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
#86 인연이라고 하죠 (5)
산 중턱에 도착했을 때부터 준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야, 주변이 반짝반짝 빛났던 도시에 비해서 이곳은 음, 뭐랄까. 적막한 풍경의 정취가 느껴지는 편이지.
━어떻게든 포장을 하려고 드는구나.
‘포장이 아니라요! 그래도 여기도 나름의 멋이 있다 그겁니다.’
━안쓰러울 지경이구나.
레이의 가차 없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런 나쁜 영혼 같으니라고. 준은 그래도 이 가차 없는 타차원 노땅보다는 마음이 넓지 않을까.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야?]
준의 말에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장인의 눈에서조차 절벽 안에 집이 있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니. 혼티드 하우스의 환영은 오늘도 정상 작동 중이었다. 나는 혼티드 하우스에 준을 등록하고 준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여자라고 챙겨 주는 것 같은데.”
“아니야, 그보다는 부려 먹을 구석이 많은 사람이라서 미리 밑밥을 깔아 놓는 거지. 우리 집 꼴을 보고 도망가면 큰일이니까.”
뒤에서 한서현과 차송진이 우리를 보며 무어라 쏙닥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우리 집 꼴이 어디가 어떻다고 그래!
“따라라라, 딴.”
나는 입에 익다 못해 영혼에 각인된 것 같은 옛 프로그램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준과 함께 환영을 통과했다.
[짜잔, 우리의 혼티드 하우스를 소개합니다.]
널따란 동굴 밑에 지어진 우리 혼티드 하우스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한서현이 저 수많은 벽돌을 하나하나 정성껏 직접 빚어 만든 집으로서…….
막 그런 설명을 하려 할 때였다. 준의 표정이 내 말문을 턱하고 막아 버렸다.
내 옆에 서 있는 준은 마치 생전 처음 고시원을 본 재벌 2세처럼 넋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 하는 표정이랄까.
자기는 구덩이에 살았으면서! 그 구덩이랑 우리 집이라 다를 게 뭔데!
겉, 겉보기에는 좀 그래도 안에는 나름 알차게 채워 뒀다고.
[겉보기에만 조금 허술해서 그렇지, 안은 또 괜찮아. 하하, 뭐든 내면이 중요한 게 아니겠어?]
[아무리 그래도 저 외면이 저 정도로 나쁜 건 싫어.]
으윽,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
[……여길 직접 지었다고?]
[응!]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좀 그래도 얼마나 정성껏 지었다고.]
음, 정말이지. 그때 했던 고생만 떠올리면 아직도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라니까. 저 벽돌 하나에 추억과 벽돌 하나에 땀과 벽돌 하나에 피와……. 벽돌 하나에 서현이, 뼈다귀, 아니, 한조희 씨…….
정말이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걸 다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의 노가다였다.
[하하,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엔 좀 저래도 안은 꽤 괜찮아.]
━그야 그쪽은 네가 손을 댄 부분이 거의 없으니까.
너무하다! 너무해! 레이의 놀림에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는데 황급히 준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두 눈에 내 손을 집어넣기라도 할 듯 샅샅이 내 손을 살핀 준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이잖아…….]
[그야, 손이지…….]
[발이 아니라, 손.]
[잠깐, 뭐라고?]
[손이 달렸는데 어떻게 이런…….]
그제야 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대단한 장인이라고 해도 사람을 이런 식으로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 무어라 따지려 했는데, 사정없이 떨리고 있는 준의 동공을 보니 하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이렇게나 충격을 받을 일이냐고!
[안은 좀 괜찮다니까.]
[비명을 지르고 있어…….]
[그야, 혼티드 하우스니까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거지. 빌런 기지에 어울리고 좋지 않아?]
내 필사적인 포장에도 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전혀 좋지 않아.]
벽에 손을 댄 준이 말했다.
[연결이 엉망진창이야. 억지로 꿰서 이은 것처럼……. 꼭 여러 시체 조각을 끼워 만든 괴물 같아.]
[어이!]
정말이지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여러 시체 조각을 끼워 만든 괴물 같다니! 아니, 잠깐. 한서현 식으로 생각하자면 저건 욕이 아니라 칭찬일 수도 있었다. 음, 다채롭다는 뜻이지? 그래, 칭찬. 칭찬인 거다.
━애를 쓰는구나, 아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했거든요? 당신처럼 부정적으로 살면 예? 삶이 괴로워진다고요.’
그럼, 인간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나는 충격을 받아 굳어 버린 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언제까지 여기 밖에만 서 있을 순 없잖아.]
그렇게 준을 달래고 있는데, 한서현과 차송진의 대화가 들려왔다.
“왜 저래?”
한서현의 질문에 차송진이 답했다.
“음, 나는 왜인지 알 것 같아.”
“왜?”
“그야, 이 집 말이지. 처음 봤을 때는, 영, 그……. 집보다는 돌무지무덤에 가깝다고 생각했거든.”
그 말에 한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야, 한서현은 나와 함께 이 집을 지은 장본인이니까!
그래, 너도 기분 나쁘지! 저런 평가는?
“돌무지무덤이라니, 너무 평가가 후한 거 아니야?”
뭐? 그 평가가 후하다니!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은 어디로 갔어!
“나도 가끔 그 생각을 하긴 해. 겨우 이런 걸 만들려고 그 개고생을 했다니…….”
“개고생? 설마 너도 이 집을 같이 지은 거야?”
“말도 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그때 보스가 얼마나 우리를 부려 먹었는지…….”
“재호도 같이 지었어?”
“아니, 우리 형이랑.”
“형, 형이라면…….”
“그때는 형의 자아가 살아 있는지 몰랐는데 말이야. 아, 그때 보스가 얼마나 잔인하게 우리를 굴려 먹었냐면 말이야. 해골은 잘 필요가 없다고 며칠간이나 조금의 쉬는 시간도 없이 벽돌을 만들게 시켰다고. 형한테 그때 기억이 남아 있지 않길 바랄 뿐이야.”
“해, 해골권도 없이?”
“보스는 무시무시한 악당이잖아. 인권도 겨우 챙기는데 해골권 같은 걸 신경 쓰겠어?”
“거기, 다 들리거든!”
준은 물론이고 저 녀석들까지 내 편이 아니라니.
여기에 더 서 있다가는 내 자아가 뭉개질 위기다. 나는 재빨리 모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안은 괜찮지!”
━너, 한국어로 말했다.
젠장,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는 재빨리 중국어로 준에게 같은 말을 전했다. 이곳은 내가 만든 게 거의 없을 테니, 레이의 말대로 제법 괜찮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에드워드가 새로 페인트칠도 해 줘서 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준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시스템 창도 내 손재주에 ‘형편없는 솜씨로 마감되어 등급이 격하’되었다는 표현을 넣어 놓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할 정돈가.
준이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건 뭐야?]
[아, 저거?]
준이 가리킨 건 내가 정성껏 만든 의자였다. 앉을 때마다 엉덩이가 조금 저릿해지고 등짝이 아파 오는 걸 빼고 아주 괜찮은 의자지.
에드워드가 저 의자에 푹 빠져서 한국 생활 내내 저걸 끼고 살지 않았나. 역시 장인이라 보는 눈도 다르군.
[내가 만든 의자야. 어때, 멋지지? 일반적인 의자에 질린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의자랄까.]
[저, 저주받은 의자!]
준이 기겁한 얼굴로 외쳤다.
[아, 그건 이름이 조금 거창하지. 와하하, 저주받기는 무슨. 그냥 엉덩이가 조금 저릿해질 뿐인데.]
[조금 저릿해지는 수준이 아닐 텐데, 저거. 아무래도 고문, 그래! 고문용이지?]
[아니야!]
[고문용이잖아! 확실히 너 나쁜 놈이 맞구나!]
너무나도 확신에 찬 얼굴에 할 말이 없어졌다. 준은 사방을 둘러보며 미친 사람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준의 모습에 한서현과 차송진이 눈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저 여자애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아, 나 알아!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셔서 그래!”
김재호까지 끼어들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다들 가만히 있어 봐!”
아무리 대단한 장인이라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우리가(정확히는 대부분 내가) 정성껏 만든 집을 무시하는 건 더는 참을 수 없다.
[어이, 준.]
나는 준의 어깨를 잡아 멈춰 세웠다.
[아무리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멈춰. 어쨌거나 너는 앞으로 여기에 같이 살아야 하고…….]
[역시, 다 뜯어고쳐야겠어.]
[뭐?]
[이런 집에서는 못 살아.]
[아니, 잠깐만.]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겠어.]
[뭘 다시 만든다고?]
나는 그렇게 물었지만, 제 생각에 빠진 준은 내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자기 세상에 빠져 버린 준은 사방을 둘러보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야겠어. 그래도 재료는 좋으니까…….]
[그러니까 이 집을 다시 만들겠다고?]
내 말에 준이 외쳤다.
[그래! 다시 만들 거야! 이런 집에서는 못 살아!]
[왜! 우리 집이 어디가 어때서!]
[벽돌 하나하나 비명을 지르고 있어. 이렇게 쓰이고 싶지 않다고! 그 목소리 때문에 미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준의 표정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 그 정도냐! 준이 가진 재능은 아티팩트와 재료들의 ‘목소리’를 듣는 거라고 했다. 그 목소리의 요청에 따라 물건을 만들면 최고의 아티팩트가 나온다고 했지.
그래서인지, 준은 수준 미달의 아티팩트를 볼 때마다 화를 내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이 그 정도였냐…….
[구려! 끔찍해! 정말이지 잠시도 여기에 있기 싫다고!]
으윽! 장인의 말씀이다. 중국에서 내가 그 고생을 해서 데리고 온 장인의 말씀…….
[다시 짓게 해 줘!]
저 벽돌 하나에 추억과 벽돌 하나에 땀과 벽돌 하나에 피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장인의 말씀이시다, 장인의 말씀.
나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준에게 말했다.
[그, 그래! 나도 마침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참이었어!]
내 말에 준이 딱 잘라 말했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 다 때려 부술 거야.]
* * *
그리하여 우리 벨츠머츠의 기지, 혼티드 하우스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아니, 재건축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도 준에게 재건축을 돕겠다고 말했으나, 웬일인지 준은 내 도움을 완강히 거절했다.
[그냥 어디에 처박혀 있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니까.]
[……말,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심한 건 네 손, 아니, 발 재주고.]
[그래도 손으로 지었다고!]
[아니, 너는 손이 없어. 네게 달린 건 손 모양의 발이다.]
준의 매정한 말에 나는 훌쩍거렸지만,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준은 우리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어디 멀리에 있어 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이 산 중턱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려고…….]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할게. 걱정하지 마, 도망 안 가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는데…….]
도망을 가더라도 언제든지 잡아 올 자신이 있으니까 말이지. 준은 혼자 작업하는 걸 선호한다고 했다. 누가 옆에 있으면 생각이 복잡해진다나.
나는 오래전에 쓰다 처박아 뒀던 텐트 아티팩트와 함께 여러 가지 아티팩트를 설치해 둔 뒤 생필품을 잔뜩 챙겨 준에게 안겨 주었다.
준은 그 모든 걸 받아 챙긴 뒤 우리에게 손짓했다.
어서 썩 꺼져 버리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며칠에 한 번씩 이곳에 들러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지가 문젠데…….
갑자기 우리의 기지를 뺏겨 버리니, 갈 만한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으음, 딱 한 군데가 떠오르긴 하는데…….
나는 초인종을 누르고 대답을 기다렸다.
[아, 진짜! 뭐냐고!]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당당하게 외쳤다.
“미안한데 며칠만 신세 집시다.”
내 말에 금 박사는 기겁했다.
[뭐어어어?]
그 목소리에 레이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저 녀석은 전생에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