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27화 (327/352)

제327화

#85 카르마 (2)

에드워드는 지친 얼굴로 넥타이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며칠간 온몸을 갑갑하게 죄였던 양복을 피부처럼 입고 있었더니, 이젠 양복만 보면 온몸에 알레르기가 돋을 것 같았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통역사 겸 매니저 웨이렁은 에드워드가 사방에 벗어 던진 옷가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집어 던진 옷이 한 벌에 얼마인지나 압니까?”

“알죠, 아는데 지금 당장 벗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는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그동안은 웨이렁 앞에서 제법 이미지 관리를 했던 에드워드였지만, 오늘은 무리였다.

마지막이라고 다들 몰려들어서는, 에드워드의 손을 잡고 저마다 ‘기념사진’을 남겨 댔기 때문이다. 전부 이 중국 땅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뿐이었지만, 에드워드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했다. 마네킹처럼 꼿꼿하게 서서 계속해서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줄 알았다면, 조금은 고민했을 텐데 말이야.’

침대에 누운 채 에드워드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은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벨츠머츠의 리더 강이신은 최악의 악당을 자처하며 에드워드를 완벽한 영웅으로 포장해 주었다.

무슨 수를 쓴 건지, 언론은 에드워드에게 호의적이었고 에드워드의 과거까지 품어 주었다. 덕분에 에드워드는 부당한 일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영웅이 되었다.

이런 후한 평가를 받은 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에드워드는 늘 사람들의 박한 평가에 시달렸으니까.

하지만 이곳, 중국은 달랐다. 며칠간 TV, 신문, 인터넷. 어딜 보아도 에드워드의 얼굴이 있었고 어딜 가든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약이라도 한 듯 고양이 되었던 것도 잠시 곧바로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자신의 실체를 사람들이 알게 되고 실망하는 건 아닐까. 이 관심이 곧 비난이 되어 쏟아지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밤, 에드워드는 악몽을 꾸었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채로 일어난 에드워드는 두 무릎을 감싸 안고 덜덜 떨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편한 사람은 없었다.

그 순간 에드워드의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다. 그 얼굴들에 에드워드는 지금의 상황도 잊고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자신이 그 인간들을 그리워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 그리웠다.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 얼굴들이, 그들의 목소리가 더럽게 듣고 싶었다.

그냥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았다.

오늘 인터뷰 봤냐고,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아냐고, 오늘 내가 간 식당에서 뭘 먹었는지 아냐고. 그런 식의 자랑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지금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야 영웅이 되었지만, 너희는 중국의 공적이 되었는데, 잘 지내고 있냐? 혹시 쫓기고 있는 건 아니지?’

그렇게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강이신, 션의 말대로 ‘힘든 일’이 아니면 연락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몇 번이나 그쪽으로 전화를 걸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우리 같은 나쁜 놈들이랑은 엮이지 말고, 좋은 사람들만 곁에 둬.’

그렇게 말한 주제에…….

‘어,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려니까 조금 이상하지만, 우리는 언제든 네 편이다. 알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 준 것이 처음이어서, 그리고 그 처음이 꽤나 자신에게는 소중해서.

에드워드는 그날의 악몽을 털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악몽을 꾸는 것도 이제는 끝이다. 이틀 후에는 이 나라를 뜰 예정이었으니까.

에드워드가 허물처럼 벗어 놓은 옷을 차곡차곡 개킨 웨이렁이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슬쩍 물었다.

“정말로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예.”

“정말로?”

“이제 와서 그렇게 묻기엔 너무 늦지 않았어요?”

에드워드의 말에 웨이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아쉬워서 말이죠. 중국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니, 에디의 경우에는 중국에 머무는 게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겠죠. 지금 중국인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잖아요. 당신에게 붙은 별명의 개수만 봐도 그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지 않아요?”

요 며칠간 금강불괴의 사나이, 방패 용사, 황금의 사나이, 불사조 같은 별명에 시달렸던 에디는 그 말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지금 절 놀리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지만요.”

머쓱한 얼굴로 미소를 지은 웨이렁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건 알지만, 그 땅에서는 여기처럼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고요.”

웨이렁의 말에 침대에 누운 에드워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 남는다고 해도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을 거예요.”

“그래요, 확실히 대중은 변덕이 심하죠. 그러니 대중에게 계속 사랑받으려면 노력이 필요하죠.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가. 제가 보기엔 당신은 후자예요.”

그 말에 에드워드는 상황도 잊고 웃어 버렸다.

“오늘 내가 얼마나 덜덜 떨었는지 못 봤어요? 천부적인 재능은 무슨, 난 거기에서 겨우 버티는 게 최선이었다고요.”

“난 대중이라고 말했잖아요. 높으신 분들의 취향에는 당신이 영 맞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대중은 당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에디.”

웨이렁의 말에 에드워드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웨이렁의 얼굴은 진지했다.

“당신이 구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봤어요. 당신이 살린 사람들이요.”

웨이렁의 말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낯간지러운 인터뷰는 에드워드를 정말로 부끄럽게 만들었으니까.

“다들 과장한 것뿐이에요. 난 그렇게 대단한 영웅도 아니고…….”

“당신이 구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할 셈인가요? 당신이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고?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에디. 당신이 사람들을 구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건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요.”

“그야, 난 각성자니까요.”

“힘을 가진 이들이 모두 그 힘을 옳게 사용하는 건 아니에요.”

그 말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애초에 난 돈만 좇던 용병이었고요, 성공을 위해 동고동락하던 용병대를 몇 개나 버렸어요. 그러니까 난…….”

“그러니까 당신은 못된 사람이다? 그럼 왜 사람들을 구했어요?”

“그거야!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그렇죠. 세상에,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영웅이라서 그 사람들을 구한 게 아니에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건.”

에드워드의 말에 웨이렁이 물었다.

“왜 돈과 성공을 좇는다면서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이 중국에 있다면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데 말이죠.”

“그야, 제 고향이 미국이니까 그렇죠.”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그렇게 물은 웨이렁이 말을 이었다.

“복수든, 뭐든.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요.”

“하아,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라도 읽은 거예요?”

에드워드는 자신의 입으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의 과거는 이미 인터넷에 쫘악 퍼진 다음이었다. 웨이렁 또한 그 이야기를 읽은 게 분명했다.

“당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게 된 사람으로서 정보 수집은 기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것참 고맙네요.”

“어쨌거나, 에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요.”

“미국에 가면 중국에서처럼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요.”

“뭐, 그야. 미국인들은 중국 사람과는 달리 영 정도 없고…….”

“저기요.”

“하하, 농담이었어요.”

전혀 농담이 아닌 것 같았는데. 에드워드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웨이렁의 말이 이어졌다.

끝까지 에드워드는 자신이 왜 미국으로 돌아가길 원하는지 웨이렁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며칠 간이나 붙어 다니며 꽤나 편해진 사이였지만, 속마음까지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웨이렁 또한 에드워드가 친 벽을 인식한 것인지 그쯤에서 멈췄다.

“그래도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네요.”

“무슨 말이요.”

웨이렁이 에드워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국에 가서 중국의 기백을 보여 줘요.”

그 말에 에드워드는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중국의 기백이라니, 나, 나는 미국인인데요?”

“아차차!”

과하게 놀라는 표정 때문에 웨이렁이 자신을 놀린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워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베개를 던졌다.

“정말이지!”

* * *

공식적으로 에드워드 시헬리스가 받고 있었던 모든 혐의는 없던 것이 되었다.

테이카 쿠퍼의 에이전시는 에드워드와 엮인 사건을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모든 것은 자신들의 착각이었다는 공지를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고, 에드워드에게 걸어 두었던 현상금을 취소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금액을 배상하겠다고 말했다.

그 배상금 대신, 에드워드는 다른 것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에이전시를 껴야만 했다.

션, 그 사람이 에드워드의 곁에 있다면 눈썹을 한 번 꿈틀거리면서 물었겠지.

‘진심이야?’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물은 뒤에는 이렇게 또 덧붙였을 거다.

‘정말로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그런 다음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고 이렇게 말했겠지.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리고 김재호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가만히 엄지를 치켜올렸을 거다.

에드워드가 무슨 선택을 한 건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에드워드의 선택이라면 일단 옳다고 편을 들어주겠지.

그리고 차송진은 눈을 굴리며 에드워드에게 조심스레 충고했을 거다.

‘그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을 택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리고 한서현은…….

음, 자신을 비웃기나 하겠지.

겨우 원하는 게 그거였냐는 듯이.

벨츠머츠의 반응을 머릿속으로 한 번 상상한 에드워드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비행기는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기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에드워드는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어쩌면 다시는 이 땅을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약속대로 에드워드는 자신의 얼굴을 한 채, 두 발로 당당히 이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비행기가 부드럽게 활주로에 내려서고 멈춰 설 때까지 에드워드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잡기 위한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순간 머리를 스쳤지만,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에드워드를 잡기 위해 이곳까지 출동한 경찰들이 아니었다.

배상금 대신 오승우가 에이전시에 요구했던 건 명확했다.

에드워드 시헬리스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올리고 있던 사람이 에드워드를 향해 환영 인사를 건넸다.

“미국으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오승우, 그의 얼굴을 보며 에드워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이에요, 미스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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