밑에 붙어서는. 정말이지 볼 때마다 속이 터졌다.
“그래도 한국으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밑에 놈들한테 일을 맡겨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 돌아가고 싶기는 한 거야? 여기에서 쭉 살고 싶은 건 아니고?”
“뭐, 여기 밥도 맛있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아주 좋긴 한데요. 그래도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죠. 그리고 그 녀석한테 너무 집착하는 모습도, 그, 뭐랄까, 좀 안돼 보이기도 하고요.”
김두식은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게, 언제든지 내뺄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최인혁은 폭발하는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젠 저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몇 달간 그 점쟁이에게 강이신을 찾기 위한 질문을 수도 없이 뱉은 최인혁이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내가 문제지, 내가 문제야. 이 세상의 온갖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람에게 근 두 달을 비비면서도 답을 찾질 못하고 있으니.”
질문에 대한 답을 ‘예’와 ‘아니오’로밖에 받을 수 없다는 건, 한 사람을 찾기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다.
하도 진전이 없어 처음에는 그 여자를 의심했지만, 정말로 그 여자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시험용 질문을 몇 개 던진 다음, 최인혁은 본격적인 강이신 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강이신이 있는 지역을 특정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늘 움직이기 마련이고, 곧 그 방법으로는 영원히 강이신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다음으로 최인혁이 관심을 가진 사람은 강이신의 유일한 친구인 정호산이었다. 하지만 정호산은 물론이고, 강이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친구’는 없단다.
하!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않고 꼭꼭 숨었단 말이야? 결국 친구를 통해 강이신을 찾겠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가족? 강이신은 천애 고아다, 가족이 있을 리가.
그다음으로는 계속되는 헛발질뿐이었다.
최인혁이 던진 질문 대부분에 여자는 NO라는 대답을 내뱉었다. 강이신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자신의 위치를 잘 감추고 다녔다.
그래도 강이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답답해서 내뱉은 ‘그래서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긴 하냐고!’라는 질문에 YES라는 대답이 돌아왔으니.
문제는, 그걸 알아도 최인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왜냐!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니까!
“젠장! 잡힐 듯 잡히지가 않으니 미쳐 버리겠네.”
“결단을 내리셔야 할 땝니다.”
김두식의 말에 최인혁은 얼굴을 구겼다.
“하아…….”
확실히 이곳에서 시간을 너무나도 끌었다.
자리를 비웠다고 자신을 배신할 놈들이 아니긴 했지만, 사업장을 너무 오래 비워 두는 건 확실히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젠장,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보다 소득이 너무 없는데요.”
“애초에 캄보디아에 오자는 건 네 생각이었잖아!”
최인혁의 폭발에 김두식은 재빨리 의자를 든 채로 도망갔다. 그래도 전에는 좀 맞아 주는 체라도 하더니, 아주 요새는 빠져서는. 저런 식으로 도망만 갔다.
꼴 보기 싫은 모습을 보며 최인혁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오늘 딱 하나만 물어보고 간다.”
“아, 갈 겁니까?”
“그래! 마지막 질문이야, 마지막 질문.”
최인혁은 굳은 얼굴로 점쟁이에게로 향했다.
근 두어 달 동안 매일 얼굴을 맞댔던 점쟁이는 최인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벌레라도 씹은 듯이 표정이 더러운 최인혁과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오늘도 제게 답을 찾으러 오셨나요?]
점쟁이의 말에 최인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통역가의 말에 거칠게 고개를 끄덕인 최인혁이 말했다.
“오늘 마지막 질문을 할 겁니다.”
[그렇군요, 마지막이라. 아쉽네요. 그래도 꽤 정이 들었는데.]
점쟁이의 말에 최인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이 들기는 무슨. 호구 하나 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
통역가는 그 말을 전하지 않았지만, 점쟁이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에게 찾아오는 이 중, 원하는 답을 들고 가지 못한 사람은 없어요. 부디 오늘의 질문이 당신께 진정한 답이 되기를…….]
그 점쟁이의 말에 최인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질문만큼은 하기가 싫었다. 정말로.
하지만 어쩌랴.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싫은 것을.
최인혁은 결심을 마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백도산이 도와주면 난 강이신을 찾을 수 있을까?”
백도산, 자신의 이복형. 그 녀석에게 손을 벌리기는 더럽게 싫었다. 그래서 거절했었지. 하지만 백도산이 그러지 않았는가. 네 돈을 떼먹은 그놈, 찾고 싶냐고.
그때 자신은 어떻게 답했더라.
「그놈은 내가 직접 찾을 거니까
괜히 끼어들지 말고
댁 일이나 잘해.」
그래, 그랬었지. 자신의 일에 끼어들려는 그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게 성질을 틱틱 부려댔었다.
어렸을 때부터 당한 비교질은 물론이고, 커서도 자신에게 ‘백’ 씨를 물려주지 않은 그 아버지와 그 형이 정말이지 더럽게 싫었으니까.
하지만 말이지.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 건지는 건 진짜 너무너무 싫으니까 말이야.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백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놈이, 바깥에서 이런 식으로 무시당하는 거. 그래, 정말이지 꼴 보기 싫은 일이니까 말이지.
나, 최인혁을 무시하는 놈은 꼭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라고 늘 우리 어머니는 말씀하셨고 말이지.
그러니까 물었다.
백도산, 그 사람이 날 도우면 정말 강이신을 찾을 수 있는 건지.
그 질문에 점쟁이가 답했다.
“YES.”
“젠장.”
차라리 아니길 바랐는데.
최인혁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역시 백씨 가문의 장자는 다르다는 거야, 뭐야.”
왜 하필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게 ‘그 새끼’일까?
* * *
백도산은 중국 은월회에 보내 놓은 조직원이 들려준 이야기에 얼굴을 굳혔다.
“그러니까 벨츠머츠, 그놈들이 마약 사업을 접자고 했다고?”
[예…….]
“그래, 사업을 하나 접자고 했다면 대안은 있겠지? 설마,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접자고 한 건 아닐 거 아니야?”
마약 사업은 현재 백도산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다. 단지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숨이 이 일에 달려 있었다. 그런 거대한 사업을 문자 그대로 ‘그냥’ 접자고 하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맞아떨어지는 건지.
[일단은 그냥, 무조건, 접자던데요.]
“대책도 없이?”
[예에…….]
그 말에 백도산은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다.
“이유는? 갑자기 잘 나가는 사업을 접겠다는 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백도산은 웃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 한마디로 하자면……. ‘마약은 나쁘니까’ 정도가 되겠네요.]
“그 사업에 끼워 달라고 했을 땐 언제고, 이제 본인은 돈을 벌 대로 벌었다는 건가? 나쁘다고? 나쁘니 하지 말자고?”
정말이지 머리에 총을 맞기라도 한 건가. 미국이며, 중국이며. 여기저길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풍토병에라도 걸린 건 아닌지.
“미친 거야?”
백도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일에 끼어들었을 때도, 자신의 친구를 되도 않는 일로 끌어들였을 때도. 백도산은 참았다.
그래도 자기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영 마땅찮은 놈들이긴 해도 필요할 때마다 협력할 수는 있는 존재들. 벨츠머츠에 대한 백도산의 의견은 그러했고, 여태까지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는 다르다.
그놈들은 감히, 웃기지도 않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들의 사업을 망치려고 한, 개자식들.
그러니까 뭐랄까.
‘적이네.’
응, 적이야.
아군의 탈을 쓴 적임이 분명했다.
“당장 그놈들을 만나야겠는데.”
[어, 이쪽에서는 연락이 일단 안 됩니다. 생각해 보라고, 수익원에 대한 답은 언젠가 가지고 오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는데요.]
“한국……, 한국에 있단 말이지? 그럼 이쪽에서 처리해야겠네.”
백도산은 그 말을 끝으로 조직원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신출귀몰해서 도저히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수배범 벨츠머츠지만, 백도산은 당장에라도 그 녀석들을 찾을 자신이 있었다.
왜냐?
자신에게는 든든하게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막 휴대폰을 꺼내 그 믿는 구석에게 연락을 해 보려고 했던 찰나였다. 휴대폰에 뜬 메시지에 백도산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아?”
그 메시지에 백도산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띠어 올렸다.
“드디어 이 형님에게 바짝 길 생각이 든 거냐.”
마침, 잘 되었다.
그 벨츠머츠에는 막 자신 또한 볼일이 생긴 참이었으니.
메시지에 간단한 답장을 던진 백도산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갑작스러운 전화에도 상대방은 평소처럼 전화를 잘 받아 주었다.
“별일은 아니고, 벨츠머츠 그놈들. 요새는 어디에서 지내는지 궁금해서. 아, 아니.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지는 마.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볼일이 있는 거라, 깜짝 방문을 하고 싶거든.”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 백도산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 자식들이 왜 너희 집에 있어?”
들려오는 대답에 백도산은 이마를 짚었다.
“찬명아, 너 진짜 호구냐?”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니, 됐어. 그대로 있어. 준비 끝나면 거기로 갈 테니까. 아니, 내가 가는 건 비밀로 해. 응, 알겠어. 그동안 안전하게 잘 있고.”
그래, 오랫동안 묵혀 놓은 감정을 풀 때가 되기는 했지.
짧게 숨을 내쉰 백도산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강이신, 이 개X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