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8화
#85 카르마 (3)
“진심이래?”
나는 슬쩍 고개를 쭉 빼서 차송진이 보고 있던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 자체로는 별문제가 없었다. 에드워드가 무사히 미국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으니. 차송진이 기겁을 한 건 마지막 문단 때문일 것이다.
에드워드가 미국에서 같이 협업하기로 한 에이전시가 바로 그놈이었으니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어째서 자기한테 누명을 씌운 사람을 선택한 거냐고.”
차송진의 질문에 답한 건 내가 아니었다.
“그야, 복수를 위해서지.”
언제나 그랬듯 복수예찬론자인 한서현이 차송진을 향해 말했다.
“당연히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놈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고 한 거 아니겠어요?”
“그 사람을 에이전시로 삼아서?”
“보통의 에이전시 관계라면 갑질을 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건 그쪽이잖아요. 에이전시야말로 완벽하게 괴롭힐 수 있잖아요.”
“그, 그러고 보니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긴 해! 커피 심부름만 열 번 넘게 시키고 막 옷도 이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눈앞에서 찢어 버리고…….”
차송진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도대체 뭘 본 거야?”
얘도 은근히 취향이 참 고약하다니까.
“아무리 쌓인 앙금이 있어도 그렇게까지 하려고? 무슨 에이전시가 하인도 아니고…….”
“하지만 복수를 위해서 그 사람을 고용했다며?”
“애초에 복수가 아니라면?”
“복수가 아니라면 그 사람한테 다시 찾아갈 이유가 뭐가 있어요?”
한서현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이제 와서 새삼 그 인간의 인정을 받으려는 건 아닐 테고.”
에드워드는 자신의 꿈이 테이카 쿠퍼를 넘어서는 헌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표면적인 꿈이었을 뿐. 에드워드가 진정으로 바랐던 건 오승우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목표가 테이카 쿠퍼가 된 것은, 오승우가 자신을 버리고 택한 게 테이카 쿠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에드워드 또한 제법 재능이 있는 각성자는 맞았지만, 목표가 테이카 쿠퍼인 데서 망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도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에드워드는 그때 분명 안에서부터 곪아 가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에드워드는 중국의 영웅이 되었고, 재능 또한 확실하게 개화했다. 여전히 테이카 쿠퍼와 비교하면 한 끗이 모자란 헌터라는 평을 받겠지마는, 전처럼 처지는 위치에 있진 않다는 거다.
굳이 테이카 쿠퍼와 비빌 이유 없이 미국에서 내노라하는 에이전시 중 원하는 곳을 골라 들어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에드워드는 굳이 오승우를 택했다.
“도대체 왜냐.”
당장에라도 그 이유를 묻고 싶지만, 에드워드는 여기에 없다. 연락도……, 당분간은 하지 않을 생각이고. 그러니 이런 식으로 에드워드의 마음을 추측해 볼 수밖에.
“아무래도 복수라니까요?”
“음, 내 생각에도 복수가 맞는 것 같아! 그, 그 아무래도 쌓인 게 있을 수밖에 없고, 겨, 곁에 두고 어떻게든 괴롭히겠다는 마음 아닐까?”
나는 복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복수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재호 생각은 어떤데?”
에드워드가 떠난 뒤 유난히 시무룩해 보이는 김재호는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복수.”
복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 건가.
“복수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그 인간을 자기 에이전시로 삼겠냐구요.”
한서현은 내게 말을 늘어놓았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을 옆에 두는 이유야 뻔하잖아요?”
“끄응, 그야 그렇긴 한데.”
나는 뒷덜미를 벅벅 긁었다. 기껏 누명도 벗고 영웅이 되었는데 굳이 다시 그 인간과 엮이겠다는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복수야, 은밀하게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굳이 곁에 두고 괴롭히겠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달까? 자기한테 상처를 준 사람이라면 얼른 멀어지는 게 답이잖아. 굳이 그렇게 서로 맞지도 않는데 옆에 두겠다는 마음을 모르겠어.”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서현이 말했다.
“그러니까 보스는 영 아니다 싶으면 얼른 버리고 도망가는 쪽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뭐, 그렇지?”
나는 이미 틀어진 관계는 버리는 쪽이 옳다고 생각한다. 굳이 잘 맞지도 않는데 어떻게든 같이 가 보겠다고 몸을 뒤트는 거, 영 별로지 않나?
“들었어, 송진이 형? 보스는 사람들하고 문제가 생기면 얼른 그 사람을 버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대.”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돼?”
“하긴, 여태까지 그런 식으로 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죠. 우리 애들도 버리고…….”
“그리고 우리 애들이라니! 내가 낳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지 마.”
“그야, 보스는 남자니까 애를 낳을 순 없겠죠.”
“그러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있었다. 잔뜩 오해한 사람. 차송진이 내게서 거리를 벌리며 물었다.
“보, 보스한테 애, 애가 있었어?”
“있었겠냐!”
나는 차송진에게 봄날 보육원 사건을 간단하게 추려서 얘기했다. 그제야 차송진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그, 그때를 말하는 거였구나. 하하, 왠지 너라면 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대체 내가 무슨 이미지길래?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안 해 봤다고!
━그야, 여자들 여럿 울려 봤을 것 같은 얼굴이긴 하지. 아니, 그래 봤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도 많이 울리긴 했잖냐?
‘으윽…….’
몇 명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울린 여자는 없다고!
어쨌거나 나는 이쯤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잘할 거야. 오승우, 그 인간도 이젠 에드워드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테니까.”
“끝내주는 복수를 했으면 좋겠네요.”
“응원치고는 조금 그렇긴 하지만, 뭐, 잘 지내겠지.”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나는 준을 데리러 공방으로 향했다.
지난 이틀간 준은 메이와 함께 공방을 정리했다. 미완성이었던 제품들은 완성해서 메이에게 맡겨 두었고 재료들은 정리해서 주변에 팔아치웠단다.
그리고 이틀간, 준은 한서현의 지팡이 또한 다시 만들었다.
[내가 부순 거니까.]
나는 준의 등 뒤에 매달려 있는 스태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정말이지…….
━네놈이 만든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구나.
‘예에……, 굳이 그렇게 콕 집어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요.’
나도 눈이 있어서 보인단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공방을 모두 정리한 준은 메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은 자매는 서로의 귓속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훔쳐 들으려면 들을 수 있었으나, 나는 굳이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의외였던 건, 메이가 내게 손짓을 해 특별히 말을 전했다는 거였다.
[우리 애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으면 복수할 거야.]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나 앞으로 당신이 말한 대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
으응? 내가 이런 말을 했던가? 어쨌거나 방황하던 메이가 길을 정했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나는 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어, 그래. 힘내라.]
내 말에 메이가 제 두 손을 맞대며 조심스레 물었다.
[응원해 줄 거지?]
[그럼.]
내 훌륭한 장인의 하나뿐인 가족인데, 망하길 바라진 않는다. 망하면 준이 메이를 책임지려고 할 거 아니야. 음, 그건 안 될 말이지. 내가 우리 팀까지는 책임질 수 있는데, 우리 팀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건 좀…….
[넌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꼭 성공해라. 성공해서 준은 잊고 네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엉? 만약에 망해도 이쪽에 빌붙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내 말에 메이가 볼을 붉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전부야.]
[그래?]
[응, 당신이 응원해 준다는 말을 듣고 싶었거든.]
생전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 없었다 보니, 나 같은 놈의 응원도 퍽 소중한 모양이었다.
나는 메이와 짧은 대화를 마쳤다.
준과 함께 떠나는 길 메이는 끝까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반면, 준은 메이 쪽으로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준과 함께 기지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기지. 준은 한서현을 보자마자 인사 대신 스태프를 건넸다. 처음에는 당황한 얼굴을 했던 한서현이었지만, 제게 내밀어진 스태프를 본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얼른 준에게서 스태프를 받아든 한서현의 눈동자가 번쩍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들었던 어설픈 나무 스태프와는 달리 금속 재질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스태프는 확실히 보기만 해도 멋졌으니까.
나무 위에 덜렁 얹어 놓은 것 같았던 강이신표 스태프와는 차원이 다른 유려한 디자인! 스태프를 이루고 있는 은빛의 금속은 옆에 선 사람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매끈했다.
손잡이 부분에는 마치 손가락뼈처럼 마디마디가 새겨져 있었는데 덕분에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그립감까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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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풍(黑風) / S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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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ㆍ스태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장인이 정성스럽게 단련한 금속에 흑운의 마정석을 결합한 스태프
착용자의 마력을 보조하며 마력의 발현이 쉬워지며 스태프를 쥐고 있는 동안에는 마력이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다
예브리카의 마력을 사용해 모래를 불러낼 수 있다
경량화로 인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쉬이 손상되지 않는다
흑마력에 잠식되어 흑마력을 사용하는 이만이 사용 가능하다
4시간마다 앱솔루트 실드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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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등급이 무려 S급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설명 또한 거창했다. 스태프를 쥐고 있는 동안에는 마력이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다니?
물론 최대로 마력을 끌어다 쓰면 마나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중요한 건 절대로 ‘고갈’되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
마력을 과하게 끌어다 쓰다가 마나 번 현상을 입곤 하는 이들이 이걸 본다면 눈이 뒤집힐 거다. 물론 흑마력에 한정된 스태프니만큼, 수요층이 그리 넓지는 않겠다만…….
게다가 붙어 있는 액티브 스킬도 말이 안 된다.
‘앱솔루트 실드라니.’
말이 되냐고!
그냥 실드와는 달리 앱솔루트 실드는 그 이름만큼이나 강력한 실드다. 내가 툭하면 이중에 삼중으로 치는 실드와는 달리 단 한 겹으로도 웬만한 강공격을 다 막아낼 수 있을 정도다.
참고로 기존에 내가 만들었던 스태프에 붙어 있던 스킬은 쿨타임도 열두 시간인 데다가, 하급에 불과해 실제로 써먹은 적도 별로 없었다.
정말이지, 이게 재능이란 말인가.
저런 걸 내놓은 와중에 준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마치 별것도 아니라는 듯, 오다 주웠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척 저런 기물을 내놓는 모습이라니.
젠장! 나는 뭐 하나 만들 때마다 사흘 정도는 생색을 냈는데.
‘실력뿐만 아니라 마인드에서도 졌습니다…….’
한서현의 눈빛도 확 바뀌었다. 준을 고깝게 보던 게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지금은 아주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흠, 흠. 뭐, 좀 쓸 만은 하네요.”
벌어지는 입이나 가리고 말해라.
나는 준을 보며 말했다.
[한국으로 가는 건 오늘 저녁이야. 배를 타고 갈 거고…….]
그때, 한서현이 내게 말했다.
“잠깐만요.”
“응?”
눈을 감은 한서현이 모래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이런.”
한서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쪽으로 누군가 오고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