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29화 (329/352)

제329화

#85 카르마 (4)

“한서현은 언데드를 다룰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언데드의 인식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재빨리 도망칠 테니까.”

“인식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도, 전혀 감이 안 오는데요.”

“끄응, 일단은 조심스럽게 움직이자는 뜻이죠. 저희가 가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요.”

“조심히 움직인다고 될까요?”

살금살금 걷는 것 정도로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텐데. 이희원의 지적에 남주현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확실히 현장을 뛰는 건 그녀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쑤어하오주가 슬쩍 입을 열었다.

“다 죽이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그, 그건 안 되지!”

“그, 그러면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을까요?”

“맞아, 의심을 살 거라고.”

쑤어하오주는 그 말에 볼을 부풀렸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기척을 줄여 주는 아티팩트를 사는 건요?”

“……그야, 좋은 방법일 테지만 당장 그런 걸 어디에서 사요? 딱 봐도 불법적인 느낌이 나는데.”

“내가 한 번 구해 볼까요?”

이희원이 나섰다. 한때는 시리우스 길드의 그림자로서 활약했던 그녀에게는 이런저런 정보가 많았다. 이 주변은 처음이었지만, 대충 불법적인 아티팩트를 팔고자 하는 이들의 생태는 빠삭하다.

“믿, 믿습니다!”

이희원이 아티팩트를 구해 오는 사이, 남주현은 벨츠머츠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동안 그들과 함께 일하며 알게 된 것들과 따로 조사한 것들까지. 끝없이 나오는 정보에 유채린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사람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라테를 좋아한다는 정보가 어떻게 이번 일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유채린의 팩트 폭력에 남주현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그냥 알고 있으니까 말해 준 것뿐이에요. 혹시나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카페에 갈 일이 있다면 그렇겠지만…….”

유채린의 말에 남주현은 그대로 침몰했다.

“알겠어요! 방금 그 정보는 TMI였던 것으로. 당장 머릿속에서 지워요. 나도 지울 테니까.”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알게 된 건데요?”

유채린의 호기심 어린 얼굴에 남주현은 천천히 과거의 일을 털어놓았다. 김성득 의원의 일을 캐다가 죽임을 당할 뻔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벨츠머츠였다는 것.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유채린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였어요?”

“쉬, 쉬! 일단은 비, 비밀이에요.”

“어째서…….”

“그야, 가끔 협력하는 사이가 아니라 아예 벨츠머츠 쪽에 고용이 됐다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저도 알아요, 벨츠머츠가 착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 하지만요, 저는 ‘선(善)’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거든요.”

유채린은 그 말에 몸을 떨었다. 벨츠머츠가 직접 저지른 일을 봐 온 그녀로서는, 참으로 위험하게 느껴지는 말이었으니까. 유채린의 반응을 깨달은 듯, 남주현이 황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벨츠머츠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그르죠, 글러 먹었는데…….”

남주현은 유채린에게 말했다. 자신과 도채희가 어떻게 김성득 의원을 처리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어떻게 막혔는지. 유채린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전 몰랐어요, 그 사건 뒤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제가 봤던 건…….”

유채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사건 현장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현장에 남은 것은 악마와도 같은 벨츠머츠의 모습뿐이었다.

유채린을 이해한다는 듯 남주현이 쓴 미소를 지었다.

“저도 알아요. 그 사람들이 꽤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거. 아무리 좋은 의도로 그런 짓을 했다고, 그 사람이 한 짓이 옳다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가 않아요. 하오주만 봐도 그래요.”

션이라는 남자의 방법까지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밖에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더라고요.”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정보를 다 보고 있는 남주현은 알고 있었다. 선한 사람들의 마음만으로, 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조용히 침묵하고 받아들이면 착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뿐이라고.

“그러니까 난 그 사람들 편이에요. 어느 정도는.”

“그, 그렇군요.”

유채린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채린의 표정을 살핀 남주현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들 편만을 드는 건 아니에요.”

“에, 예?”

“그랬다면 여기에 올 일도 없었어요. 왜냐, 그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 오는 걸 전혀 바라지 않을 거거든! 나한테 쑤어하오주를 맡겼을 때도 그랬단 말이죠. 잘 봐 주고 있다가 적절할 때 그냥 바깥으로 내보내라.”

“그, 그런 말을 했어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빼액 지르는 남주현에게 유채린이 놀라 말했다.

“네. 그런 말 했어요. 아주 개자식들이죠?”

조금 전까지 벨츠머츠를 옹호하던 사람이 곧장 이런 말을 내뱉다니. 벨츠머츠를 욕하는 남주현의 얼굴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내가 진짜 할 말이 아주 많단 말이에요. 솔직히 하오주가 찾으러 오자고 하지 않았어도 내가 오자고 할 뻔했어. 엉?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나한테 맡기고 가면 어쩌냔 말이야.”

처음에는 무섭기만 했을 뿐이다. 갑자기 제게 던져진 이 어린 애가 부담스럽고 무서워서, 그냥 얼른 떠나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흐려졌다.

쑤어하오주를 보고 있자면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견. 꼬질꼬질하게 때가 타고, 제대로 관리도 안 된 그런 유기견 말이다.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의 그림자만 봐도 컹컹 짖고 이를 드러내서 도저히 예뻐하려야 예뻐할 수가 없는 그런 사나운 유기견. 쑤어하오주는 그런 유기견을 똑 닮아 있었다.

“난 말이죠, 자기가 사랑하던 동물을 버리는 사람을 아주 지독하게 싫어해요. 진짜로다가, 자기가 한 번 정을 줬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 어?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못된 놈이죠. 그 사람은.”

결론이 이상했다. 무어라 유채린이 말을 이으려던 찰나, 이희원이 돌아왔다.

“아티팩트를 구하진 못했지만, 대신 이 가루를 구했어요.”

이희원의 손에 들린 주머니에 들어 있는 짙은 회색빛의 가루를 본 남주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색만 구린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꼬릿꼬릿한 냄새에 절로 콧구멍이 확장되었다.

“그 이건 뭘로 만든…….”

“……정말 듣고 싶습니까?”

이희원의 진지한 질문에 남주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효과는 확실한 건가요?”

유채린의 질문에 이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가 없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희원의 등에 매달린 검으로 슬쩍 시선을 줬던 남주현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해 볼까요?”

일행은 모두 이희원의 안내에 따라 가루를 뒤집어썼다. 다들 재에 뒤집어 쓰인 꼴이 됐다. 모습은 좀 웃겨도 효과는 확실했다.

“우와…….”

눈으로 보고 있어도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옆에서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도 바깥으로 소리나 진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확실히 속여 넘길 수 있겠는데요.”

“그래도 눈에 보이긴 하잖아요.”

“일단 눈에 보이긴 해도 위협적인 무언가로 ‘인식’이 되진 않잖아요.”

한서현는 언데드를 풀어만 놓을 뿐, 그 언데드에 자신의 감각을 모두 연결해 두지 않는다. 그랬다면 금세 미쳐 버릴 테니까. 한서현뿐만 아니라 다른 네크로맨서도 정찰용 언데드에는 필요할 때를 빼고는 의식을 연결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바일 게임에서 자동사냥을 돌려 놓는 것처럼, 무의식에 경계에 내버려 두는 거예요. 그러다가 무언가 걸리면 띠용, 알람이 뜨는 거죠. 일단 그 알람만 뜨지 않게 하면 된다고요.”

“……으음.”

남주현은 제 설명이 찰떡 같다고 생각했지만, 모바일 게임을 하지 않는 유채린과 이희원의 얼굴에는 커다란 물음표가 떠 있었다.

“……어쨌거나 웬만해서는 안 걸릴 거라는 뜻이에요.”

“예에.”

“네!”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세 사람을 보며 남주현은 혀를 찼다. 그렇게 인식을 흐린 네 사람은 벨츠머츠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던 곳에 도착했다.

이미 조사가 끝났는지, 폴리스라인이 쳐진 공간은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유채린이 힘을 쓸 때였다. 땅에 손을 올린 유채린은 조심히 마력을 풀어냈다.

사이코메트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원하는 장면’만을 뽑아낼 수 없다.

원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능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연달아 능력을 사용하는 유채린이 걱정이 된 남주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정말로 괜찮은 거예요? 무리하지는 말라고요.”

“음, 한국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무리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인데요.”

OECD 국가 중 근무 시간이 최고라는 대한민국, 단 하나뿐인 사이코메트리 능력자, 거기에 공무원. 과로를 하기 위한 완벽한 환경에 있었던 유채린은 언제나 쉬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에 익숙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때처럼 끔찍한 장면을 보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답한 유채린이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순식간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천천히 유채린의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천천히 되감기는 그 기억들을 살펴보던 유채린이 말했다.

“찾았어요.”

가면을 뒤집어쓴 사람들. 차근차근 그 사람들의 기억을 받아 본 유채린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쪽이에요!”

그 뒤로는 그 일의 반복이었다.

중간중간 이정표를 따라 핸들을 꺾는 것처럼, 일행은 유채린이 안내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유채린이 멈춰 선 곳은 어느 한 건물의 앞이었다.

“……이곳에서 사라졌어요.”

“사라졌다니요?”

“어……, 그러니까 뭔가를 불러서 타고 날아간 것 같아요. 마지막에 본 게 검은 모래를 불러들이는 장면이었으니, 확실해요.”

“아, 이런.”

사이코메트리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무언가에 접촉해야, 과거를 읽어 낼 수 있다는 것. 추적하는 사람이 공중으로 사라진 지금 어떻게 해야 그들의 뒤를 쫓을 수 있을지.

그때 유채린이 답을 내놨다.

“그냥 무식한 방법을 쓸 수도 있어요.”

“무식한 방법?”

“대충 그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그 사람들이 내렸을 법한 장소를 모두 읽어 보는 거죠.”

“그, 그래도 되겠어요?”

“예전에도 해 봤어요. 가능해요. 문제는, 그러려면 그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는 거겠죠.”

적어도 기억에서 스치는 모습도 바로 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람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모르겠다는 거고요.”

조금 전에 보았던 벨츠머츠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가면 안의 모습을 유채린은 모른다. 유채린의 강렬한 시선에 남주현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저도 잘 모르는데. 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거든요.”

“가면을 벗은 모습은 모른다는 거죠?”

“예에, 게다가 그 가면이요.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꿔칠 수가 있는지라.”

“그렇다면 어떡하죠?”

여기에서 그들의 추적이 막히는 것일까?

그때, 쑤어하오주가 나섰다.

“내가 알아, 그 사람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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