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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24화 (324/352)

제324화

#84 닿지 않은 마음 (4)

어쨌거나 준이 우리를 따라온다는 건 나에게도 무척이나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대체 나의 무엇을 믿고?’ 정도가 그 심정이랄까.

아니, 나를, 우리 조직을 선택해 준 건 고맙지만……, 몇 년 만에 쌍둥이 자매와의 오해를 풀고 앞으로 미래를 약속하는 상황에서 우리 조직을 택하다니, 도대체 왜?

그리고 그 질문은 메이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저, 저쪽의 보스가 제법 괜찮아 보이는 인간이라도! 아무것도 모르잖아. 저 조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 엄청 못된 놈들이면 어떡해!]

음, 그 엄청 못된 놈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메이는 제 동생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됐는지,

[여기서도 몰랐잖아. 그리고 관심 없어 그런 거.]

[관심 좀 가져!]

[안 생기는데 어떻게 가져.]

메이는 준의 말에 속이 터진다는 듯이 가슴을 쿵쿵 쳤다. 그 모습을 빤히 본 준이 말했다.

[거봐, 안 맞는다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두 사람은 정말로 하나도 맞지 않았다. 이런저런 사건이 터지지 않았으면 그래도 잘 지내는 쌍둥이 자매 사이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응, 아무래도 무리였을지도.

준은 저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메이를 향해 말했다.

[저 사람을 따라간다고 만날 수 없다는 건 아니잖아. 아, 그리고 내 생각인데.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 맨날 싸우기나 하고…….]

[앞으로는 달라질 거라니까!]

메이의 말에도 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넌 내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있잖아.]

또 한 번 정곡을 제대로 찔렸다. 메이는 그 말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하라고, 나더러……. 이제야 겨우, 겨우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네 마음을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저 사람들을 따라서 가 버린다니!]

[영원히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러지 마. 가끔 널 만나러 올 테니까.]

[그래도 같이 살던 거랑 그게 어떻게 같아?]

[정확히 말하면 나는 구덩이에, 너는 네 집에서 살았으니까 같이 살았다고 말할 수는…….]

[이잇! 대충 넘어가 달라고. 어쨌거나 매일 얼굴을 마주 보긴 했잖아!]

[볼 때마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 말했잖아.]

[그냥, 그건 농담, 농담 같은 거였잖아!]

[진담 같았는데. 아, 내 쪽은 반쯤은 진담이었어.]

음, 두 자매 사이에 오가는 이 달콤 살벌한 대화에 끼고 싶지는 않았지만, 꼭 알려 줘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어, 그거 말인데. 우리 조직이 음, 본진이 한국에 있어서 말이야? 그 중국은 가끔 이벤트가 터질 때만 들를 예정이랄까. 그 말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벨츠머츠에게는 당분간 할 일이 많았다. 한국에서 일어날 일들도 신경을 써야 했고, 테이카 쿠퍼와 해외에서 게이트 공략도 해야 했으며,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진 인재 찾기도 이어 나갈 생각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적어도 몇 개월 정도는 중국에 들를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준이 우리를 따라오면 준과 메이의 만남은 연례행사, 그보다 더한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 한국. 상관없어. 어디든.]

내 말에 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메이의 반응은 달랐다.

[잠깐만, 어디로 간다고? 한국?]

[그래.]

[그 쪼오오오끄만 나라 말이야?]

메이의 과장된 표현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렇게 작진 않거든?]

[아닌데, 완전 작아서 지도에서 돋보기 들고 찾아야 하지 않아? 그런 조그만 나라에 뭐 볼 게 있겠어? 준, 말할 것도 없다. 가지 마! 갈 필요 없어. 내가 네가 필요하다는 거 다 구해다 줄게.]

아니, 이 여자가? 뭘 들고 찾아? 뭐가 볼 게 없어? 우리 한국에 특산품이 얼마나 많은데! 인재는 또 얼마나 많고!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그리고 네 나이에 돋보기를 들어야 하는 거면, 그건 노안이다! 네 시력 문제라고.]

[그래, 조금 과장하긴 했어. 그래도 그 나라가 작은 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잖아?]

[별로 안 작아!]

내 말에 메이는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야, 중국 기준으로 이 세계에 ‘작지 않은’ 나라가 몇이나 될까 싶지만. 그래도 한국은 그냥 그렇게 무시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

갑자기 내 가슴속 깊숙한 곳에 묻어 놓았던 태극기가 흔들거리는 기분이다.

[땅덩어리가 넓다고 다 최고가 아니거든?]

[아아? 그래? 그럼 왜 중국까지 와서 준을 데리고 가려는 걸까나? 그 작은 땅에는 장인이 없는 걸까나?]

[아니거든! 있거든! 최고의 장인 있거든! 지금 네가 보는 가면도 사실 내 얼굴이 아니라 아티팩트거든? 근데 정통 아티팩트에는 약해서 온 것뿐이거든?]

━저런 여자애의 말에 넘어가서 속에 있는 말을 다 해 버리면 어떡하냐.

‘한국을 무시하잖습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애국자였다고?

‘애국자죠! 썩어 빠진 의원도 처리하고, 예?’

━다크웹이라는 데에 애국자라는 글을 썼다가 정지당한 거 기억 안 나냐?

‘이잇!’

너무나도 억울했다. 나만큼 애국자가 어디에 있다고. 내가 애국자가 아니었다면 설록진에 의해 한국이 망하든 말든 신경을 썼겠냐고.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

‘하긴 뭘 알겠습니까. 국적도 묘연한 당신이.’

━……너무하네, 나도 내가 원해서 잊은 게 아니란 말이다.

앗차차, 말싸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레이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나는 황급히 머릿속에 사과를 늘어놓았지만, 이미 단단히 삐친 다음인지 레이는 도통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메이를 향해 말했다.

[어쨌거나 난 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 둘이 암만 떠들어 봤자 소용이 없다고.]

내 말에 메이는 우물쭈물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쟤는 너무 어리고,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메이의 말을 끊은 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나보다 출생 시간이 겨우 몇 시간 빠른 거면서 나더러 어리다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유는 네가 나를 가둬 뒀기 때문…….]

[아아아악!]

소리를 빼액 질러 준의 말을 끊은 메이가 말했다.

[헤어지기 싫어, 나는!]

[……뭐, 그럼.]

어깨를 으쓱거린 내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같이 가든가?]

[뭐?]

[한국에 같이 가자고.]

굳이 떼어 놓을 필요 있을까? 벨츠머츠에 들어오는 건 다른 문제지만,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싶다면야 존중할 수 있었다. 어차피 준이 우리 숙소에 함께 머무는 게 어려울 수 있으니 별채를 짓든 해서 따로 숙소를 마련해 줄 수도 있고.

[하, 하지만 나는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내 친구들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기에 있는데?]

[그럼 뭐, 준 혼자 보내든가.]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어떻게 혼자 보내란 말이야?]

[그럼 같이 가든가.]

준이 우리와 같이 가고 싶다면, 메이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 둘뿐이다.

[쟤, 쟤한테는 선택지를 준다고 했으면서! 나한테는 왜!]

[그야, 넌 우리 조직에 들어올 사람이 아니니까. 너는 덤이잖아, 덤.]

[너무해…….]

메이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나는 메이를 달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달랜다고 달래질 사람도 아니고.

[준이 선택을 했던 것처럼, 너도 선택해야 하는 것뿐이야.]

[애초에 네가 준을 데리고 간다고 하지만 않았다면…….]

[그건 준의 선택이라고 말했지? 남의 선택에 말을 얹지 마. 그건 네 권리가 아니니까.]

메이는 한참이나 갈등했다. 준이 말했다.

[나를 따라올 필요 없어. 너는 이곳에서 행복하잖아.]

[네가 없으면 어차피 대장간을 운영할 수 없게 될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넌 곧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을 좋아하잖아?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그러니까 그쪽으로 일을 알아봐.]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가 있어?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잖아!]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아. 나랑 헤어지고 이곳에 남으면? 넌 나를 그리워하겠지. 내가 없으니 쓸쓸하다고 느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쓸쓸함을 넌 곧 다른 걸로 채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날 따라오면?]

메이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벨츠머츠의 생활에는 어울리지 못할 게 분명하다.

[넌 내 옆에서 숨이 막힐 거야. 난 네가 원하는 관심을 줄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네가 좋아하는 수다도 떨 수 없겠지. 나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뿐이야.]

[아쉽지 않아? 나와 함께할 수 없어서?]

[아쉬워.]

누가 들어도 아쉽지 않다는 말투였지만,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의 말에도 ‘너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며 윽박지르던 조금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메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날 보러 올 거야?]

[그럴 수 있다면.]

[연락은?]

그렇게 말한 메이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적어도 전화는 자주 할 수 있게 해 줄 거지? 응?]

[응, 약속할게.]

[국제 통화료가 비싸다고 막 우리 애를 구박하고 그러진 않을 거지?]

[……저기, 내가 그렇게 쪼잔해 보여?]

[응.]

메이의 즉답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저렇게 험담을 하는 스타일에는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남의 업장에 갑자기 쳐들어와서 나를 협박하고, 윽박지르고, 그러더니 이제는 남의 소중한 동생을 데리고 간다고 하고, 뭐라도 아는 것처럼 헛소리나 늘어놓고…….]

그렇게 한참이나 울면서 내 욕을 늘어놓은 메이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잘 대해 줘! 알겠어? 나보다, 나같이 형편없게 대하지 말고, 잘, 잘해 주라고! 아니면, 진짜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감동적인 눈물 젖은 협박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장인을 얻게 되었다.

* * *

“저, 정말로 성공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남주현의 말에 이희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했잖아요, 저만 믿으라고.”

“그, 그거야 그렇지만……. 아니, 도대체 어떻게 밀입국 루트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예요?”

그야, 시리우스에서 진연화를 모시며 볼꼴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지만 이희원의 과거는 비밀이었다. 이희원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자의 과거는 캐묻는 게 아니랍니다.”

“아니, 자기만 여잔가! 나도 여자예요, 여자!”

“그럼 사람으로 정정할까요?”

“됐어요.”

이희원의 철벽 방어에 그녀의 과거를 캐내는 걸 포기한 남주현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언젠가 그녀의 과거를 모두 캐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남주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채린 씨, 정말 괜찮겠어요?”

“네!”

이 자리에는 쑤어하오주뿐만 아니라, 유채린도 함께였다. 남주현의 질문에 힘차게 답한 유채린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제 능력이 있으면 그 사람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야, 채린 씨 능력보다 더 사람의 흔적을 쫓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이 없긴 할 테지만, 그래도…….”

유채린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를 아는 남주현은, 기쁜 표정을 짓지 못했다. 그 정도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또 한 번 능력을 써 달라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쑤어하오주의 사정에 대해 듣고, 자신도 돕고 싶다고 말하는 유채린을 차마 떼어 놓을 수 없었다.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전 제가 오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니까요. 하오주를 돕고 싶거든요.”

유채린의 뒤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쑤어하오주가 툭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말을 던졌다.

“고마워.”

이 짧은 한 마디를 전하는 게 어지간히 쑥스러운지 시선을 바닥에 박은 채였지만,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 인사에 남주현이 씩 미소를 지었다.

“감사는 아껴 둬.”

“아껴?”

“그래, 그 사람을 찾은 다음에 실컷 듣고 싶거든.”

그렇게 말한 남주현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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