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84 닿지 않은 마음 (3)
준의 말에 메이가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난 널 미워하지 않았어!]
[아니, 넌 날 미워했어. 그래서 나를 그곳에 가둬 두고 벌을 준 거잖아. 내가 고통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잖아. 그래서 날 거기 가둔 거잖아. 그런데 내가 뭐라고 말하겠어.]
[뭐라도 말했어야지! 왜 날 미워하냐고! 난, 나는 너를 위해 쑤샹원의 말을 들은 것뿐이라고! 그렇게, 내가 널 오해하지 않도록…….]
메이의 말에 준이 말했다.
[오해? 오해가 맞을까? 나는 네 생각대로 이상한 사람이야, 메이. 나는 너의 슬픔에 공감 못 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슬프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너처럼 울지 못해. 나는 너처럼 웃지도 못하고, 네 말대로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없어.]
[하지만 적어도 나를 위해 억지로 일했던 걸 말해 줬다면…….]
[그래, 그거. 나는 억지로 일한 게 아니야. 나는 그 시간이 즐거웠어.]
[뭐?]
메이의 말에 준이 말했다.
[나에게는 그들의 말이 들려. 내 손끝에서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멋져지고 싶다는 그들의 말이. 날 더 멋지게 만들어 줘, 날 더 빛나게 만들어 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만이 좋았어.]
준은 메이를 위해 쑤샹원의 밑에서 억지로 일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아니게 되었다.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준은 더더욱 메이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너는 내가 하는 일을 증오하는데 어떻게 그걸 말할 수 있겠어?]
[아니야!]
[아니, 넌 증오했어. 나 때문이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네가 그렇게 불행하게 된 것도. 모두 나와 내 재능 때문이니까.]
정곡을 찔렸다. 둘 사이의 사정을 잘 모르는 나도, 메이의 표정을 보는 순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메이가 그동안 꼭꼭 숨겨 온 마음이라고.
주먹을 움켜쥔 메이가 준에게 소리쳤다.
[그래, 난 네 재능이 싫었어! 지금도 싫어! 끔찍해! 네가 그런 재능만 타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미운 건 아니야.]
메이가 황급히 말했다.
[난 그냥, 네가 더는 망치를 잡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야. 그래서 너를 그 구덩이에 가두고 협박한 거야. 그렇게 하면, 네가, 네가 하기 싫다고 말할 줄 알았어! 나는 쑤샹원이랑은 다르잖아.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러면, 네가, 그걸 그만두면, 나랑은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준은 고개를 저었다.
[내 재능은, 내가 누구냐 하는 거야. 나랑 내 재능을 똑 떼어 놓고 생각할 순 없어. 넌 내가 재능을 포기했다면 우리 둘이 잘 지냈을 거라고 말하지만, 아니. 아니야. 네가 미워하는 건 결국 나니까.]
[말했잖아! 널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아니, 내 재능 때문이든 뭐든. 넌 결국 날 거기에 가뒀어. 나를 벌 줬잖아.]
[네가 나에게 늘 속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늘 나보다는 그 지긋지긋한 쇳덩이를 만지는 걸 좋아했으니까!]
[적어도 걔네들은 나를 판단하지 않으니까.]
준의 그 말에 메이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준은 그런 메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넌 날 판단해, 메이. 넌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아. 그날 이후로는 아니야.]
[난, 나는 널…….]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아. 내 말을 듣지 않아. 나한테 관심이 없어.]
[너야말로 내 말에…….]
그렇게 말하려던 메이는 입을 닫았다. 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둘 사이에는 여러모로 대화가 부족했다. 메이도, 준도 결국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가장 솔직하게 속을 털어놓아야 할 자매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 채로, 그 자매는 서로 빙글빙글 닿을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이제야 알겠어?]
[……그래서, 뭐. 달라질 건 아무것도…….]
그렇게 중얼거리던 메이가 제 뺨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나저나 내 뺨은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안 일어나길래 내가 좀 때렸어.]
[미쳤어? 날, 나를 때려?]
[깨우려고 했던 거야.]
[그래도!]
퉁퉁 부어오른 뺨에 손을 얹은 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난 네가 싫어.]
그 말에 준이 답했다.
[나도 네가 싫어.]
[그러니까 가 버려.]
[그게 네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야?]
준의 말에 메이의 눈에 핑 눈물이 돌았다. 그러더니 그 눈물이 뚝뚝 볼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아까도 펑펑 울더니, 지금은 그야말로 꽉 찬 물잔에 물을 따른 것처럼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이거…….
음, 이 분위기 좀 위험하다. 분위기가 좋아지면 슬쩍 끼어들어서 ‘와하하, 걱정하지 마시죠! 저희 벨츠머츠는 최고의 대우로 장인님을 모실 겁니다’하는 식의 멘트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음, 절대로 미움받는다. 응, 절대로 미움받아.
하지만 말이야. 끼어들어야 한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는 여전히 오해가 있는 모양이니까.
[음, 저기 말이야.]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어째 그 시선들이 ‘아, 맞다. 저 녀석도 있었지.’ 하는 얼굴이라 왠지 상처였다. 나름대로 어디 가서 존재감이 흐리다는 평가를 받는 편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그러니까 준을 납치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고…….]
[납치가 아니면……. 오, 알겠다. 협박으로 인한 자발적 합류?]
준의 말에 내가 소리쳤다.
[아니야! 그런 거! 나는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한 스카우트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라고.]
[남의 작업실을 다 부숴 놓고는…….]
[그야, 그쪽이 그 부당하게 갇혀 있는 줄 알았거든! 누가 봐도 오해할 법했잖아. 아니, 얘기를 들어 보니 오해도 아니잖아! 그냥 그거잖아! 누가 그런 구덩이에 사람을 가둬 놓은 걸 인도적인 처사라고 하냐? 딱히 인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건 심하다고 할걸?]
[……으윽.]
내 말에 메이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아까보다 신장도 40cm는 작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내 말에 많이 찔리긴 하나 보다. 문제는 내 말에 반응하는 메이를 본 준의 시선이 어딘가 서늘해졌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디까지나 난 그쪽을 구조할 작정으로 온 거라는 거야. 뭐,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우리 조직에 대한 어필을 조금 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 줄 생각이긴 했는데…….]
[내가 목적이 맞긴 맞았다는 거 아니야?]
[어쨌거나 억지로 널 데리고 갈 생각은 없다는 거야.]
나는 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랬지, 너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솔직히 말해, 메이, 그러니까 네 언니를 구했다는 것도 ‘선택’이 아니야. 네 말대로 하자면 그것도 협박으로 인한 거였으니까. 절대로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건 아니지. 안 그래?]
나는 저 자매를 사들인 쑤샹원이라는 인간과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이 전혀 없다.
벨츠머츠는 분명 빛과 그림자 중에 그림자에 속해 있는 범죄조직이다. 나쁜 일도 많이 저질렀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거기에 일 처리도 늘 얼렁뚱땅이지. 내가 세워 놓은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어 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도 하고, 음, 그래. 여러모로 우리 조직은 아직 부족함이 많다.
그래도 한 가지 내가 절대로 어기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난 네게 진짜 선택지를 줄 거야.]
[진짜 선택지?]
[그래, 너에게 칼을 들이밀고 협박하는 식이 아니라, 진짜 선택지.]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미련은 훌훌 털어 버리련다.
우리 조직엔 정말로 늘 진심으로 남고 싶은 사람만 남아야 한다.
우리 조직에 들어오는 게 아닌 다른 선택지를 택할 만한 사람을 억지로 끌어들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남고 싶으면 이곳에 남아도 좋아. 동생과 널 억지로 떼어 놓을 생각은 전혀 없어.]
[동생 아니야, 언니야.]
[아, 그래? 아무리 봐도 그쪽이 더…….]
[닥쳐!]
[음, 그래.]
메이의 참전에 나는 가만히 입을 닫았다. 하지만 어쩐지 저렇게 눈물이 많은 쪽이 언니라는 걸 믿기가 힘들어서 말이다. 이것도 편견이려나? 하긴, 우리 벨츠머츠도 한서현이 제일 권력이 세니까. 가장 밑바닥에는 차송진이 있고 말이지.
음, 이것마저 우리 벨츠머츠에 딱 어울리는 인재!
━미련을 가지지 않기는커녕, 아주 미련이 그득한데?
‘그래도 겉으로 티만 내지 않으면 된 거 아닙니까?’
겉으로는 쿨하게 선택지를 준다고 말해 놓고는, 속으로는 좀 좀생이 같나 싶지만. 아니, 어떻게 쿨할 수가 있냐고!
나는 초조함을 애써 감추고 말을 이었다.
[우리조직에들어온다면언제든지원하는재료로원하는아티팩트를만들수있도록전심전력으로협조…….]
━숨은 쉬고 말해라!
음, 초조함을 감췄어야 하는데 숨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장인에게 우리 조직을 어필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니 나도 마음이 급했다고.
[어쨌거나 그런 좋은 조건을 제시할 거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쪽의 의사거든.]
[내 생각?]
[그래. 그러니 그렇게 우리를 원수 보듯 볼 필요 없어. 그 작업실을 부순 건 좀 미안하게 됐다만. 따지고 보면 그쪽도 우리 흑마도사의 스태프를 댕강 분질렀으니까 샘샘, 아니, 미안하다. 그래도 벽을 부순 건 좀 심했지? 응, 심했어.]
내 사과에 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충 용서해 준다는 뜻일까.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준의 옆에 선 메이를 본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쪽을 기절시킨 것도. 음, 엄밀히 말하면 그쪽이 알아서 기절한 거긴 하지만 뭐, 아니야. 이것도 내 잘못이겠지.]
내 괴이한 사과에 메이의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곧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이에 오가던 긴장감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좋아, 이제 준의 처우를 결정하면 끝이겠구만.
사실, 이미 답은 나온 셈이겠지.
━답이 나온 셈이라니?
‘저런 감동적인 대화를 나눈 다음에 우리를 따라올 리가 없잖습니까?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훌훌 털어 내고 서로 잘 지내자는 엔딩이 나오겠지요.’
[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메이가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메이는 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형편없는 언니였다는 거 알아. 그동안 내가 한 잘못을 무슨 말로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앞으로는 우리 잘 지내보자.]
그리고 그 감동적인 말에 준의 반응은…….
[난 저쪽을 따라갈래.]
그 말에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넋이 나간 건 메이도 마찬가지였다.
[뭐? 나랑 같이 있지 않겠다고?]
[너랑 나랑은 하나도 맞지 않잖아.]
준의 말에 메이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 지금 꼭 그런 말을 해야 해?]
[사실은 사실이니까. 메이, 너랑 나랑은 정말로 맞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어. 하다못해 식성도 다르잖아. 너는 나를 보며 열불을 낼 테고 나는 그런 너를 참아 내야겠지.]
[야! 꼭 내가 모든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데!]
제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메이를 보며 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 심드렁한 표정에 메이가 분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그래도 저 수상쩍은 인간들을 따라갈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곳에 숨어 있던 나를 찾아낼 만큼 정보력도 괜찮고, 무력도 좋아 보여. 저 남자, 조금 전에 능력을 최소 세 가지는 썼어.]
[사, 삼중 능력자?]
[저 남자를 따라가면 귀한 재료를 많이 만져 볼 수 있을 것 같아.]
준의 평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걸로는 모자랄까. 신뢰를 받아 기쁘다는 표현과 함께 앞으로 우리를 따라오면 제대로 보답하겠다는 의미로 엄지를 치켜올렸다. 내 그 모습을 보던 메이가 나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진심이야? 저, 저런 남자를?]
왜냐! ‘믿음에 감사하며 앞으로 제대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뜻을 전하기에 그보다 더 완벽한 제스처가 어디에 있었다고.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그거.
윽, 레이의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