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26화 (326/352)

제326화

#85 카르마 (1)

메이와의 대화를 끝내고 다시 일행에게 돌아가는 길, 레이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말로 저 여자애를 충동질해도 괜찮은 거냐. 사실 저 여자애의 능력, 무척이나 위험한 것 같은데.

‘그거야 그렇죠. 그래도 말입니다. 그 능력으로 진짜 못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잖아요.’

━그 능력으로 사람을 죽였잖냐.

‘부모님을 죽이고 자신과 동생을 납치해 부당하게 착취하던 사람이죠. 그리고 메이는 거기에서 멈췄어요.’

━그 뒤로 동생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착취한 건?

‘음, 확실히 나쁜 짓은 맞지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한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메이가 완전히 못돼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기보다는, 음, 대화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 같기도 하고요.’

두 자매 사이에 얽힌 애증을 무어라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메이는 준을 증오했기 때문에 그 구덩이에 넣은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랑했기 때문에 그 구덩이에 넣은 거지.

제발 나 좀 봐 달라고, 얘기 좀 하자고. 물론 그 방법이 옳다고는 못해도, 메이의 상황에서는 나름 절박한 시도였을 것이다.

확실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이게 다 대화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라니까요? 애초에 진작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요.’

━제일 친한 친구에게 그 어떤 말도 없이 잠적한 놈이 할 말은 아닌데?

‘……음, 속에 있는 진심을 어떻게 다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가끔은, 그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비밀로 해야 할 게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하여간, 저 바람에 나풀거리는 이파리도 너보다는 지조가 있겠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지난날 한 일이 있어도 메이는 완벽한 악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물건을 강매한다거나, 재산을 갈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메이는 나름 정직하게 가게를 굴렸다.

‘설록진 같은 놈한테 메이의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놈이라면, 끄응,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 썩 괜찮은 애 같구나.

‘예, 제가 궁지로 몰지 않았다면 제게도 능력을 쓰지 않았을 것 같고요.’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선을 잘 지키지 않을까? 선을 지키지 않으면, 음, 글쎄. 그거야, 뭐, 중국 정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책임감이라고는 쥐뿔도 없구나!

‘제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걔 쌍둥이 동생을 데리고 가는데 그게 할 말이냐?

‘그렇게 하나씩 다 책임지다 보면 제 등 뒤에 지구촌이 매달려 있을걸요?’

어차피 헤어질 사이인데, 이 정도로 충고를 해 줬으면 됐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만 않는다면야 능력이 능력이니만큼, 앞으로 잘 지낼 거다.

주변 사람들이 메이를 좋은 의미로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이런 네 놈의 실체를 과연 그 여자애가 알고 있을지…….

‘애초에 메이랑 제가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죄 많은 놈.

레이는 정말이지 오지랖이 넓은 것 같았다. 나도 한 오지랖 하지만, 메이에게까지 이렇게 신경을 써 주다니.

나는 짐을 챙긴 준과 함께 우리가 머물고 있던 숙소로 돌아왔다. 한서현은 마정석을 손에 쥔 채로 모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준을 보며 한서현이 서늘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이렇게 만들었지?”

[네 거였어?]

“그래, 내 거다. 네 덕분에 이 꼴로 쓰고 있다고. 다시 책임지고 돌려놔.”

[흠, 확실히 잘 어울리네. 너한테 꼭 맞는 걸로 다시 만들어 줄게.]

하나도 말이 안 통해야 정상인데, 묘하게 또 말이 통했다.

우리는 한서현이 부른 새를 타고 숙소로 귀환했다. 헤어지기 전, 메이와 준이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았지만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괜히 묻지 않았다.

음, 아마도 마지막 인사가 아니었을까.

숙소로 돌아온 나는 방을 다시 배정했다. 기존에 차송진과 에드워드가 쓰던 방을 메이에게로 주고 내 방에 차송진을 부르기로 했다.

크흑, 보스라고 혼자 방을 쓰던 것도 끝이다.

“하아, 하필이면 보스와 같이 방을 써야 하다니. 이제 막 에디가 떠나서 혼자 넓게 방을 쓰나 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할 말을 차송진이 하고 있었다.

나는 머쓱함에 머리를 긁었다.

* * *

첸륜과 유마, 아이들은 미국행 배에 오늘 새벽 몸을 실었다.

“미국행 배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지독한 뱃멀미를 겪었던 한서현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서현의 옆에 선 김재호도 먼 미국까지 배로 간다는 사실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행기가 아니라 배로 가?”

“비싸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범죄자 신분이니까 말이지. 비행기는 배보다 훨씬 절차가 까다롭거든.”

첸륜과 유마뿐이었더라면 어떻게든 신분증을 구해 비행기에 타는 게 가능했겠지만, 딸린 애들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그 정도 되는 애들이면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배에서 보내요?”

“말이 미국행이지 바로 미국으로 가지는 않을 거야. 중간중간 다른 섬에 들러서 보급도 하고 관광도 하는 일정일걸.”

말이 미국행이지, 바로 미국으로 가는 배는 없다. 공중 몬스터보다는 그 위험도가 낮은 편이라고 해도 해양 몬스터 또한 위협적이기도 하고, 배가 워낙 크기도 해 보급이 필수라고 들었다.

“생각보다는 탈 만할 거야.”

“그래도 배로 가긴 싫어요.”

“나도 배를 탈 생각은 없어.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하거든.”

비행기를 타고 반나절은 꼬박 날아가야 하는데, 배로 가면? 두어 달은 걸릴 거다.

사람이 모두 사라진 해성회의 숙소는 쓸쓸하게까지 느껴졌다. 이곳의 주인은 떠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한서현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에드워드가 무사히 미국으로 가는 것까지는 봐야지.”

“다 잘 된 거 아니었어요?”

“혹시 모르잖아. 중국 애들이 마음이 바뀌어서 에드워드를 범죄자로 잡아 둘 수도 있는 거고…….”

음, 설마하니 그런 일이 생기면 얼른 가서 구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메이는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으면서, 그 녀석은 꽤나 챙기는구나.

‘우리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사람이니까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내가 나설 필요 없이 아주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어찌나 잘 풀리는지, TV에 다 나올 정도다.

거실 TV에 나오는 에드워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김재호가 소리쳤다.

“에디다!”

화면에 나오는 얼굴은 분명 에드워드의 것이었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만 중국 방송이었기에, TV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음…….”

나는 뉴스를 천천히 보며 상황을 정리했다. 남주현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에드워드가 저쪽으로 떠난 뒤 나는 남주현에게 에드워드에 대한 정보를 중국 웹사이트에 뿌려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몸을 피했던 각성자,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이 덮치자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음에도 나서 모두를 구했다…….

라는 영웅 서사를 짜내기 위해서였다.

내 의도는 정확히 먹혀들었다. 실제와 그리 다른 점도 없다. 실제로 에드워드는 부당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여차저차 중국으로 오게 됐고,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떠나 저곳에 있는 거니까.

조금의 MSG가 더해지자, 에드워드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호걸이 되어 있었고 그 결과가 저거다.

“중국에서 정식으로 에드워드를 국가의 은인으로 인정한 모양이야. 음, 원한다면 중국 시민권도 주고, 중국의 길드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걸.”

이 제안을 받아들여도 에드워드에게 아주 나쁜 점은 없을 거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고, 때문에 나는 남주현에게 두 번째 작전을 지시해 두었다.

웹사이트에 금의환향이라는 키워드를 뿌려 대기 시작한 거다.

애초에 금의환향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나왔나. 바로 중국이다. 중국인들만큼이나 이 고사성어의 뜻을 잘 이해할 민족이 없다는 뜻이다.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면, 중국인들은 에드워드를 배신자로 여겼을 수도 있다.

꽌시를 중히 여기는 만큼, 중국에서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이냐. 그건 바로 ‘체면’이다.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중국의 은인에서 순식간에 중국의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잘 대해 준다는데, 우리를 버리고 저기로 가겠다고? 네가 뭔데 우리의 체면을 깎아? 중국이라는 대국을 버리고 저 자본주의의 개가 되겠다고 말하다니. 네놈은 어쩔 수 없는 서양의 양키로구나!

이런 반응이 순식간에 웹을 뒤덮겠지.

그래서 내가 택한 건 ‘중국에서 자연스레 에드워드를 보내 주는 그림을 만들기’였다.

그래서 택한 키워드가 ‘금의환향’이다.

미국에 돌아가기 위해 중국을 등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업신여기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돌아가는 거라고.

에드워드라는 영웅의 서사에서 이만큼이나 완벽한 엔딩은 없었다.

중간중간 ‘죄를 뒤집어씌운 나라에 돌아가고 싶어 하다니!’라고 열을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죄가 실수였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말로 덮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는…….

“공식적으로 미국에 항의했다고 해. 그 사건을 다시 전면 재조사하든가, 아니면 묻든가.”

이번 사건으로 제일 곤란해진 사람은 오승우일 것이다.

테이카를 위해 희생하는 패로 썼던 에드워드가, 더는 그런 식으로 소모할 수 없는 패가 되어 돌아왔으니.

“중국의 항의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게 착각이었고, 실수였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겠지.”

제가 했던 말을 다시 주워 삼키는 건, 절대로 좋은 대처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적으로 둘 수는 없으니까.

중국의 은인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이나 강력했다.

중국으로서도 지금 이 혼란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에드워드를 영웅으로 포장해야 했으니, 서로 윈-윈인 전략이었다.

“그럼 에디는 미국으로 잘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되겠지. 범죄자도 뭣도 아니게 될 테니까.”

거기에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에드워드는 세계에서 주목하는 헌터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TV에서는 한 시민이 촬영한 에드워드의 활약상을 틀어대며 ‘완벽한 방패의 등장’이라는 말을 연신 써댔으니까.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잘 맞지.”

“잘됐네.”

그렇게 말하는 차송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TV에 나온 에드워드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김재호는 물론이고, 아닌 척하면서 슬쩍슬쩍 TV를 보는 한서현도 그렇고.

“아아, 잘 됐지.”

우리 모두가 에드워드가 잘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별문제 없이 순항 중이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레이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마음에 걸리는 것?

‘이번 사건이 잘 풀렸다고 남주현 씨한테 연락을 했는데 말이죠. 답장이 따로 없어서 말입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며칠 전부터 수상쩍게 연락이 잘 안 되는 것 같달까.

‘어쩌면 제가 그쪽에 준을 떠넘길 생각을 했다는 걸 눈치챈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여자의 촉은 무섭다더니. 그래도 중간부터는 금박사 쪽으로 생각을 틀었는데.

내 말에 레이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나라도 네 연락을 피하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